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323화 (32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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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4

Main Route 50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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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면서 멍하니 맞은편에 있는 결혼식장만 보고 있다. 음료수를 홀짝이면서 생각한다. 내가 대체 여기 왜 온 거지. 딱히 나랑 사귄 것도 아니고, 미래를 기약한 것도 아닌 사이인 지혜였다. 더 거칠게 말하면 그저 나랑 몇 번 잔 게 전부랄까. 그런 그녀의 결혼식에 일부러 찾아오기 까지 하다니.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시계를 보면서 생각한다. 주례 끝나고 신혼부부 행진하고 사진 찍고.... 이러면 대충 30분은 넘게 걸릴 테다.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시간을 때운다. 굳이 내가 들어가 머릿수를 보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쯤이면 되었겠지 생각하며 일어나려는데 맞은편 길에 웬 중형차 하나가 불법 주차한다. 처음에는 별 신경을 안 쓰고 지나가려다가 운전석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고 말았다.

내 눈을 의심한다.

말도 안 돼. 대체 저 인간이 여길 어떻게.....?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하필 이럴 때 지나가는 차들이 많아 건너기가 곤란하다. 녀석이 건물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길을 건널 수 있었다. 황급히 2층 식장으로 올라갔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식이 방금 끝났는지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쏟아 나오고 있다. 마치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곳이라 사람 하나 찾는 게 쉬울 리 없다. 그래도 확인해야 한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홀을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잘못 본 건가.

"야, 여기서 뭐해. 한참 찾았잖아."

어느 샌가 나타난 효진이가 내 팔을 잡고 이끈다. 마리도 같이 있다. 효진이가 내게 빠르게 설명했다.

"지혜는 폐백 하러 갔어. 이따 나가는 것도 보고 싶기는 한데 지금 오빠한테 전화 와서는 빨리 차 가져오라고 성화거든. 지금 바로 서울 가야 해."

"그....그래?"

"미안하게 됐다. 모처럼 간만에 춘천 왔으니 구경도 좀 하다가 닭갈비도 먹고 갈까 했는데 말이야. 오빠가 하도 지랄 맞아서....."

"그러냐."

아무리 오빠가 그러더라도 지랄이 뭐냐. 지랄이. 에휴. 네 오빠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불쌍하다.

"넌 어떻게 할래? 마리랑 춘천에서 좀 놀다 올 거야? 아니면 나랑 지금 바로 올라갈래?"

"글쎄다."

마리를 돌아보니 마리는 내가 하자는 대로 하겠단다.

어차피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다. 지혜에게 이미 인사는 했고 더 이상 볼 일도, 만날 일도 없다. 그렇지만 아까 본 그 인간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잘못 본 건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빨리 결정하라고 재촉하는 효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면 나는 춘천 구경 좀 더 하다 올라갈게. 먼저 가라."

"그래? 괜찮겠어?"

"응."

몹시도 쿨한 효진은 알았다고 대답한 후 더는 권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리와 인사를 나누곤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일단 내려가 효진이가 차에 올라타 출발하는 것을 배웅하고는 다시 식장을 올려다본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놈은 분명 여기로 들어갔다. 다른 용도로 쓰이는 건물도 아니고 식장이 여러 개 있는 웨딩홀도 아니었다. 분명 여기 지혜 결혼식에 볼일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지만 대체 그 녀석이 왜 나타났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불길한 예감만이 뇌리를 스칠 뿐이었다.

"선배님예....."

마리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돌아보니 마리가 약간 쑥스러워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지는 춘천이 처음이라가.... 아무래도 선배님이 하자는 대로 하겠심더."

"뭘 해?"

".......뭐든지예."

대체 얼굴은 왜 붉히는 건지 모르겠다. 녀석의 반응을 신경 쓰고 있기에는 저 위에서의 일이 너무 신경 쓰인다. 나는 마리의 어깨를 짚었다. 고작 어깨를 짚은 것뿐인데 녀석이 화들짝 놀란다. 이 녀석은 아까부터 왜 이렇게 깜짝깜짝 잘 놀라는 걸까.

"일단 내가 저 위에서 확인할 게 있거든? 올라가서 확인 좀 하고 올 테니까 여기서 좀 기다려줄래?"

"확인이예? 뭔 확인을 합니꺼? 다 끝났는데예."

"그런 게 있어."

설명하자면 너무 복잡하고 길다. 게다가 지혜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문제라 이 녀석에게 함부로 털어놓기도 곤란하다.

"오래 걸립니꺼?"

"글쎄.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릴 거야."

난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가며 비협조적인지 모르겠다. 녀석은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표정이 점점 굳는다. 잠시 후, 마리는 뭔가 알겠다는 듯이 입을 삐죽 거리며 따지듯이 말한다.

"지혜 언니야 땜에 그러지예? 맞지예?"

"....굳이 따지자면 그렇긴 해."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나 마리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알았심더. 지가 마 예서 딱 십분만 기다릴 겁니데이. 10분만 지나 뿔면 뭐가 됐든 지는 확 가뿌릴랍니다."

"알았어. 십분만!"

간신히 마리의 협조를 얻어내고 계단을 한 걸음에 달려 성큼성큼 식장으로 올라간다. 홀에서 사람이 제법 빠지고 있었다. 우르르 빠져나가는 사람들 중에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일단 아까 식당을 체크하지 않았던 게 생각난다. 식당은 하필 또 위층이다. 다시 뛰어올라간다. 넓은 연회장은 아까 식 시작 직전의 홀만큼이나 시끌벅적했다. 여기 사람들은 결혼식에 와서 식당에서 아예 뽕을 뽑나 보다. 곳곳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게 조금 있다 파하는 분위기라기 보단 이제부터 막 달리려는 분위기 같다.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역시 놈은 보이지 않았다.

제길.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시계를 보니 마리와 약속한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다. 몸을 돌려 2층으로 내려온다. 홀에 서서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생각해본다.

아까 효진이가 그랬다. 지혜는 폐백하러 갔다고. 폐백이야 가족, 친지들이 모여 하는 행사인지라 설마 거기까지 가볼 생각은 못했다. 그렇지만 더 확인할 곳도 남지 않았다. 천장에 붙은 표지판을 보고 폐백실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약간 좁은 복도를 지나가니 기와로 장식해놓은 문 하나가 보인다. 그 너머가 폐백실인가 보다.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복도가 갈라진 쪽에서 놈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숨겼다. 그와 내가 나쁜 관계라고 말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워낙 짧게 스쳐 지나가듯 만난 사이이기 때문이다. 난 녀석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만, 녀석이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 어떨지는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좋은 사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은 몸을 숨긴다.

그런데... 그런데 이 인간이 왜 폐백실 앞에 저러고 있는 거지?

"이야, 임 전무님이 여기까지 와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내가 양 과장 결혼은 꼭 챙긴다고 했는데 말이야. 길이 멀다보니 좀 늦었네. 이해하게나."

"하하. 제가요, 솔직히 고객님들 결혼식에 간 적은 많이 있습니다만 제 결혼에 고객님이 오신 건 처음입니다."

"예끼, 이 사람아. 그럼 결혼이 처음 하는 거지, 나중에 또 하려구?"

"그런가요? 하하하하."

뭔가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그놈이 지금 대화하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오늘의 신랑이었다. 지혜의 남편이란 말이다. 남편이란 사람이 왜 저놈이랑 저렇게 친밀하게 대화하고 있는 거야!

"어머, 한석아."

아뿔싸.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지혜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피할 도리도 없이 그대로 마주치고 말았다. 커다란 옷 가방을 옆으로 둘러맨 어떤 여자와 함께였다. 아마도 폐백이 이제 막 끝난 듯 얼굴의 연지도 채 떼지 않은 터였다. 지혜는 날 보며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 효진이는 급한 일 있다고 먼저 간다고 하던데, 넌 아직 안 갔어?"

"어? 그.....그게...."

젠장. 이 복도를 지나 조금만 꺾어 들어가면 그놈이랑 지혜랑 마주치게 된다. 그놈이 있는 곳은 지금 지혜가 향하고 있는 쪽이었고 지혜가 그쪽으로 다가갈수록 내 마음은 타들어간다.

"여기... 춘천 구경 좀 더할까 하고..."

"아, 맞다. 마리랑 같이 왔었지? 구경 재미있게 해."

지혜는 눈인사를 남기고 나를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녀가 내 곁을 지나가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지혜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깜짝 놀란다.

"하...한석아?"

"아, 저.... 그게......"

젠장. 젠장. 젠장. 속으로 이 소리만 수백 번을 외쳐보지만, 정작 입 밖으로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지혜는 좀 당황한 눈치였으나 이내 침착하게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얹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야기하면 안 될까? 지금은 좀 바빠서 말야."

"그....그렇겠지?"

이대로 지혜를 보내야 하는 걸까. 새까맣게 타버린 내 속은 그대로 미이라처럼 바싹바싹 말라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바로 그때 2층으로 올라온 마리가 눈에 보였다. 두리번거리며 홀을 가로지르던 마리는 나와 지혜를 발견하고는 입을 딱 벌린다.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이 녀석의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이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가버렸다. 마리를 부르고 싶었지만, 지금은 지혜가 우선이었다. 일단 그녀의 팔을 놓았다.

"추...축하한다고 말야. 아까 경황이 없어서 그 말을 못 한 거 같아."

"그래? 고마워."

옆에 있는 여자가 지혜를 재촉한다. 지혜는 내게 고개를 까딱 해 보이고는 한복치마를 두 손으로 쥔 채로 그대로 나를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려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잡은 것도 아닌데 지혜가 발걸음을 우뚝 멈춰서고 만다. 복도 갈림길에 그 새끼가 나타난 것이다.

"어, 자기야. 인사드려. 대물물산의 임 전무님이라고. 내가 형님처럼 모시는 분이야."

지혜의 남편이 그놈을 지혜에게 소개한다. 젠장할. 저 남편이라는 놈은 모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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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4 시작합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한 루트를 생각하고 들어오셨다면... 이것 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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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시작해버린 터에 염치없지만, 제가 이곳저곳에 벌려놓은 일이 많아 더블데이트는 앞으로 주 1회 정도 연재할 생각입니다. 꾸준하게 할 수 있도록 많은 질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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