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에 - "
서라는 말에 혓바닥을 내밀고 나를 놀리는 윤아.
잡히기만 해봐라.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리고 거만한 표정으로 윤아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갔다.
어디로 숨었지?
윤아가 보이지 않는다.
뭐, 그래봤자 윤아는 항상 내 방 책상 뒤에 숨으니까.
나는 내 방 문에 기대서 휘파람을 불었다.
다리 저려서라도 그냥 나오겠지.
몇 초 기다리자 예상했던대로 윤아가 뚱한 표정으로 책상 뒤에서 나타났다.
" 치, 나빴어. "
나는 그녀의 말에 달려들어 아내를 들어 올렸다.
" 꺄악! "
윤아가 소리쳤다.
이대로 끝날 내가 아니지.
나는 윤아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윤아도 안방에 들어올 때는 두 팔로 내 목을 감싸고 즐기는 표정이다.
윤아와 함께 침대에 뛰어든 나는 그녀를 꼭 안았다.
" 이렇게 뒹굴 시간 없다구요, 남편. 밖에가서 놀아야죠. "
" 춥잖아……. "
밖은 이제 겨울이 다 되가는 시점이라 한창 추울 때 였다.
촛불도 마지막 꺼지기 전 활활 타오른다고 하지 않는가?
" 그럼 내가 꼬옥 안아줄게요. 히힛. "
퍽이나.
그것보다 내가 윤아한테 안기다니.
왠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든다.
" 읏차! 일단 준비하고 나가자. "
내가 침대에서 내려와 윤아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내말에 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옷장을 열었다.
" 음……. 남편은……. 이거에다가……, 이거! "
윤아가 골라준 옷을 무심코 들어 올렸을 때, 나는 윤아를 황당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빨간 워싱이 들어간 스키니라니.
붉은색이랑 황토색이 어울리긴 한다만 너무 티지 않니?
너 빨간색 진짜 좋아하는 구나, 윤아야.
그래도 윤아의 패션 센스는 최고 수준이었으니까, 아무 말 없이 입기로 했다.
스판이라서 그런지 스키니 치고는 많이 편했다.
" 또 언제 나 몰래 샀대? "
" 힛. 우리 가족 옷은 여자인 내가 담당 할거라구요. "
얼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윤아는 백점, 아니 만점짜리 신부감이었다.
얼굴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을 빼면, 남편 말 잘 듣고, 밥 잘하고, 옷 잘챙겨주고.
나에겐 확실히 과분한 여자였다.
윤아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저 웃음이 난다.
" 씨. 왜 웃어요! "
" 아냐. 이제 나가자. 재밌게 놀다 와야지? "
내 말에 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외투를 꺼내 입었다.
역시, 윤아.
한번에 이목을 끌 만한 패션이었다.
지금 보니 내 바지와 윤아 바지, 커플이다.
윤아 것이 핫팬츠 형태로 허벅지 까지 오는 것이긴 했지만, 색상을 봤을 때 한눈에 커플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이렇게 맞춰 입고 나가는거 오랜만이네. "
내가 윤아의 손을 잡고 현관을 빠져나오며 말했다.
윤아도 오랜만에 놀러 가는 것이라 기대되는지 기분이 한층 업 된 것 같았다.
" 차 타고 갈래? "
내 물음에 윤아가 골돌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 우리 버스 타고 가요. 오빠 힘들잖아. "
난 별로 안 힘든데.
그래도 뭐, 가끔씩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싶어서 우리 두사람은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이 날씨가 그렇게 차지 않은 편이라 떨지는 않았다.
하지만 윤아가 문제였다..
차가운 그녀의 손을 꽉 쥐어주며 길을 걸어나갔다.
" 히. "
윤아는 아까부터 계속 싱글벙글이다.
오랜만에 밖에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그저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리자,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 너 돈 있겠지? 더치 페이. "
" 에에? 그런게 어딨어요! "
각자 교통비를 부담하자는 내 농담에 윤아가 몰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윤아는 때하나 묻지 않고 자란 아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 거짓말이야. "
그렇게 말하고서야 윤아가 한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팔짱을 껴왔다.
교통카드를 기계에 찍고 제일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앉자마자 윤아가 팔을 풀지 않고 내 어깨에 기대왔다.
" 잘려고? "
내가 묻자 윤아가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그냥 이렇게 있으려구요. "
내가 웃으며 윤아의 머리 위로 내 머리를 슬며시 대었다.
덜컹거려서 약간의 충돌이 있었지만, 괜찮았다.
안 잔다고 하더니, 평온한 표정으로 눈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살짝 웃고 윤아가 편하도록 어깨를 높였다.
[ 지잉- ]
그 때, 내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내가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들어 폴더를 열어보니 태연누나로부터 온 문자였다.
[ 얌마 - 탱 누님♡ ]
이 누님이.
나는 살짝 웃으며 키패드를 눌렀다.
[ 왜 시비야 이 누나가 ㅋㅋㅋ ]
내가 예상했던대로, 태연누나도 여자다보니 문자가 번개같이 도착했다.
[ 시간 없어? 나 술 사죠 ㅜㅜ 시간 내봐 ㅜㅜ 야아아앙 ㅠ -탱 누님♡ ]
항상 내게 이런 투정을 부려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전혀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지만, 항상 새로운 느낌이었다.
윤아로부터 자주 느낄 수 없는 그런.
살며시 윤아를 바라보니 한 쪽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 아, 신이시여. '
" 흠? "
윤아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머리를 내 어깨에서 뗏다.
팔짱 까지 끼고 나를 못 미덥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 왜 그래요. "
내가 살짝 그렇게 묻자 윤아가 고개를 홱 돌려서 창 밖을 바라봤다.
삐진 척 하기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자 볼을 부풀리고 나를 노려본다.
내가 볼을 누르자 푸시시 - 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 탱! 언니랑 술 마시러 언제 갈건데? "
그렇게 묻는 윤아가 얄미워 지는 것은 왜일까.
내가 팔을 그녀의 어깨에 두르고 내 가슴으로 끌어오자, 뾰로퉁한 표정을 짓는 윤아의 모습에 웃음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요 근래 밖에서 술 먹는 날이 많아져서 조금은 미안해졌지만, 뻔뻔해지기로 했다.
" 나 술 마셔도 돼? "
" 될까? 내가 뭐라 할 것 같아요? "
윤아 성격에 아마 그 날은 밖에서 자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씩 웃으며 윤아의 볼을 어루만지자, 그녀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버스 알림음에서 우리가 내릴 정류장 이름이 흘러나오자, 나는 윤아와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 어! 눈이다! "
윤아의 말 대로 새하얀 눈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눈송이 하나 하나가 윤아, 그리고 나의 머리 위로 쌓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윤아와 같이 깨끗한, 티끌하나 없는 그런 새하얀 눈들을 맞고 있자니, 윤아를 향한 사랑이 더 커지는 것만 같았다.
" 첫눈인가? "
내가 윤아의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며 말하자 윤아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두를 신고 오지 않은게 다행이었지, 까딱하면 내가 업어야 할 뻔 했다.
" 시내도 왔겠다,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
내 물음에 윤아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활짝 웃으며 나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활기차게 외쳤다.
" 밥! "
거 참.
그녀의 대답에 내가 귀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윤아도 덩달아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서울 시내는 복잡했다.
그만큼 사람도 많았다.
" 어허! 눈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
윤아가 옆에서 무서운 - 내게는 더 없이 귀여웠지만 - 목소리로 경고했다.
난 절대 지나가는 여자들 안 봤는데.
나한텐 윤아 밖에 없는데.
" 뭔 소리야 이 여자가. "
" 히. 한눈 팔면 때릴거야. "
윤아와 그런 농담을 하면서 겨울의 얼어버린 길 위를 걸은지 몇분이 되었을까.
윤아가 싱긍벙글한 표정으로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잘 하는 돈가스 집이 있다면서 그리로 가자고 부탁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
" 멀었어? "
내가 지루함에 그렇게 묻자 윤아가 고개를 세차게 가로지으며 활짝 웃었다.
정말,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윤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