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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엑?"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이 여자가 대체 뭘 묻는 거야! 그게 왜 궁금한데? 경악에 찬 내 마음속 외침을 들은 걸까. 그녀는 재차 물어보았다.
"못 알아들으셨어요? 그러니까 하룻밤에 여성을 상대로 몇 회까지 사정이 가능한지를...."
"자, 자...잠깐만요 그런 망측하고 부끄러운 질문이 여기서 대체 왜 나오는 거죠?"
실종된 어이를 찾기 위해 가까스로 질문해보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대답했다.
"왜겠어요. 지난밤 당신한테 몇 번이나 시달렸는데 이런 질문 하는 게 잘못인가요? 당신이 그 정도의 행위가 가능한 게 약의 힘인지, 아니면 당신이 원래 절륜한 정력을 가진 건지 궁금해서 그래요."
꿈속에서, 아니, 꿈이라 생각할 정도의 몽환적인 경험에서 그녀를 상대로 몇 번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하긴 많이 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얼굴이 벌게진 채로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감히 미애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해 그러고 있는데 그녀 혼자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아마 암페타민을 베이스로 해서 최음제 효과를 낸 것 같은데... 사정 횟수나 정력 자체를 증강시키는 약물도 섞인 걸까. 정력제로 팔기 위해서 그런 성분을 추가했을 수도 있지. 수요는 적지 않겠어."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겠다. 난 고개를 바싹 쳐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깐만요. 제가 먼저 물어볼게요. 미애 씨는, 그게 무슨 약인지 아시는 건가요?"
"제 질문에 답부터 하세요. 보통 하룻밤에 몇 회까지 가능하신지."
다시 원점복귀.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예... 그건....."
아무리 그녀와 살을 섞은 사이라고는 하나 이런 질문에 답하는 건 아무래도 부끄럽다. 한참을 머뭇거렸더니 미애가 자꾸 재촉한다. 쭈뼛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6~7회라고 하자 그녀는 탐탁지 않아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허위진술할 필요는 없어요. 사실대로 말하라니까요."
그러면서 가볍게 혀를 찬다.
"하여간 남자들 허세하고는...."
자신이 물어봐 놓고 나를 탓하다니. 뭔가 억울했다. 발끈한 마음이 들어 반박했다.
"허세나 허위진술이 아니라... 정말인데요. 예전에 효진이나 선영이랑 할 때는 최소한 다섯 번씩은 하고 그러다가 시간 나면 더 하고....."
말을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입을 닫았다. 그러나 미애는 계속 답을 재촉한다.
"사실인가요? 나중에 그 효진이라는 사람과 선영이라는 사람에게 확인받을 수 있는 사안이에요? 한석 씨의 하룻밤 사정 횟수에 관해서?"
".......그걸 대놓고 물어보시게요?"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다. 이 여자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내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할 말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한석 씨의 이야기가 사실은 거짓말이고, 주입된 약으로 인해서 사정횟수가 증강된 것이라면, 이것은 저들이 갖고 있는 약물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실증 사례 중 하나가 되겠지요. 샘플을 입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바텐더는 아무래도 사용 직전에만 조금씩 만드는 것 같아요."
"아, 예."
"단순히 중추신경 흥분이나 기민성 마비뿐만 아니라 성욕 자체의 이상 증대, 성감의 확대, 전반적인 신체 활력까지 조절하는 무서운 마약입니다. 첩보를 접했을 때 긴가민가 했었는데 이 정도라면 아마도....."
"아, 예에."
엄지손톱을 깨물어 가며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고민에 빠진 미애의 얼굴을 본다. 이제 슬슬 내가 질문해도 되는 참인가.
"저기, 미애 씨?"
".....메스암페타민이나 덱스트로는 아닌 것 같고... 설마 엑스터시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걸까....."
손을 들고 간절하게 불러보았지만 내가 부르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한 번 더 불러본다.
"저기, 저기, 미애 씨?"
"....아니야, 아무리 바텐더라도 이만한 설비에서 대량 조제는 힘들 테고... 원료는 대체 어디서 구해온 거지...."
혼자 중얼거리며 자신만의 생각에 빠진 그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별수 없이 그녀 옆으로 다가가 팔을 잡아당기며 불렀다.
"미애 씨!"
"악! 깜짝이야.... 왜 그래요?"
뿌리치는 손에 뺨을 얻어맞을 뻔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문지로 자신의 앞섬을 주섬주섬 가리며 물었다. 이미 볼 건 다 본 사이인데 뭘 또 가리는 걸까. 그냥 두어도 보기 좋은데... 그걸 빤히 보고 있자니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외친다.
"언제 이렇게 바짝 다가왔죠? 뒤로 가요."
"아니,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기에..."
"뒤로 가라니깐!"
"네, 네...."
무릎걸음으로 뒤로 조금 물러났다. 거리가 조금 벌어지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게 묻는다.
"왜 그러죠?"
"왜 그러냐고요? 제가 아까부터 계속 불렀잖아요."
"왜 불렀는데요."
"저기, 그러니까 미애 씨 정체가 대체 뭡니까?"
안 그래도 전부터 묻고 싶었지만, 그녀는 계속 대답을 회피해왔다. 이번에는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
"네?"
"아니... 전에도 그렇고 오늘 약에 대해 말하는 것도 그렇고.... 정말 언니가 여기 있어서 들어오신 분 맞아요? 게다가 조금 전에는 뭐 첩보니, 허위진술이니... 그러시지 않았어요? 그건 마치...."
그러자 미애의 표정이 대번에 딱딱해졌다.
"그건 당신이 알아서 뭐하게요?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요?"
"아니, 굳이 알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서로 뭔가 터놓고 이야기하면 도울 수 있는 거라도 있지 않겠어요? 그냥 혼자 고민하시는 것보단?"
그러자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날 노려보았다.
"하, 도움이라.... 놈들에게 막말을 던져서 도발이나 시킬 줄이나 알지 자신의 여자를 지키지도 못 하고 맥없이 약에 취하더니..... 마찬가지로 약에 쩔어서 저항도 못 하는 두 여자를 덮친 분께 받을 도움은 없을 것 같은데요."
"뭐, 뭐라구요?"
그녀의 말은 너무 정곡을 찔렀다. 안에서 일렁이고 있는 이 느낌은 뭘까. 당혹감... 그러나 그 이전에 화가 먼저 났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항의했다.
"제....제가 당신을 덮친 건 불가항력이었다구요. 그리고.... 아까 사과했지 않습니까!"
"언제 사과를 했다는 거죠?"
"아까, 보자마자...."
"그거야 내가 깨 있는 줄도 모르고 저기 있는 저 아이랑 열심히 하신 것에 대한 사과 아니었던가요? 언제 당신이 절 덮쳤던 것에 대해서 사과를 했죠?"
아따, 고 년 진짜 날카롭기가 겨울바람 저리 가라 할 정도다.
"그....그야....."
하도 매섭게 날 몰아치는 바람에 제대로 답을 할 수가 없다. 괜히 물어보았나 싶어 쩔쩔매고 있는데 그녀가 혼자 중얼거리는 게 귀에 들어왔다.
"눈 뜨자마자 소란이만 챙기고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면서...."
".........네?"
여태까지의 말투는 분명 나를 비난하는 말투였지만 마지막 말에서 뭔가 묘한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자 몸을 움츠리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새초롬한 기색이 엿보였다. 저 표정은 뭐랄까... 어디서 많이 본 표정인데....
"그렇잖아요.... 나도 옆에 있는데..... 나도 어제 당신과 그렇게 했는데...... 나한테는....."
"아, 저, 그게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정보와 머리에서의 판단이 혼선되어 제대로 결론이 나질 않았다. 그러나 몸은 정직하고 더 빠른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그리고 기억해 냈다.
저런 표정을 짓는 한 아이를 난 알고 있다.
자신의 언니가 나와 관계한 사실을 알고 나서 그 아이는 저런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렇다. 그렇구나. 이제야 알았다. 그 아이는 지금 여기 없지만 난 이 순간 그 아이의 심정을 깨달았다. 언니와 내 사이를 알게 되고 또, 신비로운 어떤 방식으로 그걸 체험한 그 녀석은 나에게 다가오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그 아이는 일부러 나에게 모질게 대하고 짜증을 부리고 도망을 다녔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나를 원하고 있었다. 알아주지 못하고 다가가지 못한 내가 잘못한 거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런 잘못을 또 하긴 싫었다. 무릎걸음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내 움직임을 본 미애가 움찔했다.
"왜... 왜 그래요? 왜 가까이 오는 거죠?"
"미애 씨..."
"설마 그렇게 해놓고 또... 또 발기하는 건가요, 그건?"
가릴 수도 없이 드러나 있는 내 사타구니에서 무언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어쩜 이렇게 정확하고 훌륭한 타이밍일까.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 박을 수도 있다는 언질만 들었을 뿐인데 이토록 곧바로 반응하다니....
"저기, 혹시나 싶어서 다시 한 번만 확인하겠는데요.... 지금 미애 씨에게 제가 다가가도 되는 거죠?"
말을 꺼내놓고도 아차 싶었다. 나란 남자. 참으로 한심하다. 그냥 다가가도 될 텐데. 거부되지 않을 텐데.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조금 달랐다.
".........송화예요."
"네?"
"내 이름은 미애가 아니라 송화라구요. 채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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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애 처음 나올 때부터 다들 송화인 거 알고 계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