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445화 (44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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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6

처음에 효진이가 배타고 여행가는 거라고 하기에 예전에 선배들 낚시갈 때 따라가 보았던 통통배 정도를 머릿속에서 그려 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가져다준 카탈로그에 그려진 배의 크기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컸다. 합성이나 뭐 그런 건 줄 알았다. 나중에 일본에 도착해 배 실물을 보았을 때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무진장 컸다. 진짜진짜 컸다. 겉보기에도 컸고 안에 들어가 둘러본 시설도 무지하게 컸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크기였다.

배 전체는 몇 개의 층으로 된 데다가 도서관, 영화관, 사우나실, 마사지실은 물론 콘서트 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내부구조의 방대함도 그렇고 우리가 묵는 방 크기도 그렇고 주위를 둘러 볼 때 보이는 바다 역시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컸다.

보통 크루즈가 아니었다. 엄청나게 크며 또 엄청나게 비쌌다. 요코하마에서 출항하여 동남아, 인도, 아프리카, 포르투갈, 이집트, 유럽을 돌아다니며 백 일 넘게 유람하는 항로였다. 말 그대로 세계일주인 셈이었다.

언뜻 카탈로그에서 본 승선 요금은 일인당 500만 엔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약 5천만 원... 우리 일행은 세 사람이었기 때문에 총 비용은 1억 5천만 원 정도였다. 말이 좋아 1억 5천이지, 서울 시내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어디 멀리 보내 줄 테니 효진이를 임신시키고 오라는 박 회장의 이야기는 결코 빈말이나 허풍이 아니었다. 우리는 정말 멀리 갔고, 임신을 위한 노력은 꽤 많이... 다양하게 기울였다. 물론 효진이에게만 그런 건 아니었지만....

킹사이즈 침대가 놓인 특실에서 머무는 세 남녀는 밤마다 어울렸고, 사정은 차별 없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흐아아아아암!"

효진이 기지개를 켜며 팔다리를 쭉 뻗었다. 그녀가 내지르는 아침 기합 소리에 나도 잠이 깨어 몸을 꿈틀거렸다. 눈을 감은 채로 손을 옆으로 뻗자 뭉클하고 커다란 것이 잡혔다. 감촉만으로 지혜 가슴이라는 걸 알아서 몇 번 더 주물렀다. 잠이 덜 깬 지혜는 꿍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지만, 그 다음에는 효진이 달라붙어서 뒤에서 끌어안고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흐음..."

나는 효진 뒤에 붙어서, 지혜보다는 좀 작지만, 그래도 꽤 감촉이 좋은 효진이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침 기운을 받아 다시금 단단해진 물건을 효진이 엉덩이에 대고 문질렀다. 두 손으로 지혜 가슴을 만지던 효진은 한 손을 뒤로 돌려 내 물건을 어루만졌다.

크루즈 여행의 아침은 보통 이런 식이었다.

객실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환한 빛은 침대 위에 있는 우리 세 사람을 골고루 비쳐주었다. 효진은 주로 알몸이 되어 자는 걸 선호했고, 지혜는 얇은 잠옷을 입는 걸 좋아했다. 물론 밤마다 그 잠옷이 들춰지고 벗겨져서 제대로 입고 잔 적은 없지만 말이다.

나도 원래는 팬티만 입고 자는 게 편하지만, 매번 벗겨지는 나서는 다시 찾아 입는 게 귀찮아서 아침이면 보통 알몸이었다.

옥내 전화기를 들어 아침 식사를 룸서비스로 주문하고는, 선내 일정표를 보면서 오늘은 뭐하며 놀까 고민했다. 매일 아침, 가장 큰 고민이 그거였다. 오늘 뭐 먹고, 뭐 하고 놀지?

효진은 갑자기 풀장에서 수영을 하자고 선언했다. 그러더니 여행 가방에서 몇 개의 수영복을 골라왔다.

"그런 건 대체 언제 준비해놓은 거야?"

"나한테는 짐싸기 프로페셔널 전문가가 있거든."

"아, 선미 씨 말이구나..."

원래는 선미 씨도 따라오려고 했었다. 그런데 효진이 우리끼리만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해서 거절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배에 타기 직전, 선미가 그렇게 묻자 효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다녀오고 나면 선미 씨가 우리 셋을 질리도록 봐줘야 하는데 말이죠. 그리고, 얘도 말이에요. 그러니 당분간 좀 쉬세요. "

효진은 날 가리키며 웃었고, 선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날 보며 어딘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배에 탄 다음, 아무래도 그 표정이 마음에 걸려 효진이에게 아까 한 소리가 무슨 뜻이었냐고 물었다. 효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전에 이야기 안 했나? 우리집 메이드들은... 밤시중도 겸하고 있어. 네가 우리집에 들어오면, 아마도 내 전속이었던 분들이 네 전속도 겸하지 않을까 해서."

"밤시중...? 설마... 그거...."

효진은 싱긋 웃으며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난 너무도 명확하게 이해해버렸다. 오, 세상에. 박 회장이 엽색 행각으로 유명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 집에 있는 수많은 메이드들이 정말 진짜로 그런 목적으로도 존재하는 거라니. 내가 할 말을 잃었다....

여행 가방 덕분에 그렇게 선미 생각이 나버렸다. 나중에 돌아가 그 저택에 들어가 살게 되면, 대체 어떤 삶이 시작되려나 상상조차 나질 않았지만... 전에도 보았던 그 수많은 메이드들이 밤에는 다른 일도 하고 있다는 걸 알아버린 후로는, 약간의 두려움마저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내 앞에서는 지금 수영복 패션쇼가 한창이었다.

효진은 싫다고 도망가려는 지혜를 붙잡아 수영복을 번갈아 입혀보았다. 그리고 자기도 이것저것 갈아 입어보는 아주 참 고마운 행사를 갖더니 결국 결정한 모양이다. 두 사람은 신이 나서 수영을 하러 갔고, 아, 아니지. 신이 난 건 효진이 뿐이고 지혜는 거의 도살장 소 끌려가듯 갔구나.

"이건 수영복이 아니라 거의 속옷이잖아!"

끈으로만 되어있는 뒷부분과 엉덩이 뒤를 겨우 가릴까 말까한 비키니를 입은 지혜는 울상이었다. 그러나 효진은 당당했다.

"몇 번을 말해. 여긴 외국이야. 원피스 수영복은 아무도 안 입어. 그러니 아예 가져오지도 않았어."

두 사람이 수영장에서 노는 동안, 나는 풀장 사이드에 놓인 비치체어에서 책을 읽었다. 목이 마르다는 지혜의 요청에 따라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주스를 주문해두었다. 잠시 후, 급사가 아까 주문한 것을 갖다 주었다.

"どうぞ."

이 배는 일본 배라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일본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보통 동양 사람을 보면 일본말로 말을 걸었지만, 난 효진이만큼 일어를 잘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입에 익은 대로 영어로 답하고 말았다.

"Thank you-"

급사는 내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돌아갔다.

내가 앉은 기다란 비치체어 옆에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 놓인, 방금 급사가 가져다 놓은 석 잔의 열대과일 주스를 바라보았다. 색이 무척 고왔다.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고 침이 저절로 넘어갔다. 굳이 가격으로 따지자면 강남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한 잔에 12,000원은 족히 받고도 남을 정도로 고급스럽다.

아니지, 여기서는 음.... 엔화로 해야 되니까..... 몇 엔이지.... 음.... 아이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차피 돈 내고 먹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여기서는 물품 구매를 제외한 기본적인 식사와 간식, 모든 부대시설 이용이 무제한 공짜다. 엄밀히 말하면 공짜가 아니라 이미 돈을 잔뜩 내고 들어온 사람들이니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해야 하나.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탁 트인 선상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삼삼오오 모여 바다를 보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쪽에 커다랗게 자리한 수영장은 한가롭게 수영하는 사람들이 노닐고 있었다.

'정말 별세계구나....'

바다 위에서 따로 물을 채워 수영을 하다니. 대체 어떤 변태 같은 사람이 그런 구조를 설계했나 모르겠다. 그러나 그 기분은 정말 별미이긴 했다. 나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물에 젖은 두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음료수 왔네? 안 부르고 뭐했어?"

"어? 어... 생각 좀 하느라."

대답을 하며, 지혜 쪽을 바라보았다. 걸을 때마다 그녀의 몸짓에 따라 출렁거리는 가슴을 보며 참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주변 모든 남자들의 시선이 그곳에 쏠렸다. 움직이는 무언가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가는 것이 남자의 속성! 그렇게 믿고 싶었다.

왠지 우쭐해졌다.

밤이 되면 저 가슴을 물고 빨고 주무르며 놀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두 명 있는데, 나는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손바닥만 한 천이 가슴을 가리고 끈으로 그걸 유지하고 있는 탑과 측면 부분이 끈으로 된 팬티로 이루어진 검은색 비키니는 너무도 고마운 차림이었다. 그것만으로 가리기에 그녀의 몸매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가슴을 감싼 천에 이어져 목으로 연결된 끈이 아슬아슬했다. 잠깐, 저거, 저 풍만하기 이를 데 없는 가슴의 무게를 끈만으로 견딜 수 있는 건가. 끈에 무슨 철제 심줄이라도 들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직물로 된 끈이 저 가슴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일까. 몹시 궁금하니 나중에 내가 직접 끌러보고 재질을 확인해보아야겠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 부끄러우니까."

가슴에 너무 시선을 집중한 걸까. 그렇지만 그렇게 출렁이며 다가오는 것에서 눈을 뗄 만큼 남자란 동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나는 전혀 부정하지 않고 선선히 인정했다.

"안 보고 있기엔 너무 아깝잖아. 보기 좋은데, 뭘."

"아이, 차암."

지혜는 테이블에 긴 타월을 들어 몸에 둘렀다. 나는 물론, 인근에 있는 할아버지까지도 몹시 아쉬운 기색을 보이는 걸로 보아 남자새끼들은 정말 다 하나같았다. 인종도 국경도 나이도 필요 없었다. 그저 빵빵한 여자 몸이라면 다들 환장을 하지. 암, 그렇고말고. 시각적인 자극에 무너지는 거, 그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는 걸까.

"왜 또 가리고 있어? 기껏 입혀두었더니."

물론 여자 중에서도 예외는 있었다. 물빛 비키니를 입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내 여자, 효진이 역시 지혜의 몸이라면 환장을 하는 사람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재원이다. 그녀가 다가오며 지혜에게 핀잔을 던졌다. 자기가 애써 입혔는데 왜 가리냐는 투다.

하하. 역시 그녀도 지혜 감상용으로 저런 비키니를 고른 게 틀림없었다. 지혜는 내 우측에 앉아있었기에 효진은 내 왼쪽 의자로 와서 앉았다. 물에 젖은 수영복에 감싸인 몸매를 몹시 고맙게 감상하며 그녀들에게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오늘 밤에는 수영복 입고하자고 해볼까....'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또한 매우 현실적으로 임하며 효진을 보는데 딱 눈이 마주쳤다. 둥글게 말린 빨대로 망고주스를 열심히 빨던 효진은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딱 가리키며 말했다.

"앗! 한석이 표정이 음흉해! 뭔가 이상한 거 생각하고 있구나! 그치?!"

좀 뜨끔했지만, 이럴 때는 아주 좋은 대처 방법이 있었다.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며,

"응. 니가 하고 있는 딱 그 생각을 나도 지금 하고 있어."

라고 대답했다. 사람은 솔직해야 한다. 거짓말을 하면 못 쓰는 법이다. 그리고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 효진은 씨익 웃으면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이따 수영복 입고서.... 셋이 한 번 해볼까? 어때?"

역시 효진이다. 역시 내 마누라다. 몹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뒤에서 또 다른 마누라인 지혜가 내 등을 두드렸다. 아프긴 하지만 견딜 만 했다. 그렇게 앙탈을 암만 부려도 네가 결코 우리가 하자는 대로 안 할 사람은 아니잖아... 막상 하기 시작하면 잘 하면서 왜 그래....

주스를 다 마신 두 사람은 다시 또 풀장으로 돌아갔다. 나도 책을 다 읽으면 풀장으로 들어가기로 약속했다. 주스를 다 마시고 다시 깔깔거리며 풀장으로 돌아가는 두 사람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근처에 앉은 외국인 한 명이 내게 물었다.

"Excuse me. Which of that girls is your partner?"

아무래도 일본에서 출항하는 배다 보니 일하는 사람이나 승객의 대부분의 일본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영미권 사람이나 중국 사람도 종종 섞여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한국 사람은 우리 셋뿐이었다. 효진이는 일어를 유창할 정도로 했고 영어도 곧잘 해서 어려움이 없었지만, 일어는 거의 모르고, 영어에 대해서는 정규교과 과정밖에 익히지 않은 나와 지혜는 참 많이 힘들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짙은 갈색머리가 곱슬곱슬한 백인 남자였다. 이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잭이었나, 존이었나. 요 며칠 전부터 계속 눈인사를 주고받던 사이였다.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계속 지내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는 오가며 눈인사를 나눌 정도의 사이가 저절로 되었다. 내가 영어가 워낙 짧아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하는 게 약간 아쉬울 정도였다.

"음... 뭐라고 해야 하나. Both of them. They are my partners."

그러자 그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날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Excellent!"와 "Fantastic!"을 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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