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3 / 0471 ----------------------------------------------
[외전] 부도덕한 여교사
고개를 저었다.
"아뇨. 충분히 이상한데요. 그거 단란주점이나 룸싸롱이잖아요."
그제야 현아는 헤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게 룸싸롱이었구나...."
귀엽게 생긴 것과 어울리게 세상 물정 참 모르는 아가씨였다. 말을 들어 보니 안에까지 들어가 본 것 같은데 그걸 몰랐단 말인가? 거기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단 말인가?
"역시라니. 가봤어요, 양 선생?"
"에? 저... 그게... 가려고 간 게 아니라 한석이가 저희들을 다 태워가지고...."
"한석이가? 태워서?"
문득 머릿속에서 그날 기억이 떠올랐다. 여전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던 기억. 흐트러져 있던 퍼즐에서 어떤 조각 하나가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첫 번째 날 회식한 거 말이죠?"
"에? 아시...네요?"
"어떤 여자가 운전하는 차에 인사불성인 여러분을 태우는 거 봤어요. 그날 말하는 거 맞죠?"
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차 물어보았다.
"그럼, 그 여자... 룸싸롱에서 일하는 여자였단 거죠? 그리고 한석이가 여러분을 데리고 거길 갔고?"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치만 한석이가 거기서 술 마시거나 하자고 간 게 아니라요, 저희 술 깰 때까지 기다리느라고. 그래서...."
"그 룸싸롱이 어디죠?"
한참을 주저하던 현아는 위치를 털어놓았다. 그날 거기에서 뭘 했는지 더 물어 보려고 하는데 한석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 교안이 들려있는 걸 보았다.
"송 선생님. 보여드릴 게....."
"일단 거기 두세요."
최대한 차갑게 대답했다. 현아에게 돌아가라고 말했다. 잠시 생각한 후, 한석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최 선생. 내가 처음에 말했던 거 기억하죠?"
"네? 어떤... 말씀이요?"
갑작스럽게 물어보니 뭐에 대해 묻는지 모르겠지.
"우리는 학교에서는 물론 학교 바깥에서의 행동도 늘 보는 눈이 있다고. 그래서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했었죠. 기억 안 나요?"
그제야 한석도 뭔가 눈치 챈 모양이었다. 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납니다."
"지금 난 최 선생에게 주의를 주고 있는 거예요. 담당 사수로서. 또 선배 교사로서.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죠?"
"알겠습니다."
한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조금 서글퍼졌다. 최소한 어떤 반대 의사를 표명하거나... 하다못해 아니라고 딱 잡아떼기라도 한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텐데.
그러나 그는 전혀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그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서 주의하겠노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런 한석을 보고 있자니, 현아가 했던 말이 모두 사실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술집 여자....라니. 그런 그녀에게 받아서 한석이 몰고 다니는 차. 자꾸 안 좋은 쪽으로 흐르던 생각을 애써 털어냈다. 투서에서 말하는 사람이 한석일 리 없다. 일단은 나라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시계를 쳐다보았다. 교실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이 답답한 가슴을 조금이라도 달래고 싶었다.
"잠깐 좀..."
"네."
한석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파우치를 챙겼다. 우리 학교는 교직원용 화장실이 따로 없다. 1층 구석에 있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파우치를 열어 안에 있던 담배를 꺼냈다. 요 몇 주... 잘 참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더는 무리였다.
소리가 크게 나지 않도록 최대한 라이터를 감싸 쥐고 불을 붙였다. 한 번에 너무 깊숙이 들이마시지 않도록 주의했다. 남자 선생님들이야 교직원 휴게실에서 아주 속편히 담배를 피우며 온몸에 그 냄새를 묻혀오지만, 여자 선생님들은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었다. 어차피 같은 성인이고 불법적인 인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러하다.
어떤 시인이 공공장소에서 담배 피는 여자를 창녀에 빗대어 쓴 시가 떠올랐다. 남자든 여자든 그저 자기만족과 안정을 위해 니코틴을 빨아들일 뿐인데, 거기에 왜 그런 딱지를 붙이는 걸까.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후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들어오는 니코틴에 입술과 목 안쪽이 저릿저릿했다. 뾰족하고 날카로워졌던 신경이 조금씩 무뎌졌다. 고작 이 정도 물건 하나에 진정될 게 사람 신경이라니 참 우습다. 담배를 피우면, 그런 생각이 들어 자조 섞인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이걸 그렇게 끊으려고 하면서도 또 피고, 또 끊고 그러고 산다.
"....그럼, 못 만난 거야?"
이런. 누군가 들어오며 나누는 목소리가 들렸다. 담배를 입에서 뗐다. 담배 냄새를 널리 퍼뜨려서 좋을 게 없다. 그나저나 방금 들려온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었고, 두 사람 다 내가 아는 목소리였다.
"아니. 만나기는 했어. 그렇지만, 약속한 시각은 아니었어. 한참 늦게 나왔어."
이건? 우리 반 반장 목소리... 물소리와 함께 이어져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반장인 진유진의 목소리였다.
"휴우. 이젠 됐어. 아저씨 일에 신경 더 안 쓸 거야."
"어떻게 그래... 너, 많이 좋아했잖아."
반장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렇다. 반장의 짝인 소란이 목소리. 두 아이는 최근 유진이 좋아하게 된 어떤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진은 애써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소란은 확신하고 있었다. 유진이도 아니라고 하는 말에 힘을 주지 않았다. 이미 부정적인 긍정을 하고 있었다.
진정되던 가슴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아이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 게 적이 계면쩍었지만, 그래도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고 가는 대화를 통해 미루어보건데 이건 분명 반장의 연애담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아저씨였다.
요새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 반장에게 좋은 일이 있을 거라 - 예를 들면 남자친구가 있을 거라 - 지레 짐작은 했지만, 응당 같은 학생이거나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저씨'라고?
"좋아하긴, 누가. 그냥 좀 하도 어리바리하니 흥미가 갔던 거뿐이야."
"맨날 집에서만 보다가 이번에 밖에서 따로 만나는 거 처음이라고 엄청 설레어 했으면서? 그래도 안 좋아한 거야?"
"아니,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깐. 너한테 내가 이런 말 괜히 한 거 같아."
소란이는 까르르 웃었다. 반장은 자기 마음을 감추는 데에 많이 서툴렀다. 부정하는 게 부자연스럽다. 게다가 소란이는 지금 은근히 즐기면서까지 반장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도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설마 일부러 안 나왔겠니? 딱 보아하니 너 잘 챙겨주시던데, 가서 다시 잘 물어봐. 선생님이 너한테 미처 이야기 못 한 게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주제의 등장인물, 조금 전까지 반장은 그 사람을 "아저씨"라고 호칭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소란이는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아저씨이면서...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 그렇다면...
"됐어. 나 다시는 아저씨 쳐다도 안 볼거야. 나, 진유진. 최한석을 한 번이라도 더 보면 사람이 아니라고. 흥!"
"어? 유진아! 같이 가!"
서둘러 나가는 두 발걸음 소리. 그 소리가 완전히 멀어져 들리지 않을 때까지도... 난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한 머릿속에는 아침에 보았던 투서의 문구가 대문짝하게 새겨졌다.
[ K대학부속고등학교에서 현재 교생 실습중인 모 군은 분수에 맞지 않는 차를 몰고 다니며 선생의 품위를 저해하는 업소에 출입하고 있는데다가 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당장 그를 파면하고 교직에 임용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
세상에... 최한석. 너 이 자식....
미처 입에 물지도 못 한 담배가 계속 타들어간다. 그대로 재가 되어 떨어졌다. 바닥으로. 한없이 바닥으로.
새로운 담배를 꺼내 피워 물 생각도 못하고 그냥 화장실에서 나왔다. 니코틴의 힘을 빌려 애써 진정했던 마음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교무실에 돌아와 다음 수업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옆에 앉아있던 한석을 째려보자 그는 겸연쩍은 표정을 되물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
"아뇨."
한석이 채 질문을 마치기도 전에 대답을 마치고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옆자리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던 한석은 내 시선에 겸연쩍어 하다가 다시 종이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 옆모습을 힐끔거리고 있노라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그 투서.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차, 업소, 학생.... 세 가지 모두 터무니없는 모함이라고만 생각했다. 한석을 믿었다.
그러나 한석은 실제로 차를 몰았고, 업소에 다니는 여자와 개인적으로 친했으며 무엇보다도 순진한 학생을 꼬여내고 있었다. 저 흐리멍덩한 얼굴에 순진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뒤로 할 건 다 하고 있었단 말이다.
"젠장!"
손에 들고 있던 모나미 펜이 부러졌다. 주먹을 너무 꽉 쥔 탓이다. 옆에 있던 한석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괘...괜찮으세요, 송 선생님?"
"괜찮아."
부러진 볼펜을 옆에 있는 휴지통에 버렸다. 그리고 한석을 돌아보았다.
"퇴근, 안 해?"
"네. 해...야죠. 이것만 끝내고요."
"됐어. 내가 정리할 테니 먼저 들어가요."
한석의 손에 들린 서류를 가져왔다. 한석은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머뭇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곤 교무실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행정서류를 대충 마무리했다. 교무실을 벗어나 주차장으로 내려갈 때까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정말일까, 아닐까.'
그래,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여전히 그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는 무죄고 사실은 선량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대로 예단을 내리기에는 이미 증거가 너무 많이 나왔다.
'갈까, 말까.'
현아에게 들은 그 술집의 위치는 그다지 먼 곳이 아니었다. 걸어가도 충분히 갈만한 거리였고 차로 가면 십 분도 채 안 걸리는 곳이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바보 같은 짓이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이미 차에 올라타서 한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미쳤어...'
길 건너편에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망설였다. 맞은편에 보이는 ROSE라는 간판을 한참을 노려본다. 그리 늦은 시각이 아니건만 간판에는 이미 불이 들어와 있었다. 영업 중이라는 뜻이겠지. 분위기를 보아하니 딱 그렇고 그런 술집이다. 그냥 평범하게 술만 파는 집은 결코 아니었다.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걸까...'
후회하고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