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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6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던 미니 바 안쪽에 어느 순간에 하우스 메이드 한 명이 와서 서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인기척을 좀 하세요, 이 아가씨야! 라고 외치고 싶은 걸 간신히 꿀꺽 삼켰다. 그녀에게 오프너를 돌려주고 효진과 병을 살짝 부딪쳤다.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하기 짝이 없는 맥주라서 맛이 참 좋았다.
그렇게 맥주로 목을 축이고 있는데 메이드가 효진에게 물어보았다.
"어떤 안주로 준비할까요?"
"아뇨. 괜찮아요. 그냥 가볍게 마실 거라.... 알아서 할 테니 들어가 보세요."
효진이 손사래를 치자 메이드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치마가 워낙 길어 발이 보이지 않아 무슨 실내화를 신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근데 어찌된 요량인지 걷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까도 그렇게 불쑥 나타나 오프너를 건네줄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름이 선미라고 했던가...?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도 자세라든가 말투 같은 게 상당히 반듯했다. 마치 저런 일을 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된 사람 같았다.
"맞아. 훈련된 사람이야."
효진에게 조금 전 그녀에 대해 묻자 그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가 옛날부터 하던 취미 중에 하나가 저런 거야. 저런 아가씨들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고, 교육시키는 아카데미를 세웠어. 선미 씨는 우리 아버지가 세운 서비스전문아카데미 수료생 중 최우등생이고."
"최우등생이 여기서 일해?"
"여기가 어때서? 우리 집은 우리 아버지가 키워낸 사람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곳이야. 무엇보다 그 유명한 박 회장님 바로 곁에서 일하는 거 아냐. 모든 사람이 가고 싶은 자리지."
박 회장? 아마도 자기 아버지를 말하는 거겠지? 그런데 어쩐지 말투가 곱지 않았다. 딱히 대답할 꺼리가 없어 병을 기울여 맥주만 홀짝였다. 그러는 동안 효진의 시니컬한 말투가 이어졌다.
"그래야 아버지 눈에도 들고 씨도 받고 돈도 받고 그러지 않겠어? 후후. 우리 집은 그런 곳이야. 아버지에게 가랑이를 벌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년들이 가득한 곳. 우리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돈을 미끼로 해서 젊은 년들을 늘 섭취하고 계시지. 아주 그냥, 정기적으로."
.....하아. 이런 말에는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나 대신 대답해줄 사람이 있었다.
"얌마. 아무리 막되어먹은 아버지라도 그딴 식으로 표현하면 자식인 너나 나는 뭐가 되냐?"
물기가 채 마르지도 않은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 나타난 태근이 형이 내 옆에 걸터앉았다. 효진은 냉장고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어 나를 통해 형에게 건네주었다.
"흥. 오빠도 엔간히 해."
"하, 이것 참."
형은 효진의 이야기에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학교에 투서가 들어왔을 때, 그때 형은 술집에서 괴로워하며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 사람이 말이야.. 가진 게 많아지면 뭐가 제일 좆 같은지 아니? 내가 다가가는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 다가오는 사람은 일단 싫어진다. 이게 날 좋아해서 다가오는 건지 아니면 내가 가진 것을 좋아해서 다가오는 건지 몹시 헷갈리거든.
집안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저택. 수많은 메이드.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 속에 살아가는 기분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경멸하는 효진과 그런 동생을 두고도 허허 거리는 태근이 형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복잡한 걸,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뭐, 다들 나름의 집안 내력과 사정이 있는 거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아예 아버지가 없는 나로서는 자기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라 평가를 내리는 일에 대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자꾸 이야기해봐야 우리 얼굴에 똥칠이나 하는 거고.... 한석이 니 이야기나 해봐라. 대체 어디어디를 다녀온 거야?"
태근이 형의 능숙한 대화 진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아버지에 대한 대화는 나로서는 꽤 먹먹한 부분이라 그런 주제 전환이 참 고마웠다.
"아, 처음에는 정동진에 갔었는데요...."
그 후로 나의 종횡무진 얼렁뚱땅 백두대간 종주를 이야기했다. 효진이는 산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종종 등산을 다닌다는 태근이 형은 내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효진은 내가 들려주는 어떤 지역 이야기가 나올 때, 그곳에서 내가 자신에게 보냈던 엽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주욱, 소소한 일까지 모두 이야기 하다 보니 별빛다방에서 만난 레지의 은근한 유혹까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태근이 형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푸하하하. 4만 원? 야, 그거 너무 싼데? 혹시 딱 5분만 하게 해주거나 그런 거 아냐?"
"싸? 그게 싼 거예요? 전 그런 거 가격을 모른단 말이죠. 그럼 다른 데는 대체 그거 하게 해주는 데 얼마인데요?"
"글쎄다. 내가 지난번에 간 안마에서는....."
그러면서 태근이 형은 강남 모처에서 유행한다는 안마 서비스의 가격과 품질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이, 이보세요. 당신 옆에 여동생이 앉아있는데? 이런 이야기 괜찮은 거야?
.......분명 여자 하나에 남자 둘이 나란히 앉아 벌이고 있는 술자리임에도 어쩐지 아저씨 셋이 둘러앉아 대폿집에서 나누는 이야기만큼이나 질펀해지고 있었다.
안마방의 가격은 물론 거기서 어떤 서비스, 어떤 아가씨가 나오는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려는 형을 제지했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그랬다. 그러나 옆에 있던 효진은 맥주병을 빙글 돌리며 말했다.
"헤에. 그러면 나도 앞으로 한석 군이랑 할 때마다 12만 원씩 달라 그럴까?"
이...인마. 여긴 나만 있는 게 아니라 태근이 형, 그러니까 니 오빠도 있단 말이다! 얼이 빠져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려니깐 내 등을 팡팡 내려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뭐?! ..... 푸하하하하!! 너 이 자식! 벌써 효진이랑 그런 사이였냐?"
너무 놀랐다. 대개 여동생을 둔 오빠는 자기 여동생이 다른 남자랑 잤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화를 내는 게 보통 아닌가? 내가 뭐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그러나 태근이 형은 내가 효진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 궁금해 했다.
"어떻게 하다 둘이 그렇게 된 거야? 잠깐만. 너 분명히 전에는 한석이가 지혜랑 그런 사이라고 그러지 않았어?"
"원래 그랬지. 근데 지혜랑 내가 하다가 말이야...."
효진이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그 자리의 대화는 정말 갈 때까지 갔고 엉겁결에 나는 지혜와 있었던 일은 물론 효진이랑 했던 2대1까지도 다 털어놓고 말았다.
웃겨죽겠다며 껄껄 웃어대는 형과 내가 빠진 부분이 있으면 보충설명까지 해대는 효진, 이 둘 사이에서 난 생각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근데, 안 되잖아?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맥주는 끊이질 않았다. 집에 돌아갈 차편도 끊긴 터라 결국 난 손님방 하나를 안내받아 거기서 잠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새벽이 되자 효진이가 슬며시 침대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날 더듬었다.
"아까 낮에 했잖아."
이렇게 효진에게 묻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술 마시면 더 하고 싶어 지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돈 안 받으면서도 안마방보다 서비스 잘 해줄게."
라고 말하며 내 잠옷을 벗겼다. 효진 역시 잠옷을 벗었다.
"아, 난 진짜 그런데 안 간다니깐."
볼멘소리로 대꾸하자 효진은 내 아래쪽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룸살롱은 간다면서. 거기는 아가씨들 없어?"
"그거야 일하러 가는 거라고 했잖아....그런 일은 별로.....으음...."
효진은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고 내 물건을 입에 물었다. 하아. 더 이상은 생각을 포기했다. 이 밤을 어떻게 하면 더 뜨겁게 보낼 수 있는가에 대해 집중하기로 했다.
술에 취하고, 피곤에 쩔어 있으면서도 사람의 몸은 어떻게든 그런 쪽으로는 얼마든지 기능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효진이 안으로 몇 번이나 사정하고 그대로 끌어안고 쿨쿨 잠이 들었다. 꿈조차 꾸지 않을 만큼 달디 단 잠이었다.
그러다 설풋 잠을 깼다. 창에는 흰 커튼이 양쪽으로 걸려 있었지만, 이미 걷혀 있었다. 고스란히 창을 통과한 아침햇살이 효진의 얼굴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녀석의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 올려 보았다.
입을 다물고 조용히 눈 감고 있다면 효진의 얼굴도 그럭저럭 괜찮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뭐랄까. 미남형 얼굴이다.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선도 곱다. 숨을 쉴 때마다 짙은 속눈썹이 움직이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워낙 시끄럽고 남자다운 녀석이라 이렇게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건 정말 처음이었다.
손가락으로 얼굴선을 조금씩 따라가 보았다.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탱글한 볼따구를 살짝 찔러보았다. 그러다가 조금 그을린 빛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효진이 눈을 가만히 떴다.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잠시 몇 번 껌뻑이더니 이내 날 알아보았다.
"음... 잘 잤어?"
"어. 너도?"
"한석 군이 워낙 황홀하게 해주어서 말이야. 잘 잤지, 뭐."
배시시 웃는 녀석에게 다시 입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입술을 겹쳐 보았다. 혀를 살짝 섞고 나니 아래쪽에서 단단해지기 시작한 물건이 신경 쓰였다. 효진도 자기 맨 허벅지를 쿡쿡 찌르고 있는 태동을 느낀 모양이었다.
평소처럼 당연히 아래쪽으로 내려가 시동을 걸어줄 줄 알았는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자고?"
"응."
효진의 머리를 살짝 쥐고 부탁했다.
"빨아줘."
그러자 효진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런데, 자기야."
"응?"
"나야 상관없는데, 선미 씨 보는 앞에서 해도 괜찮아?"
".....뭐?!"
황급히 고개를 돌렸던 나는 끄아아악! 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거의 180도 회전에 가까운 움직임을 하느라 목에 엄청난 부담이 걸렸다.
그렇게 목을 돌린 덕분에 침대에서 약 세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는 하우스 메이드, 선미라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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