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2 / 0471 ----------------------------------------------
Route 6
밤새도록 우리 셋은 어울렸다.
효진이가 지혜의 보지를 빠는 동안은 엉덩이를 들게 하고 쑤실 수 있어서 편했지만, 지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켜 있을 때는 내가 다리를 위치시키고 자세를 잡기 상당히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 쑤셔 넣었고 간간이 지혜에게도 넣었다. 효진이가 좀 질투를 하긴 했지만, 내가 쑤시고 있는 동안은 자기도 지혜의 황홀한 표정을 보며 키스를 나누었기에 크게 불평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사정은... 양쪽에 골고루 했던 것 같았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쿵쿵쿵-
아침이 된 모양이었다. 모텔 창문에 드리워진 검은 커튼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쿵쿵쿵-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쿵쿵쿵-
문을 두드리는 건지 내 머리통을 두드리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눈을 비비고 고개를 드니 간밤의 행위가 얼마나 난잡했는지 보여주는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일단 알몸의 두 사람을 한쪽으로 잘 밀어두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지혜에게 꼭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효진의 뒤에서 넣느라 애먹었던 어젯밤을 상기했다.
쿵쿵쿵-
이제야 확실해졌다. 내 머리를 두드리는 게 아니라 문을 두드리는 게 맞았다. 설마 모텔에도 룸서비스가 있는 건 아닐 테고.... 머리맡에 놓인 시계를 보아도 아직 퇴실 시간은 아니었다. 옷을 찾아 입고 싶었지만, 어젯밤 방에 들어오며 옷을 사방에 벗어 던진 까닭에 양말 한쪽과 셔츠 말고는 찾을 길이 없었다. 일단 벽에 걸린 가운을 내어 걸치고 허리끈을 조였다.
쿵쿵쿵-
"네, 나갑니다. 누구시죠?"
문에는 도어뷰렌즈가 달려있지 않았다. 아침이라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어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가씨가, 안에 계십니까?"
아가씨? 순간 아가씨라고 불리는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홱 돌려 침대 위를 보았다. 방금 이불을 덮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걷어차고 자기 배를 북북 긁어대며 입맛을 다시는 저 효진이라는 애가 그렇게 불렸다는 걸 기억해냈다. 동시에 이 목소리의 주인도 누구인지 떠올랐다.
"서...선미 씨?"
"네. 그렇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 아침에, 그것도 춘천 모텔까지 대체 그녀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일까. 조심스럽게 문을 여니 전에도 보았던 메이드 차림을 한 그녀가 여행용 가방 하나를 손에 들고 서 있었다. 그녀는 내게 아주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는 방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그리고 지체 없이 침대로 걸어 들어가 효진을 흔들기 시작했다.
"아가씨. 아가씨. 일어나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라니... 무슨 일이라도?"
효진은 귀찮다는 듯이 이불을 끌어다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있었고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선미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이불을 확 들어 효진을 침대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들고 있던 이불을 지혜에게 덮어주었다. 인기척이 크게 났기에 지혜도 눈을 비비며 일어나려는데 이 난리통에도 효진은 결코 눈을 뜨지 않았다. 효진의 겨드랑이에 팔을 껴 넣어 강제로 일으켜 앉힌 선미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었다.
"오늘은 맞선이 다섯 군데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빨리 준비하지 않으면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실례인 줄은 알지만 부득이하게 찾아온 점, 양해바랍니다. 시간이 많지 않고 지금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분도 계시기에...."
말을 하면서도 선미의 손은 착착 준비를 갖추어갔다.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효진이었지만, 어느새 머리 빗질이 끝나고 얼굴에 팩도 다 붙여졌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걸로 보아 저건 안 일어난 게 아니라 일어나지 않은 척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선미의 악전고투 끝에 효진은 눈을 뜨지 않고도 어느 샌가 맞선을 위한 모양새가 다 갖추어졌다. 선미가 가져온 여행용 가방에는 효진의 속옷부터 시작해서 각종 메이크업 도구, 정장, 헤어스타일링 도구가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진정한 전문가가 펼치는 손길 아래 평소 동네 백수 꼬라지를 하고 다니던 효진은 말끔한 강남 며느리 스타일로 재탄생 했다.
지혜와 나란히 서서 그걸 구경하며 감탄을 내뱉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데.. 저 정도면 무죄라고 하기에 사법부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았다. 저 정도면 최하 징역 10년짜리 범죄급 변신이라고!
물론 효진이가 선보러 간다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지금 보이고 있는 광경은 무슨 진기명기를 보는 듯했다. 성형외과 입구에 붙어 있는 비포&애프터 사진 전후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결국 못 참겠는지 효진은 눈을 뜨고 날 가리키며 비난했다.
"씨잉... 넌 내가 선보러 간다는데 구경만 하고 있어? 뜯어말릴 생각도 안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말...말려야 하는 거야? 몰랐네..."
"내가 선 봐서! 너보다 더 멋진 놈 만나버려가지고! 결혼하겠다고 하면 넌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은근한 손길이 내 팔에 와 닿았다. 그쪽을 돌아보니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지혜가 내 팔을 끌어안고 있었다. 티셔츠를 입기는 했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아, 묵직하고 풍만한 감촉이 팔에 아주 잘 닿았다. 뭉글하면서도 묵직한 그것은 날 몹시 짜릿하게 만들었다.
지혜가 날 보며 말했다.
"그러면 나나 한석이나 너한테 차이는 거네. 차인 사람끼리 잘해 보지, 뭐. 어쩔 수 없네. 한석아. 나... 한번 갔다 왔는데, 괜찮아?"
그러면서 내 팔을 자기 가슴으로 꼬옥 당기는데..... 역시 넌 뭘 좀 아는구나.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자 효진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쳇! 아니면 내가 지혜랑 결혼해버릴 거야! 아이씨잉. 선 보는 거 정말 귀찮은데... 오늘도 째면 안 되나? 나한테는 이미 지혜라고 하는 가슴 크고 섹시한 애인이 있단 말이야."
그러자 효진의 치마 주름을 다듬고 있던 선미가 고개를 저었다.
"다른 날에는 많이 그러셨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오늘? 오늘이 왜?"
"왜냐하면..."
선미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애비가 왔으니까, 안 된다."
효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나 역시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효진의 아버지, 박 회장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고 그의 등 뒤에는 하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가볍게 눈인사를 보냈다. 그렇지만 난 너무 놀라 그 인사에 응대할 생각도 못했다.
"아...아빠..."
"회...회장님...."
나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했지만, 그는 여전히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효진에게 꽂혀 있었고 말투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겨우... 집에도 안 들어오고 하고 다닌 짓이.... 이러고 있는 거냐?"
"아빠, 나는..."
"게다가!"
그는 고개를 돌려 지혜를 바라보았다. 그가 나타나고 나서 지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박 회장의 손가락이 지혜를 가리켰다.
"여전히... 이 아이를 만나는 거냐. 그런 거냐? 아직도.... 아직도 그러고 있는 게냐?"
"아냐. 아빠. 난 그저...."
"그래서, 그래서 선 자리도, 남자도 다 마다하고... 그러고 있는 거냐고."
그의 말끝이 분노로 떨렸다. 손이 올라갔다. 아마도 효진의 뺨을 내려치기 위해서겠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한 번 그 모습을 봤던 사람으로서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잖아. 이미 행동은 무례하지만 말투만은 정중하게 말해보았다.
"무례하게 굴어 죄송합니다만... 제가 사랑하는 효진이가 맞는 걸 보는 건 사양하고 싶거든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박 회장은 자기 손목을 잡고 있는 날 올려다보았다. 그도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더 컸다. 바짝 붙어있는 관계로 그는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몹시 경멸하는 눈빛으로 날 훑어보았다. 아무리 내가 당신보다 가난하고 없이 살아도... 그런 눈빛으로는 보지 말아줘. 그건 사람을 보는 눈빛이 아니라 마치 벌레 보듯 하잖아. 기분이 몹시 나쁘다.
그는 한참 만에 노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네놈은 뭐냐. 네가 효진이 기둥서방이라도 된다는 게냐?"
하아, 이것 참. 그렇다면 내가 당신 딸 기둥서방이라고 말이라도 하란 말인가? 그렇게 쏘아붙여주고 싶었지만, 간신히 성질을 억눌렀다.
"기둥...까지는 아니고 곁다리 서방쯤 됩니다. 죄송합니다만 둘이서 보낸 시간과 관계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뭐라고?"
어쩔 수 없이 건방진 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딸 가진 분에게는 할 소리가 아니라서 내 뺨을 내줄 생각 정도는 당연히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는 날 뚫어져라 쳐다보며 손을 내렸다. 그의 표정이 이상했다.
"자네... 남자인가?"
보면 몰라?! 기가 막혔지만 대답은 했다.
"그렇습니다만..."
"호모나... 뭐, 그런 거는 아니겠지?"
"네에? 제가요?"
한 번도 내 성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은 없었다. 남자를 보면서 가슴이 설레거나 그의 알몸을 꿈꿔본 적은 없고 여자를 보면 좋아하고 살색 영상도 여자가 나오는 걸 보는 걸 좋아하니 분명 멀쩡한데 말이다. 게다가 어젯밤만 해도 여자 하나가 아니라 둘이랑 이렇고 저런 일들을 다양하게 했는데... 내가 왜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성에 대해 질문 받아야 하지?
"제...가, 게이로 보이시나요? 댁 따님이랑 교제중인데요...."
너무 황당해서 말이 잘 안 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를 쳐다보고 있자니 그 역시 내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나와 효진을 번갈아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다가 다시 물었다. 당당하고 낮은 목소리였던 아까와는 달리 몹시 주저하는 말투였다.
"그럼... 너희가... 그런 사이란 말이냐? 남녀....간의?"
"에? 그거야... 그렇게 물으시면....."
너무 대놓고 물어보는 통에 답을 못 하겠다. 효진 역시 황당한 표정이었고 내 얼굴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입을 딱 벌린 채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박 회장은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뒤에 있는 하영에게 귓속말로 무어라 한참을 말했다. 말을 하는 중간중간 우리를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고개를 다시 돌리는 걸로 봐서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이윽고 그는 방을 나가버렸고 하영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서 하영은 선미에게 회장을 보좌하라고 일렀고 선미는 가방을 챙겨 급히 방을 나갔다.
아침의 평화가 산산이 깨져버린 부산한 아침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건 30분가량이 흐르고 나서다. 옷을 다 찾아 입고 근처 카페로 내려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앞에 시켜두고 나와 효진, 하영과 지혜 이렇게 넷이 둘러앉았다. 하영이 안경을 고쳐 쓰며 내게 말했다.
"그렇다면.... 한석 씨는 게이가 아니었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