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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어쩌면 그녀는
들어가며 ────────────────────
이하 스토리는 더블데이트 루트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며 본편의 등장인물과 시간, 사건만 차용한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외전에서의 모든 이야기는 본편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고 진행됩니다.
───────── 더블데이트 외전 < 어쩌면 그녀는 >
법무법인 새암에는 제17법무팀이 있다. 그렇지만 팀장은 없다. 그리고 팀원도 없다. 그렇지만 손하영은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영, 그녀 자체가 제17법무팀의 전부였다.
"손하영 팀장님!"
복도를 걸어가던 하영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기획실의 장승호였다. 하영은 걸음을 멈추고 승호를 기다렸다.
"왜 그러시죠, 장 주임님."
"하아. 계속 연락이 안 되셔서..."
달려오던 승호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하영은 승호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땀을 많이 흘리셨네요."
"아,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손 팀장님."
안 그래도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하영의 눈매가 더 사나워졌다. 땀을 닦느라 그녀의 표정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승호는 눈치 없는 소리를 계속 해댔다.
"팀장님 핸드폰으로도 연락이 계속 안 되셔서 직접 찾아다니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여기 계셨네요. 다름이 아니라..."
"전 팀장이 아닙니다."
"네?"
"팀장 대리죠. 그러니 손 팀장이라고 부르지 마시고, 직대라고 부르거나 원래 직급인 과장으로 부르시길 바랍니다."
"아, 저 그게..."
승호는 순간적으로 답변이 궁색해졌다.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하영의 능력은 최고였고, "위"로부터의 신임도 두터웠다. 회사 내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사장과 하영이 나란히 걷고 있다면, 그 어떤 직원도 하영에게 먼저 인사를 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하영이 맡은 업무 양은 일개 팀장이 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국내 굴지 그룹 중 하나인 JS그룹에서 핵심이 되는 인물을 하나를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 않고 하영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최소한 JS그룹의 속사정을 대충이나마 아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말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팀장으로 불리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팀장급이면 대개 오십 줄인 사람이 보통이었고, 그녀는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는 직급으로 불리길 원치 않았다. 그랬기에 고집스럽게도 "팀장 직무 대행"의 자리를 고집하고 있었다.
JS그룹 안팎으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법적 절차를 담당하는 법무법인 새암은 원래 제16법무팀까지만 있었다. 그러나 그룹 회장이 내린 지시로 인해 하영이 들어오자, 그 어느 법무팀장도 하영을 밑에 두길 꺼려했다. 전에 없던 일이라 회사 내 갑론을박이 심했다. 그러다가 급하게 팀장으로 내부 승진한 인사 한 명이 존재하지도 않던 제17법무팀을 만들어 팀장이 되고, 거기에 하영이 팀원으로 들어가는 결론이 났다.
제17법무팀장은 하영이 팀원으로 자리를 잡자마자 외국 지사로 파견 나갔다. 그렇게, 팀장도, 팀원도 없는 제17법무팀의 이상한 구성이 완성되었다. 다들 하영이 당연히 팀장으로 승격하리라 예상했지만, 하영은 부르기도 힘든 "팀장 대리", 그리고 "과장"이라는 직함을 고집했다. 이유는 앞서 말한 이유에서다. 이 회사 내에서 하영이 내세운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팀장도, 팀원도 없이 회사 내에 엄연히 존재하는 팀이라는 건 어찌 보면 그녀의 영향력을 더 크게 대변하고 있었다.
승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아, 알겠습니다. 손 과장님. 제가 과장님을 찾은 건 다름이 아니라 이걸 전해 드리려고..."
"뭡니까."
하영은 승호가 내민 손에 들린 문건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번쩍이는 금테 안경 너머 눈으로 그걸 빠르게 훑어본 그녀는 내용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이건 C-프로젝트 말이군요. 맞습니까?"
"M-2건이랑 겹치기도 합니다."
C프로젝트의 C는 Choi의 약자였다. 하영으로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얼마 전부터 회장이 주목하고 있는 한 청년의 성(姓)이었다. M프로젝트는 Marrige의 약자였다. 언젠가는 추진해야 할 "결혼"에 관한 일이었다. 이 모든 게 하영이 담당하고 있는 일 중 일부였다.
승호가 내놓은 대답을 들고 하영은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승호에게 현재 효진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승호가 아직 출발 전이라고 대답하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직접 가도록 하죠."
"팀장님이 직접이요?"
놀란 승호가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하영이 짓는 싸늘한 눈빛뿐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알아챈 승호는 황급히 다시 대답했다.
"아니, 과장님이..."
"차량 준비 부탁드립니다. 효진에게는 제가 연락하죠."
"네!"
승호는 몸을 돌려 지하 주차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하영은 그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내 준 손수건은 돌려받지 못했다. 자신의 손을 떠난 건 빠르게 포기하는 그녀다. 품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곧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효진입니다."
"나야. 하영."
"어머, 언니. 어쩐 일이에요?"
"너 두 시에 스케줄 있지 않아?"
인사 따위는 생략하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하영과 무척이나 나른하고 느긋하기 짝이 없는 효진의 말투는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두 사람의 성격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화였다.
효진은 천천히 대답했다.
"그랬던가?"
자신은 모르는 일이란 투였다. 하영은 성질이 났다.
"그랬던가는 무슨.... 빨리 준비해. 지금 데리러 간다."
"아이 참, 안 가면 안 돼?"
"다른 건은 모르겠는데 이건 회장님이 직접 주선하신 자리야. 네가 안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걸 생각해."
전화기 너머 풀썩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하영은 효진이가 침대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몇 마디 괴성을 지르던 효진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그럼 난?"
"넌, 뭐."
"내가 힘든 건, 누가 위로해주지?"
하영은 효진의 곁에서 그녀를 보필 하고 있는 사람들 이름을 하나하나 댈까 하다가 그냥 참았다. 효진은 늘 이렇게 투덜거리지만, 하영에게 있어 그건 철부지 어린애가 부리는 투정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하영이 보기에 효진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어 문제였다. 불의의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혈육을 모두 잃고 철저히 혼자 살아온 자신보다는 더 많은 이들이 효진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걸 알려주고도 싶었지만, 어쩐지 구차하게 생각되어 그러지 않았다.
하영은 마른 침과 함께 숨을 삼켰다.
"글쎄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이제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성인이잖아."
"성인이면 뭐해.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데. 그래 놓고 다른 건 알아서 하라니. 이건 잔인한 처사라고 생각하지 않아, 언니?"
하영은 이제 참지 않았다. 차가운 말을 쏟아냈다.
"어떤 이에게는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응당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여태 네가 누리고 살아온 것에 대한 지불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때? 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살아있음으로해서 누군가에게 빚을 지거든. 그걸 갚는 건 살아있는 사람으로서의 의무야. 그게 싫으면 당장 맨몸으로 그 집안을 떠나. 그건 또 싫지? 네가 가진 특권은 여태까지 숨 쉬듯 너무도 자연스러웠으니까 네 눈엔 보이지 않겠지."
변호사의 말투는 상대의 반론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효진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언니랑은 무슨 말을 못 하겠다... 흥. 근데 진짜 나 오늘 약속 있었어. 이거 빼먹으려고 뻥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친구랑 같이 다른 친구 만나러 가기로 했단 말이야."
하영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효진이 누군가 만나기로 했고, 상대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은근한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은 선을 봐. 그렇다면 네 친구에게 도움을 받을만한 방법을 내가 알려줄 테니."
"응? 정말? 어, 어떻게?"
몹시 기뻐하는 효진을 향해 하영은 한숨을 쉬며 재차 확인해주었다. 전화로 그녀가 미리 준비한 아주 작은 꼼수 하나를 전수한다. 그러자 효진은 깔깔거리며 찬성했다.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니지만, 분명 효진이라면 이런 걸 좋아하리라 생각했던 하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선미 씨! 나 준비 좀 해줘!"
효진이 선미를 불러 외출준비를 하는 걸 확인한 하영은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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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다른 글을 쓰기도 했고, 개인적인 신변 변화도 있었습니다.
또한, 기존 소설 표지가 "음란하다"는 이유로 조아라에서 강제 삭제 조치를 취한 터라
새로운 이미지로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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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하영'을 처음 등장시킬 때만해도 원래 그녀의 사이드 스토리는 어둠의 다크 포스를 풍길 예정이었습니다. 기존의 <장미정원>에서 살짝 보여드린 손하영의 과거를 떠올리면 대략 어떤 방향이었을지 예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여차저차한 사정 때문에 밝고 노말한 이야기로 갑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한 편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