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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아멘."
"아멘!!"
.....스읍. 하마터면 다시 잠들 뻔했다. 무슨 자장가도 아닌데도 정신이 멍해진다. 예전에 엄마 따라 절에 갔을 때 스님의 독경 소리에서도 느끼는 거지만 종교 경전이라는 건 원래부터 무슨 라임이 실려있는 모양이다. 난 원 목사가 요새 유행하는 그 뭐다냐, 그래. 랩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원 목사의 랩, 아니 설교는 이어졌다.
"경에서 이렇게 크게 말씀하고 그토록 강하게 경계하고 있습니다만, 보십시오. 이토록 무지하고 이토록 눈 뜨지 아니하고 이토록 무자비한 이들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경에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랍니다."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아멘!"
"그러나 진정으로 없겠습니까? 이 중에 없습니까? 이토록 사람이 많고 뜻있는 자들이 모여들어 있는데 누구 하나 그 생명의 두루마리를 펼칠 사람이 없겠습니까?"
원 목사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며 교회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외친다. "아멘!" 내가 예전에 어떤 아가씨 때문에 교회에도 잠깐 나가보았지만 그때도 이 정도의 간절하고도 절절한 아멘은 못 들어본 것 같다.
"제가 비록 보잘것없고 내세울 것 없는 비천한 목회자이지만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의 일곱 영이 있을 것이요, 생명의 두루마기를 펼칠 사람이 분명 있으리란 것을! 나는 들립니다. 천사의 음성과 나팔소리가! 여러분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만 한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 양도 벌떡 살아 일어나 휴거에 들 것이며 하늘나라의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은 바로 여러분의 것입니다!"
처음에는 조용하고 나직하게 시작했지만 뒤로 갈수록 그의 말은 힘을 더하고 탄력을 받았다. 추임새로 들어가는 아멘 소리를 수백 명이 알아서 외쳐주고 있으니 그 기세가 무서울 지경이다. 그는 뒤이어 요한계시록에서 말한 이 세상의 종말을 묘사했고 그 무시무시함이 우리를 덮칠 거라 경고했다. 그게 성경에 어떻게 나오고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성경이라고는 구경도 못 해본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는 마치 그것을 자신이 보고 온 사람인 양 떠들어 대고 있었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그 목소리에 취해가고 있었다.
"방법은 있습니다! 이 원종서! 제 몸 하나 바치어 여러분을 구해내고자 합니다! 기도에 기도를 드려 여러분의 목소리가 하늘에 닿을 때, 저 역시 비천한 몸 하나 불살라 거기에 힘을 보태겠나이다! 먼 땅에서 이르는 종말을 눈으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이십사 장로가 한자리에 모여 세상의 종말을 논할 때라도 저 하나만큼은 여러분만이라도 살리자고 간청을 드리겠습니다! 휴거의 그 날이 오면! 정말 그 날이 와서 세상이 뒤집어지고 저 무지몽매한 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여러분만큼은 살려드리겠습니다! 이 원종서! 목에 피가 맺혀라 여러분의 진심을 하늘에 전하고 또 전하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목사님!!!!"
다양한 절규와 환희, 울음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것을 대체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광기...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친놈의 미친 수치가 100 정도 된다면 저들의 미친 정도는 수천, 수만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원 목사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가 논하는 바는 명확했다. 세상은 곧 망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구원받으리라. 날 믿고 따르는 너희는 구원받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진 않았지만, 자신을 따르는 방법은 아무래도 가진 재물과 재산을 모두 바치라는 것이겠지. 불현듯 소각장 옆에서 울고 있던 소란이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해졌다.
"바깥으로 나가 보십시오! 탐욕과 시기가 들끓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한데 모여 우리를 비난합니다. 원 목사가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떠들고 다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먼저 알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죽은 자요, 죽은 자의 비난은 티끌만큼의 가치도 없습니다! 성령을 믿고, 미래를 믿고, 우리에게 다가올 구원을 믿는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기도꾼들입니다!"
하아... 내가 교회에 다니는 인간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원래 종교라는 건 모든 사람들의 평안을 빌고 세상을 보다 좋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게 아니었나?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어떻게 이놈의 교회는 "믿는 자들만의 구원"을 목놓아 부르짖으면서 "믿지 않는 자들"은 대놓고 죽은 사람 취급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잠시 후, 마이크 두드리는 소리에 다들 조용해졌다. 격정을 가라앉힌 원 목사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늘, 우리는 아주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아직도 제대로 눈 뜨지 못하고 방황하는 어린 양을 이 자리에 모셔놓고 바른길로 인도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눈앞에 계신 세 분을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수백 명의 시선이 우리에게 단번에 꽂혔다. 지금까지 이쪽을 힐끔거리며 보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대개 원 목사에 집중하고 있느라 우린 뒷전이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전혀 달랐다. 광기에 번뜩이는 수백 개의 눈이 우리를 향했다.
"이들이야말로 여러분의 기도가 하늘에 닿고 땅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증거요, 산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제31장을 보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주인께서 가라사대 그때가 오면,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주인께서 다시 가라사대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 하십니다."
"아멘!"
"제 발로 우리에게 찾아와 뜻을 함께하고 다가올 새 하늘을 준비할 이분들을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이어졌다. 우리를 향해 잘 왔다, 기도하겠다는 등의 찬사......아니, 저걸 찬사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런 게 쏟아졌다. 어느샌가 원 목사가 단상에서 내려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소란의 머리에 손을 얹고 무어라무어라 외치며 한참을 기도했다. 소란이는 아까부터 계속 울고 있던 터라 그냥 묵묵히 그걸 받았다. 그러나 난 달랐다. 그가 내 머리에 손을 얹으려 할 때 머리를 흔들어 그걸 쳐내었다.
"개수작 말고 이거나 풀어!"
그러나 원 목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 좋은 미소만 띠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어허, 이분은 아직 속세의 때가 덜 빠진 모양이군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날 향해 사탄이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나를 끌고 왔던 여자가 덩치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원 목사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이런 분을 우리의 길로 모실 때 더 큰 보람을 느낀답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길 아니겠습니까?"
"목사면 목사답게 바른 일을 하란 말이야. 사람 납치나 해가지고....."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걸로 보아 틀림없이 귀신이 들린 분이로군요."
"귀신?!"
귀신 좋아하시네. 어처구니가 없어 내가 무어라 더 소리치려 하는데 원 목사가 내 뒷목을 잡았다. 순간 무언가 따끔한 게 느껴졌다. 뭐지? 그는 내 목에 한 손을 올려놓고 다른 손을 사람들을 향하더니 소리쳤다.
"보십시오! 이토록 세상에는 눈 뜨지 못한 자와 알지 못하는 자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가 없습니다. 그들을 탓하면 안 됩니다!"
"너 이 새끼 방금 무슨 짓을....."
목 뒤로부터 이상한 감각이 일렁인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퍼져나간다. 원 목사는 눈물까지 흘리며 부르짖고 있었다.
"그들에게 들린 귀신만 몰아내면 우리는 그들을 우리에게 되돌릴 수 있습니다! 제게 주어진 권능이 이토록 보잘것없음에 안타깝습니다. 이 자에게 들린 마귀를 몰아내도록 여러분,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요!"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손을 모아쥐더니 무언가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무언가 검은 구름 같은 게 보이는 듯하 착각이 들었다.
"다...닥쳐......니....들....이....지....금.... 하는......짓은...."
입을 열어 말을 하려고 하는데도 그게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목이 굳고, 혀가 굳는다. 물 밖으로 나온 금붕어 마냥 입을 뻐끔거리는 게 다였다. 목구멍에서 뭔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더니 내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속이 뒤집힐 것 같다.
"자! 보십시오! 그의 안에 있는 악한 것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더 기도하십시요! 더! 더! 더!"
원 목사의 외침에 맞추어 사람들의 아멘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들의 기도가 정말 하늘에 닿으려나. 젠장. 그 전에 이미 내 뇌를 때려 부수고 있다.
"끄어어어어......"
"보십시오! 귀신의 비명입니다!"
"오오오오! 목사님!! 목사님!! 아멘!!! 할렐루야!!!"
개수작 집어치워....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내 눈은 다시 감겨버렸다. 젠장. 니놈들은 사람 기절시키는 게 전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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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소란이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기억하신다면, 이번 루트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