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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188화 (18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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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그러나 얼른 도망가라는 나의 외침과는 달리 소란이는 날 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인마, 빨리 가라고!!"

젠장. 아무리 철이 들었다고 한들 어린애는 어린애였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혼동하고 있다. 날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녀석이 주저하는 그 짧은 틈에 이미 여자가 달려와 소란의 어깨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내가 옷가지를 던져 잠깐 시야가 가렸던 놈도 그걸 내팽개치고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에 섰다. 이미 난 다른 놈에게 팔을 붙들려 결박된 후였다.

"이 새끼는 또 뭐야?"

덩치는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을 구하진 않았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타입인 듯싶었다. 녀석이 내지른 주먹이 내 배에 꽂히는 순간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배가 한순간에 압축되었다가 풀리는 기분이다. 강렬한 구토감이 들며 숨이 찼다. 날 때린 놈이 검은 옷의 여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권사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두 분 다 모시지요."

내 등 뒤에서 뭔가 찰칵 소리가 나더니 손목에 차가운 금속물질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수갑? 이것들이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정말 교회에서 나온 놈들이 맞아? 소란이 역시 덩치 큰 남자 한 명에 의해 질질 끌려갔다. 여자가 내 앞에 오더니 예의 그 기분 나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형제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예수 그리스도다, 이 새끼들아."

나의 고급 유머를 이해했는지 그 여자는 빙긋 웃기까지 했다. 웃는 표정 그대로 손을 들어 올리더니 내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아팠다. 이내 뜨끈한 기분이 느껴지더니 코피가 주르륵 흘렀다. 제대로 맞았나 본데 이거....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자 기분이 나빴다. 다른 남자에게 잡혀 있던 소란이 그것을 뿌리치고 내게 달려와 손수건으로 코를 눌러주었다.

어디서 많이 본 거다 싶었는데, 저거 내 손수건이잖아. 쓰레기장에서 울고 있는 소란에게 건넸던 거다. 그렇게 피가 묻어서는 세탁하기 곤란하겠어. 근데 넌 세탁해 준다던 녀석이 그걸 가지고 다니면 어떻게 해? 소란에게 묻고 싶었지만, 묻기도 곤란하고 대답을 듣기도 힘들었다.

남자가 다시 끌고 갈 때까지 소란이 손수건으로 눌러준 덕분에 지혈이 조금 되었다. 피투성이 손수건은 바닥에 떨어졌다. 다시 줍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

"성스러운 그 이름을 속된 단어와 함께 쓰시지 마십시요. 그분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모든 것을 듣고 계십니다."

난 입 안쪽에 고인 핏물을 뱉어내고 말했다.

"모든 것을 보고 있다면 니네가 벌이는 이 납치극도 아주 재미있게 보고 계시겠네?"

그러나 여자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차분하게 답했다.

"납치라니,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이것은 길을 벗어난 어린 양을 인도하는 성스러운 사업입니다. 약속의 그 날에 이르기까지 단 한 분이라도 더 모시고 싶은 저희의 참된 신앙을 욕되게 하지 마시지요."

"하. 별 게 다 성스럽네. 그럼 내 손목에 채운 이것도 성스러운 수갑이고 이 검은 옷 입은 새끼들도 성스러운 조폭들이고 니 년도 성스러운 주둥이로 그 되도 않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그제야 여자의 얼굴에 표정 변화가 생겼다. 변화라고 해보아야 입 주변을 꿈틀거린 정도지만 워낙 무표정이었던 그녀인지라 그 정도만 해도 상당한 변화였다.

"인도가 많이 필요한 형제군요. 꼭 모셔야 하겠습니다."

여자가 눈짓을 보내자 내 뒤에 있는 놈이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녀석의 손아귀 힘도 힘이거니와 수갑 때문에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혀를 길게 빼고 허덕거리는 내 시선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모습은 끝까지 무표정인 여자의 얼굴이었다.

졸라 못생겼네. 진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기절은 처음 해 본 것 같다. 몸이 무거웠다. 잠든 것 같았지만 잠든 것은 아니었다. 죽은 것 같지만 죽은 것도 아니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신기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절벽에서 한없이 추락하는 느낌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늘을 나는 유쾌한 비행도 아니었다.

찬송가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의 합창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내 몸을 괴롭힌다. 정신을 차리려 애쓴다. 몸에 힘이 들어가자 잔뜩 졸렸던 목이 부러질 것처럼 아팠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본다. 초점이 맞지 않아 한참 동안 눈알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수백명이 넘는 사람들이었다. 남녀노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지만 중간중간 검은 옷으로 감싼 이들이 꽤 있었다. 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긴 의자가 4열로 수십 줄 넘게 배치되어 있고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고개를 더 들어 문 쪽을 보자 아니나 다를까 조폭 비스름한 놈들이 문마다 포진해 있었다.

"서...선생님... 괜찮으세요?"

왼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 으윽, 고개를 돌리는 것 자체가 엄청난 수고를 요하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목에다 접착제라도 발라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암튼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나니 걱정스러운 표정이 가득한 소란이가 보였다.

"살아있으니 괜찮은 거지, 뭐."

"계속 기절해 계셔서....."

"내가 잠이 좀 많아. 아우. 한숨 잘 잤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농담을 건네보지만, 결코 마음이 편하진 않다. 소란의 표정도 좋아지지 않는 걸 보아 내 농담은 실패한 모양이다.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발목과 손목에 가죽으로 된 끈이 감겨 있었다. 가죽끈은 내가 앉아있는 나무 의자에 아주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런 식으로 팔걸이가 달린 의자에 강제로 앉혀 있었는데 사정 모르는 이가 보면 그저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게다.

왼쪽에 있는 소란이도 사정은 비슷한 모양이었다. 오른쪽을 보니 단발머리의 여자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수백 명 앞에 놓인 단상 위에 전시되어 있었고 내 뒤로 더 높은 단상이 있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더 돌리지 못해 눈으로 확인은 안 되지만 어림짐작으로 거기에서 설교니 뭐니 하는 인간이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단상 옆에 놓인 사회자 석에는 골목에서 나와 소란을 납치한 여자가 서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그녀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오늘 귀한 말씀 해주실 원종서 목사님을 모시겠습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은 반드시 살아남을 우리들입니다."

그러자 한쪽 벽에 도열해 있던 합창단이 화음에 맞추어 오- 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눈에 띄게 흥분하기 시작한다. 합창단에 맞추어 같이 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두 손을 움켜쥐고 아멘과 할렐루야를 연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나타나기에 저러는 걸까 싶었다.

잠시 후, 키가 작고 인자해 보이는 사람 하나가 사람들 뒤에 있는 큰 문에서 나타났다. 분위기를 보아 저 사람이 원 목사인 모양이었다. 그가 사람들 사이를 걸어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요톱텐 1위한 가수를 방송국 앞에서 본 여고생보다도 더 열광적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사람들을 밀쳐내며 길을 열었다. 밀쳐낸다기보단 거의 때리다시피 하면서 밀쳐내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원 목사의 옷깃이라도 만지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고 또 달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미쳤군... 다들 완전히 미쳤어....."

"선생님..."

"미안, 소란아. 저 중에 너희 어머니도 계시겠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선생님...."

울먹이던 소란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몸이 이 꼴이라 녀석을 달래주지 못하는 게 너무 유감이다.

"이봐요."

"네?"

오른쪽에 앉은 여자였다. 심드렁한 표정의 그녀는 내게 말했다. 굉장히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괜히 사태 어렵게 만들지 말고 가만있어요. 미친놈들에게 미쳤다고 말해봐야 그게 먹힐 거 같아요?"

"음.... 전혀 안 먹히나요?"

"화만 더 돋우게 될 걸요. 그러니 그냥 가만히 있어요."

말투가 기분 나빠 몇 마디 쏘아붙이려고 했는데, 원 목사가 단상에 오른 모양이다. 마이크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교회 안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목소리만 들으면 인자하고 자상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교회 안에 울려 퍼졌다.

"에.... 오늘은 요한계시록 제5장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아멘!"

무슨 신호라도 있는 건가? 사람들이 한순간에 아멘! 이라고 외치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원 목사의 설교가 이어졌다.

"경에 이르기를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원 목사의 얼굴은 내 위치에서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건데 그의 설교는 그들의 마른 목을 적셔주는 감로수인 모양이다. 사람들의 표정은 사막에서 물장수를 만난 사람의 표정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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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 지명, 단체, 특정 종교의 명칭 등은 현실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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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루트는 끝에서 분기합니다. 두 가지 엔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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