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57)

그냥 깜깜한 안방 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윤아도 얼떨결에 내 옆으로 와 눕더니 눈을 껌뻑였다.

나는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아보았다.

아직 물기가 남아있다.

" 미안해, 윤아야. "

" 아니에요……. 충분히 만날 수도 있는데 제 속이 좁아서……. "

윤아의 대답에 나는 한번 씩 웃고 처음이자 마지막 있을 - 혹시 모른다 또 있을지 - 부부간의 심각한 대화, 그리고 과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이 반이라던가.

그 말이 진짜 맞는 것 같았다.

" 나한테 섭섭했던거라던가, 뭐는 안해줬으면 좋겠다. 혹은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거 있잖아. 다 말해봐. "

나의 그런 말에도 윤아는 잠자코 있었다.

서, 설마 얘 자나?

몸을 일으켜서 그녀를 바라보니 눈은 뜨고 있다.

" 그런거 없어요……. "

없기는.

" 그럼 내가 말해도 돼? "

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말할것이 없었다.

윤아는 항상 나를 위해 사는 것 같이 생활을 해 왔으니까.

그것이 윤아에게 행복이 된다면 둘 다에게 좋겠지만 말이다.

" 나는 뭐 딱히 없네. 진심으로. 근데 너는 있을거야. 분명히. "

윤아는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 저도 하나 밖에 없어요. 그냥 결혼 초창기처럼 생활하는거? 같이 해외 여행도 가구……, 나만 바라봐주구……. "

" 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너만 바라봤어. 오해하지 말아줘, 여보. "

윤아는 싱긋 웃더니 내 말을 받아쳤다.

받아친다기 보다는 알았다는 표현이었다.

" 알고 있어요. 아까는 제가 너무했던 것도. 괜히 힘들게 해서 미안해요, 남편. "

…….

그대만 바라보리라.

윤아의 요구는 단 하나였다.

전으로 돌아가 달라.

그녀만 보고, 우리 둘이서 사랑하던 그때로.

나느 그것을 승낙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윤아가 학교를 가지 않게 되면,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를텐데.

윤아로서는 많이 의심스럽고 걱정이 될 것이다.

" 나도 학교 가지 말까, 윤아야? "

내 말에 윤아가 눈을 크게 뜨더니 벌떡 일어났다.

" 그게 무슨 소리에요? 오빠 학교 안 가면 어쩌시려구…! "

" 괜찮아. 아버지 계시잖아. "

이제까지 아버지의 원조로 넉넉하게 살아왔지만, 언제까지나 얹혀살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대학을 갔던 것이었다.

윤아를 위해서 대학을 다녀야 할까, 휴학을 해야할까.

고민이 됬다.

" 그러면, 과외나 할까? "

" 그러면 저는 좋긴한데……, 오빠가……. "

내 걱정 하지 마시오.

윤아를 위한 것이라면 바다에도 뛰어들 거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닥친일을 처리해야 했다.

윤아를 풀어주는 것.

아직 예전과 같은 사랑이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 윤아야. 아직 나한테 화 났어? "

" 웅? 아니에요. 이제 화 다 풀렸어요, 남편. 고마워. "

그리고, 예전의 그 싱그러운 미소를 내게 보여주었다.

다행이다.

정말로.

" 윤아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

기분이다.

이제껏 못했던 것을 한번에 다 하자는 생각으로 윤아에게 물었다.

윤아는 가만히 있다가 내게 살며시 말했다.

" 여행……. "

여행?

가지 뭐.

나도 여행 가본지가 꽤 오래 되서 한번 가려던 참이었다.

이왕이면 윤아와의 추억이 있는 곳으로 정하고 싶었다.

" 스키장? "

" 꺄! 스키장! "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괜히 그녀에게 다가가 꽉 안았다.

" 뭐, 뭐에요……. "

윤아가 얼굴을 붉히면서 내 가슴을 토닥였다.

이런 느낌, 잠시 였지만 그리웠다.

이렇게 보니 윤아와의 관계가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녀가 숨쉬는 것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자극이 되고, 행복을 불어넣어 주니까.

" 그래. 스키장 가자. 우리 둘이서만. "

윤아가 나를 꽉 안았다.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 나 이대로 잘거니까 잠들때까지 움직이지마요……. "

그래.

잘자요, 내 사랑.

" 누나, 나 그 남자 마음에 안 들어. "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준연이 태연에게 말했다.

태연은 그녀의 동생이 그러거나 말거나 흥얼흥얼이다.

" 아, 누나! 좀 들어보라니까? 그 남자 연우같은 남자야? "

" 그런건 아니지만……, 그래도 믿을 수 있는 남자야! "

태연이 소리쳤다.

준연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태연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탁자에 털썩 앉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연우 같은 남자 아니면 내가 반대할거야. 그 남자 진짜 못믿겠다고. 내 말 좀 들어. "

그의 꾸짖음에 태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야 연우를 조금씩 잊어가는 것 같았는데.

다 잊어서 다른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잊기 위해서 다른 사랑을 하는 건데.

" 치……. 연우가 딱인데……. "

태연의 소용없는 한탄이었다.

준연도 한숨을 쉬며 그의 누나를 위로했다.

아무리 친구지만, 누나도 중요하니까.

" 연우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윤아잖아. 나는 말이야, 누나. 누나가 진짜 연우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아이 낳고 오순도순 잘 살았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

태연은 일어서서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의 동생을 꽉 안았다.

고마웠다.

" 알았어. 걱정마, 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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