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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443화 (44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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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6

아, 정말 이 여자는 진짜.... 테이블을 탁 내리치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당연하죠! 대체 어디서 그런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아. 이게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건지..."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박 회장은 자기 딸과 지혜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이 사실에 효진이 제일 먼저 비명을 질렀다.

"아빠가?! 대체 언제부터!"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혜 씨랑 그러지 않았니? 아마도 그때 우연히 보신 모양이다."

"그거야... 그랬지만...."

효진은 지혜를 돌아보았다. 아마도 두 사람의 육체적인 관계는 그때부터였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 모습을 그녀의 아버지가 보았다는 것... 그에게도, 그의 딸에게도 이 사실은 충격이 될 만도 했다.

하영은 다시 손을 꼽으며 효진이 했던 일을 손꼽았다.

"지혜 씨가 자취할 때 그곳에서 머물기도 했구."

"그랬죠."

"회장님은 너가... 지혜와 그러는 걸 본 이래로 네가 여자만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대단히 걱정하셨지. 그래서 널 빨리 시집보내려고 그렇게 애를 쓴 거야."

"아아...."

나로선 상상이 잘 가질 않는다만.... 굳이 상상을 해보았다. 내 딸이 여자와 성적인 접촉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모른 척할 것인가. 아니면 못 하게 막을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빨리 눈앞에서 치우려고 노력할 것인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석이가 왜 게이라는 거야. 그게 ...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효진의 질문에 하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평소처럼 빠른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회장님은 네가 동성애자라고 철썩 같이 믿고 계셨다. 그런 네가 남자랑 있다고 하니 그 남자도 당연히 동성애자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언젠가 네가 한석이랑 한 방에서 나오는 걸 봐도 별로 개의치 않으신 거야. 그리고 오늘 아침, 어젯밤에 너랑 지혜 씨랑 그리고 한석 씨랑 같이 방을 쓴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당연히 너랑 지혜 씨가 그러고 있을 거라 생각하셨던 모양이야. 한석 씨는.... 아예 논외로 치셨지. 그게 아니면 네 그런 취향이 한석에게 전염되었다고 생각하시거나."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물론 나라고 해서 그들의 처지나 행동양식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모르고 있다는 편이 맞겠다.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하고...

그러나 박 회장의 생각은 차원이 다를 정도로 터무니없었다. 동성애가 무슨 전염병도 아니고 옆에 있다고 해서 그게 전염되나?

그리고 애초에 효진이는 동성애라고 보기보단 여자 사이에 흔하게 있는, 아니, 저 정도가 흔하진 않지만, 아무튼 아주아주아주아주 지나친 우정이었다고 보는 게 정확했다. 좀 특이한 정도지 저게 무슨 동성애야. 그녀는 나랑도 열심히, 아주 열심히 했단 말이다. 잠깐, 그러면 양성애자라고 해야 하나. 도무지 모르겠다.

몇 달 전, 효진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비에 쫄딱 젖은 채, 내 방에 찾아와 몸을 섞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날이었다.

-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때 내가 지혜랑 막 이상한 짓 한창 시작할 때라서 솔직히 스스로 겁이 좀 났었어. 내가 남자를 안 좋아하는 건가 싶어서.... 남자랑 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일단 제일 자주 보는 사람인 과외 선생을 한 번 꼬셔봤지.

효진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그녀의 성격상 아마도 자신의 성적지향에 대해 꽤 고민을 했었을 리라 생각했다. 여자를 좋아하는 건지, 남자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여러 남자를 만나며 계속 고민해왔던 것도, 지혜와 나 사이에서 계속 왔다 갔다 했던 일들도, 어쩌면 그녀의 오랜 고민 중에 하나일지 몰랐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이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지레 결정을 내려버렸고, 그 상태로 딸을 내보내려고 했다. 설령 자기 딸이 정말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그대로의 행복을 빌어주면 될 텐데, 그러면서도 또 남자와 결혼 시키려고 하다니.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하영은 회장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한 번 그렇게 고정관념이 생겨버린 그의 잘못을 지적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오늘 이 일을 모두 알고, 회장님은 몹시 당황하셨어. 서울에 일단 돌아가 계시라고 말씀 드렸다. 오늘 선 자리는 일단 전부 캔슬이다. 이따 한석 씨와 함께 집에 가보도록 해. 하실 말씀이 있을 거야."

아침부터 난데없는 침입을 받고, 또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국 효진과 부친의 해묵은 오해의 고리는 하나 풀린 모양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를 나왔다. 전망대 난간에 기대어 산머리에 덮인 구름을 구경하고 있었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았다. 효진이었다.

"자기야."

"응?"

어딘가 결연한 목소리. 난데없는 결투신청 같은 목소리에 자못 긴장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난간에 기대고 있는 팔을 빠트릴 뻔했다.

"나랑 결혼하자."

"뭐?"

난생처음 받아보는 프러포즈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어느새 내 옆에 나란히 선 효진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땀이 살짝 맺혀 있는 그녀의 이마를 바라보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먼 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효진은 드문드문 말을 이어 나갔다.

"나... 그렇게 나쁜 상대가 아니잖아. 우리 집 잘 살기도 하고.... 우리 오빠도 자기가 볼 때 괜찮은 사람이고..... 아버지야 뭐 어떻게 하면 될 거고.. 엄마는 원래 우리 일에 관심이 별로 없으니 상관없을 것 같아."

"효진아. 네 가족이 문제가 아니라..."

"나, 싫어?"

"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럽잖아.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내심 효진과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결혼이라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냐.

"지금 당장 결혼하자는 게 아냐. 지혜가 그 자식이랑 이혼하고 나면.. 떨어지고 나면 너무 외로울 거 아냐. 나 지혜랑 같이 살고 싶어. 그렇게 상처 입고 외로워하던 아이를 내가 데리고 살고 싶다고."

그거야 효진의 오랜 숙원이었다. 지혜를 데리고 사는 거. 그녀가 결혼하기 전에도, 결혼 하고 난 후에도 효진은 늘 그걸 꿈꿔왔다. 심지어 나와 하는 중간에도 말이지.

그런데 그건 그거고 왜 날 끌어들이냐고.

"근데 갑자기 나는 왜?"

"우리 아버지가 나한테 결혼을 빨리하라고 강권하는 이유를 알았잖아."

"그거야... 그렇지."

어처구니없지만, 동성애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준의 행동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내가 부모 된 입장이라면.. 또 다를까? 그건 알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결국 내가 누구랑 결혼하느냐가 관심 있는 게 아니라 남 보기에 부끄러워서라도 빨리 결혼시켜 버리려고 하는 거야. 남자랑 결혼을 하면...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하시는 거지. 그러니까... 네가 나랑 결혼해 줘. 그러면 우리 아버지도 만족할 거구.... 지혜도 나와 함께 있을 수 있어."

"지혜도... 함께라니?"

"응. 어젯밤에 너 우리에게 실컷 싸대고는 먼저 잠들었잖아. 그러고 나서 지혜와 한참 동안 이야기했어. 언제고 내가 우리 집의 간섭에서 자유롭게 되면, 지혜를 내가 데리고 살겠다고. 지혜도 이제 남자라면 다 꼴 뵈기 싫지만.... 너라면 괜찮다고 했어. 그러니까, 우리 셋이 살자. 어때? 나쁜 제안은 아니잖아. 섹시하고 관능적인 효진이라는 여자와 가슴 크고 마음 착한 지혜라는 두 여자를 공짜로 얻게 되는 거라고! 어때?"

손가락을 들어 효진의 이마를 가볍게 찔렀다.

"섹시한 건 지혜 쪽인 거 같은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가슴 큰 쪽을 더 좋아하잖아."

그러자 효진이 발끈했다.

"지혜 가슴은 내 꺼야!"

"하아. 이것 봐봐. 네 태도를 보고 있자면, 나랑 결혼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네가 지혜랑 결혼하는 데 나를 동원하는 것 같다니깐."

효진은 살짝 풀이 죽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그 터무니없고 무모한 생각에 혀를 차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런 그녀의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귀엽게까지 보였다. 이런이런, 나도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구나. 풀이 죽은 효진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가끔, 지혜 빌려 줄 거야?"

세계의 근본적 실재는 정신이나 관념이 아니라는 위대한 마르크스여. 그의 유물론을 빌어 감히 사람을 대여의 대상으로 보고 있나니. 이래도 되는 걸까.

나란 놈은 정말, 답이 없네. 그러나 내 제안을 듣고 반색하는 얼굴을 하는 효진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빌려주고 말고! 같이 해도 돼!"

빌려준다는 건, 결국 소유는 자기 꺼란 소리잖아. 나랑 결혼하겠다고 나서면서도 놓지 않겠다는 거잖아. 하하. 그래.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면 말이야. 징표의 의미로, 내게 키스해줘."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효진이 내 목에 와락 팔을 끌어안고 안겨왔다. 숨이 막혔지만 포옹을 받아들여 꾹- 안아주고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 항상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으면서, 그렇게 살자. 약속해."

효진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 두 사람은 깊은 입맞춤을 나누었다. 지혜가 우리를 부르러 올 때까지, 효진이 다시 지혜를 끌어안을 때까지.

우리 셋은 그렇게 미래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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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이번 루트는 454회에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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