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304화 (304/471)

0304 / 0471 ----------------------------------------------

Route 5

지혜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입을 크게 벌렸다. 어찌 보면 굉장히 굴욕적인 자세인데도 그녀는 순순히 따랐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의 머리를 잡고 입속에 쑤시고 싶었지만, 전에 그렇게 했다가 혼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 손으로 하기로 했다. 귀두의 움푹 패인 부분을 지혜의 입술에 걸쳐놓고 육봉의 옆면을 손으로 빠르게 훑었다. 지헤가 두 손을 뻗어 내 엉덩이를 한쪽씩 쥐고 있다. 그렇게 손딸을 치고 있는 동안에도 지혜의 혀는 내 귀두 끝을 계속 희롱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크윽...으으...지...지혜야..."

푸슉- 이란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내 몸에서 뭔가가 급하게 빨려 나가면서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순간에 지혜의 입안으로 육봉을 더 밀어 넣고 용틀임을 하고 만다. 지혜의 목구멍을 향해 쏘아제끼는 페니스의 꿈틀거림을 온몸으로 느꼈다. 며칠간 사정하지 못했던 탓일까. 지혜의 입안을 향해 싼 양이 꽤 되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꿀렁이던 걸 입에서 빼자 지혜의 입가로 정액이 좀 흐르는 게 보였다. 지혜는 손을 들어 그걸 스윽 입안으로 밀어 넣더니 애써 삼켰다. 섹스한 것 이상으로 탈진해버린 난 가쁜 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말했다.

"하아...하아....뱉어도 되는데..."

"크흠. 크흠. 흠흠. 이미 안쪽까지 밀어 넣고 쌌으면서... 무슨 소리야?"

지혜는 몸을 일으키며 날 흘겨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머리를 잡고 자기 쪽으로 확 당겼다.

"어어? 으읍..."

깊은 키스. 혀를 섞는 프렌치 키스. 지혜의 혀 표면에 있는 미끄덩거리는 무언가가 입안에서 입안으로 가득 섞이고 만다. 코 안쪽으로부터 비릿한 내음이 확 밀려올라와 머릿속을 채운다. 한참이나 그렇게 하고 있던 지혜는 겨우 날 놓아주었다. 내가 혀를 내밀고 꿱꿱거리고 있자니 그녀는 자기 블라우스의 단추를 채우며 웃었다.

"왜에? 나한테 먹일 때는 좋고 자기가 먹으니까 이상해?"

"이상하지 그럼... 안 이상해?"

"거참 이상하다. 난 맛있던데? 한석이는 안 맛있나 봐?"

"으으윽..."

지혜는 자기 옷매무새를 정리하곤 내 옷도 입혀주었다. 그리고 내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자아~ 최 대리님? 이제 풀 것도 다 푸셨으니 기분도 상쾌하게 일 하셔야죠? 그쵸?"

눈웃음을 치며 내 엉덩이를 쓰다듬는 지혜를 보니 화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다. 그저 씩씩하게 대답할 수밖에.

"넵, 팀장님."

그러고 나서 사무실에 돌아오니 희경이 눈을 켜고 날 혼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거다. 구원을 바라는 눈빛으로 지혜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희경의 편을 들어 날 더 나무랐다. 조금 전까지 내 물건을 물고 빨아 젖히던, 그리고 내 정액을 마시던 그 입술에서 나오는 잔소리가 얄미웠지만, 직급이 직급인 걸 어찌하리. 그리고 할 일이 쌓여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12월 31일. 2007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10시에 시작하는 행사 때문에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나와 지혜, 희경은 물론이고 다른 팀의 젊은 직원들까지 총동원되어 행사진행 준비와 접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사람이 많아져서 좋기도 했지만, 단점도 적지 않았다.

"한석 씨! 여기 이것 좀 확인해줘!"

"최 대리! 이거 여기다 놓는 거 맞아?"

"최한석 씨! 아까 말한 거 못 찾겠는데?"

원래 하던 사람들이 아니다보니 모르는 게 더 많았다. 결국 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하나하나 지시해야만 했다. 몸은 덜 피곤했지만, 정신은 더 사나웠다. 그러다 APT 주임연구원인 김대범 씨가 나에게 물었다.

"한석 씨. 영제는 어디 갔지?"

영제는 APT의 막내였지만,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어지간한 잡일을 도맡던 젊은 대리였다.

"영제요? 그러고 보니 아까 나 소장님이 시킬 일 있다고 해서 연구소 차 몰고 나갔는데요?"

"에휴. 그 뺀질이... 알았어요."

김 주임은 나 소장이 일을 시켰다는 소리에 더는 묻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러 가버렸다. 그러고 보니 이영제가 연구소를 출발한지 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곳으로 간 심부름이 아닌 모양이었다.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워낙 바빠서 잊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저녁이 되었다. 열 시가 다 되어가도록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최종점검에 몰두하고 있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아라야!"

강당의 입구에 아주 예쁘게 차려입은 두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서로 맞추기라도 한 듯이 연분홍색 체크 코트를 나란히 걸친 아이들이었다. 아니, 정정한다. 한 여자아이와 한 남자아이였다. 딸 가진 아버지 입장에서는 좀 자존심 상하는 소리였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저놈의 사내 녀석이 우리 딸보다 더 예쁘다고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 두 아이를 데리고 부산 시내의 백화점에 갔더니 수영이를 보고 아역배우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수영이는 울며불며 선미의 뒤로 숨어버렸지만, 말이다.

"수영이도 왔구나. 어서 와."

옆에 서 있는 선미의 치맛자락을 꼭 쥐고 있던 수영은 내게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전 같으면 선미나 아라의 뒤로 숨고도 남았을 녀석인데 점점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수영이는 긴 머리를 한데 모아 땋았는데 끝 부분에 작은 방울이 달려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방울이 꽤 귀여워보였다. 내 다리에 매달린 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라도 머리 묶지 그랬어. 수영이처럼 말야."

"싫어. 난 푸는 게 더 편해."

"예쁘잖아."

"예쁘다고 편한 걸 포기할 수는 없는데?"

"에휴. 말을 말자, 말을."

한숨을 쉬며 녀석을 떼어내려는데 문득 아라가 묘한 소리를 했다.

"아빠아, 나 오다가 어떤 예쁜 언니 봤는데, 그 언니가 나한테 엄마 이름이 뭐냐고 했어."

"엄마 이름?"

좀 놀랐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선미를 보자 그녀는 특유의 조심스런 말투로 설명했다.

"오다가 주차장에서 어떤 여성분을 만났는데, 아라 보고 귀엽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아라의 이름을 물으시더니 엄마 이름이 뭐냐고 또 물으셨죠. 그래서 아라가,"

"지혜라고 대답했어. 김지혜."

다시 한 번 또 놀란다. 아라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아빠 나중에 지혜 아줌마랑 결혼할 거잖아. 아니야?"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이 녀석들도 알 건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에 내려온 이래 지혜와 내가 붙어 지낸 시간을 돌이켜보면 아라가 이런 소리를 서슴없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라의 입에서 엄마 이름이 지혜라고 나오는 건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선영은... 선영은 그렇게 잊히고 있다. 아라에게서, 또 나에게서.

"아빠? 표정이 왜 그래?"

"아, 아냐. 아무것도...."

아라를 탓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조심스럽게 밀어내곤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수영이가 매달려 있는 선미를 향해 평범한 대화를 시도한다. 조금 전 아라의 말을 빨리 지워버리고 싶었다.

"어서 와요. 선미 씨. 찾는데 어렵진 않았나요?"

"전에도 몇 번 와봤습니다."

"그랬군요. 저쪽 복도로 가면 아이들을 위한 실내놀이시설도 해놓았어요. 간단한 다과도 있고요. 혹시 애들 졸리다고 하면 옆에 자리도 마련해놨으니 거기서 재우면 돼요."

"꽤 꼼꼼하게 준비하셨군요."

"말도 마요. 하하."

아들이 왔노라고 지혜를 부를까 하다가 그녀도 지금 다른 사람들을 접객하느라 바쁘다는 걸 생각하곤 그만두었다. 게다가 지금 기분으로는... 지혜를 보고 싶지 않았다. 선미는 내게 인사를 표하곤 아이들을 데리고 강당을 떠났다.

그들의 뒷모습, 아라의 깡충거리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역시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한 것일까. 그렇다면 엄마의 의미는 뭘까. 그런 생각에 빠졌다. 사실 육아라는 측면에서 보면 지혜가 아라에게 해준 것은 많지 않았다. 그런 건 선미가 더 많이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라는 엄마 이름을 묻는 질문에 서슴없이 지혜의 이름을 댔다. 그렇다면, 아빠의 정기적인 섹스 파트너가 아이들의 엄마란 소리인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혜와 몸을 섞는 동안... 난 선영을 떠올린 적이 있었을까. 과연? 얼마나?

그런 동시에 지혜를 생각한다. 언제나 날 갈구하는 그녀. 정확히는 나보다는 남자의 곁을 갈구하는 그녀...  그녀가 싫은 건 아니다. 그녀는 내게 있어 첫 여자인 동시에 첫 실연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와 지금 이렇게 깊은 사이가 된 것이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녀와 결혼이라? 결혼이라...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정말 있었나?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 생각에 이르자 스스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깊고 끈적끈적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져오면서도 막상 그녀와 평생을 함께 한다는 건 자신이 없는, 그런 이기적인 나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옅은 안개 속에서 더듬더듬 발을 뻗어 늪지대를 나아가는 것처럼, 생각의 전개는 엉금엉금 거북이 속도였다. 그런 거북이의 앞을 콱 틀어막고 있는 게 있었다.

그건 지혜의 이혼 사유였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자기 아내를,  심지어 자기 자식까지도 무자비한 폭행을 가한 남자의 잘못이다. 그놈이 미친놈이고 나쁜 놈이다. 그렇지만 그런 그를 "칼로 찌른" 지혜였다. 게다가 그 남자는 수영을 가리켜 "내 자식이 아니다"라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지혜는 그 점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대체 그녀의 결혼생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남자의 폭행이 시작되었고 그런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나는 선영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데, 지혜는 자신의 전 남편에 대해서 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의문이 머릿속을 휘젓기 시작하자 몹시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바닥이 없는 늪으로 한없이, 한없이 빠져드는 그런 더러운 기분이었다.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들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이나.

───────────────────────────

*

============================ 작품 후기 ============================

이 루트가 순순히 지혜 루트가 될 거라고 생각한 분들은 손을 듭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