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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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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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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보았던, 그리고 겪었던 한석이라는 남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고작 그와 사나흘 함께 있었을 뿐인데도... 그의 매력을 알게 모르게 느낄 수 있었다.
리사를 떠올린다. 대화를 나누며 그녀는 자신이 한석과 함께 있었고,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송화는 다시 예린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아는 한, 리사의 곁에는 항상 예린이 있었다. 예린은 그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에게서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 재차 묻는 송화의 말에 예린은 즉답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말이 없는 그녀는 오히려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천 마디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묻는 게 더 바보 같았다. 아무리 보스의 지시를 받았다고는 하나 적진에 홀로 뛰어들어 구출하려고 하고 이 먼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목숨을 건 정찰을 해낸다.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송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았어. 최선을 다해보지. 리사를 위해서가 아니야."
송화를 고개를 들어 예린을 쳐다보았다.
"당신을 위해서야."
송화는 자신을 위해서라는 말은 생략했지만, 어쩐지 예린은 그걸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린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려고 할 때 송화는 손을 내밀었다. 그 의미를 깨달은 예린도 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아직까지는 현직 검사, 그리고 현직 조직폭력배의 악수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송화는 맞잡은 손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힘을 재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자들끼리의 우정 교환이다. 예린도 그 눈치를 아는 것인지 가볍게 힘을 주었다 놓았다.
손을 놓은 예린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그대로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부산으로 향한다는 그녀와 큰 싸움을 앞두고 있다는 리사. 너무도 타입이 다른 두 사람이지만 그 둘이 합쳐서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를 눈으로 보게 된 송화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고 만다.
"무운을 빈다."
듣는 이가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도 버스로 돌아가 경찰특공대와 함께 이후의 작전을 상의했다. 달도 뜨지 않는 밤에 산을 넘어 적의 옆구리를 친다는 계획에 다들 뜨악해했지만, 상대가 총기를 휴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다들 얼굴이 굳었다. 대테러 장비라면 모를까 애초에 그들이 갖춰온 장비는 체포-진압용 장비였기에 총기가 없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체포 작전으로 알고 온 터라 그들은 바로 정면으로 돌입하려고 했었다. 만약 예린의 정찰이 없었다면 그들은 쏟아지는 총탄 속에 그대로 노출되었을 것이다. 소대장은 그런 정보를 어디서 얻었냐고 송화에게 물어보았다.
"정보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비밀입니다. 제 나름의 정보원에게서 나온 이야기이고, 저는 그 사람을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습니다."
송화를 그런 식으로 이 자리에 없는 예린을 한껏 칭찬했다. 소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검사님의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면 역시 정면은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저희 189소대 열두 명이 우선 침입하여 입구를 제압한 다음 전경버스를 정면에 투입시키기로 하죠. 검사님은 버스에서 대기하다가 돌입이 마무리되면 들어와주십시요."
그러자 송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당신들과 함께 들어가겠습니다."
"네? 검사님이요?"
다들 송화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검사님이... 안 됩니다."
소대장이 손을 내젓자 송화가 도리어 강하게 말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제가 따라가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 작전을 입안한 사람이 전데 여러분만을 위험에 몰아넣을 수는 없어요. 산도 제법 타는 편이니 방해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다들 만류했지만, 송화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나머지 경찰병력은 산 밑에 배치하고 무전을 받아 곧장 돌입하기로 했다. 송화와 경찰특공대는 산을 크게 우회하여 반대편 기슭에서부터 올라가기 시작했다. 두 시간 넘는 야간산행을 하며 악전고투를 한 끝에 그들은 간신히 기도원 내부에 낙오자 없이 침투할 수 있었다. 송화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기도원 내부에서 군데군데 하우스나 건물을 지키는 보초를 제압하며 정문을 향해 나아갔다.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단 한 번도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던 곳이고 대부분의 경비는 외부로부터의 침입보다는 내부 인원의 탈출을 막는데 중점을 두고 있었기에 이런 기습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뜻하지 않게 바텐더를 잡아낸 것이다. 쓰러뜨린 보초들을 하우스 한 곳에 몰아넣고 굴비 엮듯이 묶어놓은 후 소대장이 송화에게 보고했다.
"이 주변은 이제 깨끗합니다. 안쪽의 공장과 예배당에 인원이 좀 있다고는 하는데 위협적이진 않습니다."
"좋아요. 이제 남은 건 정문이군요. 부디 조심스럽게 접근하세요. 아까 말씀드린 건 다 기억하고 있죠?"
"알겠습니다."
정문으로의 접근은 여태까지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들은 조명이 거의 없는 산쪽에서 안쪽으로 파고 들어와 어둠을 틈타 움직였는데 정문 쪽은 전혀 그러질 않고 굉장히 환한 곳이었다. 몸을 드러내지 않고는 쉽사리 접근이 안 되었다. 망루 같은 것을 세워놓고 사방을 감시하던 적이 내부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서치라이트를 안쪽을 향해 비추기 시작했다. 건물 그림자로 향해 숨어들던 누군가의 움직임이 적들의 눈에 포착되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으악!!"
망루에 어느새 침투한 특공대원들에 의해 기도원의 기도들이 하나둘씩 제압되기 시작했다. 서치라이트가 꺼지고 이런저런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송화가 볼 때 대부분 제압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밤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앙-
산 속의 새들이 날아오르고 소리는 산에 부딪혀 메아리로 돌아왔다. 황급히 고개를 내밀고 정문 쪽을 바라보려는데 옆에 있는 누군가가 그녀의 머리를 내리눌렀다.
"나가지 마십시죠. 아직 모릅니다!"
소대장이었다. 이후로도 총성은 몇 발 더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그때 정문 쪽에 간 인원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진압 완료!"
송화는 무전기를 들고 대기병력에게 이곳으로 오라 이르고는 황급히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망루에서 내려오는 대원에게 물어보았다.
"누가 맞은 건 아니죠? 그렇죠?"
그러자 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놈이 저항하다가 무심코 쏴버린 모양입니다. 총구는 하늘로 향했습니다. 아무도 맞은 사람은 없습니다."
송화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소대장을 불러 다시 명령했다.
"총기를 수거하고 나머지 인원을 모아 원 목사를 찾습니다. 아마도 저기 가장 좋은 건물에 있을 걸로 추정되는군요."
"알겠습니다."
소대장의 위시한 인원들이 송화를 향해 경례를 착 올려붙이고 다 같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그녀도 그들을 뒤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해가 뜨고 있었다. 이제 다 끝났다. 지금까지 둘러본 결과 이 기도원은 모든 불법 행위의 증거, 그 자체였다. 원 목사의 죄상은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그녀가 찾는 사람도 구해낼 것이다.
소대원들이 기도원 사람들을 하나둘 체포해왔다. 수갑이 모자라서 나중에는 인근에서 주워온 줄로 인원을 엮어서 묶어야 할 정도였다. 송화는 여전히 꽁꽁 묶여 있는 바텐더를 보고 코웃음 쳤다. 잡혀온 사람 중에는 알몸으로 쪼그리고 앉아있는 원 목사도 있었다. 송화는 그에게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지만 주변의 눈이 많아 간신히 억눌렀다. 대신 부하를 시켜 흉하고 조그만 물건을 가리도록 조치했을 뿐이다. 송화는 잡혀 온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폈지만, 그중에서 한석은 보이지 않았다. 소대장을 불러 물어보았다.
"키가 크고, 약간 마른 인상의 남자인데... 이십대 초반이고요. 그런 사람 못 봤습니까?"
"이 조직의 중요인물인가요?"
"아뇨. 피해자입니다."
소대장은 아직까지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건물 지하로 들어간 대원 중 하나가 급보를 알려왔다. 지하실에 심장이 멎은 남자가 하나 묶여 있다는 것이다. 송화는 가슴이 뛰었다. 앰뷸런스를 부르라고 지시하곤 응급처치 할 줄 아는 대원을 불러 급히 지하실로 달려갔다.
지하실에 들어서서 한석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는 오열하고 말았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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