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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368화 (368/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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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3

아무래도 TV 보는 것도 무리이지 싶었다. 일찍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에 예린에게 불을 꺼달라고 했다. 예린은 TV와 조명을 모두 껐다. 전등이 꺼졌는데도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다른 불빛들로 인해 병실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다.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예린이 움직이는 게 희미하게 보인다. 그녀는 내 다리에 얹어진 쿨팩을 교체하고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예린 씨는 안 자요?"

"잡니다."

"그럼 보조 침대에서 주무세요. 아까 담요도 가져왔던데."

"이게 편합니다."

지가 무슨 레옹이냐. 그러고 보니 불 끄고 나서도 선글라스를 안 벗다니. 정말 대단하다. 난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말했다.

"제가 불편해요. 아까 리사가 그러던데... 절 리사처럼 생각하라면서요. 리사가 이렇게 말하면 예린 씨는 어떻게 하시죠?"

"....그 말씀에 따릅니다. 알겠습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예린이 의자를 치우고 침대 밑에 있는 보조침대를 꺼내는 소리였다. 그녀는 담요를 가져오더니 거기에 누웠다.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빛도 그렇거니와 길가에 있는 병원이라 자동차들 다니는 소리가 꽤나 크게 들려왔다. 종종 울리는 경적 소리와 더불어 가끔씩 지나가는 개념 없는 차들의 꽝꽝 울리는 오디오 소리에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평소보다 일찍 누워서 그렇기도 하다. 다리를 올려놓고 있는 자세도 불편하고 앞으로 학교생활이랑 다른 일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고민 때문에 머릿속도 복잡하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보셨죠?"

"네? 뭘요?"

자다가 봉창이라던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던가, 암튼 그 속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예린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을 꺼낸 건 정말이지 신기했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여전히 아래쪽에서 예린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제 눈이요."

"......에엑?"

아까라고 하면 농구할 때를 말하는 건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엉켜서 뒹굴었을 때를 말하는 거겠지. 깜짝 놀라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던 예린의 눈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물론 그 후에 이어진 발목의 고통 더하기 병원에서의 난리법석 때문에 그것에 대해 언급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설마 눈 색깔 때문에 그러...."

혹시나 싶어서 말을 꺼냈는데 밑에서부터 번개 같이 올라온 무언가가 내 입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말을 잊지 못했다. 예린의 손이었다. 키가 큰만큼 그녀의 손도 큼지막했다. 내 입을 완전히 덮고도 남았다.

"역시... 보셨군요."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상체를 일으킨 예린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하고 싶어도 입이 틀어 막혀 있어서 곤란했다.

"부탁드릴게요. 절대로.... 절대로 제 눈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아니 그게 뭐 엄청난 대수라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그러나 예린은 내가 약속하지 않겠다고 하는 줄 알았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재차 부탁한다.

"만약 그래주신다면... 앞으로도 한석 씨가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도 간절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예린이 손을 떼더니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옆모습을 보면서 질문했다.

"아니, 예린 씨.... 제가 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네."

"그게 그렇게 엄청난 비밀....인가요?"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의 입막음이었다. 대답을 안 했으면 질식해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예린은 천천히 대답했다.

"저에게는 중요해요."

"하아."

뭐, 사람마다 개인적 신념에 따라 어떤 일에 중점적인 가치를 두는가는 완전히 다를 수 있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서라도 뭐든지 들어주겠다는, 그런 조건을 내걸 정도의 일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러시면 차라리 칼라렌즈라던가, 뭐 그런 방법도 있지 않나요? 선글라스는 그 자체로도 너무 튀고 불편할 텐데요."

"렌즈는...."

예린은 조용히, 그리고 늘 그렇듯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무서워서요."

"...넵?"

전혀 예상 밖의 답변에 놀라고 말았다. 예린은 꽤 주저하며 말을 이어갔다.

"눈에다 넣는 거잖아요. 전 그게...."

"푸하하하하핫!"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예린이 날 쳐다보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마음껏 웃었다.

"하아.... 아, 진짜. 예린 씨...."

"뭡니까. 비웃는 건가요?"

"아뇨. 그럴 리가요. 어쩐지 귀엽다고나 할까."

"네에? 그...그럴 리가."

평소답지 않게 당황하는 그녀가 못 견디게 귀엽게 느껴졌다. 아니, 선글라스를 꼈으니 눈이 보일리가 없나. 이 야밤에도 선글라스라니. 대단하다, 대단해. 손을 뻗어 그녀의 선글라스를 만졌다. 다른 사람의 손이 얼굴에 닿자 꽤나 놀라며 흠칫했지만, 그렇다고 제지하지는 않았다.

선글라스를 벗겼다. 예린은 눈을 감고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이 어렴풋한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눈 떠보세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한 목소리로 재차 요구했다.

"제 말은 다 듣는다고 했잖아요. 눈 떠봐요."

예린이 천천히 눈을 떴다. 사실 이 어둡기 짝이 없는 방안에서 그녀의 눈 색이 보일 리는 없다. 순전히 내 기분 탓이다. 아까 낮에 아주 잠깐, 정말 잠깐 보았던 그 "푸른 눈"이 똑바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미려한 얼굴선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아까 낮에 그녀 얼굴을 보았을 때, 지나치게 하얗다고 생각했던 건 아무래도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녀는 토종 한국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검은 머리와 창백한 피부. 그리고 파란 눈. 손가락으로 훑어보니 어쩐지 코끝도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았다. 코 아래에는 입술. 얇은 입술 선을 따라 손가락으로 한참 어루만졌다. 젖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한 메말라 있는 것 같았다.

예린은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만지다 보면, 더 만지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손가락은 그녀의 턱선을 따라 움직이다가 단단하지만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목선을 쓰다듬었다. 위에서 아래로, 또 아래에서 위로 쓰다듬어 보았다.

아까 농구하면서 느꼈는데, 예린의 몸은 정말 단단했다. 그러나 지금 만지고 있는 피부는 정말 부드러웠다. 손가락이 목과 턱의 경계를 지나 귀 뒤에 닿았다. 한데 모아 묶었지만, 몇 가닥 빠져나와있는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만지면, 더 만지고 싶어지는 법이다.

"정말 제 말대로 다 한다고 하면.... 제가 이런 것을.... 해도 되나요?"

질문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답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손을 더 뻗어 예린의 뒤통수를 쥐고 가볍게 당겼다. 입술을 겹쳐본다. 벌려진 입술과 그 안에서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혀를 탐했다. 입술을 떼고 다시 물어보았다.

"이런.... 것도?"

이제 목 아래까지 내려간 손이 드레스 셔츠의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키스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녀는 내 손을 더 이상 막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난 굳이 하나하나 물어보았다. 일종의 심술이다. 만지는 곳마다 허락을 구하고, 곤란해 하는 예린의 침묵을 즐겼다. 손길이 안쪽으로 파고들수록, 예린은 숨이 거칠어졌다.

"하아...."

단추가 하나하나 끌러지는 동안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었다. 목덜미를 채 덮지 못하는 짧은 머리카락. 그 끝 부분이 닿아 있으면서 드러난 목덜미가 너무도 섹시하다.

그녀로 하여금 침대로 올라오게 했다. 내 위에 올라타게 하고 드레스 셔츠를 모두 벗겨냈다. 그 안에는 코르셋 같은 전신속옷이 그녀의 상체를 옥죄고 있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했다. 다행히도 내가 쩔쩔매기 전에 예린이 먼저 손을 뻗어 뒤쪽의 버클을 풀어내고 커버를 벗겨냈다.

몸을 둘러싸고 있던 갑옷 같은 그것이 벗겨지자 전에 없던 라인이 드러난다. 예린이 키가 크고 슬림하면서도 단단한 몸매인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가슴라인까지 훌륭할지는 몰랐다. 이렇게 좋은 걸 왜 그렇게 칭칭 싸매고 숨기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꽁꽁 싸고 있어요?"

예린은 대답했다.

"움직임에 방해가 됩니다. 출렁거려서."

리사나 마리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아니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르는 훌륭한 이런 걸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꽁꽁 감춰놓다니! 괘씸해서 마구 주물러서 괴롭혀 주었다. 손끝에서 전달되는 짜릿한 감촉이 잊고 왔던 나의 성욕을 부채질했다.

요새 확실히 못하긴 했었지. 예린의 상체를 벗겨놓고 나니 불끈불끈 하면서도 몹시 야릇한 생각이 드는 것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 순간, 나도 모르게 유진이가 생각났다. 벗고 있는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건 필시 죄악에 속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눈으로 범했던 유진의 알몸이 생각나고 말았다. 그때는 필사적으로 기분을 억누르며 수건만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내야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치 장난감처럼, 떡 주무르듯이 내키는 대로 만지고 희롱할 수가 있다.

"하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도 웃지 않던 예린이, 물론 본인은 웃고 있었노라고 이야기했지만, 암튼 그랬던 그녀가 흘리는 신음은 특별한 맛이 있었다. 그녀가 몸을 숙이자 내 얼굴 앞에 아주 잘 익은 배와 같은 탐스러운 과실이 두 개나 열렸다. 크기로 등급을 매기는 분류로 치자면 특상품에 속하고도 남음이다.

바싹 눌려있던 유두를 혀로 깨워 일으키고는 유륜을 천천히 삼키고 유방 전체로의 면적을 혀로 재보았다. 혀로는 모자라 손을 들어 양쪽을 동시에 주무르고 가운데 모아보고 다시 찌그러뜨리길 거듭했다. 빳빳이 솟은 유두에 침을 잔뜩 발라 손가락 사이에 넣고 슬쩍 비벼 보았다. 두 손가락으로 살짝 쥐고 입으로 가져와 혀끝으로만 농락했다. 이에 따라 연주되는 예린의 신음을 마음껏 즐겼다.

"하으....음...... 한석 씨......"

예린은 애타는 목소리로 날 불렀다. 대답은 몸으로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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