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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눈을 슬며시 떳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어젯밤 별로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너무 충격적인 일 때문이었을까.
나는 손으로 눈을 덮고 다시 잠을 청했다.
강의도 오후에 있겠다, 실컷 자두자는 생각이었다.
" 으이그……. 빨리 일어나요. "
스르르 잠에 들려던 찰나,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 오히려 더 빠져드는 -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손을 치우고 인상을 찌뿌리며 바라보자, 윤아가 두 손을 허리에 짚고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나는 씩 웃어주고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었다.
" 어? 안 일어날거에요? "
" 5분만……. "
윤아가 묻자 나는 손가락 다섯개를 펴보이며 말했다.
저벅저벅 하며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불이 홱 벗겨졌다.
찬란한 아침햇살을 무방비 상태로 받다니.
죽을 것 같다.
" 으으……. "
내가 신음하자, 윤아가 쿡쿡 하며 웃는다.
나는 실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을 낚아 채어 나에게 끌어당겼다.
윤아는 몸의 중심을 잃더니 나에게로 와서 폭 안겼다.
" 뭐에요. "
윤아가 못말린다는듯이 웃으며 내 가슴을 툭툭 친다.
나는 윤아를 잡고 몸을 돌려 내 옆에 그녀를 눕혔다.
윤아가 씩 웃고는 일어나려하자 나는 팔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 좀만 자자……. 오늘 강의 오후에 있잖아. "
나의 말에 윤아도 포기했는지 한숨을 작게 폭 쉬고 그녀의 팔을 내 가슴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그 큰 눈망울을 눈꺼풀로 덮었다.
" 조금만이에요……. "
.
.
.
.
내가 다시 잠에서 깨어난 것은 밖에서 들리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미간을 찌뿌리며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방을 빠져나가 부엌을 바라보았다.
윤아가 아침 - 아점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 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살며시 그녀의 뒤로 가서 힘껏 안아주었다.
" 앗! "
윤아가 놀랬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 뭘 그렇게 놀라. "
나의 말에 윤아가 베시시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식탁으로 이끌더라.
윤아가 의자를 빼고 나를 미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씩 웃어주고는 식탁에 엎어졌다.
" 뭐하는 거에요! 식탁에서! "
곧바로 저지 당했지만 말이다.
국자를 치켜들고 나에게 소리치는 윤아가 왜 저렇게 귀여운지.
나는 멍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 조금만 기다려요. 밥 다 되가. "
윤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턱을 괴었다.
눈을 껌뻑껌뻑 거리며 기다리고 있자, 곧 있어 윤아가 찌개를 들고 식탁으로 왔다.
" 어제 술은 왜 먹어가지고는. "
윤아의 타박에 미안하다며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는 국을 떠서 먹어보았다.
역시 윤아.
매일 아침 굶을 일 없다는게 정말 장점 중에 하나랄까.
" 맛있네. "
" 히이. 많이 먹어요. "
살며시 미소 지으며 거실로 가서 쇼파에 드러눕는 윤아를 보니 왠지 모르게 흐뭇해진다.
윤아는 쇼파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 어이, 피곤하면서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났어? "
" 어머님께서 오빠 밥 굶기지 말래셨잖아. "
나의 물음에 윤아가 눈도 뜨지 않은채로 말했다.
그녀의 귀여운 대답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막 한 숟갈을 입에 집어 넣었다.
그릇들을 챙겨서 싱크대에 가져다 놓고, 윤아에게 다가갔다.
그르릉 그르릉 -
코를 고는 건 아닌것 같았지만,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피곤하겠다는 생각에 윤아 머리 맡에 앉아서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배가 오르락 내리락.
나는 윤아의 머리를 살며시 들어올려 내 무릎을 베게 했다.
그러자 미소 짓는 아내.
' 자기도 잠 오면서. '
누구보고 일어나라는지.
나는 속으로 미소 짓고 그녀의 머릿결을 어루만져 주었다.
항상 그녀의 자랑이었던 긴 생머리를 얼마 전 자르고 붉은색으로 염색까지 했다.
내가 무심코 그녀에게 짧은 머리도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던져서 이런 변화를 초래했지만, 나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누구보다 나의 말을 귀담아 듣고 흘리지 않아 주었으니까.
그렇게 몇분을 있었을까.
시계를 보니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살며서 윤아의 어깨를 흔들었다.
" 윤아야. 학교 가야지. "
두어번 그녀를 흔들자 윤아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 우응……. "
내가 따스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자, 윤아는 나를 보고 베시시 웃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쇼파에서 일으켰다.
" 아, 맞다. 걔 또 나 찾아올텐데……. "
화장실로 들어가는 도중 윤아가 발걸음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예전부터 윤아를 졸졸 따라다니며 관심을 보이던 그녀의 후배.
눈엣가시였지만 참기로 했다.
도가 지나친건 아니었지만.
하지만 요즘 들어 자꾸 치근덕거리고 나를 무시하는 등, 약간은 불쾌한 감이 적지 않이 들었다.
" 걔한테 말해. 결혼했다고. "
" 그랬는데 안 믿어……. "
이런 망할.
결혼사진이라도 가져가서 보여줘야 하나.
그런데도 집적거리면 진짜 답 없을텐데.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윤아의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해주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내가 예뻐도 탈이라니까.
화장실에서 대충 샤워를 하고 나오니 윤아도 준비를 마친 모양이었다.
안방 화장대 앞에서 간단한 화장을 하고 옷을 고르고 있었다.
" 난 뭐 입어? "
내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며 묻자, 윤아가 허리를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
" 응? 아, 침대 위에 올려놨어요. "
윤아의 말에 내가 고맙다고 말하고는 침대 위에 있는 옷을 집어들었다.
워싱이 들어간 회색 스키니진에 티셔츠라.
얼어 죽으라는 말인가?
" 저, 윤아야. 나 오늘 동상 걸리겠다. "
내 말에 윤아가 베시시 웃으며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코트 하나가 걸려있었다.
그럼 그렇지.
윤아가 나를 얼려 죽일리는 없지.
나는 잠옷을 벗고 윤아가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 나가보실까? "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윤아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내 옆으로 와서 손을 꼭 잡았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온 나는 대학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 오늘은 왜 걸어? "
윤아가 물어왔다.
나는 대답을 대충 얼버무리고 그녀의 손을 내 코트 안으로 끌어왔다.
따뜻했다.
" 치. "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여서 투덜대는 윤아.
씩 웃고는 대학교까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윤아의 빨간 머리가 튀는지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본다.
혹시?
" 헐. 너 치마. "
가만히 보니 윤아 치마가 너무 짧다.
아직 20대 초반의 나이라서 세련되게 입고 싶겠지만, 걱정이 됬다.
윤아 같이 이쁜 애가 미니스커트 입으면 남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 오빠가 옆에서 지켜주면 되잖아요 - "
윤아가 내 손을 더욱 세게 잡아오며 말했다.
하긴, 내 유일한 일이라면 윤아를 지키는 것 밖에 더 있을까.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대학 교문 앞이다.
" 윤아 누나! "
그런데 교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저쪽에서 애띠게 생긴 한 남자가 우리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누군지 몰라서 어리둥절 해, 윤아를 바라보니 우물쭈물하더라.
" 누구야? "
내가 윤아의 귓가에 속삭이자, 윤아도 내 귀에다 살짝 말해주었다.
" 항상 말하던 애 있잖아요. 계속 대쉬한다는 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