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194화 (194/471)

0194 / 0471 ----------------------------------------------

Route

다시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자마자 속으로 외쳤다. 젠장! 이라고 말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그저께 토요일처럼 빼도 박도 못하게 무단결석하고 말았다. 문득 지난주에 소란이가 월요일에 결석했을 때가 생각났다. 지금 내가 그 꼴이 났다. 한숨을 푹푹 내쉬어보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들의 대응은 철저한 무대응. 이쪽에서 굽히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내내 가두어 둘 뿐이다. 차라리 때리고 고문하고 그런다면 반항이라도 하겠는데 밥도 안 주고 이런 식이다 보니 도무지 대항할 도리가 없다. 아침 아홉 시가 되기 전에 미리 소란에게 사정을 설명해두었다.

"저들이 이렇게 내내 가두어 둘 수는 없을 거야. 너랑 나랑 둘이나 한꺼번에 학교에 나가지 않으면 아무래도 문제가 불거지겠지. 그걸 이유로 너라도 나갈 수 있도록 협상을 해보자."

소란은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들은 바깥 일에 그런 식으로 신경 쓰지 않아요. 철창에서 나간다고 해도 자기들 하라는 대로만 하게 할 거예요."

"내가 니 몫까지 기도한다고 얘기해볼게."

"싫어요. 선생님이랑 떨어지는 건..."

소란은 내게 안긴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난밤에는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거라 생각을 애써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소란의 몸이 너무 부드러웠다. 소란의 몸이 내게 닿을 때마다 남자란 동물은.... 이틀을 내리 굶고도 발기가 되는, 정말 답이 없는 짐승이라는 걸 체감한다. 일단 소란을 살짝 떨어뜨려 놓았다.

"그렇다고 여기 평생 갇혀 있을 순 없잖아. 일단 어떻게든 나가고 나서 생각해 보자."

그렇게 간신히 소란을 설득했지만 놈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어제나, 그제나, 아침 아홉 시만 되면 나타났던 녀석들이 어찌 된 일일까. 시간이 흘러 열 시가 다 되어서야 문이 열렸다. 그러나 들어온 사람은 김 권사가 아니었다.

"아니, 저기...."

산만한 덩치의 남자 넷이 들어와 문을 열고 나와 소란을 끌고 갔다. 두 사람이 각각 하나씩 끌고 가는데 일단 몸에 힘도 없을뿐더러 설령 내가 배불리 먹고 나서도 도저히 덤빌만한 인상이나 체격의 인간들이 아닌지라 잠자코 끌려갔다. 처음에는 항의를 하고 무어라 말도 걸어보았지만 이들은 무슨 벙어리라도 되는 것처럼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할 뿐이었다. 철창이 있는 방을 나와 복도를 한참 가더니 어떤 외딴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곳은 무슨 화공학과 실험실처럼 생긴 곳이었다. 벽 한쪽에 놓인 매트에 내팽개쳐졌다. 함께 끌려온 소란을 토닥이며 그들을 살펴보았다. 이윽고 왜소한 체격의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얘네들인가? 김 권사를 애먹게 한다는 연놈들이?"

얼굴에는 검버섯이 가득하고 목소리에서는 가래가 끓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이 골골거리는 노인네의 인상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눈빛만 번뜩이는 남자였다. 노인이 가질만한 눈빛이 아니다. 그는 내게 다가와 턱을 잡고 얼굴 이곳저곳을 들여다본다. 소란도 마찬가지로 살핀다.

"굿굿. 좋아. 좋다구. 크크크."

미애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들의 수법 중에는 약이 있어요." 실제로 난 목사인가 뭐시기인가 하는 놈이 순식간에 찌른 독침 같은 것에 맞고 저절로 마귀 들린 자가 되지 않았던가. 이곳의 분위기도 그렇고 노인의 태도도 그렇고 소름 끼치지 않는 게 하나도 없었다. 노인은 나와 소란을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치 실험용 모르모트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훑어내리고 있었다.

"무...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간신히 배에 힘을 주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묵묵히 서 있는 검은 옷의 남자들도 그렇고 혼자서 테이블에 앉아 뭔가 약물을 섞고 있는 노인도 그렇고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야 벌떡 일어나 저 노인의 멱살이라도 잡거나 아니면 문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상황이 불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말뿐이었다.

"말 좀 해보라고! 대체... 대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아무도 답해 주지 않아 내 질문은 허공으로 공허하게 사라졌다. 잠시 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대답이 들렸다.

"신약 테스트라던데요."

"........미애...씨?"

아까 우리가 들어왔던 문으로 또 다른 사람이 끌려 들어왔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 명의 남자에게 연행되어 팔이 뒤로 묶인 미애였다. 그녀도 내 옆에 강제로 무릎 꿇려진다. 그녀의 옆 얼굴을 쳐다본다. 이 여자는 그때 나가지 않았던가? 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

"아까 언뜻 듣기로 신약이니 뭐니 하는 걸 테스트한다더군요. 부작용이 나면 신의 뜻이라며 버리면 그만이고 다들 한 통속이니 죽어버리더라도 아무도 몰래 묻어버리기도 참 좋겠죠."

자기도 나랑 같이 잡혀 온 주제에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미애를 보며 기가 막혔다. 미애를 끌고 온 남자 중 한 명이 노인에게 무언가 귓속말을 한다. 노인은 킬킬거리는 미소를 견지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그 광경을 보며 미애에게 속삭였다.

"신약이라뇨.... 그리고 미애 씨는 김 권사 따라간 거 아니었어요?"

그러자 미애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들켰더군요. 김 권사가 은근히 기도원 얘기를 꺼낼 때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쳇."

"들키다뇨?"

미애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하고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노인이 손짓을 하자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을 남기고 모두 나갔다. 이쪽도 셋이고 저쪽도 셋이지만 이쪽은 죄다 팔이 뒤로 돌려져 수갑이 채워져 있고 남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어떻게 이 수갑이라도 좀 풀 수 있다면 해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노인 옆에 서 있는 남자의 덩치들을 보고 있자니 그 생각도 무리일 것 같다. 게다가 꽤 오래 굶었던 터라 허기가 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절할 지경이다. 노인은 앉은 방향을 돌려 우리를 향하더니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자자, 당신들이 저 위에 있는 분들의 신을 모욕했다는 인간들인가? 듣기로는 그렇던데?"

"위에 있는 분들의 신이라니....."

"아아, 걱정 마. 여기서는 그 신 욕해도 돼. 나는 힌두교도니까 말야. 크크크."

나와 미애, 소란은 서로 마주 보았다. 이 인간은 대체 뭐라고 하는 걸까. 그의 알아듣지 못할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내가 모시는 신은 시바니까 말야, 나에게 욕을 할 때는 꼭 씨바! 이렇게 해주라구. 그러면 나는 오~ 나와 같은 종교인 사람이 또 있구나, 이러면서 무척 기분이 좋아질 거야. 흐흐흐."

어째 점점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저 인간들이 나를 싫어하면서도 나에게 돈도 주고 실험실도 주고 하는 이유는 딱 하나야. 뭔가 만족스러운 리절트를 내라고 하는데, 씨바, 내가 여태 해준 것도 모자라서 자꾸 뭘 또 내놓으라는지 모르겠어."

노인은 뭔가 궁시렁거리면서 한참을 투덜거렸다. 모르긴 몰라도 앞서 보았던 교회 인간들하고는 사이가 그닥 좋은 편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 자를 잘 구슬리면 나갈 길이 열리려나?

"근데 듣자하니 거기 자네."

노인이 날 가리켰다. 갑작스러운 지적에 조금 놀랐다.

"네, 네?"

나도 모르게 존대를 하고 말았다.

"그래, 자네 말야. 씨바, 자네가 김 권사 그 년한테 제대로 엿을 먹였다면서? 표정이 보기 좋더군. 내심 통쾌했어."

"통...쾌요?"

"그래. 그 맨날 우거지상하고 다니는 년이 마귀 들린 자가 왔다고 걱정하는 꼴이라니. 푸하하하하. 없던 변비도 해결되는 느낌이랄까."

그의 웃음에 동조를 해주고 싶지만 차마 웃음이 나오진 않는다. 그는 김 권사 욕을 한참 더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원 목사에게 부탁을 했지. 이번에 꼭 실험해 보고 싶은 좋은 샘플이 나왔는데 그걸 써봐도 되냐고. 그래서 자네를 여기 데려왔네. 옆에 부록도 딸려있고... 아주 좋아. 좋아. 굿굿굿."

그는 연방 굿과 좋아를 반복하며 우리를 훑어보았다. 아까도 느꼈지만... 사람을 보면서도 사람이 아닌 마치 물건을 보는 듯한 그의 눈빛에서 소름이 쫙 끼쳤다.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김 권사를 통쾌하게 엿 먹인 나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 부른 게 결코 아니었다.

"어...어르신, 대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어르신? 푸하하. 듣기로 자네 김 권사에게는 꽤나 모욕적으로 대했다고 하면서 나에겐 공손하구만, 그래. 이거 이래서야 재미가 떨어지는데?"

그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빙글거렸다.

"난 그렇게 늙은 사람이 아냐. 겉보기에 그런 거지. 이들은 날 바텐더라고 부르지. 자네도 그렇게 부르게. 어르신이라니. 낯 간지럽잖아."

늙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긴 건 그리 생겨놓고? 그나저나 자기 이름이 바텐더라니? 설마 저기서 섞고 있는 저 약을 가지고 칵테일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겠지? 내가 아무것도 몰라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동안 그자는 작은 시험관에 푸른 색의 용액을 담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설명도 끝났으니 다들 칵테일 한 잔씩 해볼까?"

.....진짜였네. 분위기만 봐도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 같은 작자가 만든 약을 마셔야 하는 건가? 온몸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때 목사가 찌른 독침만으로도 곧바로 기절하여 몇 시간 넘게 고생을 해야 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것도 여기서 저 바텐더라는 작자가 만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저 정체불명의 용액은 대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일 것인가. 검은 옷의 남자 둘이 우리에게 접근하는 동안 바텐더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쪽 벽에 세워진 카트를 이쪽으로 끌고 왔다. 거기에는 캠코더와 노트북 같은 것이 실려있었다.

"읍읍읍!!!"

뿌리치려 하였지만 몸은 이미 결박되어 있다. 거기가 놈들의 손아귀 힘이 워낙 강해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한 놈이 턱을 잡고 강제로 입을 벌리면 다른 놈이 코를 틀어쥐고 용액을 입에 들이부었다. 뭔가 대단히 끈적거리고 미끈거리는 용액이 혀와 목구멍을 적시며 몸 안으로 들어간다. 울부짖는 소란에게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지만 눈을 부라리고 있는 미애에게도 똑같이 강제로 행해진다.

"쿠엑....쿠에에엑!!!"

고개를 숙이고 강제로 토해내려 해보지만 여의치 않다. 뱃속이 타는 듯하고 뇌가 끓어오르는 기분이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온몸이 근질근질하더니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이, 수갑도 풀어줘야지. 저래서는 씬이 안 나오잖아."

바텐더의 지시를 받은 남자가 수갑을 풀어준다. 수갑이 풀리자마자 벌떡 일어난다. 일어났다. 아니, 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데 다리는 여전히 풀려서 바닥에 앉아있는 날 발견한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내 몸! 어이! 이십 년 넘게 날 운반한 다리!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왜 다리가 천장으로 올라가지! 팔이 바닥에 잠긴다. 몸이 녹아내린다. 아니지, 몸이 녹아내리는 게 아니지. 몸은 아이스크림이 아니고 아이스크림이 녹는 거니까. 우와, 저 아이스크림 맛있겠다. 핥아 먹어야겠다. 근데 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어째서 소란이 손이 내 입에 들어와 있는 거지?

"흠... 효과는 즉효인데, 지속시간이 관건이려나."

바텐더는 이쪽의 모습을 촬영하면서 뭔가 열심히 기록하고 있었다. 저 새끼. 바텐더. 그래. 바텐더가 맞는 모양이다. 그가 나에게 준 것은 지독히 취하는 칵테일이었고 지독히 취한 나는, 지독히 취했기에, 몸에서 열이 나고, 그래서 옷을 벗어 던지고 말았다.

"서...선생님..."

내게 안겨오는 소란. 그래, 너도 덥구나. 너도 덥지 않도록 옷을 벗겨줄게. 옆에 있는 미애 씨도 벗겨주려 하였으나 그녀는 한사코 몸을 흔들었다. 아니, 몸이 가만있고 고개를 흔든 건가? 그러나 그래도 벗겨주었다. 팬티와 브라 뿐인데, 한결 낫군요. 이제 안 더워보여요. 어라. 이제 안 더워보이는데 왜 자기가 나머지를 벗는 건지 모르겠다. 팬티라. 나도 벗어야 하나? 소란이도 이미 벗고 있는데?

"크크크. 굿굿굿. 이번엔 정말 최고인걸? 작품 하나 나오겠어! 계속해! 아주 잘~ 나오고 있다! 크크크크."

바텐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나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않는다. 지금 내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두 개의 고깃덩이의 움직임이 너무도 색정적이다. 두 명의 고기를 제대로 쑤시려면 물건을 두 개 있어야겠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일단 지금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충만함이라면 번갈아 찔러도 충분할 성 싶다. 한 년 따먹고 또 따먹고, 그런 다음 다시 또 따먹고.... 룰루랄라. 노래가 절로 나오는구나.

──────────────────────────

*

소란이가 누군지 생각나지 않는다는 분이 계셔요.

자,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입니다. 소란이의 첫 등장이 몇 화인지 맞춰보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