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343화 (34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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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카페 미리내

"너야말로... 대체 그런 걸 왜 자꾸 가져와서 사람 곤란하게 만들어?"

"그런 거라니. 이쁘잖아."

"하.... 니 눈엔 그게 진짜 이쁘게 보여?"

"응. 남자들은 그런 거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난 싫어."

은미는 딱 잘라 말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녀의 가슴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남에게 이렇게 딱 잘라 거절해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방금 이 말을 꺼내기 위해서도 아까 다용도실에서 나오기 전에 얼마나 속으로 연습했나 모른다.

"아, 진짜.... 참나."

가람은 투덜거리며 은미의 옆에 섰다. 은미는 깨끗한 행주를 꺼내어 머그컵을 닦아 놓고 있었다. 이미 아까 닦았던 거라 굳이 닦을 필요도 없는데 가람이와 마주치기 싫어서 일부러 몸을 돌리고 그것에 열중하는 척했다. 가람은 바닥을 툭툭 차며 신경질적인 어조로 물었다.

"교대 알바는 언제 와?"

"아직 좀 더 있어야 돼."

"오늘 우리 수업도 없는데 어디 놀러갈까?"

"보고."

은미는 최대한 쌀쌀맞게 대답해보았지만, 가람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녀의 옆에서 바에 기대어 다리를 까닥거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옆모습, 엄밀히 말하면 도드라진 흉부에 꽂힌다. 남자친구의 끈질긴 시선을 눈치 챈 은미는 뭐라 한마디 하려다가 이런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해서 꾹 참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저 손님이랑 무슨 이야기한 거야?"

창가에 앉은 아까 그 여대생은 가끔 이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은미가 생각하기에 자기를 돌아보는 건 절대 아닐 테고 분명 가람을 향하고 있을 시선이었다.

"어? 별거 아냐. 일하는 사람 바뀌었냐고 하기에 그런 건 아니고 잠깐 봐주는 거라고 했지."

"그게 다야?"

"그렇다니깐."

은미는 속상했다. 가람이 생긴 것도 매끈하고 말솜씨도 좋아 학교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종종 여자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모르는 사람이 말만 걸어도 얼굴이 빨개지는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런 녀석이 왜 자기처럼 조용하고 스스로 생각해도 재미없는 여자에게 사귀자는 이야기를 했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 가람이 그녀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해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렴풋하게나마 그 의도를 알 것도 같았다. 지금처럼 말이다. 그녀는 몸을 퍼뜩 세웠다. 깜짝 놀랐다.

"어...어딜 만져?"

"가만 있어봐."

그녀의 등, 셔츠를 들추고 안쪽으로 가람의 손이 쑤욱 들어왔다. 아직 손님이 있는 터라 크게 소리도 못 지르고 몸을 빼려 했지만, 가람의 손은 거침없이 그녀의 등을 타고 올라갔다. 브래지어에 닿자 이번에는 앞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셔츠 안에서 꾸물거리는 가람의 손이 앞으로 나서려 하자 은미는 몸을 꿈틀거렸다.

"뭐....뭐 하는 거야, 진짜."

"뭐하긴. 좀 만지는 거지."

별거 아니란 듯이 싱긋 웃어 보이기까지 하는 가람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은미는 만정이 떨어졌다. 요즘 들어 부쩍 가람의 의도를 알 것 같다. 그는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대신 그가 좋아하는 건 따로 있는 것 같다. 가람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때 보기만 하고 만지진 못 했잖아. 지금은 보지는 않을 테니까 만지기만 할게."

은미는 최대한 머신 뒤쪽으로 숨어 가게 안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가렸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억지논리에서는 몸을 빼낼 수 없었다.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자니 얼마 전 노래방에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단둘이 노래방에 가자고 조르는 가람의 이야기에 내심 노래 부르기를 좋아는 하지만 남 앞에서는 불러 본 적이 없는 은미였던지라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가기로 했다. 한 명 앞에서는 부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노래방에 들어갔건만 가람의 의도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문이 닫힌 공간에 단둘이 있게 되자 그는 가요나 팝송을 부르는 대신 다른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보기만 할게. 진짜!"

셔츠를 걷어 가슴을 보여 달라는 가람의 이야기에 은미는 어이가 없었다. 노래방에서 노래는 안 부르고 이게 대체 무슨 짓이람. 줄기차게 가슴을 보여 달라는 가람과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몸을 빼는 은미의 승강이가 한참 이어졌다. 가람은 빌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부리기도 하면서 은미를 정신적으로 들었다놨다를 반복했다. 다툼에 지친 은미는 결국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보기만 해야 돼? 알았어? 너 손대거나 그러면 나 당장 집에 갈 거야?"

"알았어. 진짜. 엄창 찍고."

알아듣지도 못 할 소리를 하며 가람은 신이 나서 콧김을 뿜어댔다. 은미는 눈을 질끈 감고 셔츠 끝자락을 잡고 조금씩 위로 올렸다. 서늘한 기분이 배에서부터 든다. 옷을 갈아입거나 할 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일부분만 노출시킨다는 건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좀 더... 빨리....."

"자...잠깐. 너 너무 가까이 오지 마."

"알았어. 딱 여기까지 서서 볼게."

숫제 가슴에 얼굴을 파묻을 요량으로 바짝 다가와 있는 가람의 표정은 그녀가 처음 보는 "남자의" 표정이었다. 이상한 빛으로 번들거리는 가람의 눈빛이 약간 소름끼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은미는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옷을 더 걷어보였다. 가람의 탄성이 이어지고 그의 입김이 가슴에 와 닿는 걸 느낀다. 노래방이 그리 추운 편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어쩐지 닭살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얼마야?"

"얼마라니?"

"그러니까, 사이즈가 어떻게 되냐고. 컵이 어떻게 돼?"

"컵.....?"

무슨 남자애가 여자 브래지어 사이즈를 물어보나 싶어 민망해죽겠는데 가람은 계속 재촉했다. 은미는 결국 모기만한 소리로 자신의 사이즈를 고백했다. 그러자 가람은 펄쩍 뛰고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우와! 진짜? 대박이다.... 역시 내가 잘 봤다니깐. 이번에는 진짜 내가 이길 수...."

"이겨? 뭐...뭐가?"

뭔가 묘한 소리를 하는 가람이었다. 어리둥절한 은미가 되묻자 가람은 헛기침을 하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둘러대었다.

"그럼 이제 됐지?"

은미가 옷을 내리려하자 가람은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손을 잡히자 은미는 화들짝 놀라서 뿌리치고 말았다.

"아직 덜 봤단 말야."

"덜 보다니! 이미 봤잖아."

"빨통을 제대로 까줘야지. 그렇게만 보여주면 어떻게 해?"

"빨통?"

은미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직감적으로 몹시 기분 나쁜 표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 나보고 너한테 가슴을 보여주라는 말이야? 완전히 다?"

"응."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니 오히려 이쪽이 할 말이 없다. 그녀는 가시 돋친 어조로 쏘아붙였다.

"넌 여자 친구한테 이런 데서 가슴이나 보여주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야? 지금?"

"뭐, 어때. 누구 다른 사람 있는 것도 아니고 난 니 남친이잖아."

"남친한테는 가슴 보여줘야 되는 거야? 응?"

"그럼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아무한테도 안 보여줘!"

은미는 소리를 빽 지르고 가방을 챙겨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가람이 문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야, 진짜. 너랑 사귄 지 벌써 몇 달이나 됐는데 겨우 그런 부탁 하나 못 들어주냐?"

"겨우 그런 부탁?"

"그래! 닳는 것도 아니고 만지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보여주기만 하라니까?"

천연덕스러운 가람의 말투에 은미는 더 열이 받았다.

"내가 너한테 그런 거 보여주려고 사귀는 거야?"

"사귀는 사인데 못 보여줘? 응? 은미야아. 응?"

"정말...너...."

은미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처음 생긴 남자친구라고 좋아하던 건 그녀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흐느끼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란 가람이 그녀를 달래느라 가슴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그게 불과 보름 전의 일이다. 그 후로 가람이 대놓고 가슴 타령은 하지 않았지만, 은근슬쩍 터치를 자꾸 시도한다. 지금처럼 말이다.

"그만 좀.... 해...."

"잠깐마안. 니가 움직이면 더 수상해 보이잖아. 응?"

은미는 소리를 꽥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가게에는 아직 손님이 있었고 가람은 찰거머리처럼 그녀의 우측 뒤에 붙어 두 팔로 그녀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팔로 허리를 두르고 한 손은 셔츠 안으로 들어와 그녀의 배를, 또 그러면서 조금씩 위로 올라와 브래지어의 언더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아, 진짜 죽인다아...."

혼자 달아오른 가람의 끈적끈적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와 닿는다. 그녀로서는 온몸에 뱀이 기어 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뿐이고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은 심정뿐이다. 그러나 가람은 끈질겼고 그녀는 점차 지쳐갔다.

딸랑 -

"어.....서.....오세요..."

남자손님이다. 가람이 화다닥 손을 빼어 어색하게 몸을 돌린다. 은미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다행히도 그 손님은 이쪽에 신경을 쓰지 않고 곧바로 아까 혼자 있던 여자 손님에게 갔다. 아마도 여기서 약속이라도 잡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녀와 교대할 저녁 알바생이 도착했고 은미는 인수인계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녀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며 빠르게 걸어갔다. 뒤에서 가람이 쫓아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에서 무조건 멀리 걷기만 한다. 방향도 모른 채 일단 걷는다.

"은미야! 은미야!"

길바닥에서 그렇게 이름 크게 부르지 마!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잰 걸음으로 아무리 빨리 걸어가 보았자 달려온 가람에게 금세 붙들리고 만다. 은미는 화를 내며 가람을 뿌리쳤지만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대답하는 가람의 태도가 그녀를 폭발시켰다.

"넌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니가 아무 때나 만지고 막 그러고 ... 넌 그러려고 사귀니?"

"왜 그렇게 화를 내, 내가 뭘 어쨌다고."

"뭘 어쩌고 어째? 아까 니가 나한테 한 짓이 뭔지 몰라?"

"좋아서 좀 만졌기로서니 너무 한다."

"좋아서? 너무해? 누가 누구한테 너무한데!"

그들이 있는 곳은 동네 놀이터였다. 그녀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터트렸다.

'진짜... 진짜.... 못 참겠다....'

이런 생각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야, 왜 또 울어. 창피하게...."

옆에 앉으며 그녀를 감싸 안으려는 가람의 말이 또 한 번 그녀를 상처 입혔다. 그녀는 가람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창피해? 넌 내가 우는 건 창피하고... 니가 나한테 그러는 건 하나도 안 창피하다는 거야?"

울며불며 소리치는 은미를 보며 가람의 표정도 점점 안 좋아졌다. 그는 한 손으로 은미의 어깨를 짚었다. 애인의 손길이 아니었다. 어깨를 내리누르는 그 손에는 꽤 큰 힘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몹시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아, 진짜.... 내가 뭘 어쨌다고. 그거 좀 만졌다고... 진짜 재수 없게 군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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