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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9
원 목사는 그저 단순히 사람들을 끌어모아 돈이나 긁어내는 사이비 목회자 아니었던가? 그 사람이 추구하는 바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뿐이다. 바텐더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엉뚱한 소리를 꺼냈다.
"막스가 그랬나? 종교는 아편이라고. 혹시 알아, 이 이야기?"
어안이 벙벙하다. 갑자기 웬 공산주의 타령이지?
"그게 어떤 사람들은 그저 종교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고 종국에는 몸에 해로운, 뭐 그 정도의 비유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원 목사는 좀 다르게 생각하고 있지. 그는 정말 아편 같은 종교를 만들고 싶어 해. 사람들이 맞고 싶어 하고 한번 맞으면 끊을 수 없고... 그리고 그걸 구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아편쟁이들의 속성을 고스란히 가진, 그런 종교. 그게 바로 이 말세교의 핵심교리이자 원 목사의 최종 목표야."
내가 오래 살긴 확실히 오래 살아온 모양이다. 이런 헛소리까지 듣게 되다니.... 철창을 붙들고 소리친다.
"결국 사이비란 이야기잖아!!"
"노노노. 테이크 잇 이지. 진정하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나와 달리 바텐더는 몹시 태평한 표정이었다.
"자, 봐봐. 사이비라는 건 대체 누가 정하는 건데? 예수가 처음 태어나서 사람들 끌고 다니며 선포할 때는 뭐 정교로 인정받아서 그러고 다닌 거냐? 신교도들이 처음 들고일어나 구교에서 독립할 때는 무슨 사이좋게 신사협정이라도 맺어서 차분하게 나온 거냐? 네놈도 머리가 있다면 생각을 해 봐. 아편이 이 세상에서 탄압받고 없어져야 할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이 마당에 자기 종교를 아편처럼 만들고 싶어 하는 목사가 꾸는 꿈은 뭐일 거 같나. 그게 단순한 생각일 것 같아? 예수를 전염시켜라! 수단과 방법은 부차적인 거고. 중요한 건 그게 그 사람의 모토고 진심이라는 거야. 거기다 졸라 웃긴 건 그게 엄청 진지하다는 거지."
기가 막혔다.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종교가 없는 나는 그저 막연하게 사이비 목회자들은 자신의 양심을 숨기고 사람들을 등쳐먹고 속여서 이득을 취하려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바텐더의 이야기에 따르면 원 목사는 사람들이 아편에 중독된 것처럼 말세교에 심취하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지상 목표라니, 어처구니가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니었다.
"아편에 중독된 사람은 육체에 가해지는 말초적 자극에 엄청 예민해지지. 종교에 심취한 사람은 자신이 받는 모든 경험이 영적인 경험이라 착각하지. 원 목사는 그 경계..... 그러니까 육체와 정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약물을 원했고 나는 개발을 했다. 여러 차례 실험을 해보았지만, 여태까지 실패를 좀 많이 해서 말야. 자네도 어찌 보면 실패작이고."
"뭐라고?"
"그렇지만 이제야 찾았네. 저기 저 아이처럼 제대로 먹힌 건 정말 처음이야. 저 아이야말로 진정한 내 역작이라고 할 수 있지. 너희들에게 투약한 약물은 최종 단계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조정된 것들이야. 저 아이에게 투약 된 약과 저 아이의 몸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어."
나도 모르게 경악으로 온몸이 떨렸다. 이젠 한결 부드러워진 숨소리로 잠들어 있는 소란을 내려다보았다. 바텐더의 눈빛이 소란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그것은 딱히 음심을 담고 있는 눈이라기보단 자신의 성과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과학자의 눈이었다. 소름 끼치게도... 그는 정말로 뼛속까지 과학자였다. 그는 내게 자신의 연구 성과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떨리는 목소리가 내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그에게 묻는다. 확인을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늘어놓는 이유가 뭐지? 당신은 대체...."
"전에도 말했잖아. 난 바텐더고 칵테일을 만드는 사람이지. 내가 만든 술을 먹고 기분 좋게 취한 손님이 있다면 한결 기분이 좋아지는, 직업 정신에 아주 투철한 사람이라고."
"직업 정신? 그런 헛소리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
그러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 이유가 어디 있냐.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 아주 재미있는 일을 한다는데..."
기가 막혀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사람을 가지고 놀고.... 사람을 상대로 실험하고.... 그런 게 재미있다고?! 그러고도 네놈이 사람이냐!"
"적어도 난 내 눈앞에 보이는 사람만 가지고 놀지만, 저기 위에 높은 분들은 모든 사람을 상대로 가지고 놀지 않나? 응? 나 정도면 충분히 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익!! 이 미친놈!!!!"
차라리 욕을 하고 날 때린다면 내가 이렇게 화가 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의 표정을 정말 태연하기 그지없었고 진심이었다.
"워워워.... 내가 아무리 욕 듣는 거에 둔감하다 하더라도 지금 좋은 제안을 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막 나오면 좀 그렇지 않아? 안 그러면 당장 낙원에 끌려갈 네놈이란 말야."
"낙원?!"
"그래, 낙원. 원 목사는 네놈들 전부를 끌고 가고 싶어 했어. 그나마 한 명으로 쇼부를 친 게 내 덕분이라는 거 잊지 마."
"크윽....."
분하게도... 바텐더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들이 말하는 낙원, 그러니까 송화가 이야기하던 기도원은 대체 어떤 구조이고 뭐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지만 여태까지의 정보를 조합해볼 때 결코 좋은 장소가 아니다. 이름만 낙원이고 거기서 행해지는 일은 지옥에 가까울 것이다. 아직 가보지도 않은 곳인데도 저절로 알게 되고 저절로 몸이 떨려온다. 숨을 가다듬고 되도록 차분하게 말한다.
"그래서... 당신 제안이 뭔데?"
그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군. 간단해. 저 아이를 설득해서 내게 협력하게 만들어줘. 난 저 아이의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추출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어디까지나 협조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원해."
"왜 약을 쓰지 않지?"
"이봐. 하아. 이래서 비전문가들이란...."
바텐더는 이마를 쥐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저 아이에게 원하는 건 기본 바이탈 및 멘탈에 대한 데이터야. 약에 취한 상태에서 정상적인 데이터가 추출될 것 같아? 물론 반응성과 적응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어느 정도 약한 약을 주입하긴 하지만 지금처럼 강력한 약은 넣지 않는다고."
"그럴려면 내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 잘 아는군. 내가 이틀간 관찰해보니 저 아이는 자네에게 상당히 많이 기대고 있어. 자네 말이라면 잘 듣겠지."
"그러면.... 당신 말을 들어주면... 우리는 뭘 얻게 되지? 여기서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 건가?"
"뭐? 자유? 푸하하하하하하."
그는 허리를 잡고 웃어댔다.
"이봐, 이봐. 자네 처지를 아직도 이해 못 하나 본데... 이 교회에 들어와서 제 발로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심지어 관에 담겨 나간 이도 없어. 땅에 조용히 묻힌 이는 있어도."
"뭐라고?'
"3분을 주지. 내 제안에 대해 고려해 볼 시간으로. 만약 거절한다면 난 자네와 저 아이를 원 목사에게 넘기고 다른 샘플이나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어."
"크윽...."
"그럼 난 물 좀 버리고 올 테니까 말야. 잘 생각해봐."
바텐더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철창을 부여잡고 있던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진퇴양난. 사면초가. 어떤 말로 내 상황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끝도 없는 절망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살아서 바텐더에게 협력하자니 소란을 실험용 흰 쥐로 팔아먹는 행위고 끝까지 원 목사나 김 권사에게 저항하자니 그건 목숨을 거는 일이다.
"끄으으윽....."
신이여. 한 번도 당신을 찾은 일이 없지만... 그래도 여기가 명색이 교회인데, 당신은 한 자락도 여기 없습니까? 바텐더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었다. 이렇게 무기력한 나 자신을 저주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이 열리고, 지옥의 사자. 아니, 바텐더가 다시 나타난다. 그는 철창으로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결정했나?"
차라리 내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말이 더 듣기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답은 피할 수 없고 어떻게든 결론은 나야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내 안에서 모든 것의 결론은 이미 내려졌다. 소란이가 약의 여파로 인하여 이상한 행동을 했듯이.. 나도 그런 것일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스스로 판단컨대 나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먹었기에 가까스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래."
"어쩌겠어? 내게 협력할 텐가?"
바텐더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쪼개지 마, 새끼야.... 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당신은 실패를 많이 했다고 했지? 소란이는 간만에 찾은 성공작이고....?"
"그렇지."
그렇군. 그렇다면 내 선택은 하나다. 바닥을 내려다본 채로 조용히 뇌까렸다.
"당신의 실패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하지그래?"
"뭐라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텐더와 눈을 마주쳤다. 얼굴은 쭈글쭈글하지만, 눈빛만은 형형한 그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노인네는 아닌데 어떻게 피부가 저렇지? 몹시 궁금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결심을 이야기한다.
"결정했다. 네놈들 어떤 누구에게도 저 아이를 넘겨주지 않겠다고."
"뭐라고?"
여태껏 태연하던 바텐더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를 향해 비웃음을 던진다. 나 자신을 향해, 이 교회를 향해,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해 비웃음을 던질 시간이다. 무언가 감지한 걸까. 바텐더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친다.
"네놈!! 무슨 짓을.....!!!"
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대로 몸을 돌린다. 소란에게 다가간다. 바닥에 누워있는 아이의 허리 위로 올라탔다. 너무 무겁지 않도록 무릎에 힘을 주고 걸터앉는다. 최대한 조심한다. 그러나 엉덩이로 녀석의 배를 지그시 누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제 곧 발버둥을 칠 테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도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좀 우습기도 하다. 지금부터 내가 이 녀석에게 저지를 일을 생각한다면 지금 안 아프게 하는 걸 신경 쓰는 것도 참 웃긴 일이다. 손을 뻗어 녀석의 가느다랗고 하얀 목을 쥔다. 사람의 목을 조르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더라. 엄지가 서로 엉키는 게 맞나? 네 손가락 전체로 목 옆을 감싸는 게 ... 맞을까? 처음 해보는 거라 잘 되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두 손으로 소란의 목을 움켜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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