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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카페 미리내
한석은 카페 미리내를 향해 걷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목을 좌우로 꺾어 보았다. 뭉친 근육이 잔뜩이다. 나중에 지혜에게 마사지 좀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른 서비스도 같이....'
지난주에 시험이 끝나면서 간만에 지혜와 회포를 풀었다. 딱히 약속까지 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시험공부를 하면서 몸을 쓰기는 좀 그랬기 때문에 한동안 소원했다. 오랜만에 하다 보니 평소보다 더 불타올라서 이것저것 많이 했었다. 앞으로는 물론이고 뒤로 한다던가 입과 젖에 대고 쑤신다던가..... 지난 뜨거운 시간을 떠올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묵직해진다. 걸음걸이를 조금 고쳐 본다.
그렇게 카페 미리내에 도착했다. 한석은 이제 여기서 일하는 은미와도 종종 이야기를 하고 지내고 있다. 지혜네 놀러올 때도 있고 너무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그가 집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한석이 보기에 은미는 말수는 적고 얌전하지만, 가슴은 전혀 얌전하지 않은 무서운 아이였다. 얼굴도 귀여운 편이다. 늘 효진이가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며 희롱할 때는 말리기보다는 그저 감상하게 되는, 퍽 재미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은미는 귀엽기는 하지만 조금 색기가 부족하다고 할까. 그런 게 좀 아쉬웠다.
그랬던 한석의 이런저런 생각은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딱 멈추고 말았다. 발걸음도 멈추었다. 손 동작도, 몸도 모두 멈추었다. 그런 일은 없었지만, 한석이 느끼기에는 시간도 멈춘 것 같았다.
"어....어서 오세요, 오빠."
"응? 어어...."
평소처럼 카운터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 홀에 나와 있던 은미가 한석을 보고 꾸벅 인사했다. 그녀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동안 한석은 그녀의 가슴이 발사되는 줄 알았다. 평소라면 펑퍼짐하고 무채색 일색이며 마치 남자옷 같은 셔츠에 감춰져 있던 가슴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감을 엄청나게 어필하는 복장이었다. 가슴의 노출도를 퍼센테이지로 표시한다면 하단 50% 정도만 겉옷으로 감싸져 있고 그다음 20%가 옅은 살구색의 브래지어로 가려져 있다. 상위 30%는 맨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은미의 가슴이 어지간한 사이즈가 아니다 보니 노출된 부분만으로도 어지간한 여자 엉덩이만큼은 되었다.
게다가 바짝 모아진 가슴이 만들어 내는 깊은 계곡은 사람 하나가 빠져도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허벅지를 가리는 건 고사하고 팬티도 채 다 가리지 못한 짧은 치마는 은미가 아무리 손으로 잡아 끌어내리고 있어도 그 길이가 삼십 센티가 되질 않았다. 안쪽에 받쳐 입은 스패츠가 속바지 역할을 해주곤 있기에 아예 그걸 드러내는 게 나았다. 허리춤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긴 하지만 그건 가리는 용도라기 보단 비쳐보이게 하여 더욱 섹시하게 만다는 효과가 있었다. 머리에는 레이스가 달린 헤어밴드를 두르고 있었고 치마 아래로는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롱스타킹에 매어진 가터벨트의 집게가 보였다.
"뭐....뭘로 드릴까요?"
"어...어? 늘 마시던 걸로."
"네에."
넋이 홀린 듯한 표정으로 한석이 바에 앉자 은미는 늘 하던 대로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팔 토시까지 하게 되어있지만, 이상하게 끈까지 달린 그걸 하고 있노라면 내어가는 커피에 죄다 한 번씩 끈을 담그게 될 것 같아 그건 포기했다. 그러나 나머지 복장은 가람이 담아준 세트에 있는 그대로 전부 입었다. 이 옷을 입기 위해 그녀가 얼마만큼의 각오를 다졌는가는 그녀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평생 해오던 자신감을 모두 합한 만큼의 자신감을 쏟아부었다고나 할까. 만약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서 꽥하고 죽는다면 그 사인은 "수치"일 게다. 말 그대로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묘한 자신감이 붙었다. 평소라면 보던 책이나 꺼내놓고 거기에 몰두하고 있을 한석이 가게에 들어와 자리에 앉아서도 줄곧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뿌듯하기까지 했다.
"여기요."
"응? 으응..."
잔을 내놓을 때 일부러 팔을 몸에 붙이고 상체를 앞으로 푹 숙여 한석에게 바짝 다가갔다. 반쯤 노출된 가슴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진다. 어쩐지 짜릿하다. 옷을 입기 전까지는 그렇게 망설이고 힘들었는데 막상 입고 나니 그녀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무언가가 점점 더 그녀를 대범하게 만들었다.
"어때요?"
"어? 어.......뭐랄까. 파격적이라고나 할까....?"
한석의 눈이 풀렸다! 은미는 평소라면 전혀 쓰지 않는, 살짝 놀리는 말투로 답했다.
"네? 전 커피 맛을 물어본 건데요? 늘 드시던 건데."
"아. 그랬지. 아. 아. 어. 그래. 괜찮아. 좋아. 정말 좋아."
당황한 한석을 보면서 은미는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생겼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건 것도 드문 일이지만 한석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예 바에 몸을 기대고 가슴을 바에 올려놓고 있었다.
"시험 잘 끝나셨어요?"
"으응. 지난주에. 너는?"
"저도요. 이제 방학인데 오빠는 뭐하세요?"
"뭐, 별거 있을라고. 그냥 공부나 하고 과외알바 하던 거 계속 하고."
한석은 마시고 있는 커피를 입가에서 줄줄 흘리고 있었지만,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으음. 언니들이 어디 좀 놀러 가자고 하던데요. 1박이나 2박으로."
"그...그랬던가?"
"그랬죠. 어디가 좋을까요?"
"그...글쎄다. 계.......계곡?"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야릇한 감정은 은미로 하여금 점차 대범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동작, 그러니까 가슴을 좌우로 흔든다던가 몸을 앞으로 숙인다던가 하는 동작을 수시로 곁들였다. 은미와 이야기하는 중이니 그녀를 보긴 봐야겠고 그러면서도 얼굴이 아니라 점차 아래쪽의 어딘가로 향하는 시선을 보내는 한석의 표정을 보는 게 즐거웠다. 그렇게 담소 아닌 담소를 나누고 있노라니 다른 손님도 들어온다. 남자 손님들은 하나같이 카운터에 서 있는 은미에게 시선을 한 번씩, 아니 두 번씩 세 번씩 던지고 갔다. 아예 목이 돌아가더니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악령 들린 소녀처럼 180도 회전하는 남자도 있었다. 그런 이들의 시선은 못내 부담스러웠지만,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한석을 보면서 은미는 몹시 설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죠? 거기 대체?"
"어? 유진이 왔구나."
늘 한석을 데리러 오는 여학생이 한석의 곁에 와 앉았다. 유진이라 불린 그 여학생은 날카로운 눈으로 은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이에 맞지 않게 엄청나게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유진이었던지라 기세에 눌린 은미는 다소 주춤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은미를 물리친 유진은 한석에게 따지듯 물었다.
"전에는 창가 자리에 앉아있더니 전부터는 계속 여기 앉네요, 아저씨?"
"어? 어, 은미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은미? 으으으은미이이이이?"
유진은 다시 은미에게 시선을 던졌다. 투시하는 듯한 눈빛에 은미는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치마와 가슴을 가려보았다. 그러나 그게 그녀의 팔로 가린다고 가려질 게 아니었다. 유진의 시니컬한 독설이 뿜어 나온다.
"아줌마는 언제부터 그렇게 복장이 문란해졌어요? 여기 원래 그냥 커피만 파는 게 아니라 그런 것도 하는 업소였어요? TC는 얼마나 받길래 그렇게 헐벗은 홀복을 입고 있어요?"
은미로서는 알아듣지 못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마구 쏘아붙이는 유진을 한석이 간신히 뜯어말렸다. 한석은 은미에게 눈인사를 남기고 유진을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은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자신감이 스르륵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조금 있으면 교대할 인원이 올 시간이었다. 얼른 옷을 원래대로 갈아입었다. 조금 전까지 한석의 뜨거운 시선이 꽂히던 옷을 손에 들고 내려다본다. 아무래도 자기가 이런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정당화시킬 이유가 필요했다. 혹시나 싶어 이 옷이 담겨있던 쇼핑백을 살펴보았다. 가게 이름만 쓰여 있었다. 쇼핑백을 뒤져보니 바닥에 영수증이 있었다. 거기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물랑루즈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몹시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에 거기서 샀던 옷이 사이즈가 안 맞는데, 혹시 교환 가능할까요?"
"네! 영수증 갖고 계시죠?"
"네."
"저희 가게는 늦게까지 여니까 언제라도 오시면 됩니다. 언제까지 올 수 있으세요?"
그 날 저녁, 은미는 동대문 의류상가에 도착했다. 전화로 위치를 미리 들어두긴 했지만, 이곳은 마치 미로와도 같아 말로만 들어선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옷을 사러 많이 돌아다녀본 경험이 없는지라 더욱 헤맸다. 갔던 골목을 가고 또 가고를 반복한 끝에 가까스로 원하던 가게를 찾아냈다. 수입의류전문점이 죽 늘어선 골목의 한편에 놓인 그 가게는 디스플레이 된 옷만 해도 범상치 않았다. 분위기상 교복임이 분명한 옷인데도 상의는 배꼽이 보일 정도로 짧고 하의는 아까 그녀가 입었던 옷만큼이나 짧은 치마였다. 그 옆에 있는 옷은 속옷은 속옷인데 입고 있는 마네킹의 살결이 그대로 다 보이는 디자인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놀랍기는 놀라웠다.
간판의 이름은 "물랑루즈". 옆에는 빨간 선으로 풍차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간판을 한 번 더 올려다보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까 전화로 들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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