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184화 (18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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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장미정원

"그거라니."

"........"

이야기가 뭔가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한 인애는 입을 다물었다. 정석은 그녀를 끌고 그녀의 아파트로 향했다. 그녀의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내고 안으로 들어간다. 고급 맨션이라고는 하나 공간은 터무니없이 좁았다. 정석은 인애를 거실에 내팽개치고 소리쳤다.

"네가 아는 걸 다 말해."

"싫어."

"흥. 싫다고?"

정석은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일본에 도착해서 인애를 만나러 갈 채비를 하면서 갖춘 여러 준비 중에 하나였다. 인애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정석에게 있어 그녀는 "자신을 죽일 수 있었던" 여자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인애는 그것을 보고도 별로 겁이 난 표정이 아니었다. 한때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치열하게 부대끼며 중견기업을 이끌던 그녀였다. 오히려 이런 순간에 그녀의 강단이 빛을 발한다.

"쏠 테면 쏴봐. 그러면 넌 영원히 모르게 되겠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그리고..."

"그리고?"

"태근이 아버지가 누군지, 효진이 아버지가 누군지."

정석의 손에 들린 총구가 부르르 떨렸다. 손에 힘이 자꾸 빠진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두 번의 결혼, 두 명의 아내. 그녀들... 모두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믿을 수 없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했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외쳤다.

"거짓말하지 마! 네 년이 지금 살려고 발악하느라 지어낸 거짓말이지? 그렇지!"

"거짓말?"

인애는 코웃음 쳤다. 바닥에 쓰러져 정석을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기세는 전혀 죽지 않은 그녀였다.

"십 년 전... 아니, 네가 우리 회사에 처음 들어올때니까 말야. 십이 년 전이구나. 내 남편은 나 말고도 다른 여자와도 살림을 차리고 있었어. 근데 그 애가 더 이상 이런 관계는 싫다고 하자 남편은 그 애를 달래려고 남자 하나를 소개시켜 주려고 했어. 근데 그 남자는 직업이 없었지. 그래서 남편은 자기 회사에 남자를 입사시키고, 자기 첩까지 소개해 줘. 가까이 두려는 거였지."

거침없이 쏟아내는 인애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석은 속으로 설마를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은 그의 바람일 뿐이었다.

"그게 네 첫째 부인, 태근이 엄마, 은주야."

인애의 말은 마치 해머처럼 정석의 뇌리를 강타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그의 정신은 가드 풀린 권투선수가 소나기 펀치를 맞은 것처럼 너덜너덜해졌다.

"말도 안 돼... 형님은 그저 고향 후배라고....날 아껴서...."

"후배? 너 뿐만 아니라 그 년도 후배가 맞지. 오랫동안 배에 올라타고 씨까지 뿌렸으니 후배 중에서도 아주 가장 아끼는 후배님이시지. 게다가 널 아꼈다고? 네가 가장 만만해 보이니까 자기 여자를 잠시 빌려준 거야. 가까이 두고 언제든 따먹기 편하도록. 어때? 요즘 태근이는 잘 크고 있어? 우리 남편 새끼라서 키도 훤칠하니 잘 크고 있겠지?"

정석은 요즘 들어 부쩍부쩍 키가 커지는 태근을 생각했다. 같은 나이 때의 자신보다 훨씬 크다. 요즘 애들이 잘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헛소리..."

"난 네가 불쌍했어.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 남편에게 놀아나고 있는 네가 불쌍했다고. 생각해봐. 입사하면서 건강검진이랍시고 정자시험도 받았지? 이상하지 않아? 어떤 회사가 건강검진을 한다면서 정액검사까지 하니? 내 말이 틀렸어?"

"...."

"남편은 자신이 끼고 사는 여자를 성병이 있는 녀석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어. 왜냐하면 시집 보낸 후에도 계속 후릴 생각이었으니까. 근데 거기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지."

"무슨..."

인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정석을 향해 최대한의 비웃음을 담아 대답했다.

"넌, 깨끗했어. 어떤 성병도 없었지. 그리고... 정자도 없었어. 무정자증이었다고."

"뭐? 말도 안 돼.... 내겐 두 아이가...."

"정신 차려! 이 병신아! 바보퉁이야! 그 아이들이야 말로, 네 아내들이 저지른 부정의 증거라고! 너는 여자를 잉태시킬 수 없어! 그런데 네 아내들은 아이를 가졌어."

다리에 힘이 풀린 정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총구는 바닥을 향했다. 그런 정석을 보며 인애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결혼 후에도 쭉 아이가 없어 남편에게 돌밭이라고 불리며 찬밥 대우를 받았어. 그래서 널 위로해주고 싶었어. 어차피 남편은 날 여자로 보지도 않으니까 말이야."

처음 인애가 자신을 올라타던 때를 떠올린다. 정석이 얼굴이 좀 잘 생긴 편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여자에게 막 인기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런데 별다른 접점도 없었던 인애가 갑자기 정석을 유혹하고, 올라탔으며, 집착까지 하는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정석은 인애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그럼... 그럼 양숙이는...?"

"네가 한사코 날 멀리하고 떨어져 나가 살아가는 걸 가끔 보러 갔어. 그런데 너희 집을 관찰하던 중에 묘한 걸 발견했지. 네가 출근하고 나면 주인집으로 올라가던 네 마누라. 한참 후에야 나오더군.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어.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애를 낳더군. 남편은 씨가 없는데 말야! 이 정도면 충분한 증거 아니겠어?"

정석의 뇌리 속에서 둘째 부인, 양숙의 장례식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 자신에게 효진이를 어디 다른 집에 보내지 않겠냐고 넌지시 권하던 주인집 윤 씨. 그는 정말 정석을 걱정해서 그런 말을 꺼냈던 걸까. 그저 단순한 염려였을까. 이전에는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이들을 향한 의심이 시작되자, 이제는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석이 아무 말도 없자 인애는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네가 결혼하고... 그렇게 부인을 떠나보내고.... 난 네게 다가가지 않으려고 했어. 그렇지만 양숙이 그 년이 하는 짓을 보고 있으니 너무 괘씸했어. 그래서 그날 집 밖으로 불러내어 경고했지. 다른 남자 만나러 다니지 말라고. 네게 충실하라고 말야. 그렇지만 한사코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더군. 자신은 그저 일 도우느라 주인집에 다녔을 뿐이라고. 그걸 누가 믿어? 그래서 돌아서서 가는 그년을... 내가 차로 밀어버렸어. 후회는 없어. 사람을 죽인 거긴 하지만.... 난, 내 나름대로 널 사랑한 거야. 내게 죄가 있다면 널 불쌍히 여기고 사랑한 죄라고."

인애는 두 손과 두 발로 기어, 마치 네발 달린 짐승처럼 정석에게 다가왔다. 정석의 얼굴을 쓰다듬고 그의 목을 어루만졌다.

"불안했어. 누가 뭐래도 사람을 죽인 거잖아. 그런데 누가 나한테 편지를 보내더라. 내가 양숙이를 죽인 걸 알고 있다며... 그게 드러나고 싶지 않다면 해외로 도망가라고 말야. 그래서 널 두고 도망쳤어. 내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서. 그렇지만 이렇게 네가 찾아오다니.... 역시 우린 운명인가 봐."

인애는 정석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풀린 정석은 인애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이내 알몸이 된 정석을 두고, 인애가 올라탔다. 그녀 역시 알몸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정석의 아랫도리를 보고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일이 어찌 되었건 그녀는 정석을 좋아했었고, 정석의 몸도 좋아했었다.

"하아...이거...이건...너무 좋아...우웁......"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그와 별개로 정석의 물건은 꼿꼿히 발기되어 있는 상태였다. 인애는 정말 열심히 빨았다.

추웁- 추웁-

불알을 만지고, 육봉을 쓰다듬으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익숙한 행위를 다시 한 번 행한다. 그렇게 한참을 입에 넣고 삼킨 인애는 스스럼없이 그에 올라탔다. 그녀의 비부는 젖어있었다. 허벅지를 벌리고 정석의 위로 자리한다. 오랜만의 행위이긴 하지만 이미 익숙한 행위였기에 삽입은 쉽게 이루어졌다. 간만에 느껴보는 꿰뚫리는 기분에, 그녀의 정신은 고양되었다.

"하앙...하윽....역시.. 난 너 없으면 안 돼... 너 없으면.... 흐윽...."

정석의 가슴을 짚은 채, 그녀는 요분질을 격하게 시작했다. 벌름거리는 속살은 거친 들락거림에 반갑게 반응하며 벌름거렸다.

"아직도 모르겠어? 네가 나한테 그렇게 열심히 싸댔잖아... 너나 나나... 자식을 만들 수 없는 몸이라니깐."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애엄마들이..."

"네 애가 아니라니깐! 정신 차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

인애는 정석을 올라탄 채로 손을 뻗어 그의 목을 쥐었다. 조르지는 않았지만 거의 그에 가깝게 손을 조였다.

"내가 뭐라고 그랬어? 네 애도 아닌 애들은 버리고 나한테 오라고 했잖아! 아무도 필요없이 우리 둘이서 행복하자고 했잖아. 내 말을 왜 듣지 않는 거냐고! 대체 왜!"

인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정석을 향한 집착 사이에서 오랫동안 괴로워하던 그녀였다. 이렇게 만난 정석이 반가우면서도 미웠다. 그녀의 복잡한 마음만큼이나 정석의 머릿속도 복잡했다. 정석은 어떤 결정을 내렸다. 그는 입을 열었다.

"아니.. 내 생각은 달라."

"다르다니....흐응?"

몸을 젖히고 천장으로 얼굴을 향한 인애는 정석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분노를 바로 캐치하지 못했다. 정석은 벗어놓은 옷가지를 더듬었다. 상의를 던져놓은 그즈음에서 딱딱한 무언가를 찾아냈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감촉만으로 그것을 집어 들고 자신의 위에 올라탄 인애를 겨눈다.

"그렇군. 너만 없으면 되는 거야. 너만."

"무슨 소리지?"

"네 말대로 태근이와 효진이가 내 자식이 아니라고 해도... 그 아이들의 엄마는 이미 이 세상에 없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너 하나뿐이야. 설령, 네 말대로 내가 무정자증이라고 해도... 이제 너만 죽어 없어지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제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지."

정석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올라간다. 인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미쳤...구나...너..."

"그래. 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 나도 미쳤어."

정석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는 인애의 젖가슴 사이를 정확히 누르고 있었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녀의 살이 일종의 소음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등 뒤로 터져나간 피는 벽과 천장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인애는 입을 뻐끔거리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그래. 이젠 아무도 없군."

인애의 몸이 앞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행위를 마치고 정석에게 안기던 자세 그대로, 정석 역시 팔을 둘러 그녀의 목을 안아 주며 말했다.

"내 아이들은... 내 아이들로 키울 거야. 그건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야."

정석을 인애를 밀어냈다. 단순한 고깃덩어리로 바뀐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굴렀다. 정석은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 자리에 쓰러져 잠시 숨을 골랐다. 한참 만에 일어난 그는 거실에서 전화기를 찾아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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