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 씨. 긴장 하지 말자. 윤아가 실망해. "
윤아를 이용해서 나를 진정시켜보았지만, 조급해지고 초조해졌다.
" 선생님? "
그 때, 옆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돌아보니, 키가 큰 한 소녀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아……. 수정이? "
" 네! 들어가요. 왜 이러고 계세요. "
수정이는 그렇게 말하며 비밀번호를 누르더니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도 정말 상상도 못할 만큼 컸다.
운동장…은 무리겠고 하여튼 이제까지 본 집들 중에 가장 큰 것 같았다.
인테리어도 온통 하얀색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 여기가 제 방이에요. "
수정이와 함께 들어간 그녀의 방은 아름다웠다.
고등학생답게 여러가지 많은 책들과 필기구가 나열되어 있었다.
" 공부 열심히 하나 보네. "
내 말에 수정이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면서 씩 웃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매우 좋았다.
싹싹하고 얼굴도 예쁘고, 무엇보다 착한 것 같았다.
학구열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 일단, 개념원리로 시작할거야. 고등학교 수학은 그걸로. 그리고 말하는데 쎈은 절대 풀지마. "
내가 제일 싫어하는 문제집이 고등학생들의 대표 문제집이라고 알려져 있는 SSEN 이었다.
이건 뭐 개념을 가르쳐주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유형을 가지고 문제를 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풀면 누가 못 풀어.
" 흐잉. 그래요? 저는 뭐,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할게요. "
그러면서 수정이는 씩 웃어주었다.
" 내가 첫 과외라서 말이야. 서툴 수 있거든? 이해좀 해줘. "
" 알겠어요. 잘 부탁 드려요, 선생님. "
순종적인게 꼭 윤아 같다.
그래도, 나는 편해질 수 있겠구나.
고작 2시간 수업이었지만,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 선행은 조금 했어? "
내가 물어보니 수정이가 도리도리 고개를 흔든다.
고등학교는 선행이 필수적인데.
" 6개월정도는 선행을 해줘야 하니까, 조금 빨리 나갈게. 물론 다 가르쳐주면서 말이야. "
수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펼쳐보니,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수월하게 가르치면서 쭉쭉 넘어가니 수정이도 흡족한듯 자주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 쌤! 우리 잠깐 쉬었다 해요……. "
한지 1시간쯤 지났을까.
수정이가 울상을 지으면서 책상에 늘어졌다.
나도 정신 없이 가르치다 보니 머리가 아파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 그러자. "
" 잠시만요! 마실 것좀 가져올게요. "
수저이는 그렇게 말하고 바을 뛰쳐나갔다.
여기저기 뒤적뒤적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알로에 쥬스 두 잔을 가져왔다.
" 고마워. 잘 마실게. "
" 히히. 쉬는 김에 이야기나 해줘요, 쌤. "
이야기라.
보통 여학생들은 사랑이야기 해달라 하는데.
" 무슨 이야기? "
" 쌤 사랑이야기! "
그렇지.
요거지 요거.
예상했다.
" 난 결혼했는데요. "
" 엥? "
결혼 했다는 말에 수정이가 놀란다.
왜 전부 다 놀라지.
20살 초중반에 결혼한게 그렇게 놀랄일인가.
" 쌤 연세가……? "
" 나 25살. "
" 허얼……. "
왜 이러시나 이 아가씨가.
.
.
.
수정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잡담을 하다보니 벌써 10분이나 지나있었다.
이야기를 정리하고 문제집을 보니 한개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뭐, 해야지.
" 일단은 1단원 끝내고 2단원 숙제. 몰라도 풀어봐. 내가 설명해주고 다시 풀거니까. 모르ㄴ다고 막 띄어넘고 그러면 안된다? "
수정이에게 그렇게 말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태도가 좋다마는, 너무 순종적이면 뒤통수 맞기 쉬운데.
" 믿어볼게. "
" 쌤! 쌤 아내 보고 싶어요! "
왜 이렇게 순종적인가 했더니만 다른 생각하고 있었구나.
절대 그럴 수 없지.
" 안돼. "
단번에 거절했다.
" 아아앙 - 쌔에에엠 - "
오늘 처음 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친해질 수가 있지.
얼굴에 철판을 깐듯 내게 애교를 부리며 졸라대는 수정이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윤아를 보여주긴 싫었다.
윤아는 내꺼야.
" 안돼.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가방에다가 책을 주섬주섬 집어넣었다.
곁눈질로 힐끔 힐끔 보니 수정이는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턱을 괴고 있다.
" 숙제나 다 놓길 바랄게. "
내가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나자, 수정이도 따라 일어났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을 때 수정이도 같이 신었다.
" 어디 나가게? "
" 배웅이나 해드리려구요. "
나를 배웅하겠다는 수정이의 말에 그러려니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저 앞에 익숙한 사람이 보인다.
윤아?
왜 하필 이럴때에!
" 아, 수정아. 들어가봐. 날씨도 추운데. "
" 아니에요. 괜찮아요. "
나는 안 괜찮단 말이다.
다행히 윤아는 휴대폰으로 뭘 하는지 우리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시간이 없었다.
빨리 수정이를 들여 보내야겠다는 일념하나로 현관에서 버티고 서 있었다.
" 들…어가…라니까? "
현관문에서 우두커니 힘을 쓰며 있는 나를 수정이가 힘껏 밀었다.
" 더 의심스러운데요? "
수정이가 뱉은 한마디에 내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내가 밀리면서 수정이가 얍 - 하면서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윤아가 이쪽을 쳐다본다.
하느님.
" 오빠! "
윤아의 목소리가 우리 귀로 들어왔고, 수정이의 고개가 돌아간다.
" 에에? 선생님 부인이에요? "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자, 수정이는 밝은 표정으로 나보다 먼저 윤아에게 달려나갔다.
뭐하러 가는거야.
" 안녕하세요! "
" 아… 안녕하세요……. "
윤아도 얼떨결에 마주 인사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나와 수정이를 번갈아 바라보는 윤아를 보자, 한숨이 나왔다.
윤아는 재빨리 나에게 다가왔다.
" 누구야? "
나에게 속삭이는데, 다 들릴 거다, 아마.
" 서로 인사해. 여기는 윤아. 내 아내고. 그리고 여기는 수정이. 이제 과외받을 애야. "
" 처음 뵙겠습니다! "
오늘 수정이를 봤던 모습 그대로 윤아에게 하고 있다.
붙임성 좋고, 활발한 아이.
그게 그녀에 대한 내 판단이었다.
" 아, 아, 안녕? "
윤아가 더듬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순진해서 그런지 수정이가 아직은 편하지 못한가보다.
" 언니라 불러도 되요? "
서로 알고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지만 수정이가 항상 이런지는 의문이었다.
윤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 나도 이런 예쁜 동생있으면 좋았을 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