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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369화 (369/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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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3

사람이 사람을 부르면 응당 대답을 해야 도리겠지만, 지금의 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남의 몸을 함부로 만지고, 핥고, 빨고, 찌그러뜨리고 있다. 손끝에 와 닿는 살결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방금 나를 애틋하게 부른 입에 내 입술을 맞댔다.

키스 하면서 손은 쉬지 않았다. 등을 어루만지다가 허리를 감싸고, 이내 아래쪽으로 더 내려갔다. 바지와 피부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보다가 조금씩 손을 앞으로 돌려 버클을 어루만졌다. 바지를 벗기려고 했지만, 자세가 용이하지 않아 결국은 예린이가 직접 벗어야만 했다.

그 사이에 난 패널에 올려놓았던 오른발을 내리고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어버렸다. 여태껏 예린이 올라타 있고, 옷 너머로 계속 문질러서 팽팽해진 물건이 우뚝 솟아올랐다. 알몸이 된 채로 침대 옆에서  주저하고 있는 예린을 가볍게 끌어당겼다. 한쪽 옆으로 비껴나 침대에 간신히 공간을 만들고 그녀를 눕게 했다.

마치 스푼을 두 개 포개놓은 것처럼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바로 보고 옆으로 누웠다. 오른발이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몸을 바짝 붙였다. 그렇게 누운 몸을 세로로 세우고 그녀의 등에 내 배를 맞댔다. 탄력 있는 엉덩이가 달아오른 페니스를 꾹 누르고 있었다.

예린은 숨을 헐떡거리며 속삭였다.

"하악.....항.....전.....이런 것까지는....."

"네?"

"이런....거까지는....... 아가씨에게......"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아가씨는 왜 찾는 거지. 여긴 그녀와 나 뿐이다. 두 사람 만의 시간이다. 다른 사람은 우리 둘 사이에 아무도 끼어있지 않다. 달아오른 두 육체가 닿아있을 뿐이었다.

급격히 달아오른 성욕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웠다. 나로서는 지금 앞에 있는 알몸에 나의 일부를 집어넣고 싶은 생각만으로 꽉 차있었다.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성한 음모를 헤치면서 질척해진 습지를 향해 손을 집어넣었다. 손가락을 세워 입구를 쓰다듬다가 조금씩 안쪽에 있는 균열로 침입을 시도했다. 예린은 한층 더 헐떡거리고 시작했다. 원래 한 사람이 눕게 만들어진 병원 철제 침대는 꽤 요란하게 삐꺽거리고 있었다. 쇳소리는 날 재촉했다. 점점 더 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다리 하나를 사용할 수 없는 자세가 몹시 불편한데다가 뒤에서 넣는 것은 별로 많이 해보질 않은 터라 움직임이 마음처럼 쉽지 않다.

"한석 씨.... 한석 씨.....저.....저는....."

"예린 씨. 가만히 있어봐요...."

안 그래도 못 넣고 버벅이고 있는데 예린의 엉덩이는 참 비협조적이었다. 내가 움켜쥐고 고정해 놓으려해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페니스를 자극하는 데는 더 없이 훌륭했지만, 안정되고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욕망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아예 다른 자세를 취해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다리 하나가 불편하니 이것 참 난감했다.

"죄...죄송합니다."

결국 예린은 몸을 크게 꿈틀거리더니 내 품에서 빠져나갔다.

"예린 씨?"

예린은 황급히 바닥에 널린 옷가지를 주워 자신의 앞을 가렸다.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을 보고 중얼거렸다.

"......이럴 생각까지는 아니었어요."

"......에? 제....제가 실수한 건가요?"

너무 분위기를 탄 건가. 예린의 분위기에서 당연히 오케이일 거라고 생각하고 밀어붙인 거였는데 이렇게 중간에 파토가 나고 나니 굉장히 뻘쭘해졌다. 조심스럽게 묻자 예린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제가.... 제가 실수했습니다."

그녀는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저 풍만한 가슴이 단단한 틀에 갇히는 모습이라니.... 아까워 죽겠다. 원래의 차림으로 돌아간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선글라스는 끼지 않았지만, 그녀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한석 씨에게 안기고 싶긴 하지만.... 순서를 지켜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가 너무 서두르면 아가씨에게 폐가 되니깐요."

"순....서요?"

아까도 그렇지만 이건 또 뭐 자다가 봉창이냐, 남의 다리 긁기냐. 내가 의아해하자 그녀는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반문한다.

"어젯밤에 마리 아가씨를 안으신 것 아니었습니까?"

"........에에?"

아까 아침의 당혹스러움이 다시 대번에 되살아났다. 아침에 리사가 잔뜩 놀린 것도 모자라 이제 예린도 그러는 걸까?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마리랑 저랑은 기필코....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 그냥 잠만 잤습니다."

그러자 예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러셨군요. 전 또 이미 마리 아가씨를 안으신 줄 알고.....그래서...."

예린의 이야기는 뭔가 좀 알아듣기가 힘들다만 일단 한 가지는 알았다. 그녀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거. 그리고 그녀가 순서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는 거 이면에는 엄청난 뜻이 숨어있다는 거 말이다.

"잠깐만요. 그럼 만약 제가 마리랑 그 머시기, 뭐냐, 암튼 그런 걸 했다고 하면 예린 씨는 저에게 안길..... 생각이었단 건가요?"

내가 말해놓고도 내가 다 부끄럽다. 그러나 예린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러면요?"

"마리 아가씨와 리사 아가씨를 모두 안으시고 나면, 제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습니다."

오마이갓. 이 푸른 눈의 아가씨는 시방 뭐라고 하는 거여!

그녀는 내가 그녀의 이야기에 황당하며 놀라는 모습을 보이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아직 모르시나 보군요."

라며 옷차림을 바로 했다.

"내가 뭘 모른다는 거죠....?"

예린은 한참 주저하더니 말을 아꼈다.

"아직 모르신다면, 굳이 제가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군요."

하고는 그대로 누워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맘 같아선 당장 밑으로 내려가 그녀 멱살이라도 잡아 흔들면서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다 토해내라고 하고 싶었지만, 몸이 불편해서 참기로 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달아오른 몸이 채 식지도 않아 괴로웠다. 밤새 뒤척이면서 잠을 설쳤다. 뒤척이고 싶어도 다리 하나를 올려놓은 채로 고정되다 보니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애꿎은 뒤통수만 베개에 들이박으면서 신음을 흘렸다.

아침 해가 창문에 스며들기 시작할 때쯤, 병실 문이 열리고 리사와 마리가 나타났다. 너무 반가웠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누워있던 예린이 초스피드로 벌떡 일어나더니 리사와 마리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을 받아 들었다. 아무래도 그녀도 정말 쿨쿨 자고 있었다기 보다는 잠든 척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어머, 벌써 일어나셨어요?"

"일어났다기보단... 잠을 못 잤어요."

어디 사는 누구누구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고자질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리사가 얼굴 가득 걱정을 담고 곁으로 다가왔다.

"저런.... 많이 아프세요?"

"아뇨. 다리는 이제 별로 안 아픈데.... 머리가 아프네요. 좀 복잡하고."

"어머, 두통도 있으시단 말이에요? 약 좀 달라고 할까요?"

"아뇨. 약보다는....."

그 순간 예린과 눈이 마주쳤다. 떠오르고 있는 해가 병실을 비추고 있었고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서는 푸른 눈이 빛나고 있었다. 햇빛 아래서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창백한 게 아니라 아예 인종이 다른 거였다. 머리색이나 얼굴 형태는 비교적 보통 한국사람 같았지만, 피부톤이나 눈빛, 콧날은 외국인 같았다. 선글라스를 벗으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 예린 언니야는 이제 색안경 안 끼는교?"

"한석 씨 앞에서는 굳이...."

"그래예? 이야아....."

짐을 테이블에 다 올려놓은 마리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쿨팩을 갈고 있는 리사의 옆에 나란히 선 마리는 팔짱을 딱 끼고 나를 내려다보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요, 혹시 그거 아시나 모르겠네예?"

"뭔데."

녀석의 태도에서 불길함이 느껴진다. 마리는 턱으로 예린 쪽을 가리키면서,

"예린 언니가 말이지예. 자기 눈 저런 거 들키는 거 죽기보다 싫어한다 아입니까. 예전에 큰 싸움 나가 언니 안경이 따악 한 번 벗겨졌는데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놈들은 다 때려눕혔심더. 아예, 반 직있지예. 자기 눈 봤다꼬."

"뭐?!"

아침부터 넌 나를 놀라서 죽게 할 셈이냐? 그럼, 난 어제 죽음의 위기를 넘긴 건가?

"근디도 언니야가 선배님을 살려둔 걸 보믄 마, 아무래도 언니가 선배님을....."

"마리야."

내 발치에서 고정판을 조절하고 있던 리사가 동생의 말을 딱 끊었다. 그녀는 빠르거나 느리지도 않게, 높거나 낮지도 않게, 몹시..... 아주아주아주 몹시도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가서 준비해온 거 꺼내와. 아침 먹기 전부터 씨잘데기 없는 입방정 놀리지 말고. 주디에 콱 고마 미싱 박아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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