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411화 (41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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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부도덕한 여교사

한석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알몸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가 내 다리 사이에 자신의 허리를 파묻고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내게 들어오고 있었다. 나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날 흥분시키고 있었다.

"하악...하악...하악....흐응...."

한석의 몸이 움직이고, 나 역시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내 마음이 그에게 자꾸 다가간다. 형체도 없는 마음이거늘 그것은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를수록 그는 점점 더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난 여기에 남아있다.

눈을 떴다. 지훈도, 한석도 없었고, 난 침대에 혼자 누워있었다.

'꿈이었구나...'

이상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왜 지훈이 꿈을 꾼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한석이라니....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려다가 지금 내가 옷을 벗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알몸은 아니고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있었다.

내가 어제 옷을 벗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석과 마주 앉아 술을 많이 마시긴 했다. 처음에는 맥주로 시작했지만, 족발을 시키면서 소주도 같이 시켰다. 술자리가 길어졌고 내 자세는 흐트러졌다. 애써 골라 입은 치마가 흐트러지며 속옷이 드러나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자세를 바로하지 않았다. 은근한 눈빛을 한석에게 보냈다. 술을 주고받으며 술잔 대신 손가락을 잡기도 했다....

머리를 감싸 쥐었다.

미쳤다, 미쳤어.

섞어 마시는 것에 쥐약인 주제에 무슨 깡으로 소주를 시킨 걸까. 그때 회식에서도 보았지만, 한석은 술을 잘 마셨다. 흐트러짐이 없었던 걸 보았다.

그런 그 앞에서 혀 꼬부라진 소리 몇 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의 기억은 없었다.

몸을 일으키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 욕실로 갔다. 어제 내가 입고 있던 옷이 욕실 대야에 들어 있었다. 술에 취한 내가 이렇게 했을 리는 없고 아마도 한석이 벗긴 모양이다. 테이블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컵이며 그릇은 싱크대에 들어가 있었다.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떠올려보려다가 출근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달았다. 서둘러 세안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학교로 가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데 현관문 앞에 종이가 한 장 붙어있었다. 흰 종이에는 검은색 매직으로 또박또박 이렇게 적혀있었다.

[어제 누나가 속이 안 좋으셨나 봅니다. 토 하면서 옷에 묻어 실례를 무릅쓰고 상하의를 벗기게 되었습니다. 침대에 눕혀 드리고 자리를 치웠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 한석]

황급히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지 않았다면 아마도 집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을지도 몰랐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대체 밤사이에 무슨 패악을 저지른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학교로 나갔다. 책상에 앉아 얼굴을 가린 채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어제, 어땠어?"

돌아보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같은 연구실에 있는 양 선생이었다. 한숨을 더 크게 쉬며 말했다.

"...최악이에요."

"뭐? 정말?"

양 선생이 호들갑을 떨며 의자 하나를 끌어다 내 옆에 앉았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다보더니 내게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속삭였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그게 영 아닌가봐?"

얼굴에서 손을 떼고 양 선생을 돌아보았다. 쓸데없이 진지하게 물어오는 그녀에게 반문했다.

"그거라뇨."

그러자 양 선생은 더욱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게 너무 작은 거야? 아님... 잘 안 서?"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교무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던 다른 선생님들의 시선이 내게 한 번에 꽂혔다. 벌게진 얼굴을 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양 선생은 내 손을 잡고 간곡한 어조로 속삭였다. 다 이해한다는 듯이, 천천히 타이르듯이 말이다.

"아마도 술 때문에 그럴 거야. 젊은 사람인데 안 될 리가 있겠어? 설령 잘 안 되더라도 그게 송 선생의 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닐 테니 상심 말고. 응? 알았지? 대개는 일시적인 현상이래. 다음에 다시 잘 해 봐. 화이팅이야?"

이쯤 되면 어떤 반박을 해도 씨알이 안 먹힐 것 같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여 대충 대답하곤 양 선생을 보냈다. 그 후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계속 머릿속에는 내가 저지른 추태에 대한 후회가 가득했다. 다음에 한석을 다시 만나면 대체 어떤 얼굴로 봐야할지 알 수 없었다. 아예 안 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

"선생님."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토요일이라 오전 수업뿐이어서 다들 퇴근 준비가 한창인 와중이었다. 고개를 돌려 날 부른 쪽을 쳐다보았다. 날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반 반장이었다.

"왜 그러니?"

"지난번에 말씀하신 설문지 걷어왔어요."

반장이 내민 용지를 받아들었다. 정신이 없어서 까먹고 있었는데 잊지 않고 알아서 착실히 챙겨온 녀석이 믿음직스러웠다. 수고했다고 말해주는데 녀석의 표정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약간 들떠있다고 해야 하나.

"반장, 무슨 좋은 일 있어?"

"넷?"

녀석은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학기 초에 보았던 녀석은 여간해서 표정 변화가 잘 없는 얼굴이었는데, 근래 들어 조금씩 표정이 풍부해지고 있다. 지금만 해도 전이라면 결코 짓지 않을 미소를 띤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표정이 좋길래. 무슨 좋은 일 있나 싶었지."

"아...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좀...."

말끝을 흘리는 반장이라니. 좀 생경하다. 어찌 보면 살짝 되바라지다고 할 정도로 항상 또렷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던 녀석이었는데 말이다. 문득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남자친구 생겼어?"

"엑?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두 손까지 내저으며 부정했다. 녀석은 황급히 허리를 숙여 내게 인사하곤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저 녀석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나왔다.

"좋을 때다..."

학생의 연애에 대해 선생님들마다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내 경우에는 학생들의 풋풋한 연애를 뭐라 나무랄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학생이라면 몰라도 저 녀석은 되레 연애를 권하고 싶기도 했다. 워낙 철두철미하게 자기 관리와 공부까지 잘 해오던 녀석인지라 내심 이런 작은 마음의 변화도 겪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한숨이 나온다. 요새 한숨이 부쩍 늘었다.

'남 걱정 할 때가 아니잖아. 지금...'

아침에 양 선생이 내게 은근히 물어본 것에 내가 크게 놀란 것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기에... 그런 시답지 않은 소리에 깜짝 놀라며 반응한 거다. 한석과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한들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물론 직접 뭔가를 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내 부끄러운 모양새와 혼자 꾸었던 꿈을 돌이켜 보면 얼굴이 저절로 화끈거리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주책이야, 주책.'

얼른 일어나서 퇴근 준비를 마쳤다. 결재 받아야 할 서류 등을 챙겨 행정실에 넘겨주고 학교를 나왔다.

집으로 곧장 돌아온 나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대청소를 시작했다. 옷장에서 옷을 죄다 꺼내어 계절에 맞지 않은 옷을 정리한 다음 색깔별로 분류하여 세탁기에 밀어 넣었다. 청소기를 들고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이불을 널어 말리고 먼지를 털어냈다.

너무 많이 벌려서 일요일까지도 계속 청소를 해야만 했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집 안이 정리되었다.

"휴우...."

유래 없이 깔끔해진 집안을 돌아보며 조금 흡족해졌다.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동안 많은 상념이 사라졌다.

"좋아. 이 정도면 문제없겠지."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판. 커다란 착각이었다.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 아침에 한석을 보는 순간, 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는 날 보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이제 속은 괜찮으시죠?"

".........괜찮아요. 금요일 마신 걸 지금 물어봐요? 그게 벌써 이틀 전이잖아요. 이틀 전."

"아, 맞다. 그랬죠. 참. 제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뒤통수를 긁적이는 한석을 노려보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지난 일주일간 그를 지켜본 결과 방금 꺼낸 말이 날 골리려고 한 소리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는 말 그대로 걱정이 되어서 한 소리겠지.

그러나 그의 질문만으로도 주말 내내 몸을 움직여 가며 기껏 가라앉혔던 상념이 마른 들판의 불길처럼 또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그에게 다른 주제를 물어보았다.

"정신이 없다니?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게 좀... 어제 어디 좀 멀리 다녀왔거든요. 그래서...."

"멀리? 어디?"

궁금증이 일어 물어보았지만, 한석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을 거부했다.

"개인적인 일이라서요. 죄송합니다."

"그래요. 그럼. 어서 올라가죠."

사실 더 궁금했지만... 전에 없이 단호하게 대답하는 한석을 보고 있자니 더 물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내가 못 살아, 진짜....'

아침 조회를 위해 교실로 올라가면서 한석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직책상으로는 분명 그의 사수인데, 그의 말 하나하나에 일일이 반응하는 내가 싫었다.

교실에 들어가 반장을 불러 인사를 시켰다.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 구호를 붙였다.

"차렷! 경례!"

기분 탓일까? 방금 반장이 인사하면서 한석 쪽을 한 번 째려본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다. 토요일까지만 해도 표정이 좀 부드러워지나 싶었는데 어느새 학기 초의 표정으로 다시 돌아가 있었다. 이유는 궁금하지만, 교사란 자리는 그렇게 한 명만 챙길 수 있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반 전체 아이들의 얼굴을 한 번 훑어보았다. 백 개도 넘는 눈이 날 향하고 있었다. 그 눈에 담고 있는 감정은 각기 다 다르지만, 기대의 크기는 언제나 다르지 않았다. 그러기에 난 결코 흐트러질 수 없었다. 가볍게 심호흡을 한 번 들이마시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다시 또 하루가 시작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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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주6일제인 시절이라 토요일에도 애들이 학교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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