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352화 (352/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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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카페 미리내

초향은 주먹을 쥐고 자기 가슴을 두드렸다. 그녀는 매사에 감정 표현이 확실했다.

"어휴. 내가 다 답답하다. 그냥 단둘이 있을 때 확 앵기라니깐! 어차피 눈빛은 다 주고 받았다면서!"

"제 착각일지도 모르고..."

"고백을 하라고! 말을 해야 사람이 사람 마음을 알지!"

"그.....그래도, 요새는 카페도 자주 오고 저녁에는 저 집에도 데려다 주시고....."

은미의 대답을 듣고, 초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단칼에 정리했다.

"자주 오는 거야 방학해서 낮에 니네 카페에 와서 공부한다며? 그리고 요새 예전 남친이 다시 또 얼쩡거리는 것 같아서 걱정되어서 데려다 주는 거고."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해보아야 그건 순전히 은미 생각이다. 한석은 냉방이 잘 되고 공짜 커피와 쿠키를 제공하는 카페 미리내의 한쪽 자리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고 있고 은미는 카페 일을 하느라 둘이 대화를 많이 하거나 하진 못 했다. 그러나 한석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미는 항상 설레는 기분이었다. 손님이 없을 때는 한석의 맞은편에 앉아 조금씩 대화를 하기도 했다. 요새는 그런 대화 시간이 많이 늘어난 편이다. 처음에는 말도 못하고 나란히 걷기만 해도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지금은 마주 앉아 농담까지 주고받을 수 있으니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지난번 데려다 줄 때는 손도 잡았노라고 은근히 자랑하는 은미를 보며 초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건 무슨 애들 소꿉놀이도 아니고.... 이젠 업그레이드를 좀 해야겠어."

"업그레이드요?"

"응. 좀 더 쎈 의상으로 놈의 눈을 확!! 홀리는 거지."

초향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가 뭔가 가지고 왔다. 은미는 처음에 그게 브래지어에 붙이는 탈착식 끈인 줄 알았다.

"이게 뭐죠?"

초향은 보고도 모르냐며 끈 양쪽을 잡고 위로 들어올렸다. 그것은 얼추 비키니 수영복에서 가장자리의 끈만 따서 만든 형태였다.

"하이레그 비키니 수영복!"

은미는 찻잔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사양할게요!"

은미는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초향은 그런 은미를 추격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애들처럼 장난치다가 초향이 더 이상 추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서야 남은 촬영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소가 나와서 돕기 시작했다. 준비된 의상을 은미가 모두 한번씩 입고 포즈를 취했고, 그렇게 잔뜩 찍어놓은 사진을 확인한 초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미가 말했다.

"수고했어요."

"그래. 너도 수고 많이 했어."

남은 촬영이 모두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 것까지 다 도운 은미는 초향에게서 쇼핑백을 건네받았다. 초향은 윙크를 하며 말했다.

"이건 내가 야심차게 준비한 네코미미 메이드 코스튬. 이걸 입고 한석이 앞에서 무릎꿇고 커피라도 대접해봐. 아니면 바지 위로 커피를 왕창 쏟은 다음 식혀주겠다며 바지를 일단 벗기고 입으로...."

도무지 뭔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입을 벌리고 뭔가 어찌하는 듯한 동작을 취하는 초향을 보고 은미는 대번에 눈치를 챘다.

"언니!"

"으음? 내가 뭘? 호호 불어주란 소리였는데 넌 대체 뭘 생각한 거야?"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하는 초향의 배웅을 받으며 은미는 물랑루즈를 나섰다. 바로 집으로 갈까 하다가 다음 주에 지혜, 효진과 함께 놀러갈 생각에 휴가 때 입을 옷을 사러 가기로 했다. 물랑루즈에서도 옷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휴가 때 입을 옷이라고 하면 분명 초향이 또 엄청난 디자인의 옷을 가져와서는 기어코 입히려고 할 게 뻔하기에 비밀로 했다.

예전 같으면 빅사이즈 티셔츠나 사러 다녔을 은미였지만, 이젠 달랐다. 보는 눈이 넓어지고 높아진 그녀는 이런저런 상점을 다니며 한참 옷 구경을 했다. 상인들과 적절한 흥정도 필수. 그런 식으로 그녀 마음에 드는 비치웨어 두 벌을 구했다. 모델 일을 하기 전의 은미라면 이렇게 어깨와 가슴이 드러난 탑 같은 건 꿈도 못 꾸었을 테지만 지금만 해도 상당히 짧은 미니스커트에 차이나 드레스를 변용한 스타일의 딱 붙는 블라우스를 입고 거리를 누비고 있는 은미였다.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흥정을 마치고 원하는 옷을 사서 가방에 넣었다. 쇼핑을 마친 그녀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조금 있으면 한석이 올 시간이라 발걸음을 서둘렀다. 지하철의 입구는 그녀에게 1차 관문이었다.

'아, 또 계단...'

내부로 향하는 기나긴 계단 앞에서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만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 지 좀 되었지만, 여전히 이럴 때마다 난감했다. 은미는 들고 있는 쇼핑백으로 자신의 치마 앞쪽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아래로 향했다. 지나가는 모든 이의 시선이, 남자만 아니라 여자들의 시선도 죄다 자신에게 꽂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가 못 살아.'

이렇게 짧은 미니스커트를 내어주며 빙긋 웃는 초향의 얼굴의 떠올라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녀 나름의 철학이 있고 그에 입각한 행동을 철저히 행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함부로 탓할 수 없었다. 아니, 내심으로는 약간 존경도 하고 있었다. 그녀 덕분에 자신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었으니까....

간신히 표를 끊고 플랫폼에 다다랐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탑승을 기다렸다. 주변의 남자들이 자신을 한 번씩 돌아본다. 처음에 이렇게 입고 거리에 나설 때만 하더라도 그 시선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해 그녀는 내심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자신에게 끝없이 속삭인다.

'자신감! 자신감!'

자신의 구부정한 허리와 어깨를 바로 펴주며 끊임없이 주입하던 초향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신감이 없으면 매력도 없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진정성이 있었다. 은미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가진 매력에 대해 한석이 돌아봐주길 원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선들은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저 입고 싶은 옷을 입었을 뿐이다. 예뻐 보이는 옷을 입었을 뿐이다. 그 외의 것은 불필요하다 여겼다.

'좋아. 해보는 거야.'

그녀는 몸을 곧게 펴고 바른 자세로 섰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나서 비로소 그녀는 자신을 향해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는 남자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속으로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러는 동안 전철이 왔다. 원래 서 있던 줄이 무너지며 사람들이 우루루 문가로 몰린다. 그 와중에 은미의 몸도 인파에 휩싸이게 되었다.

'사람 진짜 많네....'

인파에 떠밀려 반대편 문쪽에 간신히 기대선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으려는데 누군가 그녀의 등에 바짝 붙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저 사람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밀리는 사람의 손길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짧은 미니스커트 아래 드러난 그녀의 허벅지에 누군가의 손길이 자꾸 느껴졌다. 수동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의지를 갖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처음에는 손등으로 툭툭 건드리다가 지금은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허벅지 라인을 어루만지고 있다. 소름이 돋았다.

'이...이게 치한?'

사실 그녀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보다 지나치게 큰 가슴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사람으로 붐비는 곳에 가며, 십중팔구 실수인 척, 의도하지 않은 척 가슴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손길과 몸짓이 항상 있어왔다. 그렇지만 은미는 한 번도 그게 잘못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가슴이 너무 큰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너무도 불유쾌했다. 자신이 입고 싶어서 입은 옷과 드러내고 싶어서 드러낸 노출, 거기에 가해진 명백한 침탈이 그녀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화가 났지만, 그런 동시에 겁도 났다. 그녀는 그대로 바짝 얼어버렸다. 간신히 용기를 내어 몸을 비틀어보지만, 그 손길은 집요하게 그녀의 허벅지를 따라왔다. 들고 있는 쇼핑백으로 다리를 가리려고 해보았지만, 사람이 원체 많아 그걸 들어 올리기도 쉽지 않다. 간신히 좁은 바닥에서 발을 움직일 공간을 찾아 몸을 옮겨본다. 그제야 손이 떨어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제 떨어졌나....'

뉴스 같은 데서 볼 때 어떻게 사람 많은 데서 저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왜 당하는 여자들이 가만히 있나 싶기도 했는데 막상 당하고 나니 온몸을 덮쳐오는 공포감에 입조차 벙긋하기도 어려웠다. 한숨을 내쉬려던 그녀는 다시금 얼어붙고 말았다.

'또!!!'

그녀는 지금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전철 연결 통로 문 바로 옆에서 인파로부터 등을 돌리고 서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엉덩이에 아까와 같은 손길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는 숫제 스커트를 걷어 올리고 안에 있는 팬티까지 집적거리고 있었다. 놀라움과 부끄러움, 창피와 공포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보았다. 똑바로 바라보고 소리라도 질러 그 행동을 차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의 뒤에 바짝 붙은 이를 노려보게 되었다. 생각치도 못 했던 얼굴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은미는 소리쳤다.

"뭐...뭐 하는 짓이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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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맞춰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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