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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9
"그만둬!! 너 이 새끼 지금 무슨 짓을!!!!"
계속 여유만만하던 표정의 바텐더가 저렇게 안달복달하는 걸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철창에 달라붙어 돼지처럼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었다. 짧게나마 그와 대화를 나눠보고 나니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그의 앞에서 수십 명의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실험에 최적화된 이 아이, 소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작은 소녀가 죽는다면 그는 슬퍼하리라. 그렇지만 그건 그가 어떤 소녀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다거나 특별히 아껴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신의 실험물이 다치는 게 싫은 것이다.
그런 내막을 깨닫고 나니 마음은 평온했다. 아직 힘을 주진 않았다. 그저 사람의 목덜미에도 맥박이 느껴진다는 것을 처음 깨닫고 신기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외국 영화 같은 데서 보면 목 어딘가에 손가락을 대고 생사를 체크하는 게 있었지. 하아. 그게 이런 이유였군. 가만히 시선을 던져 소란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나는, 지금부터 이 아이를 잠들게 한다.
"그만두지 못해?! 네가 지금 하려는 짓은 살인이야!!"
조금 웃겼다. 바텐더의 입에서 저런 기초적인 도덕론이 튀어나올 정도라니. 놈이 급하기 급했던 모양이다. 녀석은 철창을 붙들고 되도 않는 소리를 계속 지르다가 급기야 바깥을 향해 누군가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놈은 철창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상당히 시끄럽다. 네놈이 하려는 짓이나 원 목사가 하려는 짓이나... 시간과 방법의 차이가 있다뿐이지 그게 어디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나 하냐. 바텐더는 약을 써서 사람의 몸을 축나게 하는 놈이고, 원 목사는 정신을 오염시켜 죽음의 길로 이끄는 거짓 선지자일 따름이다.
그런데, 뭐? 내가 하는 짓이 살인이라고?
"하하하하핫-"
웃음이 나오지만 막 웃기지는 않는다. 하아.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줘. 좆 까라고 해줘. 이거야말로 진정한 구원이야. 육신의 무겁고 거친 수레에서 이 아이를 구원해주는 길. 그게 구원이지, 뭐겠어? 아이를 감싸고 있는 단단한 철창에서 꺼내주고 싶다.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이거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힘을 준다.
소란이와 처음 만났던 일이 생각난다. 알몸인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을 때, 이 아이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 남자가 자기 친구의 과외선생인 걸 알았을 때는 짐짓 모른 척해줄 수 있는 아량도 가지고 있었다. 누구보다 의젓하고 침착했지만, 그 누구도 보고 있지 않은 곳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 그런 아이였다.
처음에는 다소 주저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주저할 일이 아니다. 힘이 들어갈수록 원래는 건강하게 붉고 선명한 입술이었는데 이제는 파리하고 창백해진 입술이 달싹여 나를 부른다.
"선생님...."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뿌옇게 보이는 걸 봐서 내 눈에서도 비슷한 게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참 볼품 없다. 어른이 아이 앞에서 울다니. 면목이 없다. 정말 면목이 없다.
"소란아..... 미안하다....."
녀석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나를 밀쳐내지 않았다. 그저 빤히 날 올려다보며 손을 뻗어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 뿐이다.
"우리... 너무.... 힘들었죠?....."
"그래... 이제 좀 쉬자.... 너 가고, 나도 금방.... 따라갈게."
"유진이한테 미안해서 어떡해요...."
"이 상황에서도 유진이 타령이니?"
우리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신기하게도 웃음이 나온다. 바깥 문을 열고 밖에다 무어라 고함치는 바텐더의 외침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쁘게 말하는 소란의 작은 목소리는 너무도 생생하게 내 귀에 날아와 꽂힌다. 이 아이의 마지막 숨소리를, 목소리를 내 귀는 들어야 한다. 귀에 담아야만 한다. 그게 내 마지막 남은 의무겠지.
"소희... 수혁이... 수민이.....보고 싶어요...."
내가 모르는 이름이다. 아마도 동생들 이름이었던가. 소희에게는 동생이 많았다고 했다.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미안해....."
"아빠도.. 맨날 일만 하지 말고... 애들이랑도...."
소희가 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말이었다. 누군가는 들어야 했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다. 말을 전해주어야 할 텐데 아무래도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아. 널 이렇게 보내고 나면,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이 미친 세상에서 남아있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거듭 사과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는다. 미안하니까 더 빨리 끝내야 할 거야. 힘을 한층 더 가한다.
"미안해....."
흐르고 있는 눈물이 자꾸만 차올라 눈앞이 뿌옇게 변한다. 소란의 작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눈물을 훔칠 순 없었다. 내 두 손은 온전히 녀석의 목을 짓눌러야 하니까. 녀석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하니까. 최대한 오래 걸리지 않고 신속하게 도와주어야 하니까. 그래서 더 힘을 준다.
"커....업... 엄...마...도...커.....보....."
혀를 길게 뺀 녀석의 숨소리가 이제 거의 들리지 않는다. 버둥거리는 발과 몸을 내 체중으로 내리누른다. 작고 가녀린 손이 내 팔을 붙들긴 하지만 너무도 미약한 힘이라 결코 떼어내지 못한다.
"끄....으......아......"
목이 졸린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라는 게, 이런 소리였구나. 이미 눈물로 가득 찬 내 시야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다급한 발자국 소리, 욕설과 외침, 누군가의 비명. 너무 시끄럽다. 바텐더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온 모양이다. 철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잠겨있던 문이 열렸다. 흐릿해서 형체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 내 머리를 향해 무언가 휘두르는 게 보였다. 강렬한 충격이 내 머리를 때린다. 이어지는 구타는 내 몸 전체를 향한다. 그 와중에도 소란의 목을 쥔 손은 놓지 않으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소란이는 무사히 죽었을까. 제발 죽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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