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340화 (34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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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4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를 부둥켜안고 진한 입맞춤을 나누었다. 키스는 길었지만, 그 시간은 지극히 짧게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와 처음 만나던 카페, 처음 술을 마셨던 술집, 처음으로 몸을 섞었던 모텔.... 내게는 그것이 여자와의 첫 경험이었다. 너무도 많은 일들이 밀물처럼 달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렸다. 거대한 물길이 들고나간 자리에는 모래가 쓸려나가듯이 내 마음 속에 지혜의 자리는 그렇게 하나의 길이 되어 남아있었다.

어느 순간, 지혜가 내 가슴을 밀어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눈에 고인 눈물을 들키기 싫은 걸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서 괴로웠다.

"이제 가 봐."

이별을 고하는 짧은 인사가 전부. 다시 볼 약속이나 예정은 잡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도, 또 그녀를 위해서도. 내 등 뒤에는 시동을 건 채 기다리고 있는 차가 있었다. 내가 올라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갈 길이 멀다. 먼 곳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 갈게...."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타서 사이드 미러로 지혜의 모습을 본다. 더는 보지 못할 그 얼굴을 한 번 더 새겨본다. 애써 울음을 참는 그 얼굴. 잊을 수 있을까. 정말 잊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젠 잊어야지. 그렇게 결심하고 눈을 감았다.

예린이 조금씩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게 느껴진다. 그녀는 내가 상념에 더 이상 빠져 있지 못하게 현실로 불러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가속하는 차가 충분히 멀리 갔다고 생각할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골목길을 한참동안 달리던 차가 어느덧 평탄한 도로에 진입했다. 차가 충분히 빠르고 안정된 속도가 되자 그때까지 조용하던 예린이 말을 꺼냈다.

"아쉬우신가요?"

뭐가 아쉽냐고 묻느 건 너무 바보 같았다.

"뭐가."

이렇게 애써 부정해보지만, 예린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분과 더 이상 못 만나는 거요."

길고도 먼 길을 돌아 예상치 못하게 만났고, 아주 잠깐 어울렸던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남편에게 돌아갔다. 나 역시 나를 기다리는 여인에게 향하고 있다. 이게 우리의 끝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못 만나는 게 아냐. 안 만나는 거지."

애써 이렇게 자위한다. 예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이를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나도 모르겠어."

어느덧 어두워진 도로에는 헤드라이트의 물결이 넘실대었다. 맞은편 차들의 빛이 꽤나 눈부셨다. 다시 눈을 감으려다가 예린의 얼굴을 보고 살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예린은 밤에도 선글라스를 끼네? 그래놓고도 잘 보여?"

"잘 보입니다."

"안 보일 것 같은데...."

"생각보단 잘 보입니다. 예를 들면, 아까 한석 씨가 그분과 진하게 키스하는 것도 다 잘 보이고 말이죠."

안전벨트만 아니었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지 마!

"으아아악! 그런 건 이야기하지 마!!! 특히... 그 뭐냐. 부산에 내려가서도...."

"부산에 내려가서?"

"그러니까... 여기서 있었던 일은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애초에 임필복을 나락에 떨어뜨린 최후의 펀치를 날린 사람은 나도, 예린도 아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황금만능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크고 무서운 벌을 내린 사람은 따로 있었다. 내가 입 다물고, 예린도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리사가 여기서 있었던 일을 전혀 모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자신은 없었다.

"글쎄요. 전 입이 가벼운 편이라..."

"누가? 예린 씨가? 입이 가볍다고?"

"네."

차라리 인도코끼리가 깃털처럼 가볍다고 하든가 아니면 북한 사람들이 고도 비만으로 힘들어 하고 있단 소릴 해라. 그거는 믿어줄게.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말을 누가 믿어!"

내가 현실을 직시하고 절규하며 발버둥 치자 예린은 차를 길 한 편에 세웠다. 그녀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기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석 씨가 제게도, 그런 진한 키스를 해주신다면.... 입이 무거워질지도 모릅니다."

"정말?"

"네."

꼼짝없이, 반협박에 못 이긴 나는 예린과도 키스를 하고 말았다. 길어지는 키스에 야릇한 기분이 모락모락 피어날 때쯤 예린이 입을 떼었다. 그녀는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살짝 핥은 다음 몸을 바로 했다. 그녀의 가슴께를 만지고 있던 내 손도 얼른 제 자리로 돌아온다.

"하아...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어? 어...."

묘한 기분이었다. 차안에 남녀가 단둘이 있으면서 키스를 나눈다는 건 꽤나 야릇한 기분이었다. 예전에 이러다가 한강에서 뭔가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하는데.... 그 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부산에서는, 이러지 않을 거지?"

자세를 바로하며 예린을 돌아본다. 예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예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약간 겸연쩍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리사 아가씨를 만나 모시겠다고 결심한 이후,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무언가 숨기거나 비밀로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그러니까, 산 속 숙소와 이 차 안에서 일어난 일은 리사 아가씨에게 비밀입니다. 한석 씨는... 저한테 약점을 잡혔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린이 평소보다 약간 더 낮은 목소리 톤으로 말하는 게 부끄러워하는 말투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런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나도 어쩌면 은연중에 그녀의 행동은 모두 리사의 지시로만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녀는 명령을 수행하는 로봇이 아닌 의지를 가진 인간인데도 말이다. 내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동안 예린은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일단은 출발부터 하겠습니다. 가는 길은, 머니까요."

차가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리사에게, 나를 지켜주는 동시에 탐내는 예린을 데리고 말이다. 부산. 태어나 처음 가보는 도시였다. 그런데 왠지 낯설지 않은 기분이었다. 거기에서 날 사랑하는 이가 기다리고 있어서일까. 그건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어두웠고, 밤하늘은 낮게 드리워져 있어 땅과의 경계가 희미했다. 차창 너머 저 멀리 둥글게 떠오른 달이 내가 가는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잘 있으라는 인사를 남기고, 서울의 달을 뒤로 하며 남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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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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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 김지혜 Normal Rout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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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살아난 한석이가 본격 킬러 머신으로 탄생할 뻔 했으나 역시나 최한석의 한계가 있는 이상 그대로 김 빠진 Route 4 끝났습니다. "이게 끝이냐?"라고 항의하는 독자도 계실 것 같습니다만, 끝 맞습니다. 네. 끝입니다. 이게 지혜의 "노말루트"입니다.

부산에 가서 한석이 겪게 될 일은 이미 연재된 Route 9에서 어느 정도 맛을 보았고, 아직 연재되지 않은 Route 3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며, 향후 나올지도 모르는 프리퀄 <백당폭포>에서 모든 떡밥이 해소되기에 여기서는 중복되어서 생략합니다.

지혜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Route 5를 보고 온 분들은 그녀가 한석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생길 일을 상상할 수 있겠지요... 작가가 직접 대놓고 스포일러 하자면, 지혜가 행복해지는 방향은 Route 6 입니다. 지혜 좋아하는 분들 참고하세요.

이로써 완결난 Route는 4, 5, 7, 8, 9입니다.

완결나지 않은 Route는 1, 2, 3, 6 입니다.

작품 설정란에 보면 여태까지 진행된 루트를 설명한 순서도를 올려두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이번에도 댓글로 1,2,3,6 중 보고 싶은 루트를 투표 받겠습니다.

그리고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외전 - 카페 미리내> 시작합니다.

본편에서 한석과 스쳐 지나간 여자 중 한 명과 엮이는 스토리이며, 본편 전개와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외전 연재가 끝날 때까지 투표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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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5회 - 학교에서 리사를 처음 만나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분기점은

- 명희를 찾지 않는다 (선택완료)

- 명희를 찾는다 → Rout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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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34회 - 마리, 리사와 식사하고 난 후입니다. 분기점은

- 지혜에게 연락한다 (선택완료)

- 명희에게 연락한다 → Rout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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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41회 - 유진이와 통화를 끊은 후 입니다. 분기점은

- 유진에게 바로 간다 (선택완료)

- 유진에게 나중에 간다 → Rout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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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50회 - 지혜의 결혼식입니다. 분기점은

- 지금 바로 올라간다 (선택완료)

- 나중에 올라간다 (선택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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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58회 - 선영의 전화를 받은 후입니다. 분기점은

- 선영의 부탁을 거절한다 (선택완료)

- 들어준다 (선택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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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68회 - 학교에서 교생 일을 하고 있는 한석입니다. 분기점은

- 선영의 집을 일요일에 찾아간다 (선택완료)

- 지금 바로 간다 (선택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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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88회 - 종로에서 전화기를 들고 있는 한석입니다. 분기점은

- ROSE에 전화한다(선택완료)

- 효진에게 전화한다 → Route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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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3회 - 감옥에 갇힌 한석, 잡혀가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분기점은

- 송화가 잡혀간다 (선택완료)

- 소란이 잡혀간다 (선택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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