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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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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연재되는 이야기는 <더블데이트> 연재분 1회부터 68회, 그다음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연재분을 읽지 않은 분 또는 생각이 나지 않는 분이라면 앞서 내용을 먼저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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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순전히 내 감인데, 그 날 새벽, 전화를 끊기 전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온 쓸쓸함이 잊히지 않은 까닭이다. 괜한 오지랖일지 모르겠지만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토요일은 비록 강권에 의한 것이기는 하나 이미 효진이와 약속을 해 둔 터라 시간이 안 될 것 같고 오늘 저녁 아니면 일요일밖에 시간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일정표를 그려보던 나는 오늘 바로 찾아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교무실에 가니 지애가 서류철 꾸러미를 들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행정업무가 좀 밀렸다는 그녀를 돕느라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수고했어요. 어때요.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래요?"
"아, 저.... 그게."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내내 다른 생각 중이었다. 난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거절했다. 지애는 흔쾌히 알았다고 대답하고 나를 전철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전철을 타고 선영이 집 근처에 내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해가 길어지고 있는 시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짧은 편이었다. 선영의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그녀의 방 앞까지 간다. 문은 잠겨 있었다. 벨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넘버락 덮개를 열고 잠시 고민했다. 이렇게까지 해도 되려나.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유진이의 생일을 입력하자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도 없는 방 안의 곰돌이들만이 날 맞이한다. 사람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방을 비운 지 제법 된 느낌이었다. 혹시나 싶어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오기까지 했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다. 한숨을 내쉬고 방을 나섰다.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다. 잠시 후 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별 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아는 얼굴을 마주치고 잠깐 놀랐다. 그쪽도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씨익 웃으며 내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늘도 애인 만나러 오신 거예요?"
"뭐... 그렇다고 하자꾸나."
내가 올라타자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코트같이 큰 옷가지도 많이 들고 있기에 몇 개는 내가 들어주었다. 소란은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고집을 부렸다. 큰 옷들을 내가 다 들어주자 소란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이런 걸 가지고 뭘. 그나저나 오늘은 휴일이 아닌데도 가게 일 돕는 거야?"
"일이 많이 밀려서요. 원래 일 돕는 분이 한 분 계셨는데.... 당분간은 ... 좀 쓰기 어려워서요. 인건비 안 드는 제가 나서야죠."
"아아."
약간 주저하며 말하는 소란의 말투에서 미묘한 난감함을 포착했다. 소각장 뒤 공터에서 혼자 울고 있던 소란의 모습이 떠올랐다. 괜히 물어보았다고 생각했다. 화제를 돌려야겠다.
"혹시 형제가 어떻게 돼?"
"그건 왜요?"
"음... 어쩐지 소란이는 동생이 있을 것 같아서 말야."
소란이가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만 셋이요. 남동생 둘에 여동생 하나요."
"휘유. 너까지 해서 넷이나 돼?"
"예. 좀... 정신없죠. 게다가 다들 저보다 많이 어려서."
바로 아래인 둘째가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고 셋째가 2학년. 막내 여동생은 내년에 학교 들어간다고 했다. 동생 챙기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건 뭐 완전히 학부모나 다를 바 없었다. 소란에게서 느껴지는 어른스러움이 어디서 왔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내심 안타까웠다. 비록 동생들에게는 언니, 누나라고는 하나 소란이 자신도 이제 겨우 열일곱 먹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일 뿐이다.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학교생활을 만끽해야 하는 나이인데 녀석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녀석의 엄마라고 하는 사람은 지금 너무 멀리 있다. 차라리 사정을 모르면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 않을 텐데... 그러는 동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건물을 나왔다.
"저.... 이쪽으로 가면 되는데..."
소란이가 가리킨 방향은 전철역과 반대방향이었다. 내게 옷을 도로 받아가려는 소란이를 말렸다.
"아, 그래 그럼 같이 가자."
기왕 돕기로 한 거 세탁소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나란히 걷기 시작하면서 소란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은 전철 타러 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렇긴 한데... 이렇게 밤길도 어두운데 숙녀분 혼자 보낼 수 있나."
숙녀치고는 많이 작기는 하지만.... 꼬마 숙녀쯤 되려나. 꼬마 숙녀는 뭐가 그리 웃긴지 쿡쿡거리며 웃었다.
"후후. 애인한테 안 혼나세요?"
"혼? 아아... 그것도 있어야 혼이 나든가 말든가 하지. 요새 코빼기도 안 보이는 데...."
소란이는 선영이를 내 애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아니라고 설명할까 싶었지만 괜히 이야기가 길어지고 귀찮을 것 같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유진이에게는 비밀로 해주겠다고 했으니, 그걸 믿을 수밖에 없다. 소란이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러고 보니 요새는 그쪽에 배달 나간 적이 없었네. 어디 멀리 가셨어요?"
"응."
그러자 소란이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되물었다.
"혹시 어디 가신 줄 아세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저런... 걱정이네요."
"그러게. 나도 걱정이다만..... 음? 니가 왜 걱정을 하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소란이와 선영이가 따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의외로 친한 사이라던가? 그런 건가?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소란의 대답은 이런 나의 짧은 의문을 시원스레 해결해 주었다.
"대금 밀린 거 있나 싶어서요. 원래 장부 손님들은 월말에 정산을 해주시는데....."
이마를 탁 쳤다. 그렇구나! 옆에 있는 분이 어떤 분인지 몰라본 내 죄가 크다!
"하아... 정말이지, 소란이는 착실하구나. 월말 전에는 돌아올 거야. 만약 그때까지 안 돌아오면 내가 대신 내줄게."
"감사합니다. 에헤헤."
배시시 웃는 모양새는 딱 그 나이 또래의 발랄한 모습이었지만 대금 챙기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싶었다. 하긴, 벌거벗은 남자에게 바짝 다가가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내야 할 판인데 대금도 안 내고 도망간 손님이 있다면 소란이로서는 끔찍한 일일 테다. 나중에 선영이와 연락이 닿게 된다면 제일 먼저 세탁소에 밀린 대금부터 먼저 내라고 말해두어야겠다.
세탁소까지 그렇게 먼 건 아니었지만 어느 건물 뒤쪽으로 나 있는 어둡고 좁은 골목을 가로질러야만 했다. 전신주 하나에 불안하게 매달린 보안등 하나만이 밝히고 있는 그 좁은 길은 아무래도 여자애 혼자 이 시간에 다니기 적합한 길은 아니었다. 성인 남자인 나도 들어가기 머쓱해지는 분위기다.
"항상 이 길로 다니는 거야? 큰길로는 안 가?"
"그쪽으로 가면 많이 돌아야 돼서요. 저희 모토는 신속....."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던 소란은 입을 딱 다물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해지려던 찰나, 길 앞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소란 자매님. 오래 기다렸습니다."
우리 길을 막아선 사람은 깡마른 여자였다. 온몸을 검은 옷으로 휘감고 있었지만 내가 아는 검은 옷의 여자들과 완전히 분위기가 달랐다. 선영의 검은 옷보다 더 검고 음습한 느낌이었고 예린의 검은 옷보다 더 살벌한 느낌이었다. 키도 작고 말라 빠진 그녀는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소리로 소란에게 말을 걸었다.
"약속하신 사흘이 지나도 연락이 없으시기에 직접 모시러 왔습니다만.... 어떤가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아니 되신 겁니까?"
손에 세탁물을 들고 있지만 않는다면 두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다. 소란을 돌아보니 소란이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 있었다. 평소 재기발랄한 표정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소란은 약간 더듬거리며 말했다.
"다...다음 주에 가면 안 될까요? 아빠한테 아직 말씀도 못 드렸고 동생들도 챙겨야 하고...."
"저런!"
그녀는 마치 날개라도 펴는 것처럼 두 팔을 활짝 폈다. 검은 밤길에 그 어둠보다 더 검은 빛을 뿜어내는 그녀는 마치 어둠 속에 숨어있는 괴물 같아 보이기도 했다.
"속세에 대한 미련이 클수록 그것을 더 빨리 끊어내야 한다는 것을 모르시나요. 이미 자매님께서는 손목에 인을 받으셨잖아요. 그것은 곧 우리 교회의 품에 안기겠다는 의미이기에 이렇게 직접 모시러 나온 겁니다."
손목의 인? 그때 보았던 매직으로 그린 듯한 이상한 그림이 그런 의미였나?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나와 소란이 당황하고 있는 동안 여자의 등 뒤에서 덩치 큰 누군가가 스윽 나타났다. 난 황급히 소란을 당겨 품 안에 안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들어선 골목 입구에도 누군가 나타났다. 삽시간에 포위망이 완성되었다. 상황이 급박해졌다. 머릿속에서 계산을 마친 나는 소란의 귓가에 대고 빠르게 속삭였다.
"내가 뒤에 놈을 맡을 테니까 그 사이에 넌 도망가."
"서...선생님."
"아무래도 이놈들, 본격적으로 널 기다린 모양이니 되도록이면 집 말고 다른 데 가 있어. 어서!"
이미 앞쪽의 놈이 다가오고 있었다. 난 소란이 들고 있던 옷가지를 낚아채어 앞의 놈에게 던져 뒤집어 씌웠다. 앞에 있는 놈이 버둥거리는 걸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돌아서 뒤에 서 있는 놈을 향해 몸을 부딪쳤다. 주먹을 뻗어오는 놈의 팔을 간신히 피하며 몸을 와락 끌어안고 바닥을 구른다. 소란이를 향해 외쳤다.
"소란아! 어서! 도망가!"
"자매님! 어디 가시나요!"
내 외침과 말라깽이 여자의 외침이 한데 섞여 골목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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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의 이야기 다시 시작합니다. 본편의 이야기 전개가 이해되지 않는 분을 위하여 제 뜰에 스토리 순서도를 올려두었습니다.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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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감상문 이벤트에 응모하신 분이 딱 두 분입니다. 뱅퇴유 님과 네이버 아이디 irb1119 님입니다. 감상문은 잘 읽어보았습니다. 두 분께는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려고 하니, 자주 가는 카페 이름과 메일주소를 제게 쪽지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