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210화 (210/471)

0210 / 0471 ----------------------------------------------

Route 8

──────────────────────────

한석은 모른다

──────────────────────────

종서는 바지춤을 추켜 올리며 바깥을 살폈다. 아까부터 들려온 아래층의 소음은 이제 잠잠해지고 있었다. 아주 크게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타이어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 후에도 바로 조용해지진 않았다. 교회 경비와 바텐더의 신변 보호를 위해 고용한 조직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긴 했지만, 그래도 아까처럼 요란하지는 않았다.

그는 소파 위에서 흐트러진 자세로 누워있는 알몸의 여자아이를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신다. 벌써 몇 번이나 해댔지만 이 아이는 만족의 끝을 모른다. 애액과 정액이 엉켜 흐르는 다리 사이를 보며 슬며시 웃음 지었다. 어린 녀석치고는 정말 뛰어난 명기를 가졌다. 쫀득한 맛이 정말 일품이다. 멍한 눈으로 이쪽을 향해 또 비척비척 기어오기에 발을 들어 살짝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더 하고 싶어도 지금은 자기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바텐더에게 정력제라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랬다가는 또 얼마만큼의 돈을 청구할지 몰라 주저되었다. 교회 초기만큼 신도 수가 폭증하고 있지 않아 요새 수입이 많이 감소한 탓에 함부로 돈 쓰기가 애매했다. 정기적으로 상납을 하는 여러 기관과 단체에는 이제 돈 대신 여자를 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여자들과 아이들을 골라 바텐더의 약을 먹여 접대를 하면 분명 호평을 받으리라.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 그만한 수고는 당연히 필요하리라.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런데 여자아이가 다시 또 네 발로 기어와 그의 다리에 매달린다. 본능적으로 그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기에 한 번쯤 더 빨게 하고 나가볼까 생각했다.

똑똑-

때마침 들려온 노크 소리에 놀란 종서는 아이를 황급히 밀어내었다. 내리던 지퍼를 황급히 끌어올린다.

"누구십니까?"

"원 목사님. 접니다."

쇠를 긁는듯한 목소리에 종서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아, 김 권사님. 들어....오시기에 지금 사무실이 좀 번잡스럽군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종서는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검은 옷을 두른 삐쩍 마른 여자, 김 권사가 복도에 서 있었다. 그녀는 허둥지둥 나오는 종서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바쁘신... 모양이군요."

"흐흐흠. 잡무가 좀... 있어서요."

종서의 대답을 들으며 김 권사는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미처 다 올라가지 않은 그의 바지 지퍼를 보며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아까 원 목사의 사무실로 어떤 아이가 들어갔는지 이미 들어 알고 있던 그녀였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원 목사의 엽색 행각은 도를 넘고 있었다. 지난번에 여신도 둘을 한꺼번에 덮치고 있다가 그녀에게 들키자 한다는 소리가 "성령을 전하고 있었다"였다.

그녀의 오빠인 부목사 김태윤도 기도원에서 비슷한 짓을 수도 없이 저지르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는 마당에 김은혜 권사의 고민은 날로 깊어갔다. 자신이 걷는 이 길이 과연 옳은 길인가. 복음을 전파한다는 목적 아래 신도와 그의 가족들을 납치하고, 휴거와 종말을 대비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재산을 가로채고 있다. 원 목사의 교리해석과 그가 보여주는 신앙에 감읍하여 그를 따르기로 결정한 지 이제 2년이 조금 넘어간다. 날이 갈수록 도를 넘는 교회의 행각을 진두지휘하면서 그녀는 마음 한구석에서 회의가 싹트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골방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렸다. '저의 이 삿된 생각을 몰아내 주소서. 길을 보여주소서. 주여.' 그러나 기도의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정진이 부족한 까닭이라고 여겼다.

"아까.. 그 난리는 해결이 되었습니까? 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원 목사를 따라가며 김 권사는 사태를 정리해서 들려주었다. 그들이 징벌실에 가두어두었던 이를 구출하기 위해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쳐들어왔고 그들을 막아내고 몰아내는 와중에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말이다. 물론 엄밀히 따져 쳐들어온 것은 예린 하나였다. 그러나 경비를 담당한 조직에서 고작 한 명을 제압 못 하고 놓쳐버린 자신들의 실책이 드러날까 우려해서 공격 측의 인원을 과장해서 보고했기에 김 권사는 꽤 많은 이들이 쳐들어온 걸로 알고 있었다. 보고를 들으며 원 목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사상자라니. 다친 사람 말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까?"

"네."

목을 베인 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눈을 찔린 자는 치료하기도 전에 절명했다. 교회의 방침상 제아무리 중한 환자라도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기 때문에 내부에서의 처치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가장 의사다운 짓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설비가 가장 잘 갖추어진 곳은 바텐더와 그의 실험실인데 그는 지금 모종의 테스트를 한다며 다른 이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이런 보고를 들은 원 목사는 입맛을 다시며 바텐더의 실험실로 향했다. 죽은 자들에 대한 처리는 김 권사에게 일임한다. 그녀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물러났다.

"이봐요, 박사님. 아까 그 난리는 대체..."

바텐더의 실험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원 목사는 흠칫했다. 피투성이인 남자가 팔을 벌린 채 벽에 고정하여 강제로 세워져 있었다. 걸친 것이 거의 없는 그였지만 맨살이 드러난 부분이 없을 정도로 피범벅이었다. 그의 발밑에는 각종 오물과 피로 작은 웅덩이가 하나 만들어져 있을 정도였다. 약 이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매달렸던 어떤 남자의 자세와도 비슷했다. 역한 피비린내에 눈살을 찌푸리던 원 목사는 그 남자가 아까 소녀를 데리고 올 때 그에게 욕을 해대던 이였음을 기억해냈다. 이름이 뭐였더라. 한석이라고 했던가. 한석의 앞에서 뭔가 열심히 약을 조제하고 있던 바텐더가 뒤를 돌아본다.

"실험실에 들어오실 때는 노크를 해달라고 분명히 말씀 드렸던 것 같은데요."

바텐더의 목소리는 몹시 예민해져 있었다. 원 목사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흠흠... 그건 미안하게 되었소만 상황이 워낙 다급하여... 그나저나 이놈은 아까?"

바텐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그렇기도 하고 오늘 난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녀석이라 뭐 좀 알아보려구요."

바텐더는 벽에 병 하나를 매달더니 거기에 붉은색의 용액을 담았다. 그리고 거기서 길게 튜브를 빼내어 끝에 달린 주삿바늘을 한석의 목 뒤에 꽂았다. 튜브에 달린 조절기를 만지자 붉은색의 용액이 한석의 혈관에 흘러들어가기 시작한다. 한석이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꿈틀거렸지만, 힘이 적잖이 빠진 듯 움직임은 반사적인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그건 뭡니까?"

지난 시간 동안 바텐더의 실험을 몇 번 지켜보았던 원 목사도 처음 보는 광경이다. 피보다도 더 붉고 진한 용액이었다. 그것이 흘러들어 갈수록 매달려 있는 한석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손끝과 허벅지가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킨다. 바텐더는 한석의 상태를 보고 조절기의 개도를 조정하며 말했다.

"이것도 칵테일입니다. 배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칵테일?"

"유명한 말이 있죠. 취중진담이라고..... 노래도 있던데 들어보셨습니까?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삿된 가요는 듣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게."

바텐더가 원 목사 쪽을 향하여 몸을 돌리더니 빙그레 웃는다. 천상 뼛속까지 과학자인 그는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취한 사람은 원래 거짓말을 못 합니다. 진실만을 이야기하죠. 거기에 착안을 한 칵테일입니다. 일종의 자백제라고나 할까요."

"자백제요?"

"아직 완성은 안 되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만큼의 성능은 잘 나오지 않더군요. 사람의 본심이라는 것이 어디 쉽게 드러나는 게 아니니까요. 아직은 약간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것도 꼴에 술이라고 한 잔 하고 나면 필름이 심하게 끊기고 개가 되고... 뭐 그렇죠. 하하하하."

원 목사는 속으로 지독한 놈이라고 욕을 했다. 자기 자신이 이 자의 능력을 높이 사서 막대한 돈을 투자하며 약을 얻어내고는 있는데도 이 자의 표현이나 사고방식은 가끔씩 섬뜩한 구석이 있다.

약물이 주입되고 시간이 좀 흐르자 한석의 눈이 떠졌다. 그러나 의식을 차려서 떠진 눈은 아니고 무언가의 작용에 의해 기계적으로 이루어진 몸의 반응이었다. 바텐더가 핀라이트를 들어 한석의 눈을 비춰본다. 동공반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바텐더는 손을 비비면서 원 목사에게 실험의 시작을 알렸다. 카트를 하나 끌어오더니 노트북에 연결된 캠코더의 전원 스위치를 켠다.

"어디 보자.... 쉬운 질문부터 시작해보죠.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하면 반응성을 측정할 수 없으니까요. 일단 가벼운 질문을 거듭해서 복잡한 질문까지 이르게 합니다. 자, 이봐. 어이! 이봐. 내 말 들리지?"

"들려..."

마치 ARS의 합성음처럼, 건조하고 딱딱한 말투의 음성이 한석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자네 이름이 뭐지?"

"....최...한...석..."

"나이는?"

"스물셋....."

"지금 살고 있는 곳은?"

"K대 후문 근처...."

"종교는 있나?"

"없어...."

"부모님의 이름을 말해봐."

"엄마... 최...영희... 아버지는.... 없어....."

아버지가 없다니... 조금 이상한 대답이었지만, 바텐더는 그냥 넘겼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원 목사를 돌아본다.

"어떻습니까? 지금 이 녀석은 외부 자극에 대해서 거의 무감각하죠. 청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은 차단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청각만 활성화되어 거기서 들어오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비판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대답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신이 난 그와 달리 원 목사는 아직도 회의적이었다.

"저 정도는 물어보면 누구나 답하는 거 아닙니까. 이름이나 나이 정도는 굳이 물어보지 않더라도..."

"별로 안 신기하신가 보죠. 좋습니다. 그럼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한, 제정신이라면 쉽게 대답하지 않을 질문을 해보죠."

바텐더는 의자 하나를 끌어와 한석의 앞에 걸터앉았다.

"어이, 최한석. 여자랑 자 본 적 있나?"

"응....."

"첫 여자가 누구지? 기억 나나?"

"이명희.... 아니.... 명희라고 알고 있었던 지혜....."

뭔가 대답이 기묘하긴 했지만, 그래도 하긴 했다. 원 목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호오... 저런 질문에 답도 하는군요."

"그렇습니다. 말 그대로 이 녀석은 이제 답하는 기계나 마찬가지입니다. 후후. 목사님께 보여드릴 만큼 보여드렸으니 이젠 제가 궁금한 걸 캐물어 보아야겠군요."

바텐더의 본격적인 심문이 시작되었다.

"예린과는 아는 사이인가? 그 리사라는 여자랑도 알고 있나?"

"리사.....의 경호원...예린.... 앞집 사는.... 마리의 언니.....리사........"

"마리? 그건 또 누구야?"

바텐더는 마리를 본 적이 없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리사의 동생....."

그러자 원 목사가 풋- 하고 웃었다. 마리의 언니가 리사이니 리사의 동생이 마리라는 정보는 참 쓸모없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바텐더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라 약의 강도를 더 올린다. 그리고 한석을 다그쳤다.

"자, 다시 리사에 집중해봐. 네가 리사를 어떻게 알지? 넌 부산 출신이냐? 백당 소속이야?"

"고향은... 부산....자라기는 화순에서....."

"아아, 이것 참. 질문은 한 번에 한 가지만 해야겠군. 중복되는 질문에 있어서의 반응은 다소 둔함. 오케이."

수첩을 펼쳐놓고 무어라 열심히 적어넣은 바텐더는 다시 캐묻기 시작했다.

"리사! 리사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봐!"

다그치는 바텐더의 조바심과는 달리 한석의 대답은 상당히 늦게 흘러나왔다. 한참 대답이 없던 한석이 입을 벌리자 바텐더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예뻐....."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