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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5
"거참.... 여러 가지로 일이 손에 안 잡히고들 있겠구나."
겨우 이렇게 말하는 게 다다. 손에 든 식판을 수거용 통에 밀어 넣고 손을 털었다. 강당을 나와 휴게실 쪽으로 올라가려는데 지혜가 내 팔뚝을 잡았다. 돌아보니 그녀가 눈짓으로 비상계단 쪽을 가리켰다. 주변을 둘러본다. 희경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고 다른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지혜를 바로 따라가는 건 곤란하다. 그녀가 먼저 간 다음 복도를 천천히 걸어, 마치 같이 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해서 비상계단 쪽으로 갔다. 지혜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야."
위에서 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층과 층 사이에 꺾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그녀가 서 있었다. 그곳으로 올라간다. 올라가자마자 지혜가 내 손을 꼭 붙든다.
"요새 너무 바빠서 자기한테 신경을 못 썼네. 주말에 같이 있지도 못하고..."
"거의 매일 출근했잖아. 오버타임 수당은 꽤 나오겠네."
"수당이 중요해?"
지혜는 가볍게 눈을 흘겼다. 그녀의 눈가에 묻어있는 요염함이 물씬 날아와 날 적시는 것 같다. 그녀의 말투는 날이 갈수록 요염해지고 나를 더욱더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걸 느끼고 있지만... 어째 마음은 그다지 동하지 않는다.
"일 많이 했으니 돈이라도 더 받으면 좋지."
"일? 후후. 오늘 어떻게 할래? 야근...이라도 할래?"
지혜의 입에서 나오는 "야근"은 몹시도 섹시한 느낌이 풀풀 났다. 그녀가 말하는 일이 어떤 일일까 생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녀가 말하는 "야근"이 어떤 야근인지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그녀와 내가 신 나게 했던 "야근"이다. 모두가 퇴근하고 없는 회사에서, 혹은 그녀의 차 안에서 뜨겁고도 달콤한 야근을 보내곤 했다. 사람이 없을 때만인가. 때로는 남의 눈을 피한 으슥한 곳에서 물고 빨고 주무르며 서로를 탐닉했다. 그랬던 우리다.
그렇지만 1월 한 달 동안 그녀와 난 한 번도 관계를 갖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날 쳐다보는 지혜의 눈이 점점 더 촉촉해지고, 그녀가 내게 밀착해오는 몸짓이 더욱 육감적으로 되어가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아빠 나중에 지혜 아줌마랑 결혼할 거잖아. 아니야?]
그날, 아라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던 그 말이 뇌리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다. 결혼? 결혼이라고? 내가 지혜와? 그런 동시에 또 다른 이가 말하던 게 생각난다.
[효진 님과 지혜 님 사이에서 일어난 일 중에 효진 님이 지혜 님에게 말하지 않고 처리한 사안도 많습니다. 아직 지혜 님도 모르는 일을, 함부로 남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고 나직하지만 비교적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던 선미. 그녀의 말도 내내 귓가에 맴돈다. 지혜에게, 또 효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게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나는 아주 무거운 무언가를 가슴에 얹어놓은 것 마냥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지혜가 적극적으로 내게 달라붙어도 전혀 욕구가 일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어?"
"....아냐, 아무것도."
"에이~ 아니긴. 일이 바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지혜가 내 옆에 착 달라붙더니 바지 앞섬을 쓰다듬었다. 이런 젠장할. 마음과는 별개로....그녀와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는 별개로.... 그녀의 손길에 스친 바지 앞섬을 꾸물꾸물 일어나기 시작한다. 젠장, 젠장. 이래서 남자를 짐승이라고 하고 또 동물이라고도 하는구나 싶었다. 지혜의 손을 가볍게 밀어내며 말했다.
"회사에서 이러지 마."
"언제는 안 한 것처럼 왜 그래? 손말고 다른 걸로 해줄까?"
지혜는 내가 손을 밀어낸 이유를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더니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손을 아래로 넣어 팬티마저 아래로 내리고 이제 단단해지기 시작한 자지를 꺼내 들었다. 워낙 순식간에 그리고 능숙하게 이루어진 터라 말릴 틈도 없었다.
"음...으음... 츄웁...."
회색 블라우스를 입고 말쑥한 H라인 스커트를 입은 지혜였다. 몸매에 맞게 잘 짜여진 슈트를 입은 그녀가 입으로 내 자지를 물고 희롱하고 있다. 붉은 입술을 벌려 자지 끄트머리부터 육봉까지 안으로 집어넣고, 머리를 앞뒤로 움직인다.
"이웅오아?"
자지를 입에 문 상태에서 불분명하게 말하는 지혜. 그런 그녀의 입에서 자지를 빼내고 싶었지만... 몸 끝에 가해지는 말초적인 신경은 내 움직임을 봉쇄한다. 지금 확 빼내면 그녀가 심적으로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변명으로 이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츄웁- 츄웁- 츄웁- 웁... 으음...."
내 자지를 가지고 능숙하게 입을 놀리는 지혜를 내려다보며 별별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원래 어떤 유부남과 불륜관계였었다. 같은 회사, 그것도 상사였다고 들었다. 그놈의 자지도 이런 식으로... 회사에서 빨아댔을까?
그녀는 결혼을 했었다. 남편의 물건을... 이런 식으로 맛깔나게 빨아주고, 나에게 했듯이 자지를 가슴에 끼우고 사정시켜 주었을까. 그 정액을 입에 담아 꿀떡 삼키고.... 그랬을까.
내가 아는 그녀의 남자만 두 명이다. 내가 모르는 또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혜는 얼마나 많은 남자의 자지를 입에 물었을까. 그들의 정액도 모두 마셨을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지금 지혜가 내 자지를 물고 손으로 흔들어 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은 계속 딴생각뿐이다.
"자기야? 이거.."
"어? 어?"
문득 정신을 차리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혜가 난감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축 늘어진 내 자지가 쥐어져 있었다. 팽팽하던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뱀허물처럼 쪼그라든 무언가가 거기 놓여있었다. 표면에는 지혜의 침이 잔뜩 발라져 있던 터라 추운 겨울 바람이 사정없이 맨살을 파고든다. 지혜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무슨 고민 있어?"
"고민은 무슨... 지금 그냥 좀 그런가 봐."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지혜의 손을 살짝 밀어내고 자지를 얼른 바지 사이로 넣었다. 지혜는 내 바지지퍼 쪽을 몹시 아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살짝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그녀의 혀가 자기 입술을 살짝 핥는다.
"다시 빨아줄까?"
"아, 아냐. 나중에... 나중에 다시 하자."
"나중에 하자면서 벌써 한 달이나 못 했잖아."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별로... 하고 싶지 않은거야?"
"....."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지혜의 표정이 살짝 골이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럼 난 바빠서 이만"이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휙하니 계단을 올라가버렸다. 따라갈까 어쩔까 하다가 아래로 내려간다. 반층 정도 내려갔을 때, 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계단이 끝나고 통로가 꺾어지는 지점, 바로 거기에 유진이가 팔짱을 낀 채로 벽에 기대어 서 있다!! 조금 전까지 지혜가 내 자지를 물고 있던 저 위와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유...유진아..."
유진이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고 녀석을 다시 불러본다.
"유진아."
두 번이나 불렀다. 그제야 녀석이 고개를 서서히 든다. 표정은 여전히 알 수 없다. 화가 난 건지, 슬픈 건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건지... 아무런 느낌을 읽어낼 수 없는 무기질 표정만이 거기에 남아 날 쏘아보고 있다. 은빛 테두리의 안경이 햇빛을 반짝 칼날처럼 번쩍인다. 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유진이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이따 저녁에 봐요. 사파이어 호텔로, 일곱 시까지 오세요."
녀석은 그렇게 자기 할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 두 여자가 날 두고 떠나버린 비상계단에서, 난 위로도 아래로도 못 가고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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