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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9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남들 다 그러듯이 어디 회사에 들어가 평범한 직장인이 되리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어디 이공계통의 회사에 들어가 현장직군이 되어 설비를 담당하거나 연구직이 되어 연구실에서 일하게 되리라 예상했다. 선배들을 보면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으니 다른 종류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단 막연한 기대도 해봤다. 그렇지만 그 어떤 때도 지금 같은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 회사의 건물 지하는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아래에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연구실이 있었다. 여러 개의 실험실로 나뉘어 있었고, 가운데는 세 명 정도가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복도가 나있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에는 가운을 걸친 연구원 수십 명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인체에 치명적인 독물과 약을 동시에 다루는 곳이다 보니 함부로 들어갈 수 없어 밖에서 보는 것이 고작이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연구실 전반을 둘러보았다. 딱히 내가 본다고 뭘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회장인 내가 챙긴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예린이 주장했기에 하루에 한 번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내려오고 있었다. 복도가 거의 끝나갈 때쯤, 내 뒤를 따라오는 예린에게 묻는다.
"진척 상황은?"
"개발은 거의 완료되어 갑니다. 임상 결과도 나쁘지 않다고 하는군요."
연구실의 주제는 "칵테일의 해독"이었다. 국내외 최고의 인재들을 초빙했다고 했는데도, 그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연구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칵테일은 복잡하기 짝이 없는 화학구조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사람의 뇌와 연계해서 어떤 작용을 일으킬 지는 자기들로서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 수준이라고 했다. 연구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그런 복잡한 물건을 혼자서 만들어 낸 바텐더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는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는 보통 사람이 갖는 인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너무 뛰어났다.
"임상이라고 하면... 그 '지원자'들?"
"네. '지원자들'입니다."
연구실에서 시선을 거두어 앞을 본다. 부끄러워서 차마 연구실 쪽을 보기 힘들었다. 부산 전역에 퍼진 칵테일의 여파는 사람의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송화의 지적대로 지역 검찰 수뇌부에도 있을 정도였으니, 중독자는 어디에나 있었다. 그래도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적당히 다른 병명으로 둘러대고 병원을 방문하거나 몰래 치료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그게 불가능했다. 금단현상으로 반쯤 정신이 나간 노숙자 무리에 의한 폭동이 발발한 적도 있었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우리 회사에서 보낸 사람들이 그들을 진압하고 한 발 앞서서 '수거'할 기회가 있었다.
이 건물 어딘가에 만들어 놓은 사설 감금시설에서는 그들이 중독 수준에 따라 나누어 수용하고 있으면서 해독제의 임상실험에 사용했다. 명목상으로는 그들을 '지원자'라고 부르고, 우리 나름대로는 그들을 치료한다는 명분도 가지고 있지만 명백하게 사람을 가둬놓고 있는 불법행위다. 또한 모든 종류의 해독제가 올바른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만도 아니었다.
"지원자들 처우에 신경 써주고, 만약 나가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잘 묻어주세요."
"네."
지원자를 '수거'하게 되면 반드시 연고 조사를 한다. 어디 한 군데라도 연고가 있는 사람이라면 외부 시설로 보내버리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혼자인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어느 순간 거리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사람들. 아무리 그런 사람들이라고 한들, 또한 우리의 목적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한들... 내 안의 죄책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럴 때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조율하는 게 자기 일이라고 말했던 리사를 항상 생각한다. 그녀의 말이 담고 있는 무게를 새삼 느낀다.
"좀 더 서두르라고 해줘. 새로 부임한 지검장이 성과를 올리고 싶어 하는 눈치더군. 그에게 적당한 선물을 주는 것도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될 거야."
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도 바텐더를 고문하는 일에 누구를 투입하고, 임상실험에 쓸 노숙자를 조달해 오는 일에 대한 의견을 전한다. 어차피 예린이 알아서 잘 하고 있는 일이지만 그녀는 내 지시를 단 한 번도 어기거나 이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렇게 중요하고 복잡 미묘하면서도 결코 세상에 알릴 수 없는 일을 진두지휘하느라 밤낮으로 바쁜 그녀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야기해야 할 건 이야기해야 했다.
"아, 그리고... 오늘 저녁에 송화 만나는데..."
이렇게 서두를 꺼내고 예린의 눈치를 살핀다. 여전히 선글라스 너머 그녀의 표정은 모르겠다. 침대에서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벗고 있을 때, 그러니까 선글라스를 벗고 있을 때는 참 알기 쉬운 표정과 신음을 내던 그녀인데도 말이다. 낮에는 그녀의 본심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회장님의 일정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따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아니, 그게, 예린은 송화에게 개인적으로 전할 말이 있나 싶어서."
"개인적?"
유리창에 예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비쳤다.
"저는 단 한 번도 그 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만."
"그런가? 지난번에 보니 친해 보이던데..."
"설마요. 회장님만큼이야 그럴까요."
예린은 날 지나쳐 먼저 출입문에 도달했다.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그녀는 날 보며 선글라스를 살짝 아래로 내렸다. 푸른 눈이 날 똑바로 바라본다. 내게 동침을 요구하던 그날도 저런 표정이었다. 그녀는 주변을 살짝 살핀 다음, 낮은 목소리로, 그리고 비음도 약간 섞어서 내게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오늘은 씨 뿌리기 좋은 날입니다. 제 방에 들르셔야 합니다. 그러니 채 검사와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마십시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는 먼저 나가버렸다. 무엄하게도 회장님을 혼자 두고 먼저 가버리다니. 너무 괘씸한 부하였다. 이따 밤에 그녀의 방에 찾아가거든 굵직하고 단단한 몽둥이로 많이 찔러주어야 앞으로 똑바로 하지 싶었다. 침대 위에서만큼은 내 말을 아주 잘 듣는 순한 양이지만, 밖에서는 여전히 어렵다. 예린과 나, 그런 사이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지금 우리 집에는 세 명의 여자와 두 명의 아기가 있다. 내 부인인 마리, 내가 보호자로 되어 있는 소란이, 그런 소란이를 전적으로 보살피는 가희 이렇게 세 명의 여자가 있고, 마리가 낳은 아들 수영이와 소란이가 낳은 딸 아라가 있다. 소란이는 아직 깨어나지 못했기에 두 아이 모두 마리의 젖을 먹여 키우고 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예린이 찾아와 육아를 돕고 있었다. 자주 왔다 갔다 하나 보니 방 하나를 아예 예린의 방으로 내주었는데, 하루는 예린이 급한 일이 있다며 날 불렀다. 야심한 시각에 부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정도로 급한 일인가 싶어서 찾아갔더니 그녀는 내게 '씨'를 요구했다.
"마리 아가씨의 허락은 받아두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 허락?"
"애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회장님을 모시지 못하는 게 많이 미안하다고 하시더군요."
"아,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항의는 가볍게 묵살되었고, 그날 밤 예린은 내 몸과 내 씨를 취했다. 그 누구보다 강하고 단단한 몸을 가진 예린이었지만, 속살만큼은 누구보다도 부드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배란기가 될 때마다 마치 맡겨둔 물건을 찾는 것처럼 아주 당당하게 내 몸을 요구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거의 모든 남자들이 쩔쩔 매는 예린이 내 아래에서 신음을 흘리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런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집중하기로 한다.
회사를 나와 송화와 약속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수행하는 태호를 물리치고 혼자서 방으로 들어가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송화가 날 맞이했다.
"회장님 얼굴 보기 힘드네. 전화해도 비서가 받고, 엄청나게 바쁘신가봐?"
그녀의 툴툴거림은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 익숙하다. 상 위를 살피니 이미 나올 음식은 다 나온 모양이었다. 술잔과 술병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고, 앞에는 장지문처럼 생긴 두터운 문이 달려 있어 내실이 무척이나 조용한 이 일식집의 특징은 호출 벨을 누르기 전에는 아무도 여기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송화의 투덜거림을 웃음으로 대꾸하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누가 막 내 옆에 앉으...읍..."
송화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입을 맞춘다. 입술이 겹치고 혀가 섞이는 동안 송화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트렸다. 아무도 줍지 않는다. 내 손은 블라우스의 단추를 푸느라 바빴고, 송화의 손은 내 바지 지퍼를 내리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매번, 볼 때마다... 하악... 이런... 식...흐읍...."
손 하나를 송화의 치마 아래로 밀어 넣고 손가락을 뻗어본다. 이미 축축하게 젖은 그녀의 팬티가 모든 걸 대신 말해주고 있다.
"일부러 메뉴를 이걸로 잡은 건, 여기 내실이 조용하니까 그런 거 아니었어? 응?"
"모, 몰라... 흐윽...."
거치적거리는 팬티를 밀어내리고 그녀를 내 위에 앉혔다. 그녀가 밖에서는 검찰 고위직이고, 부산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몇 사람 중에 하나라는 사실 따위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내 물건을 아랫입으로 빨아들이고, 그 감촉에 허덕대는 여러 여인 중 하나일 뿐이다.
"소리가 너무 커."
"흐윽... 나 몰라...하악... 하악...."
내 목을 끌어안은 송화는 허리를 위아래로 들썩거리며 어쩔 수 없는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허리를 붙들고 움직임을 도우며 생각한다.
마리, 소란, 예린, 소연과 그리고 송화까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내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참 신기한 것은,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 나 자신의 선택에 대해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리사의 죽음 이후, 또한 내가 죽을 뻔한 위기도 겪었지만, 그 어떤 때도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내가 이겨냈어야 하는 일들이다.
"자기야... 흐윽... 나.... 나...."
날 부르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다. 내 위에서 전신운동을 하느라 숨을 헐떡이는 송화를 엎드리게 해놓고 뒤에서 박기 시작했다. 문득 어느 순간, 기시감이 들었다. 언제고 나와 송화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또한 지금이 아닌 다른 어느 때에 이렇게 섹스를 하곤 했었다는 그런 느낌말이다.
"왜 그래?"
"응?"
뭔가 생각하느라 허리 움직임을 멈추었더니 송화가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날 보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명령 하나, 손짓 하나로 수많은 이들을 호령하는 그녀가 날 저런 애틋한 눈으로 볼 때는 은근히 기분이 좋다. 다시 한 번 아랫도리가 불끈해지는 걸 느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살짝 휘어잡는다.
"이제부터 더 세게 하려고."
"아앙...."
허리를 뒤로 한 번 쭈욱 뺐다가 동굴 안에 장전된 물건이 빠지지 않는 범위에서 앞으로 힘차게 밀어 넣는다. 자지러드는 송화를 보면서 방금 전 들었던 알 수 없는 생각은 지워버렸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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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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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 김마리&하렘 Rout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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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Route 9, 마리와 기타 여성들 전부를 하렘으로 취하는 루트를 끝냈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한석이는 주먹쪽 세계에서 가장 강한 여인과 검찰 조직에서 고위직에 속한 여자는 물론이고, 캐릭터 인기도가 애매한 나머지 여러 캐릭을 잡식하게 되었습니다. 먹다가 탈이 나는 과정까지 그려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으나,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기존 연재작에서 없던 부분을 덧붙이느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러 사정이 겹쳐서 연재가 많이 지연되었습니다. 기다리고 계신 분들께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월간 연재가 아니라 최소 주간 연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 이제 가보지 않은 길들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을 일주일동안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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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5회 - 학교에서 리사를 처음 만나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분기점은
- 명희를 찾지 않는다 (선택완료)
- 명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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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34회 - 마리, 리사와 식사하고 난 후입니다. 분기점은
- 지혜에게 연락한다 (선택완료)
- 명희에게 연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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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41회 - 유진이와 통화를 끊은 후 입니다. 분기점은
- 유진에게 바로 간다 (선택완료)
- 유진에게 나중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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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50회 - 지혜의 결혼식입니다. 분기점은
- 지금 바로 올라간다 (선택완료)
- 나중에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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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58회 - 선영의 전화를 받은 후입니다. 분기점은
- 선영의 부탁을 거절한다 (선택완료)
-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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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68회 - 학교에서 교생 일을 하고 있는 한석입니다. 분기점은
- 선영의 집을 일요일에 찾아간다 (선택완료)
- 지금 바로 간다 (선택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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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88회 - 종로에서 전화기를 들고 있는 한석입니다. 분기점은
- ROSE에 전화한다(선택완료)
- 효진에게 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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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3회 - 감옥에 갇힌 한석, 잡혀가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분기점은
- 송화가 잡혀간다 (선택완료)
- 소란이 잡혀간다 (선택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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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고 나니 여전히 복잡하군요. 조아라 뜰과 트위터에 순서도를 올려놓기도 하니까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더 복잡할 지도 모르겠군요....
진행이 완료된 6번과 8번을 제외하고 1번부터 7번까지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과연 어느 루트에서 한석이 정말 죽을 수 있는 것인가!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