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408화 (408/471)

0408 / 0471 ----------------------------------------------

[외전] 부도덕한 여교사

큰 길을 지나 이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그래도 나를 조금만 이해해주겠니 그 없인 나도 견딜 수 없어.."

좁은 골목에 환하게 켜진 보안등 아래로 나처럼 비틀거리는 사람이 하나 둘씩 스쳐 지나갔다.

"이 사랑 때문에 많은 걸 잃게 되겠지... 힘들 때마다 기대온 우정까지..."

모두 나를 모르는 사람들. 낯선 이들. 그들이 나를 모르는 만큼 나 역시 그들을 모른다.

"하지만 어렵게 시작된 우리 사랑은 하늘만은 허락할 거야..."

걸음을 멈추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정말 우리가 하는 일을 모두 내려다보고 있을까. 하늘이 사람이 하는 일을 하나하나 판별하고 허락하고 말고를 하고 있을까.

그때, 시뻘겋게 달아오른 아버지의 얼굴이 내게 외쳤다.

"이 천벌을 받을 년!!"

천벌. 하늘이 내리는 벌이라는 뜻이다. 하늘이 대체 사람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하늘이 사랑을 허락하고 말고는 결정하고, 벌을 내리고 말지를 결정한단 말인가. 과연 그게 가능한가. 타당한 일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옷 벗고 씻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걸 수행하는 몸은 격렬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몇 번 뒤척거리다가 바로 누웠다. 아까 길에서 본 광경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석. 그리고 차를 몰고 온 여자. 이제 겨우 오늘 처음 만났을 뿐인 한석이라는 남자가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지 모를 일이다.

둘은 대체 뭐 하고 있을까. 그 차는 어디로 갔을까. 동기들을 집에다 모두 태워다 준 걸까. 한석과 그 여자는 서로 헤어졌을까. 아니면 지금도 같이 있을까. 같이 있다면... 대체 무얼 하고 있을까.

직감적으로 두 사람 사이가 보통이 아니란 걸 느꼈다. 이런 게 여자의 감이라는 걸까. 여자가 한석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석이 여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이미 두 사람은 모종의 관계를 치른 후의 사이라는 게 느껴졌다.

내 느낌 말고는 어떤 증거도 없지만, 내 느낌이니만큼 난 그걸 의심할 수 없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내게 두 사람이 모종의 사이라고 말해준 거라면, 난 반대하거나 부정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 느낌이, 내가 가진 느낌, 내가 느낀 느낌이 그렇게 말해오는데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낮에 잡았던 손의 감촉이 떠올랐다. 악수를 나눴던 손을 들어 올려 바라보았다. 한석은 그 손으로 지금... 그 여자를 만지고 있을까? 만진다면, 어떻게 만지고 있을까. 쓰다듬을까. 더듬을까. 주무를까. 아니면 손이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 끊임없는 상념이 날 어지럽혔다. 나를 달래기 위해, 나를 위하기 위해 손을 내려 나를 만지기 시작했다.

"흐음..."

치마를 걷어 올리고 팬티 위를 어루만졌다. 내 손이 아니라, 마치 그것이 한석의 손이라도 되는 양, 남자의 손이라도 되는 양 나의 민감한 부위를 나의 손으로 어루만졌다. 묘하게 일어나는 불길이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하아...."

중지로 균열을 쓸어내리며 조금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실크로 된 팬티 면이 조금씩 젖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왼손은 블라우스의 안쪽으로 넣고 가슴을 어루만졌다. 은근하게 부풀어 있는 가슴을 손으로 주무르면서 유두를 조금씩 괴롭혔다.

아아.. 한석... 역시 지금 그 여자를 이렇게 만지고 있을 거야. 틀림없이 그녀와 이렇게 손길을 나누고 입술을 부딪치고 있겠지.

"흐읍...."

입을 살짝 벌렸다. 아와 오의 발음 중간을 내는 듯한 모양으로 입을 벌리고 혀를 살짝 내밀어 보았다. 핥고 싶었다. 누군가의 뜨거운 살결을 핥고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여기에 없던 대상이 생겨났다. 그의 얼굴은 한석을 닮기도 했고 지훈이를 닮기도 했다. 사실, 누가 되었든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지훈이를 사랑해서 그런 짓을 했던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서는 엄격하고 진지한 교사로 알고 있는 나란 인간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음란하고 엉망진창이다. 곁에 있는 수컷에게 발정하는 한 마리 암컷일 따름이었다. 그 증거를 지금 보여주고 있으니 누구도 나를 부정할 수 없다.

"흐윽....흡....흐.....응....."

팬티를 젖히고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의 집요한 노크에 이미 흠뻑 젖어있던 동굴은 별 무리 없이 내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쩔컥- 쩔컥- 쩔컥- 쩔컥- 쩔컥-

내 아래에서 음란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살짝 구부린 손가락이 긁어대는 안쪽의 감촉이 날 미치게 했다. 더 깊이, 더 두껍고, 더 뜨거운 것을 넣어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여기에 없었다.

자지가 필요해.

"하악...하응....하악....."

하지만, 여기엔 없어.

찌억- 찌억- 찌억-

젖어들다못해 흥건해진 비부는 질척한 소리를 연신 토해냈다. 중지에 검지를 겹쳐보았다. 웅크리고 있던 몸을 폈다. 다리를 살짝 벌리고 단추를 못 다 푼 블라우스는 풀어헤쳤다. 브래지어를 아래로 끄집어내려 유방을 노출시키고 남은 한 손으로 유두를 꼬집었다.

강렬한 통증이 쾌감이 되어 나를 덮쳤다.

"하악!!"

엄지와 검지 아래 사정없이 비틀리는 유두, 나머지 손가락은 가슴 아래 살덩이를 연신 주물렀다. 머릿속에서 지훈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꼬물거리던 녀석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던 기억이 났다. 조심스럽게 뻗어온 손이 내 가슴을 어루만지고, 떨리듯 내민 혀가 내 유두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하악...하악....학....학..."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유방을 빨던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지훈이의 얼굴이 없었다. 다른 이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하...한석....하악...."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뜬 적이 없는데도 다시 눈을 감았다. 그 깊은 어둠속에서 한석은 내게 다가와 날 알아주었다. 그는 발가벗고 있었다. 단단한 몸. 단단한 물건이 아래쪽에서 우뚝 솟았다. 그는 자지를 내게 들이밀었다.

지금 넣고 흔들고 있는 손가락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 부족함을 채워줄 것이 거기에 있었다.

"하악....흥.....흐응....."

나 말고 아무도 없는 자취방 침대 위에서, 나는 한석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가 마치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내 안에 가득 담겨 있던 물이 터져나가고, 나는 부르르 떨었다. 끝없는 쾌락으로 나를 밀어 넣어 보아도, 그 뒤에 남는 것은 진한 후회와 허전함뿐이었다.

인정했다.

나는 외롭구나.

*

다음 날, 학교에서 만난 한석은 괴로워 보였다.

"으음..."

옆자리에 앉은 그가 내뱉는 신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제 딴에는 거북한 속에서 올라오는 트림을 참느라 그런 것 같은데 보기 안쓰러운 정도였다. 보고 있다가 점잖게 한마디 해주었다.

"가서 속을 비우고 와요. 아니면 수업 전까지 연구실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이든가."

"아, 아뇨.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냥 아침을 못 먹어서..."

내 제안을 한사코 거부하는 한석을 보고 있노라니 지훈이랑은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지훈이 녀석이라면 아마도 냉큼 달려가 어디 짱박혀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렇게 제안하기도 전에 가든가. 한석은 다소 고지식한 구석이 있었다.

"어제 저녁에는 멀쩡한 거 같더니만."

"멀쩡하다뇨. 속으로는 난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머리도 핑 했구요."

"그래도 동기들을 다 잘 챙기던데? 차까지 태워서 말이야."

"아... 보셨어요?"

실수다. 괜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 여자는 누구이며, 그 차에 타서 어디로 갔는지까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이 모든 본심을 다 말하며 살아갈 순 없는 법이다.

"아니, 보진 않았는데 왠지 그랬을 것 같아서 말이야."

서둘러 말실수를 커버했다. 한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네에."라고 할 뿐이었다. 어쩐지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 선생, 괜찮아요?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피곤한 줄 빤히 알면서도 굳이 물어본다. 한석은 자세를 바로 하고 대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웃지 않았다. 아직은 좀 더 엄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그럼 그거 들고 따라오세요."

"네."

실습실로 한석을 데리고 갔다. 사실 딱히 정리할 것도 없으면서 그에게 이것저것 시키며 실습실을 대대적으로 청소하고 정리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이쪽저쪽으로 오가는 한석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어젯밤, 그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해야 했다.

얼마 후, 점심시간 종이 울렸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쳐내는 한석을 보며 물었다.

"수고했어요. 점심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혹시 싸왔어요?"

아침도 안 먹었다고 했다. 혼자 자취하는 남학생이 도시락을 싸왔을 리는 없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물어보았다.

"만약 안 싸왔다면 나랑 같이 연구실에 가서 다른 선생님들이랑...."

그러나 내 제안이 끝나기도 전에 한석은 고개를 저었다.

"같이 실습 온 분이랑 먹기로 해서요. 먼저 가세요."

역시...

"그래요. 그럼 늦지 않게 오세요."

"예."

두 번 권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혼자 연구실로 향한다. 아직 다른 선생님들은 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싸둔 도시락통 두 개 중에서 하나만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나머지 하나는 밑에 두었다.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