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457화 (457/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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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어쩌면 그녀는

들어가며 ────────────────────

이하 스토리는 더블데이트 루트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며 본편의 등장인물과 시간, 사건만 차용한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외전에서의 모든 이야기는 본편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고 진행됩니다.

───────── 더블데이트 외전 < 어쩌면 그녀는 >

"그렇습니다만...."

한석은 하영이 던지는 질문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서는 하영을 오늘 처음 본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사진으로 늘 보고 있던 하영은 그가 자못 친밀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하영은 되도록 딱딱한 어조로 자신을 소개했다.

"손하영이라고 합니다. 박효진 씨가 보내서 왔습니다."

그러면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명함을 내밀었다. 한석이 명함을 받아들고 읽어보더니 눈썹을 꿈틀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유명한 법무법인의 이름을 모를 리 없는 게 분명했다.

그는 거기에 적힌 직함과 이름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다.

"팀장 대리... 손하영 변호사님?"

"예. 가사 소송 및 재산분할 소송 전문입니다."

하영은 자신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말했다. 사실 그녀가 마음먹고 자신이 하는 일을 제대로 말한다면 한 문장 정도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기도 했다. 그녀는 안경을 고쳐 올렸다.

"그와 동시에 박효진 씨의 뒤치다꺼리... 아니, 서포트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분이 어쩐 일로...."

"오늘 원래 효진 씨와 약속이 있으셨다구요? 맞습니까?"

"예, 그랬죠."

"그런데 효진 씨가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함께 가실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걸 전하러 일부러 오신 거예요?"

"이딴 사소한 일을 하려고 제가 올 필요까지는 없습니다만 계약은 계약이니까요. 그리고 덧붙여 한석 씨를 끌고 오...아니, 모셔 오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하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녀는 원래 이렇게 막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석의 표정이 워낙 멍해있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본심이 자꾸 튀어나오고 말았다.

"어딜 가는데요?"

"어디라고 말을 하면 한석 씨가 따라오지 않을 테니 그냥 닥치고 따라오라고 전해 달라고 하더군요. 만약 따라오지 않는다면 지금 다니시는 학교에 사람을 풀어 한석 씨 물건 사이즈를 불어버리겠다고...."

그 순간, 한석 옆에 서 있던 여학생이 던지는 시선이 단숨에 차가워졌다. 한석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허둥거렸다.

"쿨럭! 아, 아니. 그런 이야기를 무슨 길 한복판에서!"

"그럼 차에 타시겠습니까?"

한석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옆에 있는 여학생 눈치를 보았다. 여학생은 하영이 나타난 게 꽤 불쾌한 듯 보였다. 방금 나온 이야기만으로 한석이 말하지 않은 비밀 몇 가지쯤 - 한석이 효진과 어떤 사이라든가, 그 깊이라든가 - 은 충분히 눈치 챈 표정이었다. 한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하려 했다.

"저기, 유진아... 저기 말야."

"아, 몰라요. 아저씨 마음대로 해요!"

유진이라고 불린 여학생은 소리를 꽥 지르고 그대로 몸을 돌려 가버렸다.

하영은 그제야 저 여학생이 C-프로젝트에서 언급된 한석의 과외상대, 진유진이었음을 깨달았다. 서류상에서는 이름을 몇 번 보았지만, 직접 얼굴을 본 건 처음이다. 하영은 그 여고생이 어딘가 낯익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봤지?'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하영은 그 소녀 얼굴이나 분위기가 퍽 익숙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내가 아는 누군가와 상당히 닮았어. 누구지?'

하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석에게 다가갔다. 그는 여학생이 뛰어간 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바짝 다가선 하영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덧붙여 모양도 꽤 괜찮으시다고...."

효진이 이런 소리를 한 적 없다. C-프로젝트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영은 어쩐지 한석을 놀리고 싶었고, 자기도 모르게 이런 소리까지 꺼내고 말았다.

그녀가 예상한대로 한석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펄쩍 뛰었다. 하영은 그 모습이 퍽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이 남자와 효진은 과연 어디까지 간 사이일까 능히 짐작되기도 했다. 보고를 받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확인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누군가를 놀려 먹는 것, 그것은 하영이 여태 살아오면서 익숙하지 않은 것에 속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 매우 능숙하게 하고 있었다.

"타요! 타면 되잖아요!!"

한석은 조수석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탄 하영은 한석을 좀 더 골탕 먹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던지는 말 하나하나에 일일이 반응하는 꼴이 꽤 우스운 사내라고 생각했다.

"뒤에 안 타시구요?"

"네? 뒤에 타야 돼요?"

"운전 중인 제 다리를 훔쳐보려고 앞에 타신 게 아니라면 상관없습니다."

"으흠...."

하영이 입고 있는 치마는 다소 짧은 편이었다. 원래 그녀 성격이라면 바지를 입는 게 보통이지만 그룹 회장의 변태적인 취향이 잔뜩 반영된 사규는 근무 중인 여직원이 근무 중에 바지를 입을 수 없게 강제하고 있었다.

늘 바쁘고 빠르게 성큼성큼 걷느라 보폭이 넓은 하영이었다. 긴 치마는 불편했다. 그래서 무릎 위 20센티미터는 충분히 넘고도 남을 정도의 미니스커트를 즐겨 착용했다.

그런 차림으로 운전석에 앉으니 자연스럽게 허벅지가 상당히 드러나게 되었다. 하영이 "제 다리"라고 언급한 순간, 한석은 그녀의 다리에 잠깐 눈을 빼앗겼다. 그 직후, 그는 황급히 앞을 보며 외쳤다.

"그럴 생각 없으니 일단 가세요."

하영은 속으로 코웃음 쳤다. 여태껏 들어온 보고가 정말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한석은 그녀가 여태 만나본 남자 중에서 가장 휘둘리기 좋은 남자였다.

그녀는 기어를 넣으며 말했다.

"출발하겠습니다."

차가 출발했다. 미끄러져 앞으로 나아가는 차를 운전하며 하영은 어딘가에서 자신과 한석을 지켜보고 있을 "그"를 찾아보려고 했다. 미행부대에 속한 사람은 사이드 미러에도, 리어 미러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내 눈에 보이면 그 사람의 역할이 아닌 거지...'

하영은 운전에만 집중했다. 이윽고 그들은 고급한정식 집에 이르렀고, 일종의 "연극"을 시작했다.

하영이 세운 작전은 이러했다. 내키지도 않는 효진이 억지로 나간 선 자리를 파토내기 위해, "가상 애인"으로 한석을 투입한다. 효진은 무사히 탈출했다.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한석은 들어갈 때 하영에게 등 떠밀려 들어갔듯이 나올 때도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효진에게 끌려 나왔다.

일행이 타자마자 하영은 차를 출발시켰다. 달리는 차 안에서 효진은 전후사정에 대해 한석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하영에게 건네받아 옷을 갈아입었다. 백미러를 통해 뒤를 살피던 하영은 한석과 눈이 마주쳤다. 하영은 시선을 거두고 앞을 보았다.

'저 정도의 사이인가...'

하영은 효진이가 털털한 성격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제 오빠 앞에서도 팬티 하나만 입고 깔깔거리며 맥주를 마시는 장면도 여러 번 보았다.

그렇지만 한석은 가족이 아니다. 가족 앞에서도 그리 하기 힘든데, 가족도 아닌 남자 앞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젖힌다는 건 하영이 갖고 있는 상식에서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영은 한석에 대한 조사를 더 면밀히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하영은 한석을 향해 살피는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이런 영문을 모르는 한석은 그저 헛기침만 해대며 애써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효진은 한석과 하영 사이에 오가는 어색한 기류를 눈치 챘는지 낄낄거리며 한석에게 말했다.

"언니도 다 알아. 걱정 마."

순간 하영은 가슴이 철렁였다. 효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하영은 아주 크게 놀랐다. 하영이 맡은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박 회장 혈육인 태근과 효진에 대한 보좌였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큰 사건을 처리하는 것까지 거의 모든 것이 하영을 통해 이뤄지곤 했다.

그런 동시에 하영에게는 중요한 업무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회장 자녀와 주변 인물에 대한 관찰과 감시였다.

물론 회사에 주로 붙어있는 하영이 늘 그들을 따라 다닐 순 없다. 그래서 하영은 모종의 비밀 인선을 통해 사람을 붙여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앞서 그녀가 연락했던 "부대"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수집된 정보는 하영을 통해 박 회장에게 수시로 보고된다. 효진과 자주 만나는 남자이다 보니 한석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던 참이었다.

효진이 방금 던진 말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인지 하영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평정심을 흔들어 놓기는 충분했다.

'언니도 다 안다고....? 효진이는.... 다 눈치 채고 있었단 걸까.'

하영이 행하는 이런 업무는 당연히 당사자들에게 비밀이다. 자신이 감시당한다고 했을 때 그걸 기분 좋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영으로서는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태근과 효진의 뒤를 밟는 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내키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걸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리란 생각으로 업무에 매진하던 참이었다. 그런 그녀였으니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다만 하영이 갈고 닦아온 자기관리 능력은 속내를 곧바로 표정으로 드러내주지 않게 해주었다.

효진은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언니, 저희 저쪽 마로니에 공원 앞에 내려주시고 먼저 들어가세요. 토요일인데도 불러내서 미안해요."

"니 뒤처리는 항상 내 몫이니 딱히 미안할 건 없어. 계산이나 잘 해놔."

"그러죠. 헤헤헤."

차는 어느새 대학로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한석과 효진의 뒷모습을 운전석에서 지켜보던 하영은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그들을 철수시켜야 하나...'

그녀는 손에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효진이가 눈치 챘을 정도면, 태근이는 이미 진작 알았을 게 뻔하다. 태근이 그 놈이 항상 헤벌레 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는 짓을 가만히 보면 보통이 아닌 녀석이란 말야. 그런데도 가만히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녀석은... 날 또 골탕 먹이려는 걸까. 아니면... 아니면 대체 뭘까.'

그녀는 태근을 떠올렸다. 커다랗고 산만한 덩치에 머리는 조폭처럼 짧게 깎아놓고 산적처럼 웃는 그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른 남자를 겪어본 적이 없는 그녀였기에 친한 남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태근은 달랐다. 거의 이십 년을 알고 지낸 태근은 가족 이상으로 친근한 존재인 동시에 짜증나는 존재이기도 했다.

'태근이에게.... 대놓고 물어볼까. 그렇지만 녀석은 대답은커녕 혼자 웃고 넘겨버릴지도 몰라...'

하영은 태근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것은 거의 십 년도 더 된 기억이었다.

하영에게는 나이 차가 많은 언니가 있었는데, 그녀가 박 회장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영이 아주 어렸을 때, 광주에서 큰일을 벌어졌다. 그 일로 하영은 가족을 모두 잃었다. 천애고아가 된 그녀를 박 회장이 후원하기 시작했다.

하영은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아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중학교 진학에 맞추어 서울로 하영을 불렀다. 그때 하영은 태근을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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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모르는 분이 계실까봐 말씀드리지만, 이번 외전의 주인공은 하영입니다.

그녀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한석이 겪은 효진 루트와 비슷한 듯 하지만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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