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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어쩌면 그녀는
입술, 그다음은 혀의 만남이었다. 얽힘이었고 접합이었다. 하영은 자신이 뜨거운 불판 위에 놓인 얼음처럼 녹아드는 게 아닐까 싶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한참을 그렇게 키스에 몰입하고 겨우 입술이 떨어진 후, 뜨거운 숨결이 하영의 귀에 와 닿았다. 하영은 태근의 목을 가득 끌어안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예전에... 네가 했던 키스에 이제 대답한 거야."
"아.... 하영아...."
"미안해.... 내 대답이 많이 늦었지? 난.... 네가 자꾸 생각나..."
"하영아..."
태근이 하영의 얼굴을 떼어 자세히 들여다본다. 물기가 맺혀있는 하영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훔쳐내자 그녀가 맑게 웃었다. 태근은 더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그의 몸에 바짝 기대어 서 있는 여인의 심장박동이 그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점점 더 빨리 뛰듯이, 지금 그의 심장도 그러했다.
"키스...해줘."
태근은 하영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되레 그 이상을 행했다. 입술뿐만 아니라 귓불과 목을 핥아내려 가기 시작했다. 낯선 감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자 하영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뒤에 있는 테이블에 걸터앉고 두 다리로 태근의 허리를 감싼다.
"하악.... 태근아....태근아..... 태근아....."
하영이 태근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수록 그의 애무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얇지만 거추장스러운 티셔츠는 이미 벗어버린 후다. 매끄러운 하영의 나신이 형광등 아래 고스란히 드러났다.
처음에는 살짝 추운 듯했지만, 이내 태근의 혀와 손이 닿은 곳마다 열기가 피어났다. 목과 어깨를 훑어내려 가던 태근의 입술이 이제 하영의 가슴에도 닿았다. 봉긋한 가슴 끝자락에 자리한 유두는 볼록하니 단단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츄웁- 츄웁-
태근의 혀가 그것을 입에 머금고 빨아들일 때마다 하영의 몸이 소리 없이 떨렸다. 가슴이 빨릴 때마다 이대로 태근의 입안으로 자신이 몽땅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태근아... 으윽... 흐윽...."
하영은 자신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제대로 가누질 못했다. 조율되지 않은 바이올린처럼 그녀는 끊임없이 흐느꼈다. 태근의 애무가 이제 허리를 거쳐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하영은 허벅지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하영은 태근의 머리를 붙들었다.
"거...거긴... 너무 자세히 보지 마... 하으...."
"왜?"
"....부끄럽잖아..."
그러자 태근은 하영을 올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부끄러워하는 하영이라니.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군."
"뭐야? 꺄악."
태근이 하영을 번쩍 들어 안았다. 놀란 하영은 태근의 목에 다시 매달렸다. 태근은 그렇게 하영을 공주님 안기로 든 상태로 거실을 가로지르며 불도 꺼버렸다. 캄캄한 실내에서도 그는 능숙하게 방을 찾아 들어갔다. 침대에 하영을 조심스렇게 내려놓았다.
"불을 끄면, 좀 덜 부끄럽지?"
"...역시 능숙해. 넌."
"능숙하면 안 돼?"
"몰라. 왠지 억울하단... 흐음...."
테이블에서 침대로 이동하느라 잠시 끊겼던 애무가 다시 이어졌다. 태근의 혀가 자신의 허벅지 안쪽과 은밀한 곳에 닿는 걸 느끼고 하영은 입을 틀어막았다. 다리에 너무 힘을 주어 태근의 머리를 죄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다.
츄릅- 츄릅- 츕츕츕-
"흐읍... 흐윽...."
혀가 훑고 다니는 소리와 입을 틀어막는 손 틈에서 흘러나오는 비음만이 방 안에 가득했다. 커튼이 반쯤 드리워진 커다란 창문 밖으로는 쉴 새 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영은 저 빗소리가 자신의 뇌를 직접 때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큼직한 손을 뻗어 하영의 가슴과 허리를 주무르는 태근의 손놀림은 그런 하영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영아. 잠깐만."
"어?"
하영을 몰아지경으로 몰고 가던 태근의 움직임이 잠깐 끊어졌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영은 숨을 가다듬으며 눈을 뜨고 태근을 쳐다보았다. 그가 옷을 벗고 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졌고 밖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들어오고 있었기에 전체적인 윤곽은 뚜렷하게 도드라졌다.
옷을 입고 있을 때도 거대하다는 느낌이 드는 태근이었는데, 옷을 벗자 그 느낌이 도리어 커졌다. 옷으로 가려져 있던 몸은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 꺼진 방에서도 느껴지는 거대한 양감으로 가득한 몸을 보면서 하영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녀가 알기로, 태근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운동을 쉰 적이 없었다. 그런 지난 세월의 성과가 몸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영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자....
"아..."
"왜 그래?"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버린 하영을 향해 태근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영은 이불을 끌어다 얼굴 아래쪽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너무 커... 전에 봤던 것보다도...."
어둠 속에서 태근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영은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태근에게는 꽤 재미있는 소리인 모양이었다. 낄낄거리던 그는 하영에게 다가와 이불을 걷어내며 속삭였다.
"그래도 다 들어가."
"살살해. 난.... 처음이란 말이야."
"알았어. 안 아프게 할게."
태근은 하영의 비부를 충분히 애무한 후,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그러나 하영은 이내 깨달았다. 태근의 말은 거짓말이었음을. 달궈진 쇠몽둥이가 안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하영은 태근의 목을 끌어안은 채 불평했다.
"아퍼...아프다고...."
"미안해...."
깊숙이 들어온 태근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같은 고통이 한 차례 쓸고 가자 하영은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소설에서 보았던 그런 황홀한 쾌감은 아니었다.
그러나 더 좋은 걸 알게 되었다. 상대가 자신에게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상대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다. 거대한 태근의 몸 구석구석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게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행여 더 아플까 봐 허리를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태근의 동작이 느껴지니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아아, 태근아.... 하윽... 흐윽....."
하영은 태근의 목을 점점 더 끌어안았다. 아랫도리에서 여전히 묵직하게 느껴지는 고통은 어찌할 수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자신을 원하는 상대를 끌어안고 몸과 몸을 나눈다는 것이 어떤 쾌감인지 깨닫게 되었다.
"하악....태근아... 흐윽....하아...."
처음에는 신음을 내는 게 부끄러워 숨죽여 내뱉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리미터는 풀려 있었다. 하영은 자신이 느끼는 쾌감을 소리로 솔직하게 내뱉기 시작했고 태근의 이름을 더 많이 불렀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찾고, 몸속 깊은 곳의 포인트를 찾아 헤맨다. 어느 시점, 하영은 자신의 깊은 곳 어디에선가 태근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낮게 신음하는 태근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태근이 하영의 위에 있었지만, 사정 후에는 하영이 태근의 위로 올라가 엎어져 있었다. 하영의 봉긋한 가슴이 태근의 대흉근 위로 엎어져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두 사람은 그 어둠 속에서도 눈이 마주치자 조금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었지만, 억눌렸던 욕정은 한순간의 섹스로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하영은 자신의 이성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는 동안 태근이 하영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랑 내가 이런 사이가 될 줄은 몰랐어."
"나도 마찬가지야."
"후회해?"
하영은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태근은 살짝 웃었다. 하영도 웃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 때쯤 태근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근데...."
"왜?"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 물어봐."
하영의 허락을 받고도 태근은 한참 동안 뜸을 들였다. 하영이 몇 번 더 재촉하고 나서야 그는 겨우 입을 열었다.
"아까.... 내 꺼 봤을 때, 전에 봤던 것보다 크다 그랬잖아."
"어? 어...."
"전에 누구 껄 봤는지 물어봐도 돼? 넌 처음이라고 그랬잖아."
언제나 사소한 것쯤은 크게 웃으며 넘기던 태근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부분에 신경 쓰는 걸 보고 있자니 하영은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하영은 일부러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흐음.... 왜에? 내가 전에 다른 사람이랑 했을까 봐 신경 쓰여? 여태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벌써 다 까먹은 거야? 네가 했던 난봉질을 뒷수습하던 사람이 누구였지?"
"손하영 님이십니다."
"그걸 알면서 나한테 그걸 따져 물어?"
하영은 태근의 유두를 살짝 깨물었다. 세게 문 것도 아니었지만, 태근은 엄살을 피웠다.
"아얏. 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 솔직히 신경 쓰여. 말해줘"
태근의 장점은 역시 솔직함이었다. 하영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남에게는 이야기 못 할 비밀스러운 일을 다루던 그녀로서는 도무지 가질 수 없는 태도였다. 그녀가 가진 태근에 대한 호감은 그런 점에 기인할지도 몰랐다. 잠시 후, 하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걷혔다. 그녀는 목소리 톤을 낮추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 너한테 해도 되나 모르겠어."
"뭔데 그래?"
"네가 그랬지? 최한석이라면... 믿고 회사를 맡길 수 있겠다고."
태근은 좀 뜨악했다. 꼭 한석의 이름이 아니라고 해도 여자와 단둘이 침대에 누워있는데 다른 남자의 이름이 나오면 누구라도 그런 법이다. 방금 섹스를 마친 후라면 더욱 그러하다.
"갑자기 여기서 한석이 이야기는 왜....?"
태근의 머릿속에 '설마...'하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영은 그럴 거라 생각했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그녀는 결국 말하고 말았다.
"내가 봤다는 건, 한석이 꺼 말이었어."
"뭐라고?"
태근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늘 태근을 보고 지내왔던 하영에게 낯설 정도의 표정이었다. 무서운 표정이었다. 하영은 태근의 가슴팍을 문지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진정해. 그 사람이랑 했다는 게 아니니까. 아니, 아예 일이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진정해봐. 처음부터 설명할게."
하영은 태근의 손을 잡았다. 그의 커다란 손을 꼭 쥔 채 여태까지 그녀가 겪었던 일을 모두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운영했던 사찰부대, 한석에 대해서 미리 파악하고 있던 것, 효진과 그가 결혼하기로 결정한 이후 회사에서 경영수업을 해온 것, 그리고 결혼식에서의 강제추행.... 다만 한석의 자취방에서 보았던 효진과의 행위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입 밖에 내기에는 하영의 결심이 그렇게 굳지 못했다.
그러나 방금 그녀가 털어놓은 사실만으로도 태근을 격노하게 만드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뭐? 그 미친 자식이! 너한테 그런 짓을?"
태근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그 모습을 본 하영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게 다가 아니야.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고 나서는 선미를 데리고 와서..."
하영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회사에서의 그 "행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관적 판단은 배제한 채 최대한 건조하게, 상황만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하영과는 달리 태근의 표정은 점점 더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이런 미친놈이!!!!"
태근의 사자후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마치 동굴 속에 들어앉은 맹수 한 마리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 하영은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효진이는? 걔도 이런 사실을 알아?"
"아직 몰라. 내가 이런 사실을 누군가에 이야기한 건 네가 처음이야."
하영은 태근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이런 사실을 털어놓는 게 잘하는 짓인지.... 솔직히 모르겠어. 난 여태 내가 혼자서도, 누구보다도 잘해낼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어. 실제로도 잘 해왔고. 그런데 이런 상황이 되고 나니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어."
"하영아... 넌 너무 많은 짐을 내가 짊어지려고 해."
"알아. 제발 그러지 말라고 네가 많이 이야기했던 것도 알아."
하영은 다시 태근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고립되고 힘들 때, 그럴 때 생각난 사람이 오직 한 사람뿐이었어. 태근이. 바로 너였어."
"하영아...."
자신의 위에 알몸으로 엎드려 있는 하영, 그녀를 끌어안는 태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의 턱밑에 와있는 하영의 정수리에 코를 묻은 그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어두운 방 안에서도 매섭게 빛나는 눈이었다. 평소 같은 사람 좋은 기색은 온데간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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