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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335화 (33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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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4

키스는 길었다. 서로를 알고 있는 우리는 그다음의 순서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손으로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옷 위로 만져 나가던 내 눈에 문득 거실의 소파가 보였다. 불과 어젯밤, 필복의 손길에 농락당하던 지혜가 생각난다. 시선을 들어 벽을 바라보니 지혜의 웨딩사진이 보인다. 거기에는 웨딩드레스 차림의 지혜와 턱시도를 입은 그녀의 남편이 서 있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을 마주하니 이름 모를 불편함이 느껴진다. 지혜의 몸을 밀어냈다.

"미.....미안. 이러려고 찾아온 건 아니었어."

"아...."

촉촉이 젖은 눈을 한 지혜가 원망하듯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다. 그녀의 눈길에서 익숙한 욕망을 읽었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 필복과 같은 수준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난 임필복의 뒤를 밟고 있었어. 네 집을 알게 된 것은 그놈이 이곳을 향했기 때문이야."

"그랬구나...."

"그리고 미안하지만.... 어젯밤, 네 집을 훔쳐보고 있었어."

자리에 앉던 지혜의 동작이 우뚝 멈춰 선다.

"서...설마?"

"밤에 그 자식의 차를 부숴놓은 게 나야."

"그렇다면,"

지혜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뜨문뜨문 말을 꺼냈다.

"봐...봤어? 그....그걸?"

그녀가 말하는 그것이란 필복의 추태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 추태의 이면까지도. 난 시선을 떨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혜는 한참 동안 얼굴을 싸맨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그녀의 손에 내 손을 얹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난 그 새끼를 처단할 거야. 그러기 위해서 네 도움이 필요해."

"도움이라니?"

난 어젯밤 내내 생각한 계획을 털어놓았다. 지혜는 처음에 반신반의하다가 결말 부분에 이르자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되지? 그놈도 날 죽이려고 했는데 말야."

"그래도....."

지혜를 설득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이런 이야기까지 꺼내고 말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너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잖아."

"뭐?"

"필복은 니 남편이랑 친분을 다지고 있어. 언제라도 니 주변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앞으로도 계속 어제와 같은 일이 끊이지 않을 거라고. 내가 처리하는 게... 너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만...."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나의 거듭된 설득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수화기를 들고 남편에게 전화 했다.

"자기야? 으응........응..... 다른 게 아니라 효진이가...... 엉. 걔........ 오랜만에 귀국해서 이야기도 나눌 겸....... 어. 자고 올지도 몰라. 응? 어...... 그렇게 할게. 그래."

전화를 끊은 그녀는 내게 설명했다.

"남편한테는 효진이 만나느라 늦게 올 거라고 이야기해 놨어."

"효진이?"

"응. 내가 효진이랑 친한 거 아니까 둘이서 같이 있다고 그러면 늦게 들어와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남편은 내가 효진이 만나는 거에 반대한 적이 한 번도 없어."

반가운 이름이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수화기를 들고 지혜에게 내밀었다.

"좋아. 그러면 이제 필복에게 전화를 해."

지혜는 다시 또 망설였다. 그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약간 조바심이 일었다.

"어서."

"별로 내키지 않아."

"날 위해서 그리고 너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야."

말을 하면서도 내심 나란 놈의 교활함에 놀라고 만다. 사실 내가 그놈을 죽여 버리고자 했던 건, 감히 날 죽이려고 했던 녀석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오로지 날 위한 복수였다. 그러나 여기에 와서 지혜의 고난을 알게 된 이후부터, 지극히 사적인 복수에 은근히 다른 목적이 있는 것 마냥 지혜를 설득하고 있다.

한참 고민하던 지혜는 뭔가 결심한 얼굴이 되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거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표정은 꽤 굳어 있었다.

"여보세요? ...... 그래요. 나예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잔뜩 일그러진 지혜 얼굴을 마주 보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지혜는 전화선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필복의 갖은 언어 성희롱을 견디며 천천히 말했다.

"안 그래도 오늘 만나자고 전화했어요..........웃기지 마요.. 절대 당신이 생각하는......... 암튼, 알았어요.........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

통화가 끝나자마자 수화기를 내던진 지혜는 다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나, 잘 하고 있는 걸까?"

"그래. 내가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줄게."

"하아."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여쁜 이마가 좁혀진다.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한다.

"너에게는 결코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내 선에서 처리할게. 너무 걱정 마."

"날 걱정하는 게 아냐."

"그러면? 남편이 걱정 돼? 물론 남편 일에는 좀 지장이 있을 수는 있겠지."

"그렇기도 하지만......"

지혜는 날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가가 살짝 젖어있었다.

"다소 어리숙하고 엉뚱하고 맨날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기나 하던 평범한 어떤 대학생 말이야. 그 애가 걱정된다고."

나에 대한 평가가 그러셨단 말이죠. 쳇. 지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리바리할지는 몰라도... 그래도 넌 정말 평범한 애였어. 그랬던 니가...... 어떻게 하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

평범. 그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예린이 들려 준 리사 이야기가 생각났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하고 어리숙한 한석은 이제 여기 없다.

"죽다 살아났으니까."

평범한 말이지만 나의 지난 시간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었다. 지혜는 몹시 울상이 되어서 내 손을 맞잡았다.

"많이.... 아팠어?"

"대부분의 기간은 의식 없이 누워있었으니까 그렇게 크게 힘들지도 않았어."

그건 거짓말이었다.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움직이려고 애쓸 때, 재활을 위해 산을 타고 있을 때, 예린에게 깔려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때마다.... 매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고통을 통해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미안.... 내가 알았더라면 반드시 그냥 가만있지는 않았을 텐데."

나의 몸을 어루만지는 지혜의 손길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뭉클한 감정이 샘솟는다. 아까는 주저했지만, 이제 내가 결심한 대로 일을 처리하고 나면 다시는 그녀를 볼 수도 없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안아주게 되었다. 내 손이 그녀의 가슴에 닿자 그녀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한석아."

"미안. 그렇지만..... 너를 한번만 더 느끼고 싶어."

"한석아...."

거부하지 않는 그녀와 함께 침실로 향한다. 거실의 웨딩사진 앞에서는 도저히 그녀를 취할 수 없다. 널찍한 퀸 사이즈 침대에 몸을 던진다. 끌어안고 서로의 입술을 찾아 헤맨다. 그녀의 셔츠를 벗기고 치마를 끌어내린다. 왠지 모르게 서두르게 된다. 이곳은 그녀의 공간, 아니, 그녀와 그녀 남편의 공간이었다. 그곳에 이물질처럼 끼어든 나라는 존재가 나 스스로 버겁다. 지혜의 손길에 의해 내 옷도 금세 벗겨진다. 태초의 모습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양새가 된 우리 둘은 예전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리는 몸짓으로 서로의 안으로 침식해 들어간다.

"하아....하악....."

어린아이의 머리통만 한 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혜의 가슴이 출렁이는 모양새가 미칠 듯이 꼴릿하다. 두 손으로 마구 움켜쥐고 얼굴을 파묻고 입을 가득 벌려 한 모금 베어 문다. 열흘 굶은 아이가 젖 달라고 보채는 모양새로 거칠게 달려드는 내 몸짓에 지혜는 급격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내 뒤통수를 끌어안고 자신의 가슴에 마구 비벼댄다. 한 손은 그녀의 몸을 훑고 내려가 다리 사이의 습지로 파고든다. 홍수가 난 게 아닐까 싶은 그녀의 안으로 손가락이 비집고 들어간다.

"하윽.... 하악....하아악...하악...."

지혜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어쩔 수 없이 내 머릿속에는 두 남자가 떠오른다. 내가 그녀를 가지지 못한 동안 나 대신 그녀를 품었을 게 분명한 지혜의 남편. 그리고 치졸한 짓으로 지혜를 겁박하여 그녀를 올라탔을 임필복.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애써 지워보지만, 손길이 나도 모르게 험해지는 것은 나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하....한석아......"

내가 침대에 눕고 그녀를 위로 올라타게 한다. 그녀의 엉덩이를 잡아 끌어 내 앞에 가져다 놓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눈앞에는 우뚝 선 내 페니스가 위치하게 된다. 무슨 의도인지 알았다는 듯이 그녀는 두 손으로 내 물건을 움켜쥐고 서서히 입으로 집어삼킨다. 따뜻하면서도 끈적끈적한 입의 감촉이 육봉의 끝 부분을 자극한다. 쭈압거리는 소리를 내며 지혜가 내 물건을 빠는 동안 난 그녀의 비부에 코를 들이밀고 있었다. 나 말고 다른 남자들이 들어갔을 그곳을 핥아내어 깨끗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읍..... 거...거...거긴... 하읍......"

내 혀가 본격적으로 그녀의 안쪽을 핥고 빨아대자 지혜는 입에 머금고 있던 페니스를 제대로 빨지 못하고 두 손으로만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자꾸 내 애무를 피하려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하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더...더러울텐데....."

"지혜의 보지인데.....뭐가 어때."

"꺅!"

지혜가 엉덩이를 빼내어 자세를 바로 하더니 날 타고 올라와 볼을 꼬집는다.

"그런 이상한 말 쓰지 마."

"이상하다니. 보지가 어디가 어때서. 넌 조금 전까지 내 자지 빨아놓고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야한 말을 늘어놓자 지혜가 얼굴을 붉혔다. 대낮에 남편 아닌 자의 성기를 박아 넣은 채 얼굴을 붉히는 유부녀라니. 정말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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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러와서 대체 왜 지혜와...?"라는 의문을 품은 분이 계시는데, 기본적으로 한석이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여자랑 할 수 있으면 하는 녀석...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야 이런 소설의 주인공을 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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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댓글에 댓댓글을 안 달고 있습니만, 항상 빠짐없이 읽어보고 있답니다.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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