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57)

그렇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윤아 임신했는데 스키장을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무리하면 아기한테 나쁠텐데 말이다.

" 우리 스키장 말고 다른데 가자. 너 위험할거 같아. "

윤아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를 한번 어루만지더니 말했다.

" 응……. 아쉽지만 그래야겠네……. "

" 일본 갈래? "

해외로 가는거야, 이럴 땐.

" 이, 일본? "

윤아도 해외는 예상 못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멍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인다.

" 일본. 우리 둘만 갈까? "

내가 그렇게 묻자, 윤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라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니, 웃으며 말한다.

" 나눈 오빠랑 둘이서 가면 좋은데, 여럿이 가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태연 언니… 도 같이 가지. "

태연 누나라.

가만히 보니 윤아가 많이 변한 듯 하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태연 누나와 엮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아마 어제 사건으로 마음의 문을 연 것 같다.

" 정말 그래도 되는거야? "

" 응. 나도 태연 언니 좋아하는 데 뭘. "

나를 위해서 그러는 것 같아 미안했다.

내가 고마운 표정을 짓자, 윤아가 까치발로 내게 입맞춰 왔다.

" 이제 그만 들어가요. 배고프잖아. "

얼굴은 발개져선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항상 말하는 거지만 너무 고마워, 윤아야.

내 평생을 그녀와 함께 하리라 생각하니 설레임이 더 커졌다.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설렌다.

" 태연 누나한테 전화해볼까? "

그렇게 물었더니 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기를 들고 익숙한 번호를 누르자, 많이 들었던 컬러링이 흘러나왔다.

[ 어레, 연우네. 왠일이얌? 니가 전화를 다하고 ]

나는 뭐 전화기 쓸줄 모르는 사람인가.

" 다름이 아니라, 누나. 놀러갈래? "

[ 놀러? 우와아아. 어디로오? ]

태연누나의 애교 가득 담긴 말에 나는 한숨을 한번 쉬고 대답했다.

" 일본. "

[ 이, 일본? 스케일이 왜 이렇게 커. 누구랑? 설마 너랑 나랑 둘이서? ]

이 누나가 변태 다 됬구만.

마누라 있는 사람이랑 어디를 둘이서 가겠다는 거야.

윤아를 보니 뭐가 그렇게 웃긴지 배를 잡고 웃고 있다.

" 이 누나 봐라. 윤아는 어쩌고. 나랑 윤아랑 누나랑 가려고 했는데? "

[ 나 남자친구 데려가면 안돼? ]

…….

뭐라고?

남자친구?

태연누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나도, 윤아도 잠시 멈췄다.

만년 솔로로 살것만 같았던 태연 누나가 커플이 되었다니.

약간의 배신감(?)과 함께 놀라움이 우리를 덮쳤다.

" 남자친구라니? 얼마나 됬는데? "

[ 한……, 2주? ]

2주밖에 안됬는데 어디를 가겠다는 말이야.

항상 생각했던 거지만, 태연 누나를 울리는 남자는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저승이 뭔지 보여주마.

" 못 미더운데. "

[ 야아앙. 데리고 가줘어어 - ]

윤아를 바라보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짧게 한숨쉬고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 알았어. 다시 연락줄게, 누나. "

[ 고마워! 역시 연우얌. ]

전화가 끝나자, 윤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 남자친구랑 같이 가면 오빠가 바람 못 피겠지? "

나를 그리도 못 믿을까.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 추운데 빨리 들어가야지. 감기 걸리겠다. "

" 요즘 연우오빠 뭐해? "

금발머리 소녀가 앞에 앉아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술을 들이키다가 씩 웃으면서 그녀에게 대답했다.

" 연우 과외 구하고 다니던데? 윤아가 임신해서 휴학신청하고 할게 없다고 과외나 한대. "

" 과외…? "

" 응. 뭐, 고등학생들 가르친다던데. "

남자의 말에 소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술을 따라주었다.

" 건배 - "

윤아와 함께 과외 광고지를 붙이고 다닌 지 3일도 되지 않아서 전화가 걸려왔다.

" 여보세요? "

[ 아, 안녕하세요……. 저, 과외……. ]

나는 기쁜 마음에 윤아와 함께 자세를 고쳐잡고 통화에 임했다.

여학생이었는데, 목소리가 매우 날카로웠다.

" 몇 학년이죠? "

[ 고 1입니다. ]

17살이면 쉽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윤아는 내가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말에 싱글벙글하며 웃고 있다.

"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

[ 정 수정입니다. ]

정…수정?

그 학생의 이름을 듣자마자 정수연이 생각났따.

윤아도 그런듯 얼굴을 찌뿌린다.

그래도, 이런 인연은 복권 당첨될 확률보다 적다는 생각에 알았다며 통화를 끝냈다.

" 오빠,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

윤아가 내게 말해왔다.

나는 곰곰히 생각에 잠겨서 눈을 감았다.

이게 만약 정수연과 엮인다면?

윤아와는 다시 사이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첫 직업 아닌 직업이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 아닐거야. 아마. 너무 우연적이잖아. "

내 말에 윤아가 시무룩해졌다.

걱정이 되나보다.

내가 그녀를 꽉 안아주자,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 제발 아니길…… "

나도 그러길 바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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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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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라,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옷은 어떻게 입고 가야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갈지.

다행히 윤아가 여러가지로 가르쳐줘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수업 영영 못들어 갈 뻔했다.

" 아, 오빠! 늦겠어! "

윤아의 독촉에 나는 대충 책들을 가지고 현관을 빠져나와 정수정이라는 학생이 말해준 주소로 향했다.

집에서 가까워서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현관문은 많이 고풍적인 느낌이었다.

위압감부터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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