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가 말했다.
수정이도 활짝 웃으면서 좋다고 방방 뛰었다.
그러고는 시계를 보더니 우리에게 인사를 하며 집으로 뛰쳐 들어갔다.
그런데, 마지막 그녀의 말이 우리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무언가 실수 했다는 기분이 엄습했다.
" 이제 들어가봐야 겠어요. 언니 올 시간 다 됬네. "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우리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서로 생각이 많아졌다.
정수연과 다시 엮기게 될 것이라는 불길함.
그리고, 우리의 사이가 틀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 아닐거야. "
윤아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내게 말했다.
나도 수긍하면서 그녀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 만약에……, 만약에 맞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만 바라볼거야 윤아야. "
" 응……. 고마워요, 남편. "
집에 도착하여 나는 피곤함에 쇼파에 들누웠다.
윤아도 웃으면서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몸을 당겨서 그녀의 무릎위에 머리를 대고 누우니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잠이 사르르 왔다.
따뜻한 곳으로 와서 그런가?
" 피곤하죠? "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 아니야……. "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자기는 싫었다.
윤아랑 아무거나 해야지.
" 네 배가 부른게 상상이 되질 않아. "
내가 그렇게 말하니 윤아가 히히 - 하면서 작게 웃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니 윤아가 내 얼굴 여기저기를 만진다.
" 하아……. "
왠지 모르지만, 그녀의 한숨이 내게는 아주 큰 비수가 되어 내리꽂혔다.
이렇게 행복한데, 윤아는 왜 깊은 한숨을 쉬는 걸까.
나는 계속 자는 척을 해보았다.
알아야 할 것만 같았다.
들어보니 윤아가 코를 훔친다.
몸도 계속 떨린다.
윤아가…… 운다.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깨어버린다면, 윤아는 난감해질게 뻔했다.
나 몰래 왜 아파하는걸까.
자꾸 이상한 의문들이 들었다.
내 얼굴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이 축축했다.
눈물일 것이다, 아마.
얼른 일어나 울지마 - 하면서 그녀의 눈가를 닦아주고 싶었다.
" 하아……. "
다시 그녀의 깊은 한숨이 적막을 갈가리 찢었다.
혼란스러웠다.
이제 모든게 다 풀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더이상 우는 일 없게하리라고 다짐했는데.
윤아는 눈물을 한번 쓱 닦는가 싶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남편. 들어가서 주무세요. "
" 으으으……. "
나는 잠에서 깨어난 척하며 신음했다.
그녀의 이끌림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몸을 던졌다.
윤아는 슬픈 미소와 함께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들어왔다.
" 이리와……. "
내가 그녀를 안아 끌어당기자, 윤아가 내 품안에 들어왔다.
울어라.
윤아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껏 울고, 이제 웃자.
내 가슴팍이 축축해진다.
.
.
.
윤아를 안고 잠을 청한지 3시간, 아직 눈을 감지 못했다.
윤아는 색색 거리면서 울다 지쳐 잠에 들어있다.
그녀를 꽉 안고 있으면서 안고 있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내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보았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그녀를 더 꽉 안아보았다.
잠결에 내 허리에 팔을 두르는 윤아가 약간은 위안이 되어주었다.
한숨을 한번 쉬어본다.
늦은 새벽, 나는 그녀를 안고 속으로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가슴의 눈물이 말라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 까지 -
내 마음 속 그녀가 웃을 때 까지 -
울었다.
★
오늘은 내가 먼저 일어났다.
윤아는 늦은 아침이 되어서도 눈을 뜨지 않았다.
이런적은 결혼 생활에서 처음이었다.
" 윤아야. 윤아야? "
내가 살며서 그녀를 깨우자 눈을 비비며 나를 바라보았다.
" 으우……, 죄송해요. 못 깨워서……. "
역시나 일어나자마자 사과하는 윤아가 안쓰러웠다.
괜시리 그녀를 한번 꽉 안아주고 함께 침대에서 일어났다.
" 피곤한가 보다. "
내 말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빨간 머리가 찰랑거렸다.
그녀의 손을 잡고 거실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였다.
이미 서울의 낮은 한참 진행되고 있어 많은 소리가 들려왔다.
따스한 햇살이 우리를 비추자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까맣게 잊은 채 기분이 좋아졌다.
" 곧 설이네. "
" 그러게요……. 일본은 설 지내고 가야겠어요. "
윤아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쇼파에 걸터 앉자, 윤아는 거실로 쪼르르 달려갔다.
냉장고를 한번 열어보더니 한숨을 쉰다.
" 왜 그래? "
" 으……, 먹을게 없어요……. "
먹을게 없으면 만들면 되지.
밖에 가서 사 먹어도 되고.
" 나갈래? 꽁치 먹으러. "
" 꽁치! "
윤아가 손뼉을 짝 치면서 행복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윤아가 꽁치를 좋아했던가?
" 꽁치 먹고……, 설 때 필요한 장 좀 보러 갔다 오자. 이틀 전에 살걸 그랬네. "
삼일 후면 설 연휴라 그렇게 말 한 것이었다.
윤아는 두근 거린다는 듯이 가슴에 손을 얹고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배를 한번 쓰다 듬고 나에게 달려왔다.
" 빨리 나가자아 - "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 가슴팍에 볼을 부비부비(?) 하는 윤아를 보고 있으니 괜시리 웃음이 났다.
나는 윤아와 안은채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 오늘은 뭐 입을까, 여보? "
내 말에 윤아가 팔을 풀고는 어린아이처럼 장농을 뒤졌다.
여러 옷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윤아는 다 넘겨버렸다.
" 이거 입을래요? "
윤아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내게 분홍색 옷을 들이 밀었다.
게다가 반팔이다.
얘가.
" 하하하……. 일찍 과부가 되고 싶나봐 우리 여보가. "
" 장난이에요 히히. "
장난 두번 치다간 진짜 골로 갈지도 몰라, 나.
윤아가 준 옷을 대충 입고 그녀를 기다렸다.
윤아는 힐끗 힐끗 화장대를 봤다가, 나를 봤다가 하는 것이었다.
" 왜 그래? "
" 화장 해야 되나……. "
윤아가 그렇게 묻자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밖으로 나왔다.
" 나는 윤아 화장 안 한게 더 예뻐. 물론 해도 예쁘지만. "
" 그런가……. "