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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260화 (26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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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9

발로는 바텐더를 걷어찼지만, 그렇다고 내가 날아오면서 축적된 에너지가 어디로 간 게 아니었다. 바텐더를 걷어찬 발에 어마어마한 부하가 걸렸다. 말 그대로의 날아차기에 얻어맞은 바텐더가 비명을 질렀지만, 나라고 조용하지는 못했다.

허공에서 자세가 무너진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굴렀다. 본능적으로 최대한 몸을 웅크려 충격을 최소화했다. 몇 바퀴나 굴렀는지 모르겠다. 하늘이 어디 있고 땅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 되어서야 구르기를 멈췄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왼쪽 발목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아 아무래도 무리였다. 오른쪽 발은 아예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두 다리로 걷는 걸음마는 대충 이십여 년에 다 뗐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꼴은 세 살배기 아이만도 못하게 땅을 뒹굴고 있었다.

간신히 두 팔로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몸을 둥글게 말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신음하는 바텐더의 모습이 보였다. 그 역시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팔을 번갈아 움직여가며 낮은 포복 자세로 겨우겨우 그에게 다가갔다. 왼쪽 어깨를 붙들고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던 그는 날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내 얼굴을 알아본 모양이다.

"너...너는..."

그의 쭈글쭈글한 얼굴이 경악으로 물드는 꼴을 보니 못내 상쾌할 지경이었다. 그를 향해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어주며 이죽거렸다.

"그래. 반갑지?"

바텐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한때 실험용 생쥐처럼 실험대상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날 두려워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나를 잡아 놓고 있었을 때, 누가 나타났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그의 뒤를 누가 쫓고 있었는지 떠올렸을 것이다.

"반갑기는 개뿔... 대체 어디서 나타나..."

"하늘에서 떨어진 천벌이라고 생각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내 손이 더 빨랐다. 두 팔로 그의 허벅지를 부둥켜안고 매달렸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내 머리와 어깨를 내려쳤다. 나보다는 좀 나은 정도라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는 있는 모양이지만, 그도 다리가 성치 않은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조금 세게 끌어안은 정도인데도 돼지 멱 따는 비명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놔! 이 미친 자식아! 으아아악! 씨발!"

"미쳐? 미친 걸로는 이 세상 누구도 당신을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놓으라고! 날 죽이려고 눈이 벌건 년이 쫓아오는 마당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 짐작이 맞았다. 그가 누굴 두려워하는지. 누굴 무서워하는지 말이다.

"어떤 년인지 알겠어. 근데 말이야."

심호흡을 한 다음 오른손을 뻗어 바텐더의 고간을 꽉 움켜쥔다. 불유쾌하기 짝이 없는 감촉이 손바닥 가득 전해지지만, 이것이 지금 내 위치에서 녀석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이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바텐더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바닥에 구르면서도 이거 당장 놓으라며 내 머리와 어깨를 계속 두들겼지만, 때리는 일에 있어선 프로페셔널한 분들에게 맞아오던 내 기준에서는 간지럽다고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바텐더가 비명을 지르다 못해 아예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쯤 되어서 손을 놓아주었다. 내 손안에서 구르던 두 개의 구슬을 터트려버리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그 정도로 약력이 세진 못했다. 잠시 뒤로 몸을 물렀던 그는 짐승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내게 덤벼들었고, 나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우리는 삽시간에 엉켰다.

바텐더는 어깨가 시원치 않아서 팔을 제대로 쓸 수 없었고, 나는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그를 완전히 제압할 수도 없었다. 어디 한 군데씩 고장 난 나와 그는 엎치락뒤치락 개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체력을 빼고 나니 나중에는 둘 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숨을 헐떡이며 마주하게 되었다. 바텐더는 날 노려보며 말했다.

"그 미친년이 네놈을 구하러 올 때부터 짐작은 했다만 백당이랑 관련이 있는 놈이었군... 대가리에 든 것도 없이 지네 잇속만 차리는 깡패새끼들을...."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는 바텐더의 으르렁을 무시했다. 대신 그의 손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교회에서 예린이 그를 완전히 제압하고도 잡지 못한 까닭은 부지불식간에 꺼내 들어 그녀를 공격한 이상한 주사기 때문이었다. 예린은 그 주사를 맞고 자신을 바로 잡기 위해 일부러 자해까지 했어야 했다. 아무리 내가 정신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그녀 이상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보긴 힘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의 말을 끊고 다른 질문으로 화제를 돌렸다.

"원 목사는 어디 있지?"

"알아서 뭐하게, 씨발."

"네놈이 모신다는 시바신은 그만 찾고... 빨리 원 목사가 어디 있는지 불어!"

그러자 바텐더는 피 섞인 침을 퉤하고 뱉어내더니 날 노려보았다.

"진작에 뒤진 새끼를 왜 여기서 찾아?"

"뭐? 죽어?"

"말세 온다고 사람들한테 사기 치다가, 결국 말세는 안 오고 돈 떨어지니 약도 떨어지고... 신도라는 인간들에게 단체로 밟혀서 죽었지."

소란이는 물론이요, 사람들을 현혹하고 수많은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그가 죽다니. 내 손으로 잡아 죽여도 속이 풀릴 것 같지 않던 그 작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숨을 돌리던 바텐더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아니,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내가 달려들어 무릎과 허벅지를 끌어안았기에 그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꿱꿱 소리를 지르며 날 떼어내려고 했지만, 내가 그를 완전히 제압할 수 없듯이 그 역시 날 완전히 떼어내지 못했다.

"정말 잡아 놓으셨군요."

천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이런 것일까. 호랑이에게 쫓기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맞이한 남매가 느낀 구원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약간은 지친 듯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뛸 듯이 기뻤다. 내가 붙들고 있는 바텐더의 몸이 빳빳하게 굳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그의 고개가 돌아간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아주 심하게 흔들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는 예린이 서 있었다.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그녀가 송 부장을 잡는 데 성공했듯이, 나 역시 그녀가 올 때까지 바텐더를 붙잡는 일에 성공했기에 더 기뻤다. 예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던지고 나서도 크게 기대는 안 했습니다만..."

그녀는 뚜벅뚜벅 걸어오면서 자세를 따로 취하지도 않고 그대로 바텐더의 턱을 걷어찼다. 그 순간, 어디선가 자동차 타이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데도 저런 소리가 날 수 있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바텐더의 몸이 약 1미터 정도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처박히더니 그대로 데굴데굴 굴렀다. 예린은 바텐더에게 딱히 말을 걸지도 않고 그의 발목과 손목을 한 번씩 밟아주었다. 바텐더의 찢어질 듯한 비명과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욕설로 미루어 짐작건대, 예린이 그의 손발을 죄다 부러뜨린 모양이었다. 그녀 역시 예전에 당했던 바텐더의 반격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아주 천천히, 그러면서도 꼼꼼하게 상대방을 처리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감탄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씨발년.... 차라리 죽여...."

바텐더는 비명을 지르고 지르다 이제는 목이 다 쉬어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손목과 발목이 덜렁거리는 그는 이제 제대로 걷기는커녕 기어가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 보였다. 예린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죽이진 않아. 넌 이제부터 칵테일의 해독약을 만들어야 하니까."

"흥. 내가 순순히 그딴 걸 만들 것 같아?"

"누가 순순히 시킨다고 했어?"

예린은 바텐더의 품을 뒤지더니 그의 주사기를 찾아냈다. 그리고 바텐더의 목에 겨누었다. 바텐더의 눈이 이상한 빛으로 번뜩였다.

"무슨 짓이냐."

"역시 이걸 가지고 있군. 어디 보자, 네게 이걸 주사하면 어떻게 될까."

바텐더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목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는 동안 저 멀리서 예린의 부하들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몸에 힘이 탁 풀렸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예린의 검은 옷이 내 시야에 가득히 들어왔다.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검은 세상, 그 속에 예린이 녹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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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거의 한 달만이군요.

면목 없습니다.

일단 이 루트는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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