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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337화 (337/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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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4

일단 노끈을 손에 감는다. 양손에 적당히 감은 다음 팽팽하게 잡아당겨 본다. 예린이 가르쳐 주었던 주의점을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여본다. 지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마주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나는 한쪽 벽으로 비껴섰다. 지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문 밖을 향해 말했다.

"누구세요?"

"나다. 니 서방."

틀림없다. 필복의 목소리였다. 지혜가 심호흡을 하더니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놈은 지혜를 와락 끌어안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흐흐. 니 년이 이젠 내 좆맛을 인정한 게로구나. 알아서 자리 잡고 부르기까지 하는 걸 보면."

"이거 놔요."

"여기까지 불러놓고 앙탈이야?"

입을 주욱 내밀는 녀석의 얼굴을 지혜가 가까스로 밀어낸다. 그녀는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요."

지혜의 인도를 따라 녀석이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난 머릿속에서 수만번도 더 연습한 대로 놈의 등 뒤에서 와락 달려들어 녀석의 목을 노끈으로 걸었다.

"이게 뭐.... 커억!!!"

빨라야 한다. 틈을 주면 안 된다. 녀석이 뒤를 돌아볼 틈을 주지않고 팔에 힘을 주었다. 바짝 당긴 줄로 녀석의 목을 졸라댄다. 지혜는 이쪽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커....커억! 컥! 컥!"

배운대로 팔꿈치로 녀석의 등을 누르면서 줄에 걸리는 장력을 더욱 팽팽하게 한다. 예린이 내게 목 조르기를 가르치면서 계속 패대기쳤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목이 졸리고 있는 사람의 반항은 상당했다. 손으로 끈을 어찌해보려고 버둥거리는 놈의 움직임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래도 녀석보단 내가 키가 더 커서 쉽게 넘어지지는 않았다. 두 다리를 바닥에 단단히 버티고 서서 감아올린 줄을 위로 끌어당겼다.

"꺼억! 꺽!"

"이익!"

녀석은 손을 마주 내저으며 괴로워하다가 이제는 발을 뻗기 시작했다. 빨리 죽어줬으면 좋겠지만, 그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의 무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거기다 가만있지 않으니 양손에 걸리는 부하는 장난이 아니다. 녀석은 미친 듯이 발을 마구 휘둘러댄다. 그러다가 테이블에 발이 닿자 녀석은 그것을 딛고 몸을 뒤로 한껏 밀어낸다. 예린에게 배울 때는 그녀가 항상 날 메다꽂았기 때문에 앞으로 넘어가는 힘에만 저항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날 뒤로 밀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뒤로 밀려나서 벽에 등을 부딪혔다. 녀석의 체중이 내 가슴과 배를 꽉 누른다. 단숨에 숨이 막혔다. 나도 모르게 손을 약간 느슨하게 한 모양이다. 녀석이 줄과 목 사이에 손을 집어넣더니 단숨에 벗어난다.

아뿔싸!

"커억.... 컥.... 이게 대체...."

내게서 튕겨져 나가다시피한 놈의 동작은 굉장히 잽쌌다. 짧달막하고 배 나온 아저씨의 동작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몸을 굽혀 테이블 위의 재떨이를 집어 든다. 그것을 치켜들고 내쪽을 향해 집어던졌다. 급히 몸을 숙였다.

"꺄악!!!"

지혜의 비명과 동시에 사기로 된 재떨이가 내 머리 위의 벽을 맞고 팍- 하며 깨져나간다. 산산조각이 되어 비산한 파편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손으로 대충 머리 위를 가리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놈이 달려오는 게 보인다. 반격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녀석이 집어 들고 휘두른 스탠드 조명이 내 허리에 작렬했다.

"으아악!!!"

욱신거림이 전신으로 퍼져나가 똑바로 설 수가 없다. 허리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서려는데 재차 달려드는 필복의 발길질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꺄아아악!!!"

지혜가 내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코에 제대로 맞았는지 뜨끈한 기운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지난 한 달간의 지옥훈련은 내 몸을 회복시켜주었지만, 이런 충격까지 견디게 만들어 주진 못한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필복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훨씬 날카롭고 기세가 매서웠다. 녀석은 두 주먹을 불끈 말아쥐고 복싱 자세로 서 있었다. 딱 봐도 굉장히 안정된 자세였다. 어디서 뭐라도 배웠던 놈인 모양이다. 갑자기 마음 속에서 불안감이 샘솟았다. 필복은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리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누군가 했더니 네놈이었군. 뒈져버린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나?"

"그래. 니 놈을 죽이기 전에는 못 죽지."

코피가 역류하여 입안에 피가 고였다. 퉤- 하고 뱉어낸다.

"그래? 그럼 죽여봐라. 그게 쉽게 되면 말야."

일단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었다. 손을 뻗어 짚이는 대로 냅다 집어 던지고는 놈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필복은 나의 주먹을 가볍게 흘려보내고 그대로 내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커억!!!!"

폐가 입으로 튀어 나와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재차 이어지는 펀치는 빠짐없이 내 얼굴을 강타한다. 지혜가 달려들어 필복을 뒤에서 끌어안아 간신히 공격이 멈출 때까지 내 얼굴에는 소나기 펀치가 차례로 떨어졌다.

"이 씨발년이.... 니 년도 작당을 해?!"

"꺄악!!"

녀석이 어떻게 후려쳤는지 몰라도 난폭한 소리와 함께 지혜가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벽에 기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그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다. 녀석이 내게 다가와 내 허벅지를 짓누르는 게 느껴졌다.

"으으아아악악!!!"

잘근잘근 내 다리를 밟아버리는 녀석에게 제대로 저항할 수가 없었다. 녀석의 다리를 붙드는 게 고작이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필복은 코웃음치며 말했다.

"이 씹새야. 예전에 니 놈의 럭키펀치가 지금도 통할 줄 알았어? 누가 누굴 죽여?"

그래.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말도 안 된다. 녀석은 방심하고 있었고, 내 공격은 불시에 이루어졌으며 그 직후 자리를 떴기에 녀석에게 반격을 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젠장. 젠장. 젠장.

"크윽!! 더러운 새끼! 나가 뒈져!"

욕을 해보아도 돌아오는 건 무자비한 발길질 뿐이었다. 얼얼해진 턱을 붙들고 바닥에 나뒹군다. 녀석은 쓰러진 상대를 향해 사정없이 발길질을 선사했다. 그런 다음 내게 다가와 배를 툭툭 차며 말했다.

"안 되겠네. 지혜 이 년이 빨통이 죽여주는 년이라 좀 더 데리고 놀려고 했는데 이딴 식으로 나오면 나도 곤란하지. 빨리 남편에게 까발리고 털어버리든가 해야지 안 되겠다."

"아...안 돼...."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지혜의 행복을 지켜주기는커녕 이렇게 파국을 내 손으로 만들어 내고 마는 건가. 절망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패배감이 나를 굴복시킨다. 방 저편 몸을 웅크리고 쓰러져 있는 지혜의 모습이 너무도 안쓰럽고 미안해서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지혜는 좀 따먹고 갈까? 애인 놈이 보는데서 따먹는 것도 각별한 재미가 있겠군그래."

필복이 나를 질질 끌고 가더니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내가 가져왔던 노끈으로 내 팔과 다리를 의자에 단단히 묶었다. 저항하거나 벗어나고 싶었지만, 녀석에게 두들겨 맞은 데미지는 그리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입에 고인 핏덩이를 토해내는 게 고작이었다. 날 묶은 줄을 두 번이나 매듭지어 묶은 필복은 이제 지혜에게 다가갔다.

"이리와, 쌍년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녀석이 지혜의 머리채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가 침대로 던져버리는 장면을 차마 계속 볼 수가 없다. 뺨을 내려치는 소리, 옷이 찢겨지는 소리에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문다. 어느덧 정신을 차린 지혜가 극렬히 저항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필복의 난폭한 주먹 뿐이었다. 지혜는 울부짖으며 저항했다.

"으허허엉.... 놔... 이 나쁜 자식아... 죽어버려!!"

"왜? 니 젊은 애인 놈 좆이 아니라서 실망이야? 응?"

필복이 허리띠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허리띠를 손에 감더니 그걸로 지혜의 배를 내려치며 말했다.

"일단 박아놓으면 질질 싸댈 년이 앙탈은....."

그때 삐리리리- 하는 전자음이 났다. 필복은 벗으려던 바지를 주섬거리며 투덜거렸다.

"아, 씨발. 이럴 때 전화야. 전화는...."

필복은 흐느끼는 지혜에게 조용히 하라고 윽박지르고는 품 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뭐야, 씨발. 왜 전화를 걸어놓고 말이 없어?....... 이봐.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해!"

필복은 플립을 닫고는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집어던졌다.

"기분 잡치게시리....."

바로 다음 순간, 무언가 벼락같은 소리가 난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내 눈앞에 마치 영화 속에서 느린 화면으로 무언가 지나가듯 문이 떨어져 나갔다. 문짝에서 떨어져 나간 문이 방안으로 날려들어온다.

"뭐...뭐야!"

당황한 필복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검은 바람이 그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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