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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251화 (25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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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9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사우나에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봤던 세 명 말고도 몇 명 더 있었다. 그들의 사우나 입실 시각과 퇴실 시각을 알아내어 예린에게 저녁에 보고했다. 그녀는 뭔가 기획하고 있는 눈치였지만, 딱히 내게 설명해주진 않았다. 나도 묻진 않았다. 원래 백당이라는 조직이 어떤 일을 하던 곳이고, 그런 곳이 깨져서 송 회장 측과 지금의 예린을 주축으로 하는 파로 나뉜 자세한 뒷배경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괜히 내가 물어보아야 긁어 부스럼이 될 것 같아서 질문을 자제했다.

그들의 등장을 보고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사우나에서 마주치는 백당 놈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시시껄렁한 동네 시정잡배의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눈빛이 흉흉해지며 난폭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도 주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목욕탕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대화를 하곤 했는데, 이제는 주변을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게 틀림없었다. 예린의 지시도 있었기에 웬만하면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궁금한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이 마사지실로 가는 걸 보고 나도 따라갔다.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딴청을 피웠고, 마사지실 흡연룸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후 반대편 복도에서 벽면에 귀를 댔다. 흡연룸과 복도 사이는 가벽으로 되어 있었다. 정확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그들의 말투가 워낙 우렁우렁했기에 듣는 데 지장이 없었다.

"진구와 태준이가 당했다. 그런데 흔적도 없어."

"칠성이나 태무 짓 아니야?"

"아니래. 칠성 윤 이사랑은 내가 직접 통화했고, 태무 아새끼들은 그 정도로 실력이 좋질 않아. 우리 동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게 분명해. 사우나 주차장에서 진구랑 내가 나간 시간이 진짜 5분도 차이 안 났단 말이야. 그 사이에 그렇게 쌔벼가려면 일격에 끝냈다는 이야기라고."

"씨발... 그럼 설마..."

"설마가 그 설마 맞는 것 같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들에게 이 정도의 공포감을 안겨 준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해보니 머릿속에는 한 명 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왠지 뿌듯했다.

"회장님이 알면 우릴 아예 갈아 마시려고 할 거야. 안 그래도 불안감으로 반쯤 미쳐있는 노인네가 약까지 쩔어가지고 매일 리사가 보이네, 한표 형이 날 부르네 일카고 쌌다고. 되도록이면 조용히 알아봐. 누님이 돌아온 거면 이게 시작이지, 끝이 아닐 테니까."

형님도 아니고 누님이라고 하니, 내 심중 속의 인물은 더 확실해졌다. 피부가 팅팅 불을 때까지 사우나에서 죽치고 있던 내 노력은 헛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때였다.

"넌 뭐하는 새끼야?"

복도 끝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날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뿔싸. 멤버들 전부가 흡연실에 들어갔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황급히 벽에서 귀를 떼어내고 그냥 지나가던 사람인 척하려 했으나, 외침을 듣고 흡연실에서 뛰쳐나온 이들은 날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중에 한 명에 날 알아보기까지 했다.

"나 왠지 저 새끼 낯이 익은데? 너 요새 우리 주변에서 계속 맴돌던 새끼 아냐?"

저들이 시선을 교환하는 폼이 어째 심상치 않았다. 복도 옆에 있는 화분에 슬쩍 손을 얹으며 말했다.

"허허허. 잎이 아주 푸르군요."

"뭐라고 하는 거야, 야. 너 누구냐니까?"

급기야 한 명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뻗어 화분의 둘레를 재는 척을 하다가 냅다 그걸 쓰러트려 길을 막았다. 그런 다음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야! 저 새끼 잡아!"

등 뒤에서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걸음아, 나 살려라. 잡히면 뼈도 못 추린다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나의 뇌는 다리의 근육을 향해 전속력 질주를 명령한다. 요새 매일 산속에서 머무르며 새벽마다 산책을 해 온 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 안 그러면 산속으로 아예 돌아갈 수도 없게 된다.

"너 이 새끼! 거기 안 서?"

지난번에도 한 번 와봤지만, 마사지실 내부는 마치 미로와 같이 통로가 뚫려있었다. 이게 다 불법 실내 증축을 통한 불법 구조변경이겠지만, 지금은 내 도주를 돕는 우군이 되어주었다. 직선 통로였으면 아마 진작에 잡혔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요리조리 커브를 돌며 빠져나갔기에 아주 잠시나마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 나타난 건 통로의 끝, 막다른 길이었다. 막혀있는 벽을 마주하고 걸음을 멈춘 건 불과 1초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훑고 지나갔다. 주로 내가 겪어야 할 비참한 고통에 대해서다. 그런데, 벽 끝에 있는 쪽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이쪽으로."

무엇인가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간다. 등 뒤로 문이 닫혔다. 안은 아무런 조명이 켜져 있지 않아 캄캄한 곳이었다. 누군가 내 머리를 더듬더니 목덜미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내 목을 잡더니 한 방향을 가리키고 등을 살짝 밀었다.

"거기 욕조가 있어요. 안에 들어가세요."

어쩐지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밝은 곳에 있다가 어두운 곳으로 들어오느라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였지만, 잠시 후 어둠에 익숙해지고 나니 상대의 윤곽이 보였다. 틀어올린 머리, 가느다란 목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하얀 원피스...

"아, 혹시..."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어요. 빨리 들어가세요."

그렇다. 난 지금 쫓기고 있었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더듬어 가며 두 발자국 정도 옮기자 난간 같은 것이 잡혔다. 욕조의 가장자리인 모양이었다. 걸치고 있는 가운을 벗을 틈도 없었다. 욕조 안으로 발을 집어넣자 따뜻한 물이 느껴졌다. 반쯤 차 있었다. 엉거주춤 몸을 숙이려는데 밖에서 날 쫓던 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씨발! 어디 간 거야?"

"이쪽이었는데."

황급히 욕조 안으로 몸을 뉘었다. 밖에서는 일대 소란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녀석들은 닫혀 있는 문을 죄다 열어제끼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마사지사의 비명과 남자 손님들의 굵직한 항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내 내가 있는 곳의 문도 벌컥 열렸다.

"여기도 방이잖아? 뭐 이렇게 어두워?"

그러자 방 가운데 서 있던 여자, 소미가 답했다. 문 쪽을 향해 몸을 돌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래서 조명이 필요 없거든요."

"그래? 이봐, 장님 아가씨. 혹시 이쪽으로 어떤 놈 들어오는 거 못 봤어?"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시각장애인이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소미는 거짓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질문에 바른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웃긴 대화였지만, 소리 내어 웃을 수 없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욕조 속에 몸을 뉘인 채, 머리만 살짝 들고 문 앞에 선 놈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나는 어두운 곳에 있어서 밝은 곳에 서 있는 그놈이 아주 잘 보였지만, 놈은 정반대의 입장이라 이쪽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녀석이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소미가 손을 들어 놈의 입장을 가로막았다. 녀석은 짜증을 부렸다.

"뭐야."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부터 씻으려고 하는데... 나가주시겠습니까?"

"씨발. 니가 뭔데 나보고 나가라 마라야?"

"그럼 거기 계셔도 딱히 상관은 없습니다."

소미의 목소리는 굉장히 침착했다. 그녀는 원피스의 양쪽 어깨끈을 하나씩 내렸다. 얇은 천으로 된 원피스는 마치 허물처럼 스르륵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하얀색인 속옷만 남았다. 그녀는 전혀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손을 등 뒤로 돌려 브래지어를 풀고 나서 팬티 가장자리에 양 엄지를 넣어서 밑으로 내렸다. 쭉 뻗은 다리를 한 번씩 살짝 들어가며 팬티를 발목에 걸린 팬티를 벗었다. 평범한 동작인데도 불구하고 숨이 막혔다. 물 흐르듯 옷을 벗는 그녀의 동작은 마치 하나의 춤사위 같았다. 마치 자신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자기 눈에 보이지 않으니 개의치 않겠다는 그 동작에는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

날 쫓아서 이 방까지 들어온 놈도 입을 딱 벌린 채 그저 보고만 있었다. 소미는 녀석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조용한 동작으로 벽에 걸린 수건을 하나 챙기더니 욕조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욕조로 쑥 들어왔다. 밑에 깔린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욕조 바닥과 일체화되어 그대로 몸을 최대한 낮게 유지한다. 다행이라면 욕조의 폭은 좁지만 길이가 상당해서 내가 발을 뻗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소미는 마치 내가 욕조바닥이라도 되는 양, 그대로 내 위로 자기 몸을 뉘었다. 가운 안쪽에 있는 페니스가 자극을 받고 꼿꼿해졌지만, 어떻게 수습할 수가 없었다. 소미는 그게 자기 엉덩이를 쿡쿡 찌르고 있을 텐데도, 굳이 피하려 들지 않아다.

물속에 누워 코만 간신이 내놓은 상태에서, 내 위에 걸터앉은 알몸의 여인은 그렇게 누워서 목욕을 즐겼다. 소미는 허공을 향해 가만히 말했다.

"나갈 때, 문을 잘 닫아주시겠어요? 약간 춥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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