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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부도덕한 여교사
핸들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고민했다. 이미 나올 대로 나온 증거만으로도 한석을 따로 불러내어 꾸짖기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면 교감에게 말해 그의 교생 실습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쉬운 길을 놔두고 애써 이런 짓을 하고 있다.
"지훈아...."
나도 모르게 이 이름을 부르고 만다. 술이 가득 찬 잔이 흘러 넘치듯 안타까움이 마음에 가득 차서 넘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이 이름을 부르고 마는 모양이었다.
그래, 지훈이도 그렇다.
난 그 아이를 결코 놓지 못했다. 그릇된 길로 빠져버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 길에 내가 함께 서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육욕이 이끄는 대로, 그 아이가 내 손을 잡아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또 끌려갔다.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대체 무엇이 있기에 우리는 그렇게 계속 함께했던 걸까. 결국은 도달하지 못할 길.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
고개를 들었다. 눈을 떴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심호흡을 하고 길을 건넜다.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가게 입구에 들어섰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하나하나 밟아 아래로 내려갔다. 살짝 어두운 입구와 달리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명은 밝아졌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지하에 있으면서도 거짓 조명으로 환하게 밝힌 그 공간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거짓으로 짓는 웃음을 파는 여자들이 있는 공간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날 맞이한 건 스물 남짓해 보이는 남자 웨이터였다. 검은색 베스트를 갖춘 말쑥한 청년은 날 보고 살짝 긴장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여자들이 오는 술집이 아닐테니.
"사람을 찾으러 왔어요."
"누구....?"
"최한석. 여기 있죠?"
남자 웨이터를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선생님이요?"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런 술집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칭호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차라리 이 남자가 한석이 누군지를 모른다고 했으면, 난 나 자신의 성급함을 탓하며 발걸음을 돌려 가게를 나갔을 것이다. 잠시나마 의심했던 한석에게 마음속으로 사과하며,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남자는 내가 한석을 언급하자 "선생님"이냐고 반문해왔다.
최한석. 이런 곳에서 선생님이라 불리고 있었단 말이냐. 너란 남자는 대체....
이글거리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웨이터를 재촉했다.
"그래요. 내가 찾는 사람이 맞는 모양이군. 지금 어디 있지?"
"사무실에 계실 텐데요. 그런데 무슨 일로...?"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폈다. 몇 개의 복도로 나뉜 그곳에서 딱 한곳이 문이 달랐다. 몸을 돌려 그쪽으로 향하자 조금 전까지 내게 응대하던 웨이터가 복도를 막아섰다. 그를 향해 말했다.
"비켜요."
"아니, 손님. 무슨 일로 찾으신 건지 여쭙잖습니까?"
"댁은 알 거 없으니, 일단 비켜요. 내가 최한석을 보면 직접 이야기하겠어."
"사무실에 외부인은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비키라고!"
그를 복도 한쪽으로 밀쳐내고 나가려는데 어느새 다른 웨이터가 달려와 앞을 막아섰다. 또 다른 웨이터는 내 뒤에서 나타나 팔을 잡았지만, 금방 뿌리쳤다.
"비키라고, 이 자식들아! 어딜 잡아?"
웨이터들과 옥신각신하다가 어느 순간 틈이 생겼다. 그걸 놓치지 않고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문고리를 잡고 확 열어버렸다. 문을 여는 동시에 외쳤다.
"최한석!"
있었다. 그가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하반신은 벌거벗은 채였다. 그런 그의 허벅지에는 어떤 여자가 올라타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친 한석은 화들짝 놀랐다.
"소....송 선생님!!!"
흐트러진 두 사람의 옷차림, 달라붙어 있는 모양새, 달아올라 있을 대로 달아올라 있는 방안의 후덥지근한 분위기.... 그리고 여기서 보이지는 않아도 분명 한석의 그것은 저 여자의 안을 휘젓고 있을 것이다.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뭔가요, 최 선생!"
한석은 말이 없었다. 목이 갈라질 것 같았다.
"지금 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죠? 뭘 하고 있는 거냐구요!"
"소... 송 선생님....."
간신히 말문이 열린 그였지만... 여기서도 선생님 타령이다. 내가 밖에서는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건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한석을 향해 무어라 더 외치고 싶었지만, 말문이 막혀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나와 달리 한석의 위에 올라탄 여자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어깨끈을 바로 하고 몸을 일으키면서 웨이터들에게 손짓했다.
"일단 너희는 나가 있도록 해. 내가 따로 부르기 전까지 아무도 여기 들이지 않도록 하고."
사무실 문이 닫혔다. 웨이터들은 날 놓아주었기에 방에는 나와 한석, 그리고 저 여자 이렇게 셋만 남았다.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터질 듯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아래로 둥근 엉덩이가 불룩한 여자였다. 색기를 듬뿍 담은 시선을 내게 한번 던지고 허리를 굽히더니 한석의 물건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아쉽지만, 이젠 집어 넣어도 돼요."
"아, 넷!!"
세상에! 지금 저 년은.... 날 도발하고 있다. 한석이 허겁지겁 바지를 추켜 올리는 동안 난 그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짓이죠? 부끄러워 해도 모자를 판에 뭐 그리 당당해요? 여기 내가 있는 게 안 보여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나와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나와 한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왜요? 한석 씨가 그 쪽 남자는 아니잖아요. 당신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내가 좀 놀았기로니 그렇게까지 열낼 건 없잖아요?"
놀아?
"가지고 놀았다고....? 무슨 말을 그따위로!!... 당신은 정신이 있어, 없어?!"
"남의 가게에, 그리고 남의 은밀한 시간에 예의도 없이 쳐들어 온 사람보다는 낫죠."
"뭐라구요?"
보이지는 않지만, 내 얼굴은 분명 잔뜩 일그러졌을 것이다. 말싸움 중인데 한쪽은 웃고 있고 한쪽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니... 이건 이미 승패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다. 한석을 향해 외쳤다.
"내가 그렇게 알아듣게 이야기했는데.... 최 선생, 정말 실망스럽네요."
한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그 여자가 한석의 목덜미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한석 씨 굉장히 만족스러운 분이에요. 전 전혀 실망스럽지 않던데요?"
"당신은 제발 닥쳐요!"
"내 사무실에서 내가 이야기하는데 누가 나보고 닥치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익!!"
도무지 말로 상대가 안 될 여자다.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내가 더 이상해졌다. 한석이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됐어요. 더 듣고 싶지도 않고 더 볼 것도 없군요."
아직도 날 선생님이라 부르다니... 그가 너무도 원망스럽다. 지금 여기선 낯선 여자와 몸을 섞고 있었으면서... 날 계속 그렇게 부르다니.
"재미있네요."
한가롭고 심드렁하기 그지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요? 당신 지금 재미있다고 말했어?"
"그래요. 재미."
그러면서 그녀는 한석에게 다가와 남방의 단추를 하나씩 채워주기 시작했다. 그 동작은 전혀 급하지도 않았고 마치 단추 하나하나의 문양을 손에 익혀보기라도 할 것처럼 나긋나긋하고 한가롭기 짝이 없었다. 당황한 한석은 그런 여자를 제지하려고 하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렇잖아요. 당신이 그냥 한석 씨 담당이라면 한석 씨가 이런 가게에 들어가는 것만 확인해도 충분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도 보통 여자들이라면 별로 들어오고 싶어 하지 않을 가게 안까지 쳐들어왔군요. 들어와서 어떻게 노는가 까지 다 봤으면 그냥 돌아가서 보고서나 쓰면 되는 문제 아닌가요? 근데 여기 서서 굳이 한석 씨를 몰아세우고 흥분하고 열받고 있군요."
여태까지 빙글거리며 놀리던 것과 다르게 꽤 차분하고도 논리 정연한 태도였다. 미리 준비도 없이 허를 찔린 나는 허둥거리고 말았다.
"그...그거야 최 선생은 내 담당이니...."
"담당이라고 한들, 그렇게까지 합니까? 당신 태도를 보고 있으니 흡사...."
"흡사?"
그녀는 굉장히 오래 뜸을 들이며 듣는 나를 안달 나게 만들었다.
"애인 노는 거 잡으러 온 여자 같네요. 하는 짓이 꼬옥."
"뭐라구요?! 지금 말 다했어요?"
사람이 본심을 찔리면 당황하게 되어있다. 한석이 내 애인은 아니다. 그렇지만... 난 그를....
"아뇨. 아직 다 안 했어요. 아까의 우리를 보고 있던 당신의 눈빛은 뭐랄까. 부러워 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알았죠. 아, 이 여자는 한석의 몸을 원하면서도 아직 한석 씨랑 못 자봤구나. 하고는 싶어 하는데. 내 말이 틀렸나요?"
틀리지 않아. 그렇기에 난 더 부정해야만 했다.
"미친 소리 작작해!"
소리를 꽥 지르고 몸을 돌렸다. 그러나 어느새 그 여자가 내 앞으로 와서 문을 막고 있었다.
"미친 소리가 아니에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도와줄게요."
"무슨 소릴...."
"선생님? 여기 와서 이 분 좀 뒤에서 안아주시겠어요? 여기서 이대로 도망갈 수 없도록 말이에요."
이게 무슨 헛소리냐고 내가 소리치기도 전에, 내 몸은 어느새 한석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한석이 날 뒤에서 안아버렸고 여자는 내게 한 걸음 바짝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조금 전... 한석 씨의 자지를 보면서, 기분이 어땠는지 생각해봐요. 아직도 단단해요. 뜨겁고... 그건 아직 해소되지 않았어요."
"이게 무슨 .... 흐윽..."
내 다리 사이로 여자의 허벅지가 밀고 들어왔다. 긴 원피스였지만, 옆에 슬릿이 주욱 들어가 있어서 그녀의 늘씬하고도 잘 빠진 다리가 그대로 쑤욱하고 드러났다. 뒤로는 한석, 앞으로는 여자가 날 껴안고 꼼짝도 못 하게 한다.
"꿈까지 꾸었잖아요? 한석에게 범해지는...?"
"그...그걸 어떻게...."
여자의 눈빛. 그건 마치 날 보면서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눈빛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색기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날 놀리는 눈빛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또 다른, 아주 색다른 눈빛으로 날 들여다보고 있다. 뱀 앞에 놓인 개구리처럼, 난 그 눈빛을 맞이하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동작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하지 마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에게 맡겨요."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게 된다.
"그러면 편해질 거예요."
내 옷을 끌러내는 그녀의 손이 너무도 편안하다. 그녀의 손이 내 몸에 닿을 때마다 불길이 일어났다. 애써 감추어두었던 불길은 나를 활활 태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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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