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2 / 0471 ----------------------------------------------
[외전] 부도덕한 여교사
그렇게 다시 또 한 주가 흘렀다.
한석을 대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지난 주 금요일, 집까지 데려가 그런 바보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시 식사를 하자고 권하거나 술을 한 잔 하자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그래놓고 나니 언감생심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한석의 얼굴만 봐도 부끄러워서 둘만 있는 것도 스스로 피하게 되었다.
"하아..."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한석에게 수고했다고 이르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한석이 따라왔다. 항상 교문 쪽으로 먼저 가던 한석이었던지라 좀 이상했다.
"최 선생? 태워줘요?"
그러자 한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주차장에 도착하자 한석은 검은색 중형 세단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순간 알아차렸다.
그 차다.
그 날, 횟집 앞에서... 한석을 태워간 어떤 여자가 운전하던, 바로 그 차였다. 조금 놀랐지만 평정을 가장하고 한석에게 물어보았다.
"차도 있었어? 한석... 아니, 최 선생?"
나도 모르게 반말이 나올 뻔했다. 가까스로 호칭을 제대로 부른다. 밖에서는 평어를 사용하기로 했지만, 여긴 아직 학교다. 한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 차는 아니구요. 당분간 맡아둔 거예요."
당분간이라니.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누군가에게 내 차를 맡긴다는 건 내 살림을 맡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여자와 지금 같이 살기라도 하는 걸까. 그래서 차를 맡은 걸까?
"혹시 아버지 차?"
누구 차인지 알고 있으면서 괜히 한 번 떠보았다. 한석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아는 분인데요."
그냥 아는 분이라니. 전에도 그렇지만 한석은 그 여자와의 관계를 결코 드러내려 하지도,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다. 궁금증이 일어났다. 대체 어떤 사이이기에 그럴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물어보았다.
"흐음. 운전하는 사람들은 어지간해서 자기 차를 남에게 잘 안 맡기는데... 굉장히 친밀한 사이인가 보네."
친밀, 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물어보지만, 한석은 그냥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가요."
괜히 꼬치꼬치 캐 묻다가는 질투라는 내 본심이 드러날 것 같았다. 대충 둘러대듯이 말했다.
"뭐, 교생이라고 해서 차를 가지고 오란 법은 없지만, 좀 의외여서 말야."
"아,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아뇨. 그런 지적을 한 건 아니었어요. 가져와도 괜찮아요. 지금, 집으로 가는 건가요?"
"어디 멀리 갈 곳이 있어요. 그래서 차를 가져온 거예요."
멀리 어디냐고 묻고 싶었지만, 자꾸 물어보는 게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참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 일요일에도 어디 멀리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궁금하다.
내가 없는 곳에서의 한석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또한 어떤 여자...와 함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빠르게 내 차에 올랐다. 한석이 먼저 시동을 걸고 나가는 게 보였다. 검은색 세단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괜한 것을 보았고 괜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머릿속이 복잡한 주말이 될 것 같았다.
*
주말 내내, 복잡한 심경을 진정시키느라 이것저것 해보았다. 대청소도 하고, 필요 없어진 물건은 싹 모아 내다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개운치 않았다.
월요일이 되었고, 학교에 출근했다. 뜻밖의 사람이 날 불렀다.
"송 선생님. 저 좀 봅시다."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은 교감 선생님의 호출로 시작되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이미 다른 선생 몇 명이 교감 책상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만 부른 게 아니었다.
"다 모이셨군요.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종이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A4 용지였다. 큼직한 글씨가 인쇄되어 있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 K대학부속고등학교에서 현재 교생 실습중인 모 군은 분수에 맞지 않는 차를 몰고 다니며 선생의 품위를 저해하는 업소에 출입하고 있는데다가 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당장 그를 파면하고 교직에 임용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
교생?
그러고 보니 지금 여기 서 있는 선생님들은 모두 나와 같이 교생 사수들이었다. 서로 쳐다보았지만,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자기 교생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감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아침 교장실 문에 한 장, 그리고 교무실 입구에 한 장 붙여져 있던 걸 제가 발견하고 뗐습니다. 교장 선생님께는 구두로 보고해두었습니다만 아직 정식으로 보고가 들어간 건 아닙니다. 당연히 모함...이나 뭐 그런 거로 보고 있습니다만. 에헴."
교감의 시선이 우리들을 향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왠지 몸이 움츠러들였다.
"다들 실습생 관리에 열심히 임하고 계신 건 알지만 좀만 더 신경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시끄럽지 않도록 말입니다."
교감의 눈빛과 말투에서 대번에 분위기를 읽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학교라는 조직은 지극히 경색된 곳. 어떠한 잡음도 용서되지 않는다. 잡음을 해결하는 방법은 쉽다. 소음원을 아예 제거해버리면 된다. 편리하고, 아주 무책임하게. 그러니 설령 어떤 개인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조직 차원에서 덮거나 아예 개인을 내치는 방법으로 전체의 잡음을 제거한다.
"알겠습니다."
이런 사정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제대로 알아들은 선생님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감의 자리에서 물러나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의견을 나누었다.
"모 군이라니. 그럼 박태근 선생과 최한석 선생을 말하는 걸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나저나 그 둘이 차가 있던가요?"
"글쎄요..."
태근을 담당하고 있는 김 선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 날 향했다.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최 선생은....없어요."
거짓말을 해버렸다.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내가 어떨 표정을 짓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스스로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울을 보고 싶었다. 거짓말쟁이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궁금했다.
"게다가 업소랑 학생 이야기라... 업소야 그런 거 다니냐고 지나가는 말로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학생이라니... 설마 여학생에게 손을 대거나, 뭐 그런 거..."
김 선생이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이야기하다가, 다른 선생님들의 시선을 눈치 채고는 입을 다물었다. 업소야 이 나라 사내새끼들이 안 다니는 놈이 없으니 아무 문제없다, 이 말인가. 남자들은 참으로 편리하다. 적당한 불의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용서된다.
그렇지만 투서에 적힌 대로 학생에게 손 댄 게 밝혀지기라도 하면 그건 아주 큰 추문이다. 그래서 다들 말을 아꼈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다시 또 고민에 빠졌다. 차...라니. 분명 지난주 토요일에 주차장에서 보았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중형 세단을 몰고 가던 한석의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교무실과 교장실에 들어왔다는 투서는 정말로 한석을 노린 걸까? 그런 걸까. 게다가 "품위를 저해하는 업소"와 "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라니. 하지 말아야 할 건 죄다 모아놓은 셈이다. 이걸 대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적당한 사람이 지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기요. 양현아 선생님?"
"네?"
아주 작고 조그마한 체구를 한 양 선생이 내가 부르는 소리에 깜작 놀라는 게 보였다.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외모였다. 교복이라도 입혀놓고 있으면, 우리 학교 학생으로 교실에 앉아있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괜찮아요?"
"네."
의자를 하나 끌어다가 현아에게 내주었다. 그녀는 몹시 쭈뼛거리다가 의자에 앉았다. 평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일이 거의 없어서 이렇게 다짜고짜 대화로 들어가기는 좀 그랬지만 지금 상황이 급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뭐 좀, 아는 거 있어요?"
"뭐...를요?"
"아직 담당 선생님에게 이야기 안 들으셨군요. 학교에 투서가 하나 들어왔어요. 거기에 우리 교생들을 음해하는 내용이 적혀있더군요."
"아...아...네에. 투서요?"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인데 더 새하얗게 질렸다. 투서, 음해라는 이야기에 놀란 걸까. 너무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것 같아 좀 미안했다. 좀 다독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뭐 그렇게 심한 건 아니고... 거기에 적혀있기로 차를 몰고 다니고, 이상한 업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되어있더군요. 혹시 같이 교생하는 남자 실습생 중에서...이런 사람 있어요?"
"그게... 저어...."
"아는 범위에서만 이야기해줘요. 참고하게."
현아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차는... 박태근 씨가... 있고, 이상한 업소는... 그... 그게...."
"태근 씨가 차가 있다고? 못 봤는데?"
"아, 그건 대학교쪽 주차장에 세워두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그럼, 이상한 업소는? 방금 뭔가 이야기하려다가 말지 않았어요?"
"아뇨. 저 그게...."
한참을 주저하던 현아는 겨우 입을 열었다.
"노래방처럼 되어있고... 거기에 여자들 나오는 술집이면.... 괜찮은 건가요? 이상한 곳 아니죠?"
이런 순진한 아가씨, 아니, 멍청한 아가씨를 보았나. 그게 어딜 봐서 정상적이냐.
──────────────────────
*
근래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업데이트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번 외전은 417화에서 끝납니다. 빠르게 업로드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