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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4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틀리지 않은 말이라 더 화가 났다.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그래서."
예린이 말을 잠깐 끊고 나를 쳐다본다.
"정말 사람을 죽이시겠다는 겁니까? 정말로요?"
"....그래. 난 그래야겠어."
"리사 아가씨를 슬프게 하면서까지요?"
리사. 리사. 리사. 예린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이름이 자꾸 거슬린다. 그 이름이 내 앞을 막고 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내뱉듯이 외쳤다.
"그래."
"그렇다면 전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뭐?"
"리사 아가씨는 당신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리사 아가씨를 버리고 엉뚱한 길로 달려가는 걸 두고 볼 수 만은 없어요. 저는."
예린에게 바짝 다가선다. 그녀의 멱살을 움켜쥔다. 근 한 달 보름간의 지독한 단련 속에 손아귀의 힘은 나도 놀랄 만큼 세져 있었다.
"그럴 거면! 애초부터 복수를 도와주겠다는 헛소리를 하지 말았어야지! 기껏 사람을 부추겨놓고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뭐? 못 도와주겠다고? 리사가 하지 말라고 했다고? 넌 대체 뭐야! 리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똘마니야!"
"한석 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예린은 지극히 침착했다.
"....목표가 있었기에, 복수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이렇듯 빠른 회복이 가능했습니다. 원초적인 분노야말로 가장 훌륭한 에너지니까요."
"개소리 집어치워!!!!!"
그래,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자를 때린다는,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하물며 나에게 이토록 물심양면의 도움을 준 고마운 예린을 상대로 폭력이라니. 그런 끔찍한 짓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난 분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예린을 밀쳐내고 오른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
"으아악!!"
어떻게 움직이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멱살을 풀어내고 몸을 움직여 등 뒤를 차지한 예린이 내 오른팔을 꺾어 등 쪽으로 바싹 몰아붙인다. 그 상태에서 내 다리를 걸어 바닥에 자빠트린다. 바닥에 부딪힌 충격과 팔의 고통 때문에 나는 어린 아이처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아아악!! 이거 놔! 놓으라구!!!"
"제가 말씀드렸죠."
버둥거리는 나를 등 뒤에서 제압하고 있는 예린은 숨소리조차 평온했다. 목소리만 들으면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며 나누는 대화 같다. 물론 난 커피가 아니라 지금 흙먼지를 마시고 있지만.
"저라면 제 뺨을 치려는 인간의 팔을 꺾는다고요. 지금이라도 가능합니다. 팔이 부러지면, 당분간은 또 꼼짝도 못하시겠죠. 그러면 잠자코 다시 재활에 돌입해야 합니다만...."
"놔! 놓으라니깐!!!"
"그렇게 복수가 하고 싶으시다면, 일단 저부터 쓰러뜨리고 가십시오."
"놔앙아아아아아!!!!!"
더러운 흙바닥에 온몸을 부비며 용을 써보았지만, 팔 하나를 뒤로 꺾인 채 움직일 수 있는 폭이라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버둥거리며 난리를 피웠지만, 자세를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포기다. 예린을 이기는 건 내가 몇 번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버둥거리는 걸 멈추고 조용히 말했다.
"좋아... 놔 줘."
내 등에서 예린의 무게가 사라졌다. 얼얼한 오른팔을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몸에 붙은 검댕과 흙먼지를 털어내며 예린을 쏘아본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달려들고 싶지만 그랬다간 또 어떤 험한 꼴을 볼까 두렵다.
"그러면 예린 씨는 여기서 내 몸을 회복시키면서... 그러면서 리사가 시킨 대로 내가 복수를 포기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단 거야? 날 도와주겠다고 했던 건 거짓말이었고?"
".....결과적으로는요."
"젠장."
입에 머금고 있는 흙먼지와 함께 침을 뱉었다.
"리사 아가씨는 한석 씨의 몸이 회복되면, 마음도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한석 씨의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일에 대해 저보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말씀하셨지요."
리사.... 리사..... 예전에 지혜 결혼식 전 날도 그렇지만 난 정말이지 끝까지 너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 인형이구나. 네 맘도 이해한다. 그렇지만 니가 예린에게 내린 명령은 내게 있어 너무 가혹하다. 잔인해. 리사에 대한 고마움보다도 원망이 더 커졌다. 이건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부리듯 사람을 가지고 노는 꼴이 아닌가.
"한석 씨가 원한 것도 들어드리고 싶었지만.... 그렇지만... 리사 아가씨는....지금 상황이...."
내 몸을 털어주려던 예린의 손을 밀쳐낸다. 예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그녀에게 덤벼서, 싸워서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공격할 부분은 하나 더 있었다. 무척 치사하지만, 난 그녀의 약점을 하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눈치 챈 그녀의 약점을 지금 들춰본다.
"말해봐. 내 말이 우선인지 리사의 말이 우선인지...."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물심양면으로 나를 언제나 도와주고 있는 예린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그녀에게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절해가며 고마워해도 모자를 판이다. 그러나 지금 내 마음은 일그러진 모양을 한 채로 들끓고 있었기에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 예린을 보며 울분이 쌓여간다.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소리쳤다.
"말해보라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할 건지 리사가 시키는 대로 할 건지! 말하라니까!"
속에서 무언가 울컥한다. 평소 같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3초 안에 재깍재깍 기계처럼 대답해오던 예린이었는데 지금 그녀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가 대답하기에 곤란한 소리라는 뜻이겠지. 내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나쁜 기운은 그런 그녀를 더 몰아세우라고 말하고 있다. 외치고 있다.
"좋아. 리사가 하라는 대로 해."
그녀의 드레스 셔츠에 손을 가져간다. 단추에 내 손가락이 닿자 그녀가 흠칫 거리는 게 느껴진다.
"리사가 내 회복에 있어서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했다며. 지금부터는 그 말대로 하는 거야."
나는 비열한 놈이다. 더럽게 저열하고 치졸한 놈이다. 그녀가 거부할 수 없는 굴레를 말로 빚어내어 그녀에게 강요하고 있다. 하나씩 단추를 풀어낸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예린의 속살이 점차 드러난다.
"회복활동의 일환이야. 그렇게 생각해."
드레스 셔츠를 모두 벗기고 나니 뭔가 복잡한 모양의 코르셋 같은 것이 그녀의 상체를 감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끈으로 꿰매게 되어있는 것 같은 거였는데 푸는 법이 상당히 복잡했다. 그러나 거의 뜯어내다시피 하여 그것을 벗겨낸다. 출렁거리며 튀어 나온 그녀의 유방이 잠자고 있던 내 욕구에 풀무질을 해댄다. 예린의 바지마저 벗기고 나신이 된 그녀를 매트 위에 눕혔다. 예린은 한마디 신음도 비명도 내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내 손길을 거부하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다만 선글라스는 여전히 쓰고 있는 채였다. 어쩐지 꺼림칙하여 그것에는 손대지 않았다. 바지를 벗어버리고 그녀 위에 몸을 실었다. 근 반년 넘게 사용하지 못한 페니스가 꺼떡거리며 그녀의 배 위에 얹어진다.
"지금이라도 내 말대로 하겠다면 그만하겠어. 예린, 대답해봐."
그녀의 선글라스에 비쳐진 내 얼굴이 언뜻언뜻 보인다.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추악한 얼굴이다. 내 얼굴이지만 못 본 척 한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그녀의 다리를 M자로 밀어 올린다. 보슬거리는 옅은 음모를 헤치고 채 젖지도 않은 살 동굴의 입구에 육봉부터 쑤셔 넣는다. 뻑뻑한 느낌 때문에 제대로 밀어 넣기 어렵다. 다리를 더 밀어 올려 가득 벌린다. 길쭉한 그녀의 한쪽 다리가 내 어깨에 걸쳐진다. 매끈하게 뻗은 다리의 모양새가 참 보기 좋다. 앞뒤로 슬쩍 움직이며 살덩이를 입구에 뭉개본다. 딱딱하게 굳은 녀석의 끄트머리를 넣는데 성공한다. 안쪽은 그나마 좀 젖어있는 듯.... 앞뒤로 쑤셔보자 어느 순간부터는 진입이 가능했다. 단숨에 치고 박아 넣는다.
"하윽......."
여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예린에게서 나지막한 신음이 터져 나온다. 평소의 목소리보다도 한층 더 고양된 소리였다. 그녀의 유방을 각각 움켜쥐고 허리를 거칠게 들이민다. 퍽퍽퍽- 하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퍼지며 예린의 몸이 출렁거린다. 낮게 매달아놓은 희미한 랜턴에 비친 그녀의 몸은 창백하리만큼 하얗다.
"끄음..... 한석 씨이.... 하악....."
신음을 애써 참아내는 예린을 보면서 더 괴롭히고 싶어진다. 그녀에게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여태까지 내 곁을 지켜주고, 엄마를 보살펴주었으며, 무리한 부탁임이 틀림없는 일까지 기필코 해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좋은 후원자였다. 그러나 쓰레기 같은 난 그런 그녀에게 감사하기는커녕 더 많은 것을 내놓으라며 이렇게 그녀를 범하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비난, 예린에 대한 애증, 임필복에 대한 분노, 리사에 대한 미안함....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하얗게 타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외딴 산중에 지어진 가건물 안에서 저항할 수 없는 입장의 여자를 덮치고 있는 성욕 덩어리뿐이다.
"하으....음...... 한석 씨......"
오랜만에 맛보는 여자의 육체는 실로 마약과도 같았다. 늘 허공에 붕 떠있던 기분의 내가 악착같이 땅 위에 달라붙어 공이질을 해댄다. 흘러내리는 예린의 짧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가느다랗지만 단단해 보이는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며 손으로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움켜쥔다. 애정을 담기에는 너무 거친 애무였지만, 쫄깃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안은 애액을 철철 흘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그녀가 흥분하고 있다는 신호는 아닐 것이다. 거칠기 짝이 없는 살 몽둥이의 폭력적인 난입에서 음부를 보호하기 위한 윤활액이겠지.
"하아악- 하윽.... 하앗! 하으....음...... 한석 씨......"
어느 순간부터 예린은 자신을 억누르지 않았다. 비명처럼 터져 나오는 그녀의 새된 소리는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내 가슴을 후벼 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날 억제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날 부르며 날 찾았다. 멈추어 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두 다리는 내 엉덩이를 감싸고 있었다.
"흐아악.... 흐엉..... 하악....."
사정이 임박한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내 입술이 닿자 그녀는 입을 가득 벌려 내 입술을 삼킬듯이 빨아들이며 혀를 얽혀 왔다. 짜르르한 감촉과 함께 제 일파, 제 이파의 사정이 그녀의 안으로 쏘아졌다.
"커헉....억....."
그녀의 몸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그대로 경직해 있었다. 뜨거웠던 몸이 점차 식어간다. 하나로 붙어 있던 몸이 떨어진다. 그녀에게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아래쪽에 무언가 꽤나 흥건하다. 몸이 식어가니 머리도 차분하게 식어간다. 예린의 알몸을 내려다보면서 조금 전 내 행동이 급격하게 후회되었다.
"미안해. 예린 씨...."
그러나 예린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런 식으로 사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면도도 제대로 못하고 지내는 터라 내 턱은 까실까실했다. 그 부분을 쓰다듬으며 예린은,
"이렇게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조금이라도 마음이 풀리셨다면, 언제든 저를 이용해주셔도 됩니다."
라는 소릴 한다. 이용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사람을 이용하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용이라니. 무슨 말을....."
그러나 예린이 고개를 들어 내게 입을 맞추었기에 나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길고 긴 키스를 마치고 예린은 입술을 떼 내더니 내게 귓속말을 한다.
"지금도... 지금 이 순간에도 복수하고픈 마음이 있습니까? 정말로?"
"........"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랬다. 남자라는 생물은 사정 직후에는 모든 것이 귀찮은 법이다. 천하일미의 음식이라도, 천상의 미녀라 할지라도.... 일단 사정하고 나며 그것 모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하물며 복수라니. 예린은 손을 뻗어 내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까 물어보신 거에 대답하겠습니다. 사실 전...."
도로 누워버린 그녀를 따라 나도 따라 엎드린다. 예린이 선글라스를 벗고 얼굴을 내 가슴에 묻었다.
"사실 전...... 한석 씨 명령에 더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건.... 이런 건 리사 아가씨는 시키지도 않을 거라구요."
"예린......"
나도 손을 뻗어 그녀를 꼬옥 안아준다. 내 품 안의 그녀는 여느 때보다도 작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살을 맞대고 안고 있으려니 아래쪽에서 부활이 일어나고 있었다. 자기 허벅지에 와 닿는 물건의 정체를 느꼈는지, 예린은 가볍게 내 유두를 깨물었다. 그리고 뒤로 누웠다. 그녀는 자기 얼굴로 손을 가져가더니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푸른 눈으로 날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엔... 천천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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