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215화 (21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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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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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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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더가 이건 인권침해라고 소리치려고 했지만, 이미 재갈을 물리고 나니 끕끕거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송화는 경찰들이 바텐더의 옷가지를 벗기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심심하게 구속하는 게 아니라 당장 워커발로 짓밟아 버리고 총이라도 구해 대갈통을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간신히 참아냈다.

조금 더 기쁠 줄 알았다. 그렇게 오래 추격해오고 온갖 고생을 한 끝에 잡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잡고나니 기쁜 마음보다는 허탈한 기분이 더 컸다. 그동안 고생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잡아야 되는 대상은 저놈 하나뿐이 아니었다. 뒤에 있는 열 명의 경찰들에게 작전대로 주변을 더 수색하라고 지시하고는 입구를 뚫을 방법을 모색한다. 상황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놀랄만큼 평온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터라 두려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었다.

약 다섯 시간 전, 검찰청으로 돌아간 송화를 기다리고 있는 건 무리한 작전을 수행했다는 엄청난 비난과 질책이었다.

"채 검사! 지금 제 정신이야? 종로 바닥에서 그 난리를 쳐놓고, 뭐? 증거가 없어? 게다가 뭐? 지금 다시 병력을 출동시켜 달라고? 검사 그만하고 싶어?"

"네."

묵묵히 상관의 질책을 견뎌내던 그녀는 짧게 한마디 했다. 그녀의 대답이 너무 즉각적으로 튀어나온 지라 상관은 그녀의 대답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닙니다. 부장님.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거... 결코 충동적으로 드리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녀는 준비해 간 봉투를 내려놓았다. 겉면에 적힌 "辭表"를 내려다보며 상관은 할 말을 잃었다. 붓펜으로 적힌 그 글씨는 아주 달필이었다. 송화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자신이 잠입수사를 하며 이미 불법약품에 의해 중독되었으며 이 사실이 드러날 경우 검찰의 위신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과 이것이 자신이 검사로서 행하는 마지막 법집행이며 그 후의 책임은 모두 자신이 달게 받겠다고 말이다.

"제가 마지막으로 요청하는 건 빠른 추격입니다. 속전속결하지 않으면 앞의 실수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불이 났을 때 도둑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들도 지금 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제 믿을만한 친구....에게서 놈들의 마지막 은신처를 알아냈습니다. 지금 바로 잡아내지 않으면 또 놓치고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겁니다."

친구....라는 단어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어이없어 했다. 구멍 동서가 아니라 막대동서 아니겠냐며 빙글거리는 표정과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던 얼굴이 번갈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한다. 사표가 수리되든 되지 않든 더 이상 검사로서 실격이다. 조폭의 도움을 받는 것도 모자라 그녀를 친구로 생각하다니.

"그래서, 뭐가 필요한가."

이미 확고한 결심을 느낀 것인지 그녀의 상관은 체념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송화는 리사가 해 준 이야기를 떠올리며 경찰특공대의 투입을 청원했다. 상관은 한 번 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며 마음대로 하라며 그녀를 사무실에서 내쫓다시피 했다.

그녀는 바쁘게 움직였다. 대전지방검찰청의 협조 하에 해당 지역의 차출 가능한 병력을 모두 뽑아내도록 했다. 대전에서 그들과 합류하기로 했다. 그리고 윗선의 도움으로 얻어내어 긴급출동한 경찰특공대 일개 소대와 같은 버스를 타고 계룡산으로 향했다. 유성IC 부근에서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예린을 만났다.

이미 그녀의 무용을 한 번 본 송화로서는 은근히 그녀가 함께 해주길 바랐지만, 리사 역시 큰 싸움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전해듣고는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예린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놈들의 뒤를 밟으며 위치를 파악한 것은 물론 대전으로 돌아온 예린은 별도의 조사를 통해 적들에 대한 세세한 파악을 마치고 난 터였다.

"경비를 맡고 있는 놈들은 예전에 매봉파라고 해서 대전 일대에서 놀던 놈들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별 볼일 없는 놈들이었지만, 어떻게 된 요량인지 일본 쪽과 선이 닿아 세를 급격히 불렸다고 합니다."

"....바텐더와 만났겠지. 일본이라면..."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야쿠자쪽으로 물건을 보내기도 하고 또 받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골치 아픈 것도 조금 섞여 있는 모양입니다."

"골치 아픈 물건이라니."

"예를 들면, 러시아제 토카레프나 벨기에제 브라우닝 같은 장난감 말이죠. 불법 개조한 저격총도 보았다는 사람이 있는데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예린의 무심한 말투가 담고 있는 내용은 너무 충격적인 것이라 송화는 잠깐 말을 잃었다.

"그걸...어떻게 알았지? 대체 이쪽에서는 아직 파악도 못한 이야기를..."

송화가 충혈된 눈으로 예린을 쏘아보며 물어보았지만, 예린의 선글라스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예린은 그저 담담한 말투로,

"그거야 이쪽 업계라면 몇 군데 물어볼 곳이 있습니다만 검사님께 세세히 알려드린다면 별로 재미는 없을 것 같군요."

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송화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자기는 오늘 이후로 검사도 아니게 된다. 게다가 예린은 지금 그녀를 돕고 있다. 그러니 이 여자를 추궁해보아야 득될 게 없다고 판단하고는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대신 경찰 특공대에게 방탄조끼를 착용하라고 지시했을 뿐이다. 예린은 대축척으로 그려진 등산용 지도를 한 장 펼쳤다. 거기에는 검은색 네임펜으로 몇 개의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각각의 선은 기도원의 담장과 문, 접근 가능한 경로를 표시하고 있었다. 예린은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정문 쪽은 길이 직선으로 나 있는데다가 서치라이트를 포함해서 경비가 항상 있습니다. 곧장 쳐들어 가면 바로 들킬테고 강행돌파를 하신다고 해도 그 사이에 중요 인물들은 도망을 가겠죠. 잠깐 둘러본 것이기에 제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또 다른 출구나 숨겨진 통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무리하게 들어가려 하신다면 아까 말씀드린 장난감들에 의한 총격전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일부 인원이 비교적 완만한 이쪽, 서쪽 계곡을 타고 담장을 우회하여 정문을 무력화 시킨 다음 나머지 인원을 투입하시길 권고합니다."

감정이 배제된 차분한 말투, 그것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송화는 지도에서 시선을 떼어 예린을 쳐다보았다.

"이런 건 대체 어떻게 생각해 내는 거지? 당신은 그냥 단순한 주먹 아니었어?"

"맞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걸 이리도 잘 알고 있지....?"

너무도 놀란 송화와는 달리 태연자약한 예린의 말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꾸미지 않은 어조로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녀석들의 뒤를 밟아 이쪽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습니다. 이곳의 지형지물과 담장의 배치 등을 파악한 다음 지도에 그려서 아가씨에게 모사 전송으로 보냈습니다. 그 이후 대전에서 추가 정보를 수집했구요. 그 후에 아가씨가 전화로 설명해준 내용을 검사님께 전해드린 것뿐입니다.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송화는 낮은 신음소리를 내고 침묵했다. 예린이 말하는 아가씨라 함은 분명 리사를 말하는 것일 테고 여기 있는 예린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는 가히 특급 정보라 할 만한 것들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특공대가 움직이기 앞서 정찰조와 작전부가 해야 할 일을 불과 하루 만에 두 여자가 해치워버린 것이다. 독도법을 배워 알고 있는 그녀가 지도를 통해 본 현장의 지형은 험산, 그 자체였다. 비교적 완만하다고 예린이 말한 서쪽 계곡만 해도 거의 깎아지를 듯한 모양새였다. 리사가 특공대를 끌고 가라고 조언을 한 까닭을 이제야 알겠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조폭이나 하고 있기 아까운 여자군."

"저 말입니까?"

"아니, 둘 다 말야."

예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지도를 접어 송화에게 건넸다. 그리고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채 검사님도 검사나 하고 있을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검사나? 지금 그게 무슨 망발인지 알고나 있어?"

"글쎄요. 제가 뵈었던 검사님들은 죄다 술집에서 여자 끼고 저희에게 접대를 받던 분들이었거든요. 현장에 이렇게 직접 나와서 뛰는 분은 처음입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쓴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송화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예린은 비꼬는 기색 하나 없이 그저 담담하게 자신이 본 사실만 이야기할 뿐이기에. 두 사람은 그렇게 오가는 말 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돌아서기 전, 예린은 주저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허리까지 굽혀 인사하는 예린의 태도에서, 송화는 묘하게 가슴이 아팠다. 이런 모습을 불과 몇 시간 전에도 보았기에 한 번 넘겨짚어 본다.

"당신도... 한석과 관계가 있는 거야?"

예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한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아가씨가 슬퍼할 테니까요. 그래서입니다."

송화는 상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묻는다.

"정말... 그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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