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213화 (21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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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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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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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나의 죄와 이 겨레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하였으며 하느님의 거룩한 산을 어여삐 여겨 달라고 나의 하느님 야훼께 간구하였다. 내가 이렇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지난번 환상에서 본 가브리엘이라는 이가 저녁 제사 무렵에 날아오더니 나를 흔들며 이렇게 분명히 일러 주는 것이었다. 다니엘아, 다니엘아. 네가 알려고 하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내가 이렇게 왔다. 네가 간절한 기도를 올리자 곧 대답이 내렸는데 나는 그 대답을 일러 주러 왔다. 하느님께서 너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대답해 주시는 것이니, 이 말씀을 잘 듣고 환상의 뜻을 깨닫도록 하여라. 아멘."

원 목사의 통독이 끝나자 강당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답했다.

"아멘."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였고 오랜 노동과 영양 부족으로 인해 삐쩍 말라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많이 해어져 있어 거의 누더기에 가까웠고 머리와 수염은 제대로 깎지 않아 너저분했다. 손가락 밑에 흙이 껴있지 않은 이가 드물었으며 옷 아래 드러난 피부에는 생채기가 가득했다. 강당을 3~4미터 간격으로 둘러싸고 있는 검은 정장을 쫙 빼입은 덩치 좋은 사내들과는 달리 명백히 거지꼴에 가까웠으나 그들의 눈빛만큼은 놀랍도록 날카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눈빛은 하나같이 원 목사의 입을 향해 있었다. 그 입이 열리어 다음과 같은 말을 쏟아낸다.

"다니엘 제 9장, 20절부터 23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성경에 새겨진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그를 기억하고 어여삐 여기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포로로 잡혀가 고초를 당하고 민족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으며 친구가 살해당하고 부인이 겁탈당했습니다.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그의 이름이 어째서 이토록 귀히 여겨져 성경에 올려져 있으며 훗날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늘 마음에 두고 있으며 하나님만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압제자가 그에게 다가와 자신들의 우상에게 절하라 압박하고 재산을 빼앗겠다고 겁을 줍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나를 유황불에 던질지언정 하나님이 나를 구해주리라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토록 고귀한 이름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신앙은 이런 것입니다. 믿는 자는 보상받을 것이오,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할 것입니다. 그 어떤 압박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신앙이 있다면 여러분은 살아남을 것이고 귀히 쓰일 것이고 높이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맞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저는 지금 압박을 받아 이 먼 곳으로 쫓겨오듯해야 했습니다. 종로 바닥에 제 목숨을 바쳐 세운 교회에 불신자들이 쳐들어오고 제 목에 칼을 대고 겁박합니다. 제 신앙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나라의 힘을 등에 업은 악마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저희의 성전을 짓밟고 불태우고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말세가 임박한 혼란한 세상에서 저들이 어찌 그 크고 거룩한 뜻을 알 것이며, 천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며, 진정한 신앙이 무엇이고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저희는 어찌 알겠나이까. 그리하여 진정한 그때에 이르러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시길 너희가 진정한 믿음을 지키고 싸워왔냐고 물으시면 여러분은 어찌 대답하려 하십니까. 핍박과 고통을 받았기에 신앙을 버렸다고 말씀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내 가진 것을 빼앗고 목에 칼을 들이대며 사자굴에 던져졌다고 제 신앙을 버렸나이다 하시렵니까? (아닙니다!) 그 어떤 때라도 그 어떤 곳이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에 의심을 갖지 아니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여러분이야말로 진정으로 구원되고 귀하게 쓰일 것임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여!"

이백여명이 넘는 사람이 한데 모여 내는 아멘소리는 낡은 강당을 뒤흔들고도 남음이었다. 원 목사는 뒤이어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자고 그들이 이런 첩첩산중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구원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생활이라며 여기 모인 사람들을 한껏 추켜세웠다. 감읍한 사람들은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원 목사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을 번갈아 외쳐대었다. 잠시 후, 설교가 모두 끝나고 찬송가가 시작되자 원 목사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단상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목사 김태윤이 다가와 종서에게 악수를 청했다.

"역시 언제 들어도 형님의 설교는 기가 막힙니다. 대체 언제 시간이 나시기에 그렇게 설교문을 잘 짜오고 연습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뭐, 그야 늘 짬나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설교였습니다. 작성할 때는 대체 뭘 보고 하시는 겁니까?"

"뭐, 다 열심히 기도를 하다보면 응답이 있기 마련입니다."

연설문 작성 전문업체에서 매달 원고를 보내오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종서였다. 대충 좋은 말로 얼버무려 대답을 한다. 태윤은 손을 비비며 말했다.

"하하하. 자주 내려와서 가르침을 좀 주세요. 여기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산골에 너무 박혀있으려니까 심심합니다."

"그럴까요."

"어떻습니까. 제 동생은 잘하고 있습니까?"

"예, 권사님께는 향후의 일을 일임하고 내려왔답니다. 제가 항상 신뢰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단상 뒤로 나 있는 출구를 통해 강당을 빠져나와 따로 지어져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강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이 조립식 가건물로 된 것과 달리 목사관은 제대로 된 벽돌집이었다. 원래 이곳은 어떤 대부호의 별장이 있던 자리였는데 그 부지를 교단에서 사들여서 주변을 그들의 용도에 맞게 개간한 곳이다. 목사관은 종래의 별장을 개조해서 쓰고 있었다. 그곳의 1층은 부목사인 태윤이 평상시에 쓰고 있고 2층은 가끔 내려오는 종서의 몫이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비어있던 지하가 오늘은 오랜만에 만난 방주인에 의해서 대청소 중이었다.

"아, 예배는 벌써 끝난 겁니까?"

교회에서 실어온 약품과 자재를 정리하던 바텐더가 돌아보며 인사했다. 태윤은 바텐더에게 다가가 자신이 맡은 임무에 대한 보고를 늘어놓았다. 그러자 바텐더가 그의 말을 자르며 답했다.

"원료 작황이 안 좋은 건 저도 보고서를 통해 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생산량에 비해 반출량이 너무 적은 이유입니다. 부목사님이 생각하셔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자 태윤이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답했다. 그는 눈동자를 굴리며 답했다.

"여기 이런 오지에 있다 보니 다들 심심하기도 하고... 조금씩 쓴다는 게 그만..."

바텐더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바깥에서는 그람당 얼마에 팔리는지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여태까지는 어느 정도 묵과했지만, 당분간은 제가 직접 컨트롤 할 테니 그리 아십시요."

"지...직접이요? 서울에는 안 돌아가시구요?"

"서울에는 당분간 안 돌아갑니다."

태윤은 바텐더에게 쩔쩔매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실험장비가 갖춰지고 약품이 놓여있는 실내를 둘러보다가 한쪽 구석 간이침대에 눕힌 남자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남자의 피부에는 이런저런 상처와 말라붙은 핏자국이 가득했다. 숨 쉬는 간격도 불규칙했고 입가에서는 거품 같은 것이 살짝 흘러나와 있었다.

"이놈은....?"

"아, 그놈은 제가 관리할 놈입니다. 그냥 두십시요."

"관리요?"

바텐더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개발 중인 약을 한 번 넣어보았는데 반응이 여의치 않더군요. 깨어나질 않아서 몇 가지 시도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바텐더가 곤란하다는 투로 말하자 그걸 들은 종서가 살짝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이건 취중진담이 아니라 묵언수행 아닙니까. 이래 가지고 자백제라고 하겠습니까?"

틈만 나면 바텐더의 약점을 찌르고 자기 잘난 척을 하고 싶어 하는 종서의 성향을 이미 여러 번 겪어 본 바텐더였지만 고까운 건 여전했다. 그는 "네, 네." 거리면서 종서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그 아이가 꽤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아직까지 끼고 계시고...."

"아, 예에. 맛이 좋더군요."

종서는 자신의 방에 데려다놓은 아이를 떠올리며 혀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이 짧은 문장에서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들은 태윤 역시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종서에게 묻는다.

"형님. 간만에 영계 맛 좀 제대로 보신 모양이군요."

"허허, 뭐.. 그야..."

"나중에 맛 좀 보게 해주시죠."

"어허허허. 지금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제까지 하도 해댔으니 좀 헐거울 수도 있습니다만."

종서와 태윤은 음탕한 농담을 몇 마디 더 나누고 껄껄 웃어대며 지하실을 벗어났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바텐더는 혀를 찼다.

"저런 것들이 목회자라... 이거지. 목사 새끼들 자지를 다 자르거나 고자가 되어야 이 땅의 기독교가 바로 서겠구만. 에잉.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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