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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245화 (24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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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9

의외였다. 송화에게 리사의 죽음은 꽤 큰 충격인 듯 보였다. 그녀는 초임 검사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다고 했다. 그때부터 리사를 "알고" 지냈다고 말했다. 검사인 그녀가 음지에서 생활하는 리사를 어떻게 알고 지냈다는 건지 궁금했지만, 애써 묻지는 않았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극과 극은 통하는 거라고.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접점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예린은 송화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내가 송화를 만나러 가겠다고 했을 때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렇다는 건, 김 회장도 어딘가 묻혀 있다는 거고... 지금 송 회장이 그 난리를 치는 것도, 리사라는 브레이크가 없기에 가능한 거라고 봐야겠군."

"송 회장?"

어떤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송화에게 재차 물어보았다.

"송 부장이 아니고요?"

"송병구를 말하는 거라면, 그는 지금 회장이야."

김 회장을 치고 올라간 그는 결국 그 자리를 차지한 모양이었다. 예린이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보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렇게 돼죠?"

"당신이 들어도 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왜요?"

"이건 검찰과 백당... 그러니까 부산의 이야기인데."

송화는 내 지적에 쓰게 웃으며 손에 든 커피를 모조리 비워버렸다.

"하긴, 리사가 그 난리를 쳐가면서 당신을 구하려던 걸 보고 백당과 당신이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따라온 거긴 하지만... 이건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야. 사실 부산은 지금..."

뭔가 이야기를 꺼내려던 그녀는 마리를 보고 멈칫했다.

"별로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닌데... 마리 씨는 들어가서 쉬시는 게 어떤가요?"

"부산 이야기라면서요."

"네. 그런데, 그다지 태교...에 좋은 이야기는 아니에요."

방금 "태교"를 말하면서 송화가 날 째려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마리는 송화의 제안을 거절했다.

"부산 이야기라면 저도 듣고 싶어요. 말씀해주세요."

송화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재촉하는 나와 예린을 보고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검찰 내부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부산 지역의 검찰을 총괄하는 직책, 그러니까 지검장이 징계를 받은 일에 대해서지. 지검장이 정년도 되지 않았는데 옷을 벗는 일이 흔한 게 아니니까 논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번 껀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이상해서 그랬어."

"이상하다뇨?"

"그게... 암튼 언론에는 철저히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고밖에 말할 수 없어."

"기업으로부터 돈이라도 받은 건가요? 아니면 숨겨둔 자식이라도 나왔다거나?"

그러자 송화는 이마를 한층 더 찌푸렸다.

"차라리 그런 거면 다행이다."

"다행이라고요?"

"하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암튼 결론은 그가 약을 하다가 적발되었다는 거야."

"약이요?"

약이라고 하는 순간 나와 예린은 서로 쳐다보았다. 우리는 어떤 유명한 약쟁이를 알고 있었다.

"하루는 부산 경찰이 길거리에서 바바리맨 하나를 잡았어. 지나가는 여고생을 보면서 자기 성...기를 꺼내놓고 음란행위를 하고 있었다고 하더군. 알고 보니 그게 부산지검장이었다는 거야. 처음에는 하도 황당해서 뜬소문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진짜였어."

마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태교에 안 좋다는 경고는 사실이었다. 듣기만 해도 거북한 이야기였다. 마리가 사실이냐고 물었지만, 송화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농담을 즐겨하는 성격이었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황당한 이야기였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멀쩡한 정신에 그랬을 리 없다는 여론이 있어서 약물반응조사를 했더니, 바로 나오더란 말이지. 게다가 그는 조사를 위해 유치장에 사흘 정도 갇혀 있자 광분하기 시작하더니 자해를 반복하는 바람에 신체를 구속하고 집중치료실로 옮겨졌어. 전형적인 금단현상이야. 게다가 중독의 세기도 보통을 훨씬 넘어선 정도였어. 명색이 한 지역의 검사를 대표하는 지검장이 그 지경인데, 그럼 그 아래 있는 놈들은 어땠겠어? 서울에서 파견된 감찰관은 부산 지검에 소속된 검사 전부의 약물 반응 검사를 하자고 했지. 그런 내용을 담아 그가 관찰한 부산지검에 대한 보고서가 서울에 도착하던 날... 그는 실종되었어. 보고서도 사라졌고."

"에엑?"

송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도저히 몰입할 수 없었다. 지금 농담하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중앙에서 지방의 비위를 수사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이 실종되었다, 엄청나게 대사건이란 말이야. 당연히 부산에서는 이걸 크게 받아들이고 치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쪽에서는 반응이 영 미적지근해. 서울에서 파견한 사람이니 서울에서 수사하라 이거야. 말이 되냐고. 사건이 일어난 곳은 부산인데. 게다가 지검장이 그렇게 되고 난 후, 중앙에서는 부산지검의 현 상태를 의심하는 중이라 그쪽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쉽지 않아."

"경찰이 있잖아요. 경찰에서 조사하면 안 되나요?"

그러자 송화는 쓰게 웃었다.

"검찰이 자신의 오점을 보여주기 절대 싫은 상대를 꼽으라고 하면 두 번째는 몰라도 첫 번째는 당연히 경찰이 될 거야. 물론 부산 경찰은 우리가 의뢰하기도 전에 이미 부산지검에 대한 수사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어. 이대로 두면 검찰의 비리를 낱낱이 밝힌 후, 우리에게 송치하기도 전에 언론에 슬슬 흘리겠지. 안 그래도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인데, 이제 바닥이 문제가 아니라 지층을 뚫고 내핵까지 추락하게 생겼어."

경찰과 검찰은 당연히 협력관계일 거라 생각한 내 상식은 아무래도 사실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듣다 보니 궁금해졌다. 검찰의 엄청난 치부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굳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는 뭘까 싶었다.

"저, 검사님. 그런 이야기를 왜 굳이 저희에게..."

그러자 송화는 시선을 돌렸다. 질문한 내가 아니라 예린을 빤히 보면서 대답했다.

"중앙지검에서는 부산에 대해서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어. 그렇지만 드러내놓고 할 수도 없는 데다가 부산지검의 협조는 받을래야 받을 수 없으니 아무래도 한계에 봉착했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건 부산의 모 조직에서 전방위적으로 약을 뿌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어. 일반인에게는 돈을 받고 팔면서 막대한 이윤을 올리고 있었고, 지역 유지와 관 조직에는 약과 여자를 상납하며 유대를 쌓았지. 단속을 피하는 건 덤이고 말이야. 이런 부패의 고리에서 부산검찰도 예외가 아니라고 보고 있어. 아니, 예외인 정도가 아니라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난 내가 아는 여자를 찾아 조직의 사정을 듣고자 했지."

송화가 대문 앞에서 누구의 이름을 말했는지 떠올렸다. 그녀가 찾는 여자는 여기 없었다. 송화가 누굴 말하는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말이 없었다. 한참 만에 예린이 겨우 입을 열었다.

"송 부장, 아니, 이제 송 회장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놈이 미쳤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낮고 깊은 분노가 깔려있었다. 둔한 나조차 알아차릴 정도였다. 송화도 예린의 목소리에 담긴 기분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간곡히 말했다.

"내가 이런 말하면 우습겠지만,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여태 내가 한 말에 거짓은 없어. 부산 상황이 엉망이라는 것도, 우리가 그쪽에 손대기 힘들다는 것도.... 비록 한때는 리사를 탐탁지 않아 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그녀는 이성적인 사람이었어.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고. 지금의 광기를 잠재우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야. 하지만 지금 리사는 없어. 그러니..."

"어쩌면."

예린이 송화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녀는 원래 남의 말을 끊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언가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녀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어쩌면 리사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기에 그들의 광기가 폭발했을지도 모릅니다. 불씨는 이미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저들의 폭주에는 우리의, 아니, 제 책임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닙니다. 제가, 제가...."

예린은 고개를 푹 숙였다. 선글라스 밑으로 무언가 흐르고 있었지만, 못 본 척해주었다. 송화가 손을 뻗어 예린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마리가 내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자리를 피해 주라는 것 같았기에 마리와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마리의 손은 몹시 떨리고 있었다. 고향이 엉망으로 되어버렸고, 그렇게 된 배경에는 자신의 가족과도 같았던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소식이 그녀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말없이 위로하며 한참을 토닥여주었다.

여태까지 외부와 소식을 단절하다시피 살아온 터라 송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러나 예린이 전혀 부정하지 않고 종내에는 자신의 책임이라며 우는 모습을 보니, 그간의 돌아가는 사정이 얼마나 긴박하고 예린에게 부담이 되었을지 깨닫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싶었다. 마리가 잠이 들고 나서도 난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답도 나오지 않을 문제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거실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불 꺼진 거실에 누군가 창가에 서 있었다. 어두운 가운데 손을 더듬거리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둑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송화였다. 불빛은 없었지만, 창밖에 가득 쌓인 눈에는 별빛과 달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채 검사님?"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듣고 눈에 띄게 당황했다.

"최...최한석? 여긴 어떻게..."

"어떻게라뇨. 여긴 제집인데요."

"그, 그랬지... 하아."

그녀는 퍽 이상해 보였다. 아까 보여주었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뭐 찾으시나요? 물이라도 한 잔 드릴까요?"

"어? 물? 어, 그래. 물. 그래. 물 한 잔..."

여긴 내 집이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능숙하게 물과 컵을 찾을 정도는 되었다. 난로 위에 올려둔 주전자를 들어 컵에 물을 따라 송화에게 내밀었는데, 그걸 받아드는 그녀의 손은 꽤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집이 우풍이 좀 세죠? 괜찮으세요?"

"아냐. 추운 게 아냐. 따뜻, 그래, 따뜻해."

말과 행동이 전혀 달랐다. 지금 보니 손뿐만이 아니라 몸도 떨고 있었다. 마치 오한이 든 사람처럼 말이다. 찬물이 아니라 따뜻한 물을 주길 잘했다 싶었다. 소파에서 담요를 찾아 그녀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창가 쪽에 나 있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기껏 물을 줬는데도 전혀 마시질 않았다.

"물이 필요한 게 아니셨나요?"

"...응."

그녀는 순순히 대답했다. 남의 집에서 대체 뭘 찾고 있는 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녀가 날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 어쩐지 부담스러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내가 뭘 찾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겠지? 자기 집도 아닌 남의 집에서. 이런 한밤중에."

예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나란 놈은 머릿속 생각을 어디 이마나 얼굴 전면에 써 붙이고 다니는 놈일지도 모르겠다. 잠깐 무슨 생각이라도 하고 있노라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죄다 그걸 맞추곤 한다.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네.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뭔데요?"

"전에도 네가 나한테 한 번 준 적이 있어."

"제가요? 검사님한테?"

전혀 짐작이 안 가서 그녀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이상하리만큼 눈을 빛내고 있는 송화가 몸을 쭉 펴고 있었다. 그녀는 허리를 틀어 내 쪽으로 상체를 돌리며 말했다.

"길고, 단단하고, 뜨거운 걸 찾고 있었어. 그게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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