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57)

" 뭐가 이렇게 늦어! "

항상 모이던 장소로 윤아와 함께 들어가니 미영이가 다리를 꼬고 기다리고 있었다.

연예인티 팍팍 내고 다니는구나.

한눈에 보기에도 - 연예인인지 몰라도 -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될 만큼 말이다.

" 너 안 가려도 돼? "

윤아가 미영의 옆에 자리하고는 그렇게 물었다.

미영은 고개를 저으면서 술을 한잔 따랐다.

" 자, 오빠 먼저! "

미영이 건내주는 술잔을 원샷하고 윤아곁으로 갔다.

윤아는 벌써부터 내 어깨에 그녀의 머리를 대고는 미영을 바라보았다.

미영이 얼굴을 찌뿌리면서 우리를 노려보자, 나는 윤아에게 눈치를 주었다.

" 괜히 소개해줬나봐. 나는 왜 솔론데 두 사람은 결혼했어? "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소개시켜달라 한게 아니라 그쪽이 소개 시켜줬는데.

나는 미영을 놀리듯이 웃고는 술을 한잔 더 따라서 윤아에게 건내주었다.

" 자, 당신도 한잔. "

" 고마워요, 남편. "

우리의 애정행각에 미영이 토하는 시늉을 하며 우리를 째려보았다.

" 오글거려서 아주 쪼그라들겠구만. "

미영의 말에 약간은 미안해졌지만, 속마음은 보기 좋고 행복할거라는 것을 잘 아는 우리 두 사람으로서는 고마울 수 밖에 없었다.

미팅 아닌 미팅으로 만난 우리 부부지만, 한 눈에 반했던 우리.

참, 그때 진짜 그립다.

" 아, 거참. 오빠가 뭐가 꿀려. 준수한 외모에 키 크지, 끼 많지, 돈 많지. 이게 제일 중요하겠지만. 또 뭐 있냐. 아, 하여튼! "

막 추운 겨울이 지나고, 피어오르는 새싹들이 봄을 여는 그런 날이었다.

그 때도 미영과 거리를 걸으면서 투덜투덜 거리고 있었다.

아니, 특별한 날이었다, 그 날은.

따뜻한 햇살이 우리를 비추어주었지만, '처음'에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몇년동안 연애를 하지 않다가 하려 하니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 아, 이번 한번만이다, 진짜? "

내가 짜증스럽게 말하자 미영이 내 손을 이끌고 커피숍으로 나를 끌고 갔다.

투덜투덜 거리면서 들어간 커피숍은 정갈하고 분위기가 잡혀있는 그런 곳이었다.

미영이 한 테이블로 가서 [예약석] 이라는 푯말을 치우더니 가방을 놓고 걸터 앉았다.

" 자, 이제 상대방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기다리는건데.

이 여자가 어떻게 된 여자길래 약속시간도 못 지켜?

점점 미팅녀에 대한 호감도가 - 원래도 호감이 가지 않았지만 - 급격히 떨어졌다.

그렇게 몇분을 기다리자, 커피숍 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들어왔다.

" 아, 윤아야! 여기! "

미영이 손을 들고 우리의 위치를 알리자, 그 여자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예쁘다.

내가 처음 그녀를 보고 떠오른 느낌이었다.

" 아, 죄송해요. 차가 너무 막히는 바람에……. "

" 괜찮습니다. 저희도 막 왔는데요. "

10여분은 기다린 것 같지만, 입은 이미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눈은 그저 그녀에게 향해 있고, 얼굴을 붉어졌다.

그렇게 내 가슴은 몇년만에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 흠. 둘이서 알아서 해. 난 간다! "

바람과 같이 나가버린 미영.

우리로서는 어색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서로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 없이 무턱대고 만났기 때문에, 자기 소개부터 필요할거란 생각에 나는 입을 열었다.

" 많이 어색하네요. 23살 이연우라고 합니다. "

" 아……, 21살 임윤아에요……. "

왠지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임윤아라는 여인.

그녀의 따뜻하고 온화한 말투에 내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바깥에는 벚꽃이 휘날리고 있었다.

따스한 봄하늘을 분홍빛 눈꽃들이 듬성듬성 가리며 도시를 빛내주었다.

" 저, 윤아씨……, 잠깐 걸을래요? "

23년 인생, 모든 용기를 담아서 어렵게 뱉은 한 마디였다.

" 어이, 아저씨. 뭘 그리 생각해요? "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미영의 코는 이미 붉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이미 여러군데 술병이 놓여있다.

너무 취하면 안 될텐데.

윤아가 옆에서 내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알싸한 향기 -

목 뒤로 넘어가는 술 맛이 최고였다.

" 근데, 남편. 뭘 그렇게 생각했어요? "

윤아가 내게 귀엽게 물어오자, 나는 웃으면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내 쪽으로 끌어왔다.

베시시 웃으면서 내게 기대 안기는 윤아.

" 너랑 나랑 처음 만났을 때 생각했지. "

윤아도 그 때가 생각나는지 손벽을 짝 - 치고 내 품에서 웃었다.

미영이 한심하다는 투로 우리를 보더니 술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 오빠 윤아 만나기 싫어했잖아. 가기 싫다고 땡깡 부려놓고는. "

땡깡이라니.

그게 남자 앞에서 할 소리냐.

내가 욱해서 소리치려 했으나, 윤아의 손이 더 빨랐다.

" 어 아라연 죽은아! (너 말하면 죽는다!) "

윤아가 내 입을 막는 바람에 자유로운 움직임이 불가능해서 소리가 새버렸다.

당연히 알아 들었겠지만 미영이는 사악했다.

윤아도 마찬가지였다.

뭐가 그렇게 흥미로운지 품에서 벗어나 - 손으로 내 입은 막은채로 - 미영에게 다가갔다.

" 진짜? 헐……. 오빠 실망…… "

" 아, 아니 그땐 너 몰랐을 때잖아. 어이 황미영. 티라노 풀 뜯어 먹는 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드셔요? 네? "

" 어이구……, 기분 좋오오타! '

차가운 겨울밤, 미영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소리쳤다.

발걸음은 엉키고, 중심을 잡지 못한채 겨우겨우 걸어가고 있다.

" 너 내일 스케쥴 없어? "

" 없어, 없어! 자! 이연우 씨! 일로 와봐요! "

얘 진짜 많이 취한것 같다.

팔을 쭉 뻗고 내게 다가와서 안기는 미영이.

미영이랑 안아본지도 5년이 넘은 것 같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스타가 되어서 볼 시간도 없어진 우리.

" 야! 연우 오빠 내꺼야! "

얘도 취했나 보다.

윤아가 나로부터 미영을 떼어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 칫. 이 나쁜 기집애. 너 나 아니었으면 연우 오빠 못 만났어! "

그건 그렇지만 얘들아.

너희들 이러는거 정말 보기 힘들다.

주위 사람들도 킥킥 거리면서 우리르 쳐다보고 갔다.

" 여기까지 하고. 미영이는 들어가 봐. 집 다 왔네. 나중에 또 보자. "

" 오케이, 오케이! 들어가 봐! "

여기 네 집이라고 이 아줌마야.

왠지 걱정된다. 

계단 올라가다가 넘어지지는 않을까.

다치면 안될텐데 말이다.

" 에휴. 우린 가볼게. 잘 자고. "

미영이 격하게 고개를 그덕이면서 비틀거리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윤아와 함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히 - 오빠. "

윤아가 귀여운 표정으로 내게 물어왔다.

나도 따뜻하게 대답해 주었고, 윤아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 잠깐만 이렇게 있어줘요. "

편안한 표정으로 눈이 내리는 겨울 하늘 아래, 따뜻한 포옹을 하는 우리 부부.

이 행복함이 떨어지는 눈꽃들 만큼이나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더 커졌으면.

" 사랑해요, 남편 "

" 나도 사랑해, 윤아야. "

부끄러운 말을 서로에게 속삭이며 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술의 도움이 있었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고백에 마음이 한층 부드러워지는 느낌이었다.

흩날리는 눈꽃들을 보니 그 날의 벚꽃이 생각난다.

윤아를 처음 만나고, 처음 진실된 사랑을 시작했을 때.

이렇게 윤아를 안고 있는게 꿈만 같다.

3년이라는 세월을 쉴새 없이 달려왔지만, 윤아가 있었기에 즐거웠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내 귀염둥이 아내 윤아야.

윤아가 갑자기 내 허리를 두른 팔을 풀더니 내 귀에다가 나지막히 속삭였다.

" 업어줘요, 남펴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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