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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464화 (46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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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어쩌면 그녀는

백년가약을 맺는 결혼식 직전까지 다른 여자를 탐하던 그다. 그의 손길 아래 한참 동안 몸을 농락당한 하영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저 남자와 꼼짝없이 한 회사, 같은 사무실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천하의 하영이라도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회장님께 이 모든 사실을....'

하영은 고개를 돌려 박 회장을 찾았다. 연단 바로 앞 커다란 의자에 앉아있는 박 회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껄껄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하영은 이 결혼, 다른 누구도 아닌 효진의 결혼이 회장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효진이 동성친구인 지혜와 지나치게 가깝고, 둘이 동침을 한 적도 있었기에 회장은 내심 자기의 딸이 동성애자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그런 동시에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효진의 결혼을 수년 전부터 갈망하고 있었다. 그 일을 도맡아서 추진하던 사람이 바로 하영이다. 이 결혼식은 그저 단순한 결혼식이 아니라 박 회장의 소원성취에 가까웠다.

'여기에... 내가 재를 뿌릴 수 있을까.'

하영은 결코 멍청한 여자가 아니었다. 멍청하기는커녕 너무 똑똑해서 문제였다. 지금도 그렇다. 차라리 몰랐다면 마음이 편했겠지만,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기에 그녀는 이도 저도 못하고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남이 시킨 일은 누구보다 확실히 해낼 수 있지만, 스스로 결정을 내려 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랑과 신부의 동시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랑, 신부 입장!"

그렇게 하영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는 동안, 신랑신부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사방에 꽃가루가 날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넓은 야외결혼식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박수소리를 들으며 하영은 생각했다.

'이젠... 돌이킬 수 없어....'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렸다. 애써 움직이지 않는 손을 움직여 남들처럼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가까이 서 있던 태근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면서, 하영은 최대한 웃었다.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한석과 효진은 곧바로 식장을 떠났다. 일본에서 출발하는 세계일주 크루즈를 타기 위해서다. 거의 한 달 동안 호화유람선을 타고 세계를 도는 일정이었다. 오픈카를 타고 공항을 향해, 그리고 새로운 인생으로의 여정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를 환송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 틈에 서 있던 하영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회사로 돌아왔다.

휴일인 데다가 결혼식에 다들 관심이 쏠린 터라 회사 내부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하영은 원하는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건 한 권의 서류철, 파일이었다. 여태까지 사찰부대를 통해 보고된 한석에 대한 내용이 모두 담긴 물건이었다.

잠시 후, 하영은 큰 당혹감을 느껴야만 했다.

'.......없어?'

책상에도, 캐비닛에도 한석에 대한 파일이 없었다. 다른 파일은 그대로 있었다. 오로지 한석에 대한 파일만 없어졌다. 보통 서류라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라도 하겠지만, 사찰부대의 보고는 하영이 단독으로 관리하고 있었기에 그러지도 못 했다. 그러한 파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자체가 극히 일부였다.

원래 있던 비밀 캐비닛은 물론, 사무실 전체를 샅샅이 뒤진 하영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수화기를 들고 어떤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고, 이윽고 누군가 받았다. 물론 "여보세요" 같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영은 상대가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쳤다.

"나예요. 하영입니다. 물어볼 게 있습니다."

"....."

"혹시, 우리 회사에 온 적 있나요?"

"....."

"내 사무실을 뒤졌어요?"

상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묵직한 침묵,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영은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만약 대답이 "부정"이라면 상대는 지체 없이 대답했으리라. 이 침묵은 긍정을 뜻한다. 하영은 처참한 기분이 되었다.

"뒤졌군요. 그리고 당신이 제출한 자료 중에서 최한석에 대한 파일은 도로 가져갔고."

"...."

"평소처럼 카피든 뭐든 대답을 해보라구요! 왜 그랬어요! 왜 내 사무실을 뒤지고 그에 대한 파일을 가져간 거냐고요! 왜!"

하영은 평소와 달리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상대의 끝없는 침묵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기 일보 직전이었다. 신경이 폭발해버리기 직전,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당신이 그를 담당할 수 없으니까."

"뭐?"

상대의 어눌한 목소리에 하영의 신경이 곤두섰다. 말하는 것 자체에 익숙지 않은 듯, 상대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조금씩 늘어놓았다.

"....더 이상 당신에 대한 협력 불가. 다만 앞으로 우리에게 당신이 접근할 수 없음을 알림."

"뭐라고? 당신들에게.... 내게 접근할 수 없다니....."

여태 그녀의 휘하에 있던 사찰부대의 일방적 통보에, 하영은 제대로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사항을 알려주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음."

"당신들의 활동을 그럼 누가 승인..."

"최한석."

하영의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오는 짤막한 대답에, 그녀의 심지가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조금 전 그녀의 몸을 강제로 탐하던 남자가, 이제는 그녀가 가진 힘까지 빼앗아 가고 있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멍한 표정의 하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화기 너머 소리가 잠깐 지지직거렸다. 그리고 뒤이어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메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신 종료. 이후 이 번호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럼. All done."

전화가 끊겼다. 수화기 너머로부터 단속적인 신호음만이 하영의 귀에 와 닿고 있을 뿐이었다. 하영은 비명을 지르며 수화기를 내던졌다. 플라스틱으로 된 수화기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마치 하영의 마음처럼 그렇게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석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왔고,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하영이 혼자 근무하던 사무실에는 그녀 책상보다 훨씬 더 크게 넓은 책상이 안쪽에 자리 잡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한석의 첫 출근 날. 일찌감치 출근한 하영은 사무실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복도에서 누군가 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의 긴장은 전신을 타고 흐른다. 문이 열리고, 한석이 들어섰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그는 하영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넉살 좋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좋은 아침이라고요. 하영 씨,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한 사무실에 단 둘이 근무하게 되었기에 하영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여차하면 주머니에 넣어둔 전기충격기라도 꺼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석은 하영의 몸에 손 끝 하나 대지않고 그대로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그리고 사무실에는 메이드복 차림의 선미가 들어섰다.

낯익은 얼굴, 그렇지만 회사에서는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인물이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하영은 순간적으로 경직되고 말았다. 선미가 하영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하는 동안에도 채 회복되지 않을 정도였다.

"오랜만입니다. 하영 님."

"....당신이 여긴 어떻게...."

그러자 팀장 책상에 앉은 한석이 손을 내저으며 대신 대답했다.

"선미 씨가 제 담당이 되었으니까요. 효진이가 시킨 겁니다. 선미 씨는 이쪽으로 오세요."

선미는 하영에게 묵례를 보내곤 한석의 등 뒤로 가서 섰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쥐고 대기 자세로 선 그녀는 그렇게 한석을 "보필"하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등장한 회장의 사위, 그리고 팀장 부임. 게다가 메이드를 사내에서 데리고 다니는 한석의 모습은 회사 내 이런저런 소문의 진원지가 되었다. 개중에는 메이드와 한석의 관계를 부적절하게 바라보는 묘사도 적지 않았다. 사내의 흉흉한 분위기를 춘희로부터 전해들은 하영은 그게 아니라고 부정하지도 못 하고 그저 한숨만 쉬었다.

'사실이 아닌 건 아니니까....'

회사에서 근무에 몰입하던 하영은 이따금씩 기묘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소리의 발생지는 한석의 자리. 고개를 살짝 들어 그쪽을 보면 선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석은 고개를 젖히고 몸을 나른하게 늘어트린 채로 느린 숨을 쉬고 있었다. 처음에 하영은 저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음.... 선미 씨.... 잘 빨고 있어.... 좋아...."

하영은 그제야 "보이지 않는 선미"가 대체 어디 가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한석의 책상 아래 쪽에는 선미의 옷가지가 흩어져 있었다. 카츄사를 두른 선미의 머리가 책상 위로 언뜻언뜻 보이곤 했다.

그 머리는 아주 리드미컬하게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때마다 한석의 움찔거림과 신음소리가 더해졌다. 중간중간 들려오는 음란한 소리는 하영의 청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흐음.... 흠... 좋아... 싼다.... 크음...."

한석이 부르르 떨고 나면 잠시 후 선미가 번들거리는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몸을 일으킨다. 알몸의 그녀는 널브러진 옷가지를 주워 입기 시작했지만, 때론 한석의 요청에 따라 속옷만 입은 채로 있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모습을 지켜보며 경악으로 몸이 굳은 하영은 손에 든 볼펜을 떨어뜨릴 정도였다. 한석과 선미, 두 사람은 사무실에 다른 사람, 즉, 하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사무실에 누군가 방문이라도 하면 기겁하는 건 되레 하영이었다. 하영은 서둘러 사무실 입구에 출입금지를 알리는 명패를 달고 보고와 결재를 위해 사무실에 방문하기 전에는 반드시 전화를 하도록 회사 내에 공지를 띄웠다.

한석과 선미의 음란한 행위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이런 일 반복되자 하영은 참지 못하고 한석에게 직언을 고했다.

"....이런 행위를 그만둬 주십시요. 한 번만 더...."

"이런 행위라니? 제가 뭘 했는데요?"

하영에게 되레 묻는 한석이었다. 그러나 그런 동시에 그의 밑에서는 속옷 차림의 선미가 손으로 한석의 물건을 주무르고 있었다. 하영은 손을 말아 주고 위아래로 능숙하게 움직이는 행위를 애써 못 본 체하고 이를 악물었다.

"...음란한...행위 말입니다."

"음란? 뭐가 음란한데요? 구체적으로 말을 하세요. 구체적으로."

"...성기를 공공연하게 노출하고, 성욕의 흥분 또는 만족을 위해하는 행위 등을 일컫는...."

"아아, 저는 무식해서 모르니까요. 법조문 같은 거 읊지 말고 쉬운 말로 하세요. 쉬운 말로."

하영은 어금니가 깨져나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한 번만 더 이를 악물었다가는 잇몸이 못 견뎌낼 판이었다.

"그러니까 입이나 손으로 거길 그렇게 하는걸...."

그제야 한석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아, 입이나 손으로 하지 말라?"

".....네."

"그럼, 그러죠. 뭐."

한석은 의외로 흔쾌히 하영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선미가 한석의 물건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영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 달래며 자리로 돌아오는데, 등 뒤에서 야릇한 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뒤를 돌아본 하영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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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2016년 마지막 업로드입니다.

새해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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