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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몸을 누르는 압력을 이기지 못해 숨을 깊게 들이 쉬며 눈을 떴다.
잠깐 신음하고 내 배 위를 보니 익숙한 머리가 보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빨간 단발머리 -
" 자, 잠깐만 윤아야. "
내가 윤아를 살살 깨우자, 그녀가 인상을 찌부리며 내 가슴에 볼을 부비적 거렸다.
" 우으……. 나 잘거야아……. "
윤아가 말을 길게 늘이면서 애교를 부렸다.
귀여워서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보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 윤아야, 나 힘들어. "
내가 윤아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타일렀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파묻고 땡깡을 부릴 뿐.
" 싫어어. 나 더 잘거야아! "
얘가 왜 이러지.
한번도 자기 고집을 부린 적이 없었던 윤아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아리쏭 했다.
아내는 남편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면서 항상 내 의견을 쫓아 와 주던 윤아였기 때문에 어떤 면으로서는 좀 충격적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힘으로 자세를 바꾸기로 했다.
내가 한번에 내 위에 있던 윤아를 뒤집어 아래로 놓자, 그녀가 소리쳤다.
" 꺄악! "
나는 위에서 그녀를 바라보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나와 시선을 피했다.
내가 계속 바라보자 갑자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볼을 부풀린다.
" 갑자기 왜 이래, 여보. "
여보라는 말에 살짝 위축이 됬는지 약간은 얼굴을 푸는 윤아.
하지만 이내 다시 화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더라.
이럴 때는 방법이 있지.
태연 누나에게 자주 써먹던 방법인데, 윤아에게 써먹을 줄이야.
항상 말 잘 듣는 윤아였기 때문에 이 방법만은 쓰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지만, 깨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알았다는 듯이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의 위에서 나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윤아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약해지면 안되지.
나는 책상에 앉아 읽던 책을 펴 들었다.
힐끗 힐끗 방문을 쳐다보니, 윤아가 눈만 빼꼼 내민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다 보여.
그 큰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관찰하는 아내.
어떻게 태연누나랑 똑같은 반응을 보이냐.
" 볼일 있어? "
내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윤아는 얼굴을 빨갛게 해서 부엌으로 뛰어갔다.
아, 좀 미안해지네.
나는 아픈 머리를 누르며 책을 읽어나갔다.
하지만, 읽는게 읽는게 아니었다.
그저 글자만 쳐다보고 있었을 뿐, 내 모든 신경은 윤아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달그락 달그락, 요리하던 소리가 덜리더니 내 방문에 그녀가 나타났다.
" 밥 먹어요……. "
아까전에 때쓰던 모습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나에게 조심스럽게 대하는 모습.
내가 화난 줄 알고 있나 보다.
속으로 웃으며 부엌으로 나가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찌개가 차려져 있었다.
신경 많이 썻네, 우리 윤아.
" 저, 오빠……. "
윤아가 밥을 먹다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나는 무표정으로 그냥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보니 윤아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울먹거릴려고 하고 있다.
" 그……. 음……. 그러니까……. 화…, 났어요? "
이 정도면 뭐, 성공했네.
너무 순수하고, 착하고, 거짓말 못하는 윤아.
어쩌면 좋지.
나 너 정말 미칠듯이 사랑하나 보다.
화 났냐고 묻는 윤아의 말에 나는 그냥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밥을 다시 먹자, 윤아가 숟가락을 놓고 침울해 졌다.
여린 윤아한테는 너무 센 방법이었나?
슬쩍 그녀를 바라보니 심각한 표정으로 골돌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 밥 먹어. "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윤아가 도리도리 고개를 흔든다.
" 화 난거 아니니까 밥 먹어. "
" 네……. "
그제서야 힘 없이 숟가락을 들고 억지로 밥을 넣기 시작하는 윤아.
정말 감정을 숨길줄 모르는 애라니까.
계속 울상이 되어서 말을 하지 않는 아내를 보니 되려 내가 나쁜놈이 된 것 같아 마음한켠이 찝찝하긴 했다.
나는 밥을 빨리 먹고 쇼파로 가서 앉아 티비를 틀었다.
윤아가 밥을 먹다 말고 쪼르르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나 팔을 잡고 조르듯 흔들었다.
" 오빠……. 윤아가 잘못했어요……. 화 풀어요……. 네? "
이렇게 윤아가 애교부리면서 달려들면 나도 더이상은 화난척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따뜻한 웃음을 지으면서 윤아의 입에 키스 해 주었다.
윤아가 얼굴을 활짝 펴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 근데 아까 왜 그랬던 거야? "
문득 윤아가 때 쓴 이유가 궁금해져 한번 물어보았다.
그러자, 윤아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을 하지 못하더라.
" 저, 그게……. "
" 편하게 말해. 괜찮아. "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윤아도 체념한듯 내 손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털어 놓았다.
그녀의 말에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 어제……. 그 누구지…. 정수연이라는 여자랑 같이 있었잖아요……. 그거 때문에 약간 삐쳐서……. "
가만.
그러면 정수연이 나랑 같이 여기 왔었단 말이야?
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윤아가 분명히 실망했을 게 분명한데.
" 아, 윤아야. 그건 말이지. "
내가 설명하려고 입을 땟지만, 윤아의 손가락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윤아는검지로 내 입을 막고 착한 미소를 보여주며 내게 말했다.
" 전 남편을 믿어요. 아무 일 없었다고. "
아, 고마워.
근데 이거 안 풀면 너 계속 나 의심할 것 같은데.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윤아의 어깨를 감싸 잡고 목을 쇼파 뒤로 젖혔다.
" 으아……. 심심해……. "
심심하다는 내 말에 윤아가 눈을 번쩍였다.
왠지 불안했지만, 그래도 윤아에게 미안한 것도 있고 해서 잠자코 있었다.
" 오빠! 놀러가요! "
역시나.
하긴 집에서 그냥 빈둥거리는 것 보다는 밖에 나가서 활동하는 게 더 좋을 것도 같았다.
윤아는 내 가슴팍에 기대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듯 했다.
" 어디 갈건데? "
나의 물음에 윤아가 손가락 몇개를 접더니 내게 투정을 부린다.
" 우응…….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
거 참.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쇼파에서 일어섰다.
윤아가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쪼르르 따라왔다.
" 시내 갈래? "
시내 가자는 말에 윤아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러자면서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얼굴에는 환한 미소와 함께.
치아가 다 드러나게 잇눈 윤아의 웃음은 정말 사랑스럽다.
같이 안방으로 들어오니, 침대가 보였다.
아…….
자고 싶다, 갑자기.
나는 침대로 다이빙 해서 뛰어들었다.
" 에에에? 오빠아아 - "
윤아가 종종 걸음으로 뛰어 와서 내 팔을 잡아 이끌었다.
택도 없었지만, 나는 힘든 척 버텼다.
" 으으, 뭘 먹었길래 이렇게 힘이 세? "
" 그거 숙녀한테 실례에요! "
윤아가 발끈하며 또 볼을 부풀린다.
아무리 화난 척 해봤자 나한텐 귀여워, 이 아가씨야.
내가 능글맞게 실실 웃자, 윤아가 베개를 하나 집어서 나에게 던졌다.
" 이얍! "
베개를 맞고 잠깐 멍하던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윤아가 뒷걸음질 치다 옷장에 가로막혀 더이상 갈 곳이 없자, 손을 들어 경고했다.
" 하, 하지마요. 뭔진 몰라도 하지마. "
나는 그녀의 말에 속도를 더 빨리 해서 윤아에게 다가갔다.
윤아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침대 위로 뛰어 올라 내 옆으로 달려 나갔다.
" 너! 안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