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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5
그러고 보니 선영이는 아라를 가졌을 때 과자를 참 좋아했다.......
익숙지 않은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마루에 앉아 과자를 먹고 있는 선영이를 볼 수 있었다. 배가 불룩해서 과자 부스러기가 죄다 그녀의 배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는 날 보며 반색하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또 먹어?"
"몰라. 자꾸 땡기네, 이게."
"지난번 사다 놓은 거 다 떨어진 거 아닐까 모르겠다."
"아직 좀 남았어."
"네가 과자를 이렇게나 좋아할 줄은 몰랐어."
"응. 나도 몰랐는걸?"
선영은 손에 붙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짚은 채 마루에서 내려오려는 그녀를 만류했다.
"어디 가게?"
"자기 밥 줘야지."
"내가 찾아 먹을게."
"됐어. 온종일 집에 있으면서 심심해서라도 밥 다 차려놨으니까. 어머니는 또 드시고 오시는 거야?"
"아마도?"
아들이 귀농한 이래로 농사일에서 해방된 어머니는 항상 마을로, 읍내로 쏘다니기에 바빴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어디 슈퍼에서라도 과자 몇 봉다리를 사가지고 휘적휘적 걸어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선영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좋아했다. 성별도, 모습도 다르지만, 저렇게 거나하게 취한 모습에서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모습을 찾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가끔 들었다. 딱히 물어보지는 않았기에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물어볼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물어볼까. 고개를 들어 그녀의 묘지를 바라보지만, 푸른 빛이 바래어 가는 풀이 덮인 그곳은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다. 물어보고 싶어도 물을 수 없고, 설령 물어본다 한들 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아빠, 또 멍하게 있지?"
"어? 어...."
고개를 돌려보니 아라가 날 쳐다보며 서 있었다. 녀석은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내 이마를 살짝 찌르며 말했다.
"할머니가 아빠는 넋 놓고 있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그래, 그래 알았다."
엄마는 자신이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대신 아주 제대로 된 감시자 및 참견쟁이를 내게 붙여주셨다. 아라의 재촉을 받고 얼른 자리에서 털고 일어난다. 자리를 뜨기 전, 선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장인, 장모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떴다. 선영은 꽤 오랜 시간을 그녀의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그렇지만 이제는 더 이상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함께 나란히 누워 영원히 그들과 안식을 취하리라. 이렇게도 외로운 날 놓아두고 그녀는 거기에 그렇게 누워있다.
산에서 내려오니 관리인 할아버지가 돌아와 있었다. 그에게 만 원짜리 몇 장을 찔러넣어 주며 주변 나무의 가지치기를 부탁했다. 아침부터 막걸리 냄새를 심하게 피우고 있던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핸드폰을 열고 벽제시 콜택시를 불렀다. 콜비가 이천 원이라는 소리가 사족처럼 붙었지만, 개의치 않고 빨리 보내주기나 하라고 했다. 아라와 묘지공원을 벗어나 처음 술을 샀던 가게까지 도착하니 택시가 와 있었다. 아라와 함께 택시에 올라탔다.
"터미널로 가주세요."
"예에."
택시가 출발했다. 옆에서 연신 오도독거리며 과자를 먹던 아라가 물었다.
"그럼 이제 부산으로 가는 거야?"
"응."
"할머니한테 전화했어?"
"아니, 아직."
"얼른 해. 항상 어디 갈 때는 어른한테 말하고 가는 거야."
"....네."
어른에게 행선지를 꼭 보고해야 한다고 어른인 제 애비에게 말하는 이런 똑똑한 딸내미를 보았나! 내 딸이긴 하지만 참 똑똑하다. 그런 동시에 살짝 싸가지가 부족하기도 하다. 아라의 말투를 볼 때마다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게 아닐까 싶어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선영이는 아라가 말하는 걸 보면 유진이를 닮았다면서 깔깔 웃곤 했다. 내심으로는 선영이가 아라를 유진이처럼 키우려고 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은 의심까지 들 정도다. 휴대폰을 꺼내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차례 가고 엄마가 받았다.
"엄마, 나야."
"응. 갔다 온겨?"
"어."
"아라가 아침부터 애먹었겠네. 그러게 묘를 가까운 데다 쓰면 될 것이제 뭘 그리 멀리다 하구 그랴. 찾아가기 힘들겠꾸루."
선영이를 여기다 두는 것에 대해 엄마와 난 이견이 많았다. 벽제와 우리 집은 대한민국 영토에서 거의 끝에서 끝이다. 한 번 찾아가려면 이번처럼 1박을 각오하지 않으면 어렵다. 뒷산으로 하자는 엄마와 그녀를 가족의 곁에 두고 싶어 했던 나는 계속 싸웠다. 결국은 내 고집대로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잔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번 다녀올 때마다 이 소리다.
"됐어. 나중에 이야기해. 엄마는 밥 먹었어? 뭐해?"
"나야 있는 걸로 대충 먹었지. 지금 니 방 청소하면서 빠투리건 읍나 살피고 있제."
"포장이사로 보냈는데 뭘. 지금쯤 다 도착해서 짐 풀고 있을 거야."
"이사를 워떻게 남의 손에다가 다 맡긴다냐. 아이고. 역시 내가 가불것 그랬나 보네."
"됐어. 몸도 안 좋으면서... 어, 잠깐만."
옆에 있던 아라가 아까부터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다. 녀석에게 핸드폰을 쥐어준다.
"할머니.... 응.... 응..... 알았어. 응..... 엄마는 잘 있어. 글쎄, 아빠는 절도 안 하면서도 뭐래는 줄 알아? 자기는 엄마랑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거 있지? 진짜 말이나 못하면...."
말이나 못하면이라니. 그건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란다. 딸아.
"응.... 여기서 터미널 가서 버스 타면 돼. 걱정하지 마. 할머니. 응.... 할머니도 병원 꼭 가고, 알람 울릴 때마다 약 먹어. 약은 내가 하루 치씩 약통에 다 넣어 놨거든? 응? 응. 거기 찬장 위에. 엉. 알았어."
아라는 전화를 끊고 내게 폰을 돌려주었다.
"할머니 약도 니가 챙겼냐?"
"그럼 누가 챙겨?"
라고 여상스럽게 대꾸한다.
"그래, 장하다. 장해."
아라와 대화를 나누는 게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때론 귀찮을 때도 있다. 지금이 딱 그렇다. 선영이를 보고 온 날은 이렇게 마음속 깊은 곳까지 한스러워진다. 추운 날씨 탓이 아니리라. 내 마음은 아직도 그녀가 없는 동토에 머물러 있다.
"다 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택시에서 내린 아라와 난 터미널 창구로 가서 부산행 버스를 살펴보았다. 부산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안내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 일단 서울이나 수원으로 한 번 간 다음, 거기에서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오래 걸리겠네..."
버스로 가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중간에 갈아타야 한다면 분명 붕 뜬 시간이 생길 게 분명하다. 일단 서울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버스가 출발하려면 삼십 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손잡고 있던 아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괜히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아빠가 운전만 했어도..."
그러나 아라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으응. 괜찮아. 대신 버스 기다리는 동안 우동 사줘."
기회를 놓치지 않는 녀석의 넉살에 크게 웃었다.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곤 터미널 한쪽 구석에 있는 우동집으로 함께 갔다. 두 그릇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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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 죽었다고 이번 루트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던데, 안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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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2007년 11월 기준.
전라도 화순 멤버
- 최한석(33)
- 한선영(36세의 나이로 2006년에 졸)
- 최아라(7) : 한석 딸
- 최영희(53) : 한석 모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